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요섭
황요섭(黃堯燮, 1959년9월5일 출생)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겸 기업인이며 국제적으로는 저널리스트이고 세계4대 재무적 투자가 집단인 두바이헤리티지의 공동대표이며, 전략적 투자자로 글로벌 비즈니스 업계에 그 이름(Joseph Y. Hwang)이 널리 알려져 있다.(Yahoo 및 구글, 네이버, 다음, 네이트, 줌 등 검색 참조) 본관은 우주(紆州/오늘날의 전라북도 완주군을 의미한다)로 조선 명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모두 겸임한 황헌(黃憲)의 직계손으로서, 전라북도 익산군 출생이다.
학력 및 경력[편집]
- 1974년 서울인왕초등학교 졸업
- 1978년 서울지구 중학교 및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 합격
- 1983년 건국대학교 졸업
- 1987년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 1988년 제일경제신문 창간 및 대표이사 비서실장
- 1984년~1991년 5개학원(외국어 학원, 통역관광학원, 컴퓨터전산학원, 토목건축학원, 간호사 및 의사의 미국 진출 프로그램 학원 등) 원장
- 1989년~1993년 미국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석사
- 1994년~2002년 독서신문
- 아시아경제신문, 코리아타임즈투데이, 코리아저널리즘, KORUS방송 등의 기자 및 편집국장
- 1998년~2004년 대한민국 코스닥 및 코스피 15개의 상장업체 회장
- 1999년~2000년 세계밀레니엄협회 한국 부회장
- 2012년~현재 케이팝모터스
- 케이팝모터스그룹, 케이팝모터스홀딩스그룹, 케이팝에이치앤비, 케이팝이앤티, 케이팝푸드, 케이팝이앤씨, 케이시티에코넥스, 케이팝에너지, 케이팝호텔, 케이스마트에너지, 케이스마트시티, 오아시스엔터테인먼트, 굿엔터테인먼트, 제이앤에스이엔씨, 에코넥스, 디에이치코퍼레이션 등 경
- 2014년~2021년 한미친선협회, 한중친선협회, 한미문화교류협회, 한베경제문화교류협회, 세계전기자동차협회 등 의 활동
출생과 성장기 그리고 사회활동[편집]
황요섭은 1959년, 전라북도 익산군 함라면 함열리의 조그마한 향교중심의 마을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모친은 간호사인 조산원(당시는 산파 라 불렸음)을 하였고 , 부친은 약사를 하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지역성당의 사목회장을 역임 많은 봉사를 하여오며 사실상 부모가 함라지역의 병원역할 및 지역봉사활동을 주로 하였었다. 이런 부친의 영향으로 황요섭의 유아기 시기에 전북 익산시 망성면에 소재한 익산나바위성당의 성전축성기념일에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축성식에 참석한 황요섭을 사제로 만들어보겠다 함에 모친의 극구 반대로 사제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정작 , 황요섭은 사제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황요섭은 유년기 시절부터 성격이 남다른 아이로 자라났다. 모든 친구들을 좋아하고 생각이 깊으며,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반면 지극히 내성적이었다. 실례로 초등학교 운동회 때가 되면 , 황요섭은 운동회에서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는 약국에서 박카스 나 과자대용의 비타민 C등을 운동회에 참석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신경을 쓰고 직접 운동회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친구들을 응원하며 관망만 하는 행동을 많이 하곤했다.
황요섭의 유년기 및 초등학교 저학년시기에 황요섭의 부친은 약국 이외에도 주유소,양곡판매,중앙일간신문지국,운수업 등의 약국 과 관련없는 사업을 하여왔고 황요섭은 이를 지켜 보아왔다. 그러던중, 황요섭의 부친은 약국보다는 기업경영을 전념하고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하여 오늘날 교보생명그룹의 창립이후 초창기 멤버로 활동하다가 불행히 한쪽다리를 절단하게되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때 황요섭은 집안의 가장으로서 모친과 함께 부친의 간병을 하여오던중 장기화된 부친의 교통사고 가료로 가정경제가 극빈상태에 이르게 되자, 사실상 소년가장이 되어 대한민국 중소산업의 일원인 근로자로서 신발공장,보세의류공장,전자칩공장,낚시도구공장,앨범공장들에서 4~5년간 20시간 근무하면서 가정을 이끌게 된다. 그러던중, 황요섭의 부친은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봉합하여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자 그동안 하고싶어 왔던 동대문의 평화시장 과 신평화시장 일대의 부동산개발 및 중개업사업에 매진하면서 해당사업이 잘이루어지어 가정경제는 회복되고 황요섭은 약 4년이 늦게서야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된다.
황요섭은 중학교 1학년1학기에 동료급우보다 나이가 3~4살이나 많기에 등치가 크고 운동도 잘하여 서울인창중학교 역도부 및 축구부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고있던중 점심시간 황요섭이 비가 많이 내리는 가운데 축구를 하던중 킥을 하여 볼이 옆에 있던 인창고등학교 2학년 선배의 옷을버렸다고 심하게 폭행을 당한뒤, 그 선배가 황요섭의 초등학교 단짝 이란걸 알게되면서 황요섭은 자존심의 손상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의 길로 들어서 밤잠을 자지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1년사이에 (1978~79년도) 중학교 및 고등학교 과정을 합격하게되며 이때 함께공부하였던 사람이 오늘날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 과 주코네트워크의 주수도 회장이었다.
황요섭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래에 자신의 직업은 글로벌기업인으로서 미디어 및 언론분야의 루퍼트 머독및 테드 터너 , 부동산개발 및 건설분야의 정주영회장,기업인이며 투자가인 워렌 버핏을 자신의 멘토로 삼아왔으며 그들을 본받고자 우선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에 진학하고자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본고사인 수학시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맞본 황요섭은 차선책으로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에 진학하며 자신의 꿈이었던 언론인의 길로서 대학신문 편집장일을 재미있게 수행하여 나가며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게 된다.
그동안, 황요섭은 육군 병장으로 국군수송사령부에 입대하여서 근무하며 대한민국의 항공, 철도, 고속터미널, 연안여객선 등의 군인 및 군화물의 수송일을 하게 되며 특히, 팀스피리트 전술훈련의 이동을 담당하곤 하여 차후에 황요섭이 대한민국 과 미국 등에서 여행사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병역생활중 황요섭은 군인으로서 군기와 원칙에 충실한 나머지 탈영을 한 공수특전부대 단기하사관 및 사병 11명, 육군 3명, 해병대 7명, 공군 5명 등 모두 25명의 탈영병을 헌병과 함께 검거하여 국방부장관의 표창까지도 받은 자기 일에 유달리 집중하는 습성을 가졌었다.
이미 1982년 육군현역 입대 후 첫 휴가 때부터 사업을 펼치고 1984년 만기전역을 하자마자 대한민국 최초 영어전문출판사인 시사영어사의 마케팅을 총괄하였고, 5종류의 외국어 학원을 운영하던 중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과정의 미국유학길에 올라 자신이 멘토로 여겼던 루퍼트 머독, 테드 터너, 워렌 버핏 등을 순차적으로 알현하면서 그들의 장점을 닮고자 약 8년여간 유학생활과 비즈니스를 하며 한국과 미국을 왕래하였었다.
그동안, 부동산개발 및 건설 분야의 멘토인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을 수차례 면담하여 그에 따른 지혜를 닮도록 하여 경기도 용인시 수지 일대의 대규모 아파트 시행 및 분양에 성공하여 부동산시행 및 개발업계 의 마이다스 손으로 성장한다.
특히, 황요섭은 미국에서 학업과 사업을 하던 시절 당대 최고의 미래학자 겸 저널리스트였던 앨빈 토플러와 여러 차례 면담을 하며 인류의 미래산업과 위기를 넘어서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비전을 듣고서 전기자동차, 전기차충전기,태양열에너지,풍력에너지,발전기 등과 대한민국의 비전을 현실화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는 부동산 개발업에 성공하여 많은 부를 일으킨 부친에게서는 단 1푼의 유산조차 받지를 못한다. 그의 부친은 다른 형제들에게는 풍족한 재산을 물려주었으나, 정작 황요섭에겐 전혀 유산을 주지 않고 학교선생이나 하며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훈만을 유산으로 받는다, 그의 부친은 많은 재산을 가톨릭재단 등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다.
미국에서 돌아온 황요섭은 숨쉴틈 없이 대한민국의 코스닥 및 코스피의 인수합병(M&A)을 하여 무려 15개의 벤처성 기업 및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키던 중 1번의 실수에 봉착한다. 그것은 코스닥 업체 중 1개업체를 자신의 처에게 대표이사를 맡기고저 당시 전 청와대 춘추관장인 김영환을 사임키는 부담까지 않았으나, 황요섭의 처인 고선자는 당시 여성대통령이 되고자 킹메이커인 이기택 꼬마민주당 전 대표와 뜻을 같이하여 경영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두던 중 회사에 횡령사건이 발생되나 이 사건에 대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회사의 오우너인 황요섭이 전부지고 약 4년여간을 복역하며 다시 한번 인생의 깊은 철학과 지혜를 쌓는다.
이후, 황요섭은 미국에 있을 때 앨빈 토플러와 논의한 4차 산업인 전기자동차 사업에 매진하게 된다. 우선 황요섭은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동문 겸 후배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으로부터 전기자동차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좋은지 많은 직/간접 경험을 엿보게 된다.
결국, 2012년 12월 24일을 기하여 황요섭은 전기자동차의 글로벌 1위라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 현재까지 세계 21개국에 케이팝모터스 전기자동차 현지법인을 설치하였으며, 나머지 23개국에 추가로 현지법인을 더 설치하여 기후협약 국가인 54개 국가에 케이팝모터스의 모든 전기자동차 제조시설을 완비하여 2025년 12월 31일까지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세계 238개국 인구 500만명이 넘는 대도시에 510개 도시에 대형 전기자동차 전시판매장 개설을 준비 중에 있다.
경영철학과 이념과 정치성향 그리고 철학[편집]
경영철학과 이념은 "사람이 우선이다" 라는 기본 관념아래 대한민국을 세계 3강으로 이끄는 부강국가를 만드려면 정치와 경제의 발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가 편집하고 보도하는 코리아저널리즘의 오피니언에 중요하게 여러 차례 기고한 사실이 있다.
황요섭의 정치성향은 여당도 야당도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저 사람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 민생을 행복하게 잘하는 정치의 성향이 강하 그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장이 되고자 하는 자는 취임 전부터 퇴임 시기까지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주인(主人) 행세보다는 그들의 종 이 되어 그들을 왕처럼 주인처럼 잘 모시는 종살이를 할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시작하지 말라고 직언한다.
황요섭은 천주교인 이지만 다종교를 모두 이해하고 존중하여 준다. 자신이 천주교도라 하여 이교도를 절대 배척하지는 않고 모두 포용한다. 그리고 자신은 자연인 황요섭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로봇(Robot)으로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고 자신의 의지를 모두 꺾고 내려놓아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세상일을 헤쳐나간다고 하였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