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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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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은 태양력(太陽曆)의 하나다. 로마의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이집트천문학자 소시게네스(Sosigenes)의 의견에 따라 개정한 세력(歲曆)이다. 365일 6시를 1년으로 하고 4년마다 하루의 윤일(閏日)을 두었다. 후에 수차의 개정을 거쳐 현행의 태양력이 되었다.

개요[편집]

율리우스력은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제정해 기원전 45년부터 시행한 양력(陽曆) 역법이다. 율리우스력 1년은 365일 또는 366일(4년에 한번)이다.

기원전 46년 이전까지 고대 로마에서는 태음력을 사용하였으며, 점차 계절 변화(즉, 태양의 일주)를 고려해 태음력과 태양력을 섞어서 년(年)과 월(月)을 계산하였다. 이에 따라 특히 달을 계산하는 데 적지 않은 혼란과 계산 착오가 생겼으며, 이러한 착오는 제사장이 임의로 수정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채택한 달력은 태양력을 기준으로 2월을 제외한 달은 모두 30일 또는 31일로 정함으로써 이전에 있던 번거로움을 한꺼번에 해소하였다.

율리우스력은 4년마다 2월 29일을 추가하는 윤년을 두어 율리우스력에서 평균 한 해 길이는 365.25일이다. 이는 365.2422일인 평균 태양년보다 0.0078일(11분 14초)이 길어서 128년마다 1일의 편차가 났기 때문에, 1582년부터 더 정확한 그레고리력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현재(1901년 ~ 2100년)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 차이는 13일, 그레고리력 1월 14일은 율리우스력으로 1월 1일이 된다.[1]

방식[편집]

율리우스력은 고대 로마 공화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력을 개정하여 기원전 46년에 제정, 기원전 45년부터 로마의 달력으로서 시행한 역법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쓰인 양력(태양력)이다. 이는 로마가 쇠퇴한 이후에도 유럽 각국의 표준적인 역법으로 사용되다가,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수정한 그레고리력이 제정된 후 수백 년에 걸쳐 점차 사장되었다. 현재 쓰이는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의 간극은 13일로, 서기 1900년 3월 1일부터 2100년 2월 28일까지는 그레고리력 날짜에서 13일을 돌리면 율리우스력의 날짜를 계산할 수 있다.

기본 구조는 1년을 365일, 4년마다 한 번씩 윤년(하루를 보태어) 366일로 1년을 평균 365.25일로 정한 역법이다. 4년마다 한 번씩 2월 29일이 생기는 이유가 이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종교 및 정치적 목적(세금 부과 등의 속셈)으로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역법 체계를 개혁하고자 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작품. 고대의 달력은 대개 점 치는 용도로 사용했었다.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라틴어로 달력(캘린더)는 칼렌다리움(Calendarium)이라고 해서 차용증, 채권, 빚문서, 금전출납부 등의 의미도 지니고 있었으며, 고대 로마에서는 그리스의 관습을 본따 매년 1월 1일에 로마 시내 모든 주민들이 광장에 모여 신전에서 주관하는 의식을 치르고 새해 달력을 받아오면서 채권자와 채무자들이 모여 기존 채무관계를 재조정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채무자들이 돈 떼먹고 외국으로 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나오지 않으면 즉시 추방 및 로마 내에서 보유한 모든 재산을 동결시켜버렸다고. 늘 빚에 쪼들려 살던 카이사르로서는 달력이 전혀 예사로 보이지 않았을 법도 하다.

엄밀하게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소시게네스(Σωσιγένης)의 공로이다. 이보다 앞서 카이사르는 이집트로 원정하였으며 클레오파트라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새로운 역법의 도입은 당시 선진 문명의 중심이었던 알렉산드리아를 로마 제국의 판도에 편입하면서 가능하였던 일. 기원전 45년 1월 1일을 기하여 실시되었으며, 그레고리력 선포와는 상관없이 이를 아직도 사용하는 문화권이 있으므로 2천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과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시간 단위인 율리우스년은 율리우스력의 방식을 평균하여 계산된다.[2]

달력 명칭[편집]

1월이 야누아리우스가 된 것도 정확히는 율리우스력 도입 때부터라 할 수 있다. 이후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한 뒤,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양아버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려 7월의 명칭을 그의 이름 율리우스(Julius)를 따서 바꿔버렸다. 말년에는 당시 기묘하게 시행되던 율리우스력의 윤달 적용을 명확히 하면서 달력에 자신의 이름도 넣었다. 트라키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를 한 8월(섹스틸리스:Sextilis)의 이름을 전승기념이라는 명분으로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변경한 것이다. 보다시피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끼어들어가서 숫자 이름과 달이 2개씩 밀렸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원래의 로마 달력은 오늘날의 3월이 첫 번째 달이었고 오늘날의 1, 2월은 아예 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통이 될 뻔했던 달력에 이름 넣기는 다행히 다음 황제인 티베리우스가 '황제가 13명이 되면 어쩔 건데'라면서 측근의 진언을 거절하면서 일단 중지되었다. 하지만 칼리굴라는 9월을 '게르마니쿠스'(자기 아버지의 이름이자 자기가 계승한 별칭-성)로 고쳤었고, 네로도 4월을 '네로네우스', 5월을 '클라우디우스' 6월을 '게르마니쿠스'로 고쳤었다. 9대 황제 도미티아누스도 10월을 '도미티아누스', 9월을 '게르마니쿠스'로 고쳤었다. 물론 이 변경사항들은 각 황제의 사후에 원래의 이름으로 환원되었다. 더하여 9월은 안토니우스나 타키투스, 11월은 파우스티나와 로마누스로 바뀐 적도 있으며, 콤모두스는 아예 달 이름을 전부 바꿔버리기도 했다. 각 달의 명칭은 Amazonius, Invictus, Felix, Pius, Lucius, Aelius, Aurelius, Commodus, Augustus, Herculeus, Romanus, Exsuperatorius 였다.

후에 카롤루스 대제도 아예 모든 달 이름을 옛 게르만 식으로 싹 바꿔버리는 짓을 하기도 했는데, 그 이름은 15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그리고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18세기 말까지도 약간의 변형만 이루어진 채 사용되었다고 한다. 각 달의 명칭은 순서대로 Wintarmanoth(겨울의 달), Hornung(붉은 숫사슴의 뿔이 떨어질 때의 달), Lentzinmanoth(사순절 달), Ostarmanoth(부활절 달), Wonnemanoth(사랑을 만드는 달), Brachmanoth(밭을 가는 달), Heuvimanoth(건초 달), Aranmanoth(수확 달), Witumanoth(숲 달), Windumemanoth(포도 수확 달), Herbistmanoth(가을·수확 달), Heilagmanoth(성스러운 달).

하지만 어쨌거나 가장 빨랐던(그리고 문화적 영향력이 가장 컸던) 두 명의 지배자 이름만이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라틴어로 septem, octo, novem, decem 은 각각 7, 8, 9, 10 을 의미하는 숫자이고, 여기에 ber/bre를 붙이면,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 이며, 각각 9월, 10월, 11월, 12월이 되며 실제 숫자와는 2씩 차이가 난다. 인터넷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각각 7월과 8월을 끼워넣어서 밀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두 사람은 기존의 7월과 8월의 이름을 바꾸기는 했어도, 뒤로 두 칸씩 밀어 낸 것은 아니다. 카이사르 이전 세대의 로마력은 농업과 관련이 있는 10개월의 달력만 있었는데, 누마 폼필리우스 시대에 겨울에 해당하는 두 달분의 역법이 보강되면서 1년 12개월 체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때, 저 2달이 앞에 붙으면서 모두 두 달씩 밀린 것이다. 당장 아우구스투스가 손을 댄 오늘날의 8월도 위에 나왔듯이 원래 이름은 6과 연관이 있는 섹스틸리스(Sextilis)였다(sex-는 라틴어로 6에 해당하는 접두사이다). 카이사르는 이 두 달의 겨울이 앞에 붙는지 뒤에 붙는지 혼용되어 사용된 것을 앞에 붙는 것으로 확정하며 율리우스력을 만들었다.[2]

시차 및 개혁[편집]

365일마다 한 번씩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에서 1년 365일의 달력은 일단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엄밀하게는 365일 하고도 약 6시간이 추가되어야 지구공전 = 태양회귀년(回歸年)을 제대로 채운다. 지구가 4번 공전하는 동안(4년) 6시간 차이가 누적되어 하루 차이가 발생하니(4×6=24),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하는 윤년을 설정함(치윤置閏) 또한 오차를 극복하려 한 지혜다.

하지만, 자연의 운행이 인간의 편의대로 톱니바퀴처럼 깨끗하게 맞물리는 일은 없었다. 율리우스력의 1년은 365.25일(0.25일 = 6시간)인데, 실제 태양회귀년은 약 365.24219일(약 365일 5시간 48분 45초 정도)이다. 365.25일−약365.24219일=약0.00781일로, 이 숫자를 분초로 환산하면 약 11분 15초(675초)다. 하루가 86400초이다 보니, 86400초/675초로 계산하면 약 128년에 하루씩 밀리는 것이 발생한다. 쉽게 말해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자신의 궤도를 정확히 1바퀴 돌았는데 달력상의 1년은 약 0.0078일 정도 남아서 로마력 때와는 반대로 달력상의 날짜가 실제 날짜보다 반대 방향으로 앞서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레고리력으로는 2024년 1월 4일이 율리우스력으로 환산 시 2023년 12월 22일이다.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 설정 기준을 정하였는데, 춘분이 지난 후에 오는 보름 이후 첫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하면서 춘분점 측정은 종교적으로도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요즘은 각 국가 천문대에서 자국이 사용하는 기준 자오선에 따라 춘분 등 절기를 정밀하게 계산하지만, 옛 로마와 그 전통을 이은 지역에서는 '춘분이 3월 21일이니까 그냥 3월 21일 = 춘분이라고 정하자.'는 식으로 넘겼다. 달력의 간격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나고 천 년이 넘게 지난 나중에는 실체 춘분과 달력상 춘분이 달라졌다. 325년의 춘분은 3월 21일이라 부활절을 계산할 때에는 3월 21일을 춘분으로 간주하였다. 율리우스력의 125년마다 2월 29일 하루의 간극이 1200여 년 동안 누적되면서 1582년이면 10일 간격이 생겼다. 실제로 태양이 춘분점과 합쳐지는 날이 율리우스력으로는 아직 3월 11일이었다. 율리우스력으로 춘분인 3월 21일이면 정확한 태양력으로는 3월 31일인 것이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 차이는 너무 심했지만, 부활절을 계산할 때는 여전히 율리우스력 3월 21일을 춘분으로 간주하여 계산했다. 율리우스력 춘분이면 실제는 벌써 춘분이 한참 지났다는 얘기다.

당대 그리스도교계 지식인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겼고,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실제 춘분과 달력상 춘분이 열흘 차이가 있음을 천문대에서 몸소 확인하기도 했다. 그래서 10일을 건너뛰는 대개혁을 단행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 문제로 골치가 아파진 교황은 그 뒤로 달력과 천체운행 주기의 차이를 해결코자 율리우스력을 손보기로 작정한다. 이렇게 시차가 수정된 달력이 오늘날 사용되는 그레고리력의 유래이다.[2]

율리우스력 이전 달력[편집]

이집트력

엄밀한 의미에서 이집트력은 태양력이 아니다. 특이하게 고대 이집트인들은 1년을 정할 때 태양이 아닌 시리우스(Sirius)별을 기준으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고대 이집트인들은 주기적으로 나일강이 범람하는 과정을 관찰하여 1년을 범람기를 의미하는 아케트(Akhet), 성장기를 의미하는 페레트(Peret), 수확기를 의미하는 셰무(Shemu)로 나누었다. 각각은 현재로 따지면 6월 중순부터 10월 중순, 10월 중순부터 2월 중순, 2월 중순부터 6월 중순에 해당한다. 이들을 다시 4달로 나누고 1달은 3주, 1주는 10일로 정하였다. 이렇게 고대 이집트에서는 1년이 360일과 특별한 5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 호루스(Horus), 네프티스(Nephthys), 세트(Set)의 탄생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왕조 시대에 4년에 한번씩 윤년을 정하는 콥트력(Coptic calendars)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추가의 윤일 없이 단순하게 축제일을 변경하는 것으로 달력과 계절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해결하였다.

페르시아력

기원전 500년에 아케메네스(Achaemenids) 왕조의 다리우스 1세(Darius I)가 이집트에서 수입하어 사용한 달력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30일로 구성된 12달과 추가의 5일로 구성되어 있어 달력과 계절의 차이가 발생한다. 1079년에는 33년마다 8번의 윤년을 두은 방식이 제안되었다. 이렇게하여 실제 회귀년과의 차이가 0.000234일인 정확한 달력이 되었다. 1925년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과 호환되도록 개정되었으며 현재도 이란 등에서 공용으로 사용된다.

로마력

고대 로마에는 농사를 짓는 기간에만 사용되는 달력이 있었다. 즉, 달력의 길이가 304일이었는데 실제 1년을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고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은 달력에 넣지 않았다. 기원전 710년 경 누마 폼필리우스 시대부터 1년을 355일로 하는 달력을 사용하였으나 그 후에 율리우스력이 도입되기 전까지 1년을 355일, 378일, 355일, 377일이 되풀이되도록 개정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마야력

고대 달력 중에 마야인들이 사용하던 달력은 매우 독특하다. 1년을 1달이 20일인 18개월과 나머지 5일로 정하였다. 18개월로 정의된 360일을 하압(Haab)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5일을 와옙(wayeb)이라고 불렀다. 360일에 해당하는 촐킨(Tzolkin)이라는 단위가 있어 하압과 촐킨의 마지막 날이 일치하게 되는 52 하압이 마야 달력의 주기가 된다. 이 주기가 29번 반복되는 1508하압은 대략 1507 태양년이므로 이로써 마야인들은 1년의 길이가 365.242203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매우 정확해서 약 75000년에 1일 정도의 오차에 지나지 않는다.[3]

기타 태양력[편집]

프랑스 공화력

1793년에 제정된 달력이다. 1806년 나폴레옹이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각각의 달은 30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년의 마지막 5일은 축제일로 정하였다. 4년에 한번씩 혁명일이 윤일로 추가되었다. 특이하게 프랑스 공화력의 시작은 추분날인데, 이유는 프랑스 공화정이 성립한 날이 추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프랑스 공화력은 파리 자오선을 기준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1주일도 7일이 아닌 10일로 정하였는데, 다른 물리량에 적용된 10진법 체계에 맞추려는 의도였다. 휴일인 주말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5일째를 반휴일로 정하고, 10일째를 완전 휴일로 정하였다.

소비에트력

스탈린이 정권을 얻은 1929년 1월부터 1940년 6월까지 소련에서 사용된 달력이다. 1주일을 5일로 정하였고 요일의 이름에 색을 넣어, 황요일, 도요일, 적요일, 자요일, 녹요일이라고 하였다. 1931년에 1주일을 6일로 바꾸고 숫자로 요일을 부르도록 개정하였으나 1940년 주 7일제로 되돌아 갔다.

세계력과 국제고정력

세계력에서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에 존재하는 복잡성을 제거하기 위해 제안된 역법체계이다. 세계력에서는 12개월을 모두 30일로 통일하고 3개월마다 4일을 더한 후 남는 하루를 세계 공휴일로 지정한 달력이다. 날짜와 요일이 고정되어 있으므로 매년 같은 달력을 쓴다는 장점이 있다. 국제고정력에서는 1년을 13개월로 나누고 1달을 모두 28일로 고정하였다. 남는 1일을 세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세계력보다도 인류의 관습과 충돌이 심해 사장되었다.[3]

사용 지역[편집]

오늘날 공식적으로 율리우스력을 표준 달력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처음 그레고리력 제정이 가톨릭의 주도에 따른 것이라는 데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개신교와 정교회를 믿는 지역에서는 한동안 율리우스력을 유지하였으나, 오차 문제로 결국 새 달력의 보급을 막지 못하고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개신교 강세 지역인 독일, 잉글랜드, 미국은 18세기에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으며, 정교회권에서는 20세기까지 율리우스력을 사용한 바 있다. 러시아와 튀르키예에서는 1918년까지, 그리스에서는 1923년까지 공식적으로 율리우스력을 썼다고 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대부분의 강대국이 그레고리력을 썼다보니 대세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그레고리력이 정착했지만, 정교회 문화권에서는 가톨릭에서 정한 것이라 기존 율리우스력을 바로 대체하지 못하고 다소 늦게 도입되었다. 그래서 율리우스력 시절 출생자는 율리우스력으로 기록된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율리우스력으로 2월 23일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의 2월 혁명은 그레고리력으로 3월 8일(현 국제 여성의 날)이고, 율리우스력 10월 25일에 일어난 10월 혁명은 그레고리력으로 11월 7일(구 소련 및 벨라루스의 혁명기념일)이다.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달력은 그레고리력을 써도 성탄절이나 부활절같은 종교적 명절은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쇠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양력을 써도 명절은 음력인 것과 비슷하다. 정교회 가운데 예루살렘, 러시아, 벨라루스, 조지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의 교회들은 로마 제국 이래로 율리우스력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제정 시기까지 율리우스력을 계속 사용해 왔고, 이 때문에 러시아 혁명 시기의 사건을 설명할 때는 두 역법을 병기해서 혼란을 방지한다. 오늘날 그리스의 아토스 자치주에서는 내부적으로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데, 그리스 정부에서는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므로 그리 영향력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정교회 신도 중 그리스 구달력파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그리스 교회의 그레고리력 도입에 반대하여 갈라진 사람들이다.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는 개정된 율리우스력을 사용한다.[2]

동방 정교회의 교회력[편집]

그레고리력을 교회력으로 채택하고 있는 서방 교회(천주교와 개신교)와 달리 동방 교회 계열 특히 동방정교회는 일상 활동에서는 국가에서 정한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나, 예배와 예전을 명시한 교회력에서는 보편교회 시절부터 사용한 율리우스력을 따른다. 동방 정교회의 성탄절은 율리우스력 12월 25일로, 이는 그레고리력으로 1월 7일이다. 동방 정교회는 율리우스력으로 12월 25일로 취급되는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키며, 그레고리력의 12월 25일은 성탄절이 아니다.[1]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1.0 1.1 율리우스력〉, 《위키백과》
  2. 2.0 2.1 2.2 2.3 율리우스력〉, 《나무위키》
  3. 3.0 3.1 율리우스력〉, 《천문학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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