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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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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빅토리아 위치

빅토리아(Victoria)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주도로, 밴쿠버섬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인구는 약 9만 명이고 캐나다 서부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주요도시이며 본토에 있는 밴쿠버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있다.[1]

개요[편집]

빅토리아는 태평양 연안의 밴쿠버섬의 남쪽 끝에 있는 도시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주도이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고 샌프란시스코 다음으로 차이나타운의 역사가 오래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딴 이 도시는 1843년에 영국의 정착이 시작되었고 1843년 모피거래소가 개설되면서부터 발전했으며, 1886년까지는 주에서 으뜸가는 상업도시였다. 옛날에는 영국 해군 태평양 사령부 본부였으며 캐나다 해군의 태평양 함대 모항이 에스퀴몰트에 위치한다. 빅토리아는 위도상 높은 곳에 위치해있으나 겨울에도 북미 서부해안에 대표적인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타 캐나다 지역과는 달리 영하권으로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 추운 날도 대부분 영하 1~3°C 사이에 머물고 겨울이 우기라 비가 지속적으로 온다. 그러나 여름은 25-28°C 내외 온도라 건조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 빅토리아는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으며 특히 가장 유명한 두 개의 랜드마크인 의회 건물(1897년,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회의 본거지)과 엠프레스 호텔(1908년, Empress Hotel, 황후 호텔)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빅토리아는 현재 주의 정치, 관광의 중심지이며 빅토리아 대학교가 빅토리아에 있다. 빅토리아는 연간 3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이다.[2]

역사[편집]

1700년대 후반 유럽 항해사들이 도착하기 전 빅토리아 지역은 송희족을 포함한 해안 살리쉬족의 여러 공동체의 본거지였다. 스페인영국은 1774년 후안 페레스(Juan Pérez)의 방문을 시작으로 1778년 제임스 쿡(James Cook)은 북서 해안 탐험을 시작했다. 비록 1790년까지 후안 데 푸카 해협의 빅토리아 지역이 탐험되지 않았지만, 스페인 선원들은 1790년, 1791년, 1792년에 에스키말트 항구(빅토리아 서쪽)를 방문했다.

1841년 제임스 더글러스(James Douglas)는 밴쿠버섬의 남쪽 끝에 교역소를 설치하는 임무를 맡았다. 밴쿠버 요새가 미국의 손에 넘어갔을 경우를 대비하여 죠지 심슨(George Simpson)의 권고에 따라 북쪽에 새로운 초소를 건설해야 했다. 더글러스는 1846년 오리건 조약의 결과를 예상하고 빅토리아 요새를 설립하여 로키스 해협에서 조지아 해협까지 북미/미국 국경을 확장했다.

1843년 허드슨 베이 컴퍼니의 교역소로 세워졌으며, 원래 "물의 돌진"이라는 뜻의 카모삭(Camosack)이라고 불리던 곳에 세워졌다. 포트 앨버트(Fort Albert)로 알려진 정착지는 1843년 11월 빅토리아 여왕을 기리기 위해 포트 빅토리아(Fort Victoria)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850년에서 1854년 사이에 더글라스 조약으로 알려진 일련의 조약 협정이 원주민 공동체와 체결되어 대가로 특정 토지를 구입했다. 이러한 합의는 식민지 정부의 윤리적 협상과 권리 유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지만 부지에 도시가 배치되고 식민지의 수도가 되는 데 기여했다. 제임스 더글러스는 밴쿠버 아일랜드 식민지의 두 번째 총독이 되었고 1864년 은퇴할 때까지 밴쿠버의 초기 개발의 선두적인 인물이 되었다.

1858년 브리티시컬럼비아 본토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빅토리아는 프레이저 캐년 금밭으로 가는 도중 광부들의 항구, 공급 기지 및 적합한 중심지가 되었고, 인구는 300명의 인구에서 50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빅토리아는 1862년에 도시로 편입되었다. 1862년 빅토리아는 1862년 태평양 북서부 천연두 전염병의 진원지로,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모든 원주민의 3분의 2가 사망했다. 1865년 북태평양에 위치한 영국 해군 의 본거지가 에스퀴말트 (Esquimalt) 에 설립되었으며 현재는 캐나다의 태평양 연안 해군 기지이다. 1866년, 빅토리아는 정치적으로 본토와 통합되었을 때 뉴웨스트민스터 대신 새로운 연합 식민지의 수도로 지정되었고, 1871년 브리티시컬럼비아가 캐나다 연방에 가입하면서 주의 주도가 되었다.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항구는 북미 최대의 아편 수입항 중 하나가 되었으며 , 홍콩의 아편 무역과 북미로의 유통을 담당했다. 아편 무역은 입법부가 아편 수입 및 판매에 대한 면허를 발급하고 관세를 부과한 1865년까지 합법적이고 규제되지 않았다. 아편 무역은 1908년에 금지되었다.

1886년 버라드 만(Burrard Inlet)에 캐나다 태평양 철도 종착역이 완공되면서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상업 중심지였던 빅토리아의 위치는 돌이킬 수 없이 밴쿠버로 상실되었다. 이 도시는 그 후 1904년 인기 있는 뷰차트 가든(Butchart Gardens)의 개장, 1908년 캐나다 태평양 철도의 엠프레스 호텔(Empress Hotel) 건설에 힘입어 자연환경 속에서 고상한 정중함의 이미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밴쿠버섬의 탄광과 철도에 관심을 갖고있던 선도적인 산업가인 로버트 던스무어(Robert Dunsmuir)는 주의 부지사 관저 근처에 있는 록랜드(Rockland) 지역에 크레이그다로치성을 건설했다. 그의 아들 제임스 던스무어(James Dunsmuir)는 총리가 되었고 이후 지방 부지사가 되었으며 자신의 대저택을 지었다.

부동산 및 개발 붐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끝났고 빅토리아에는 도시의 성격에 크게 기여한 에드워드 시대의 공공, 상업 및 주거용 건물이 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경제가 붕괴되고 미혼 남성이 많아지면서 빅토리아는 군대 모집에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2개의 민병대 보병 대대, 즉 제88 빅토리아 푸질리어 연대 와 제50 고든 하이랜더 연대가 전쟁 직전에 결성되었다. 빅토리아는 아서 커리(Arthur Currie) 경의 고향이다. 그는 전쟁 전에 고등학교 교사이자 부동산 중개업자였으며 1914년 여름에는 고든 하이랜더스(Gordon Highlanders)의 사령관이되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그는 캐나다 군단을 지휘했다. 이 시기에는 에스키말트 타운십, 오크베이 지역, 사니치 반도의 여러 지방 자치체를 포함하여 빅토리아를 둘러싼 많은 지방 자치체들이 통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빅토리아 지역은 상대적으로 꾸준한 성장을 보여 두 개의 주요 대학이 자리잡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에는 조선업의 중심지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도시 계획이 세워져 부흥을 일으켰다. 1980년대부터 콜우드(Colwood) 및 랭포드(Langford)와 같은 새로운 지방자치단체로 통합되었으며 이들은 집합적으로 서부 커뮤니티(Western Communities)로 알려졌다.

광역 빅토리아에서는 주도 지역 내 13개 지방 자치 단체의 통합에 대한 요구가 주기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합병 반대자들은 별도의 거버넌스가 주민들에게 더 많은 지방 자치권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합병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합병이 서비스 중복을 줄이는 동시에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광범위한 지역 문제와 장기 계획을 더 잘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3]

관광[편집]

도시에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들이 많고 아름답기 때문에 여름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빅토리아 전체 인구의 3~4배 넘는 관광객들이 한 시즌에 몰린다. 그리고 부차트 가든(Buchart Garden)의 선큰 가든, 일본식 정원, 이탈리아식 정원이 유명하다. 다른 캐나다 대도시들에 비해서 한국인들에게 인지도가 적은 도시였지만, 최근에는 어학 연수생들과 워홀러들이 꽤 많이 찾는 도시가 되었다. 북미에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차이나타운이 위치해있다. 그래서 많은 중국계 캐나다인들이 거주한다. 중국계 캐나다인들의 비율이 높으며 특정 지역에서는 표준중국어나 광동어 번체자가 영어와 병기되어 있다.

빅토리아대학교[편집]

빅토리아대학교(University of Victoria)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주도 빅토리아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교이다. 약칭은 ‘UVic’이다. 1903년 7월 1일 빅토리아고등학교에서 발전한 빅토리아대학(Victoria College)으로 설립되었다. 이 당시 맥길대학교의 분교가 되어 예술과 과학 부문의 1~2학년 수업을 진행하였다. 당시 작은 목조 별관에서 수업이 이루어졌고 1914년 새롭게 문을 연 빅토리아고등학교 교사의 맨 위층으로 이전하였다.

1915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가 개교하였으며, 이때 1908년에 제정된 법령에 따라 빅토리아대학은 고등교육을 실시하지 않게 되었다. 1920년 가을에 지역사회의 요구에 따라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과 연계한 2년제 대학으로 다시 시작하였고 1921년에는 웅장한 던스뮤어(Dunsmuir) 저택으로 이전하였다. 1961년 첫 학사학위를 수여했고 1963년 학위를 완전하게 수여할 수 있는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면서 독립하여 현재의 고든헤드(Gordon Head) 캠퍼스로 이전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정부가 운영한다. 상학부, 교육학부, 공학부, 예술학부, 인간·사회개발학부, 인문학부, 법학부, 과학부, 사회과학부, 대학원학부의 10개 학부와 평생교육부, 의과부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캠퍼스는 휴양도시 빅토리아의 교외지역인 오크베이(Oak Bay)와 사니치(Saanich) 사이의 고든 헤드에 있다. 캠퍼스 대부분이 자연으로 둘러싸였으며 아름다운 경관과 온화한 날씨로 유명하다. 특히 면적 2만 7000㎡의 피너티 가든(Finnerty Gardens)과 4만 4000㎡의 울창한 미스틱 계곡(Mystic Vale)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캠퍼스 북쪽에 군대 막사로 지은 9층 규모의 실용적인 목조건물(Army Huts)은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문화유산 건물로 지정되었다. 부속시설로 도서관, 학습자료 센터, 미술관, 라디오 방송국, 학보사, 피닉스극장, 시네센타극장, 몰트우드미술관, 레거시미술관, 언어연구소 등이 있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빅토리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위키백과》
  2. 빅토리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빅토리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요다위키》
  4. 빅토리아대학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국가
카리브제도 국가
북아메리카 도시 1
북아메리카 도시 2
북아메리카 지리
북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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