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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아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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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
피아트(Fiat)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Fiat)의 창시자이며 아넬리 가문의 투자회사인 엑소르(EXOR)의 창시자이다. 지오반니 아그넬리 혹은 조반니 아그넬리라고도 부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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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조반니 아넬리는 1866년 이탈리아 빌라페로사의 부유한 상류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넬리는 군사학교에 다녔으며 1892년 제대하였다. 조반니 아넬리는 유럽의 여러 나자 중에 자신의 모국인 이탈리아의 자동차 공업이 제일 낙후된 것을 알고 1899년 아넬리의 주도하에 귀족, 은행가 등 친분이 두터운 8명의 부호들과 함께 토리노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를 설립하였다. 1899년 7월 11일에 설립한 피아트는 당시 이탈리아 유일의 자동차 회사였다. 피아트는 1900년 코르소 단테지역에서 당시 150명의 직원이 24대의 피아트 3 1/2HP 생산을 시작으로 역사가 시작된다. 1904년엔 피아트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비스카레티(Biscaretti)에 의해 파란 원형의 모양을 지닌 피아트의 첫 엠블럼이 탄생한다. 이후 조반니는 자동차는 결코 부자들의 전유물이거나 레이스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되며 대중들이 탈 수 있는 값싸고 성능이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1908년 값싼 소형차 티포(Tipo)를 만들었으며 직렬 4기통 1.8L 엔진은 10㎞/L의 높은 연비를 가져 이 모델은 큰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미국에 피아트 오토모빌 코퍼레이션을 설립한 뒤 승용차는 물론 상용차, 선박, 엔진, 트럭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갔다. 1917년에는 회사명을 머릿 글자를 딴 지금의 "피아트"(FIAT)로 바꾸고 자동차 외에 농업기계, 철도차량, 선박기관, 항공기, 원자력, 우주개발, 제철, 석유, 건설에 이르기까지 다각경영을 하는 이탈리아 최대의 기업이 되었다. 피아트는 이탈리아 자동차 생산의 80%를 차지하며 이탈리아 군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무기 생산에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민간 기업으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성장해 이탈리아 3대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1922년에는 당시 유럽 최대 규모로 옥상에서 레이싱카도 시험주행할 수 있는 링고토 공장 문을 열어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조반니는 1927년 현재 엑소르의 기초인 IFI(Istituto Finanziario Italiano)를 설립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조반니 회장은 미국으로 가서 헨리 포드와 만났다. 미국의 포드 공장을 방문해 자동차 대량 생산 기술을 습득하고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노동자들의 복리 증진에도 힘을 썼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1936년 피아트 500으로 부르는 토폴리노(Topolino)를 출시했다. 토폴리노는 이탈리아 어로 "작은 쥐"를 뜻한다. 배기량 570㏄의 엔진은 최고출력 13마력을 냈고 1L 당 17㎞를 달릴 수 있어 경제적이었다. 최고 속도는 시속 85㎞. 작은 쥐처럼 이탈리아 시내 곳곳을 민첩하게 누볐다. 1945년 12월 16일 사망했으며 2001년 유럽 자동차 명예의 홀에 입성하고 2002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2][3][4][5]

주요 활동[편집]

피아트 3 1/2hp[편집]

피아트 첫 번째 자동차 피아트 3 1/2hp

피아트의 첫 차로 알려진 3 1/2hp(또는 4hp)는 원래 체이라노(Ceirano) 형제의 회사에서 만들었다. 조반니(Giovanni), 에르네스토(Ernesto), 마테오(Matteo) 체이라노 형제는 19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웰아이즈(Welleyes)라는 브랜드로 자전거를 만들어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자전거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동차 개발에 나섰다. 설계는 웰아이즈의 엔지니어인 아리스티데 파치올리(Aristide Faccioli)가 맡았다. 웰아이즈가 만든 첫 차는 1899년에 첫 선을 보였다. 형태는 마차와 비슷해서 앞뒤 좌석에 각각 두 명씩 마주 보고 앉는 비자비(vis-a-vis) 형태였다. 뒤를 보고 앉게 되어 있는 앞 좌석은 뒤 좌석보다 크기가 작았고 초기 모델은 앞바퀴보다 뒷바퀴 지름이 더 컸다. 차체 앞에는 커다란 역삼각형 철제 보호구에 가죽 흙받이를 달았고 일부 모델에는 나무로 된 것도 있었으며 뒷좌석 뒤에는 접고 펼 수 있는 지붕이 있었다. 프레임은 각목을 철제 부자재로 보강해 만들었고 차체도 나무로 만들었다. 당시 벤츠 차를 닮은 모습의 차체는 코치빌더 마르첼로 알레시오(Marcello Alessio)에서 만들었다. 마르첼로 알레시오는 토리노의 유명한 차체 전문 제작자로 이탈리아 카로체리아의 선구적 업체 중 하나다. 엔진은 4행정 수평대향 2기통 679cc로 차체 뒤쪽 아래에 놓여 뒷바퀴를 굴렸다. 차체 크기에 비하면 엔진은 무척 작은 편이었지만 그만큼 연료 소비량은 적었다. 당시에 연료 8L로 100km를 달릴 수 있는 효율은 비교적 우수한 것이었다. 흡기와 배기 밸브는 실린더 헤드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태로 실린더가 누워 있어 각각 위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압축비는 4:1 이었다. 최고출력은 400rpm에서 약 4.5마력이었는데 출력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 때문에 차 이름은 과세 마력인 3.5마력으로 지었다. 나중에 생산된 차에는 배기량이 837cc로 커진 5.5마력 엔진이 올라가기도 했다. 엔진 크랭크케이스에는 크랭크샤프트에 윤활유를 주입할 수 있도록 열린 부분이 있었다. 냉각은 수랭식으로 이루어졌고 첫 차는 시트 아래에 있는 라디에이터가 냉각수를 식혔다. 라디에이터는 나중에 차체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엔진 동력은 원뿔형 가죽 클러치와 후진 기어 없는 3단 수동변속기를 거쳐 디퍼렌셜 기어에 끼워진 피니언으로 체인이 물린 링 기어를 돌려 뒷바퀴로 전달했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바퀴와 차축에 이중으로 작용했다. 조향기구는 차체 오른쪽에 달려 있었고 앞바퀴에 기계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 자전거 핸들 모양 막대를 좌우로 돌리는 식으로 방향을 바꿨다. 휠은 목재로 된 것과 자전거처럼 금속 와이어 스포크로 만든 것이 있었고 서스펜션은 앞쪽에 이중 타원형 뒤쪽에 타원형 판 스프링이 쓰였다. 전비중량은 약 450kg으로 최고 속도는 35km/h 정도였다. 3 1/2hp 생산이 시작된 뒤 오래지 않아 체이라노 형제는 새로 만들어진 회사인 피아트에 공장과 특허를 매각했다. 1899년에 만들어진 3 1/2hp는 8대였고, 1900년에 후속 모델인 6hp가 나올 때까지 모두 24대가 만들어져 대당 4,200리라에 팔렸다. 거의 수제작된 탓에 차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졌다.[6]

피아트 500 토폴리노[편집]

1936년 이탈리아 국민차 피아트 500 토폴리노

피아트의 창업자 조반니 아넬리는 1930년 무솔리니로부터 호출을 받게 된다. 무솔리니로부터 자동차 보급을 위해 5,000리라를 넘지 않는 이탈리아 서민들을 위한 차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피아트 500 토폴리노는 둥글고 호감 가는 스타일에 파아트사에서 차체 기술실을 이끌던 로돌포셰퍼 팀이 정한 것이었다. 셰퍼는 소형차 500을 디자인할 때 1935년 11월 밀라노에 첫 출시되어 대중을 매료시킨 6기통 엔진의 1500의 보디라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둥근 형태 불록한 그릴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500 토폴리노는 1936년 6월 15일 공식적인 첫 선을 보였으며 언론과 대중이 토플리노(Topolino)라는 별명을 붙인다. 토폴리노는 미키 마우스의 이탈리아 이름이다. 길이가 3.22m임에도 불구하고 피아트 500은 두 사람을 태울 수 있었다. 높은 밀도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공기역학적인 면에서 매우 정교하게 개발된 자동차로 평균 60km로 주행할 때 100km에 연료를 5L 소모하여 아주 경제적인 자동차이다. 배기량 569cc 엔진을 단 피아트 500은 대량 생산된 차들 가운데 시장에서 가장 작은 차였다. 500은 13마력에 최고 속도는 85km로 제한되었다. 토폴리노는 도시와 시골에 다 어울리는 자동차로 개발 당시에는 5,000리라였지만 실제 출시가는 9,750으로 두 배 상승하였으나 당시 자동차 가격을 고려할 때 여전히 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 중 하나였다.[7][8]

각주[편집]

  1. "Giovanni Agnelli", "wikipedia"
  2. 임성현, 〈(Brand Story) 100년 역사 피아트의 얼굴 친퀘첸토〉, 《매일경제》, 2013-10-22
  3. 100년 전통의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피아트의 역사〉, 《DB손해보험 내차사랑 블로그》, 2014-12-15
  4. 로드테스트, 〈(최초시승) '예쁘니까 잘될거야' 피아트 500X〉, 《네이버 포스트》, 2016-04-08
  5. 차맛쟁이, 〈피아트? 근데 알고보니 엄청 유명한 회사!〉, 《티스토리》, 2020-11-04
  6. 류청희, 〈브랜드 역사의 시작 #5 체이라노 형제의 '피아트 3 1/2hp'〉, 《오토헤럴드》, 2019-01-08
  7. 자동차 전문 교육 자동차 역사가, 〈12. 피아트 500 토플리노(1936~1948), 이태리의 미키마우스 자동차〉, 《티스토리》, 2012-06-26
  8. MyMooLily, 〈MML의 자동차 TMI #6 - 피아트 500 시리즈 - The Real Retro Icon – 1편〉, 《네이버 블로그》, 2020-05-13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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