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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프리드리히 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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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프리드리히 라프(Karl Friedrich Rapp)
라프 모토렌베아크 게엠베하(Rapp Motorenwerke GmbH) 창시자
비엠더블유(BMW, Bayerische Motoren Werke)

카를 프리드리히 라프(Karl Friedrich Rapp)는 독일의 항공기엔진 제조사 라프 모토렌베아크 게엠베하(Rapp Motorenwerke GmbH)의 창시자이다. 이 회사가 비엠더블유(BMW AG)로 변경된 뒤에, BMW 회사의 간접 창시자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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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카를 프리드리히 라프는 1882년 9월 24일에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에잉겐(Ehingen)에서 출생하였다.

전에 공학교육을 받고 1908년부터 1911년까지의 사이에 브릭시야 조스트(Brixia-Zust)라는 자동차제조사에 근무한 걸로 알려져 있으며 1912년까지 다임러 모토렌바우 게젤샤프트(Daimler-Motoren-Gesellschaft, 약칭 DMG 한국어:다임러 엔진 회사)에서 기술 디자이너로 근무하다 항공기 제조사 플뤼그베르크 도이치랜드 게엠베하(Flugwerk Deutschland GmbH)의 지사로 건너가 엔지니어와 회사운영 관리자로 근무하였다. 라프는 엔진 설계도 추진하였으며 그 중의 하나가 FD 1416 항공기 엔진이다.

1913년 4월 16일에 회사 주주들의 결의에 따라 플뤼그베르크 도이치랜드 게엠베하가 청산된 뒤 라프는 회사 동료 유리어스 오우스피차(Julius Auspitzer)와 함께 그 달 29일에 자본금 20만 라이히스 마르크(RM)로 카를 라프 모토렌베아크 게엠베하(Karl Rapp Motorenwerke GmbH)를 설립하였으며 제반 규격의 엔진제조와 판매를 주요 사업품목으로 하고 항공기와 자동차를 주요 목표 시장으로 하였다. 유리어스 오우스피차는 회사의 유일한 주주였고 라프는 경영총괄을 맡았다. 회사가 신속하게 성장하면서 1915년 이르러 370여명의 직원을 고용하였으며 1차 세계대전 초반에는 핵심 바이에른 기업(key Bavarian companies)으로서 군수 공급업체로 되었다. 디자인과 개발 품질의 미달로 프로시얀 육군(Prussian Army)의 납품거부를 받았지만 바이에른 육군(Bavarian Army)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 해군의 지지로 이 부분의 발주는 지속적으로 발행이 되었으며 후에 프로시얀 육군에서 막스 프리츠(Max Friz)가 개발한 BBE 엔진을 보고 600대를 주문하면서 불가피한 회사 인사 조정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로서 카를 프리드리히 라프는 건강사유로 회사에서 사직하였다. 회사는 바이에른 모토렌베아크 게엠베하(Bayerische Motoren Werke GmbH 약칭 BMW)로 사명변경을 추진하고 1917년 10월 4일에 프란츠 요세프 포프( Franz Josef Popp)를 회사 관리이사로 임명하였다.

카를 라프 모토렌베아크 게엠베하를 떠난 뒤 카를 프리드리히 라프는 로스엔젤레스의 리들링커 기계공장 항공기엔진부 수석엔지니어와 총괄로 1923년 10월까지 임직하였으며 1934년에 스위스로 건너가 자그마한 태양관측 천문대를 운영하였다.

카를 프리드리히 라프는 1962년에 스위스 남부의 로카르노(Locarno)에서 별세하였다.[1]

각주[편집]

  1. "Karl Rapp", Wikipedia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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