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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르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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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1843~1897)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
1895년 파리-보르도-파리 초창기의 에밀 르바소와 루이즈 사라쟁 르바소.

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1843~1897)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 회사인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의 설립자이다. 그는 프랑스 엔지니어이자 프랑스 자동차 산업 및 자동차 경주의 개척자이다.

에밀 르바소는 최초의 운전면허시험 합격자이다. 1893년 3월 프랑스의 파리 경찰이 실시한 최초의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였으며 당시에는 출발과 정지, 커브 주행으로만 면허를 발급했다고 한다. 면허증도 액자 크기로 발급되어 영광중의 영광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에밀 르바소의 기념 조각상이 현재 파리 포트 마이요에 세워져 있다.

생애[편집]

1843년 1월, 파리 근교인 농경지대 마루아르 엉 유르푸와(Marolles-en-Hurepoix)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총명함을 인정받아 생테티엔에 있는 에콜 드 미네 학교에 입학하나 수업내용에 흥미를 못느껴 중퇴하고 중앙예술제조학교에 입학하여 르네 파나르를 만난다. 1864년 학교를 졸업한 후 벨기에의 기계제조 공장에 취직하고 그 곳에서 에드와르 사랑쟁과 인연을 맺게 된다. 1869년 다시 파리로 돌아가 듀렌에서 경력을 쌓은 뒤, 1872년 드디어 파나르 르바소의 전신인 파나르에 입사하여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자동차를 만드는데 보낸다.

르네 파나르(Rene Panhard/1841~1908), 사라쟁부인과 함께 세계 최초의 자동차 회사인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를 1889년에 설립하였으며, 1891년에는 다임러 엔진을 중앙에 탑재한 모터 스포츠카를 만들었다.

프랑스 변호사이자 사업가였던 에드워드 사라쟁의 미망인인 루이스 사라쟁 부인은 고트리브 다임러에게서 다임러의 엔진을 얹은 자동차를 파리 및 벨기에에서 만들어서 팔 수 있도록 제조판매권을 취득한 후, 그녀는 남편의 친구이자 사업가였던 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와 재혼 하였다.

이들이 설립한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는 1903년경 1,5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며 연간 1,000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계최대의 회사로 성장 했으나, 2차대전후 경영 악화로 프랑스 시트로엥에 흡수 되었다.

르바소는 평소 그의 부하직원에게 '자동차는 무겁고 강하게 만들라'는 말을 자주했었다고 한다. 1895년 최초의 자동차 스피드 경주인 파리~보르도 왕복 경주에서 우승하는 큰 영광을 안았으나 1896년 파리~마르세이유 경주에 참가해 큰 부상을 입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1897년 4월 타계하고 만다.

사생활[편집]

1890년 5월, 에밀 르바소는 사라쟁 부인과 결혼했다. 사라쟁 부인은 프랑스의 변호사이자 사업가인 에드와르 사라쟁의 미망인이었다. 1889년 그녀는 독일의 고트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로부터 프랑스에서 다임러의 기술로 차를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리고 다임러의 새 모델인 '철의 바퀴'를 선물 받아 3일 동안 직접 600km를 운전하여 파리로 돌아왔다. 이것은 여성이 세계 최초로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기록으로 남았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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