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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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손주(우크라이나어: Херсонська область)는 우크라이나 동부에 위치한 주이다.[1][2]
개요[편집]
헤르손주의 면적은 28,461㎢이며 인구는 1,016,707명(2021년)이다. 서쪽으로는 미콜라이우주, 북쪽으로는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동쪽으로는 자포리자주, 남쪽으로는 크림반도와 접한다. 주도는 헤르손이다. 흑해, 아조프해와 접하며 주 안에는 드니스테르강이 흐른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우크라이나인이다. 그리고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도 헤르손현(Херсонская губерния)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당시에는 현재의 오데사주까지 포괄하는 넓은 영역으로 오히려 현재의 미콜라이우주 경계와 더 비슷했다. 레프 트로츠키가 당시 행정구역상 헤르손주/현 출신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행 중이던 2022년 9월에는 러시아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자포리자주, 헤르손주의 합병을 선언했으나, 국제 사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주요도시[편집]
헤르손[편집]
헤르손은 우크라이나 남부에 있는 헤르손주의 행정 중심지다. 흑해와 드니프로강이 만나는 지역에 있는 중요한 항구로서, 18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 흑해 함대의 첫 군함이 이곳에서 출항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조선 산업의 본거지이며, 주요 곡물 수출항이다.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불법적으로 병합된 후 크림 자치공화국의 우크라이나 대표부 사무실이 이곳에 있다.
헤르손은 1778년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대제가 연인이자 군인이었던 그리고리 포템킨(Grigory Potemkin)에게 지시해 건설된 도시다. 헤르손 요새에 세워진 첫 건물 중 하나인 성예카테리나 성당(Cathedral of St. Catherine)에는 포템킨이 묻혀 있다.
헤르손은 이반 간니발(Ivan Gannibal) 제독의 감독 하에 알렉산드르샨츠(Aleksandr-shants)라고 불리던 작은 요새 터에 세워졌다. 도시의 건설은 징용된 선원, 노동자, 군인, 죄수, 농노 수천 명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헤르손이라는 도시명은 약 2500년 전인 기원전 6세기경 크림반도 남서부에 있었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 도시 헤르소네소스(Chersonesos; 고대 그리스어 Χερσόνησος)에서 따왔다. 헤르소네소스는 그리스어로‘반도’를 뜻한다.
1783년 러시아 제국 흑해 함대의 첫 번째 군함이 헤르손에서 출항했다. 1784년 헤르손은 군(郡) 소재지가 되었고, 1803년에는 현(縣; Guberniya, 러시아 제국의 행정구역 단위)의 중심지가 되었다.
조선과 해운업, 특히 곡물과 목재의 서유럽 수출은 헤르손 경제의 기반이었다. 20세기 초 드니프로강 하구의 수로가 깊어지면서 수출항으로서 헤르손의 역할은 증대되었다.
우크라이나 독립투쟁 기간(1917~20년)에 헤르손은 우크라이나 독립세력을 비롯해, 볼셰비키, 프랑스, 백군, 폴란드 등 여러 세력에 의해 점령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도시는 파괴되었다.
헤르손은 조선(造船)업과 면방직산업 등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또한, 헤르손의 항만 시설은 세계 각국과의 대규모 수출 및 수입을 담당하고 있다. 헤르손의 기후는 습한 대륙성이다. 여름인 7월의 평균 기온은 22.9℃, 겨울인 1월의 평균 기온은 –1.7℃이다.[3]
노바카홉카[편집]
노바카홉카는 우크라이나 남부에 있는 헤르손주(州)의 직할도시다. 1950년 카홉카 수력발전소 건설이 시작되면서 현장 노동자들과 전력 기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신도시다. 전기 엔지니어링과 전력생산은 지금도 이 도시의 경제적 기반이다. 드니프로강과 카홉카저수지의 주요 하항(河港) 중 하나로, 저수지의 풍광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건설된 계획도시로 평가된다.
노바카홉카는 클류체브 마을이 있던 자리에 1950년대 초에 세워진 신도시다. 1950년 카홉카 수력발전소 건설이 시작되면서 현장 노동자들과 전력 기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 도시는 드니프로강의 상류 쪽 15km 거리에 위치한 카홉카시와 구별해 노바카홉카, 즉 뉴(New)카홉카라고 불렸다. 이 도시명은 1952년 2월 28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우크라이나 SSR) 최고의회에 의해 공식화됐다. 이날이 공식적인 도시 건립일이 됐다.
카홉카 수력발전소는 1955년부터 가동됐다. 같은 해 노바카홉카 엔진공장이 착공됐다. 이 공장은 1957년에 모터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몇 년 후 완공됐다. 현재 노바카홉카의 경제는 전기 엔지니어링과 전력생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노바카홉카는 옛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 건설된 수십 개의 신도시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처음에는 전력 기술자들을 위한 인구 2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로 계획돼 세워졌다. 이후 지리적 이점과 저렴한 전기, 철도 · 고속도로 · 수로 등 교통수단의 편의성, 고도로 숙련된 기술인력 등 발전 잠재력을 토대로 도시를 개방 · 확장했다.
수력발전소의 댐이 드니프로강을 막아 생긴 호수는 카홉카호라고 명명되었다. 카홉카호의 노바카홉카에서 가까운 지점에 남쪽으로 흐르는 운하가 건설되었다. 이 운하는 남우크라이나 남부와 크림 북부로 연결되어 이들 지역에 물을 공급한다.
노바카홉카 구시가지의 거리와 광장, 건물들은 저수지의 풍광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건설됐다. 195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건축가심포지엄에서 높은 등급과 함께 '백조의 노래'로부터 생긴 도시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2007년 2월 1960년대 우크라이나 문화 유적 중 하나인 노바카홉카 문화의 전당에 화재가 발생했다. 궁전이 불타 붕괴되면서 벽과 입구 쪽의 조각품만 남았다. 이 문화의 전당은 10년간의 보수공사 끝에 2017년 3월 다시 문을 열었다.
2014년 3월 헤르손주와 인접한 크림자치공화국이 러시아에 무력합병됐다. 노바카홉카 주민들은 러시아군의 침공을 우려해 그 해 9월 도시 외곽에 3km에 이르는 방어용 참호를 팠다.[4]
올레시키[편집]
올레시키는 우크라이나의 헤르손주에 있는 도시로, 드네프르강의 왼쪽 둑에 위치한다. 콘카강은 드네프르강으로 흘러들어가기 전에 이 도시를 통과한다. 가까운 곳에 올레시키 사막이 있다. 2016년 5월 19일 공산당 인사의 이름을 딴 도시 이름 치우루핀스크를 올레시키로 다시 바꾸었다. 이는 비공산화 정책에 따라 공산당과 관련된 인사들의 이름을 지명에 사용하지 못하게 한 법에 따른 것이었다.
올레시예는 키이브루스의 영토였던 11세기부터 알려졌으나, 이 지역 자체는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 드네프르강 어귀에 있는 스키타이 삼림에 대해 언급했다. 헤로도토스는 슬라브족을 '올레시예(숲을 뜻하는 슬라브어에서 유래)'라고 불렀다. 나중에 이 지역에 등장한 도시는 그 이름을 따왔다.
1711~1728년에 올레시키는 크림칸국의 보호를 받는 군단(軍團)인 자포로지아 호스트의 중심지였다. 1784년 올레시키 정착촌이 세워졌고, 1790년경에는 흑해 코사크족의 킨번 팔랑카에 속하게 되었다. 1802년 정착촌이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아 타우리다주(州) 한 우예즈드의 중심이 되었다. 1928년에 이 도시에서 태어나 소련 통상장관과 고스플란(국가계획위원회)의 의장을 지낸 알렉산더 치우루파(1870~1928)의 이름을 이 도시에 붙였다. 도시 명칭은 치우루핀스크가 되었다.
2007년 11월 21일 시의회는 올레시키라는 옛 명칭을 복원하기 위한 결의안 296호를 채택했다. 시의회 의원들과 지역 의회 의원뿐 아니라 코사크인들도 당시 대통령 빅토르 유시첸코에게 청원서 이행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2016년 5월 19일에야 베르호브나 라다(의회)가 치우루핀스크를 올레시키로 개칭하는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는 9년간의 시의회와 주민들의 캠페인을 거쳐 공산당과 관련된 인사들의 이름을 지명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비(非)공산화 정책에 따른 법을 준수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5]
러시아 침공기[편집]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크림반도 방면 공세의 직격을 받았다. 러시아가 주도 헤르손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을 헤르손 군민정청을 설치하여 점령, 통제하고 있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자포로지예주와 함께 러시아 연방에 편입되는 형태가 되었다.
- 2022년 03월 02일 헤르손이 러시아군에 완전히 함락된 직후 헤르손 군민정청이 설립되었다.
- 2022년 09월 23일부터 27일까지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 2022년 09월 2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의 독립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 2022년 09월 30일, 현지 시각 오후 3시에 일부 지역이 러시아 연방에 편입되었다.
- 2022년 11월 11일,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시를 탈환했다.
- 2023년 06월 06일, 노바 카호우카 댐 폭파 사건이 발생하면서 일부 지역이 침수되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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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헤르손주〉, 《위키백과》
- ↑ 〈헤르손주〉, 《나무위키》
- ↑ 〈유럽지명사전 : 우크라이나 헤르손〉,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우크라이나 노바카홉카〉,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우크라이나 올레시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헤르손주〉, 《위키백과》
- 〈헤르손주〉, 《나무위키》
- 〈유럽지명사전 : 우크라이나 헤르손〉,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우크라이나 노바카홉카〉,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우크라이나 올레시키〉,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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