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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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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8월 6일 (화) 22:3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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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西紀)는 기원 원년 이후. 주로 예수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하여 이른다. 서력기원(西曆紀元, 문화어: 기독교년대(基督敎年代))이라고도 한다.

개요

서기 또는 서력기원은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예수가 탄생한 해를 기원으로 하는 기년법을 말한다. 즉, 예수 탄생을 기원(紀元)으로 한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용해 온 기년법의 책력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6세기에 창시되었으나 본격적으로는 8세기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여 11-14세기부터 서유럽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기년법이 되었다. 이후 서구권 문명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현생 인류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연호가 되었다. 서기는 일반적인 다른 역법·연호 체계와 마찬가지로 0년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레고리력의 1년을 기원, 곧 '시작하는 해'로 삼는다. BC와는 같은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1896년부터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으나 서력기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시기는 1962년 1월 1일부터이다.

로마자 약어로 기원후는 AD(라틴어: Anno Domini 아노 도미니 '주의 해(年)에')로, 기원전은 BC(영어: Before Christ 비포 크라이스트 '예수 이전에')를 주로 사용했다. 이 말의 기원은 라틴어로, 현재 라틴어 문장 내에서 쓸 때에는 주로 장음 표시 악센트인 마크론(¯)을 덧붙인 'annō Domini'로 표기한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앞서 보인 바와 같이 마크론을 떼는 게 일반적이며, 인쇄물이나 컴퓨터 문서에서는 이탤릭체로 입력하는 예가 많다. 과거 영어권 국가에서는 '(in) (the) year of our Lord (Jesus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해에)'와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종교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기 위해 CE(Common Era 커먼 이라 '공통 시대', 또는 드물게 Christian Era 크리스천 이라)와 BCE(before Common Era 비포 커먼 이라 '공통 시대 이전', 또는 드물게 before Christian Era 비포 크리스천 이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Common Era'라는 표현은, 이 역법이 현재 종교, 지역과 무관하게 전 세계에 퍼졌다는 점을 감안, 종교적 의미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붙은 호칭이다. 반면에 'Christian Era'라는 표현은 anno Domini 같은 특정 종교에서만 사용되는 숭배의 뉘앙스를 배제한 채 '기독교의 책력'이라고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어에서도 비슷하게 '공력기원(公曆紀元)', '공력(公曆)', '공원(公元)'과 같은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에서는 Anno Domini를 간혹 주후로 번역한다.[1][2]

역사

서력기원 전 서력기원이 통용되기 전에는 서구 문화권에서도 해(年)를 표기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병용되었다.

마치 동양에서 임금의 재위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헤아렸듯이, 유럽과 중동의 고문서들이나 금석문에서도 로마의 황제나 집정관, 또는 지역의 권력자가 재임했던 시기를 기준으로 연도를 설명하곤 했다. A지역의 금석문에 'A지역의 로마 총독으로 아무개가 취임한 이듬해'라고 쓰는 식이다. 기원전 1세기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 1권 52장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sub Tullo res omnis Albana cum colonis suis in Romanum cesserit imperium.

(로마의 3번째 임금) 툴루스 시절, 식민지를 포함하여 알바나의 모든 것이 로마 지배권에 들어왔다.

2세기 중엽에 쓰였다고 추정하는 초대 교회의 문서 《폴리카르포 순교록》(Martyrium Polycarpi)에서는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가 순교한 해를 "트랄레스(Tralles)의 필립푸스(Philippus)가 대사제이고, 스타티우스 콰드라투스(Statius Quadratus)가 전 집정관이었을 때"라고 설명했다. 성서에서도 이런 식으로 연대를 표시했다. 이렇게 권력자의 재임시기로 연대를 표기하는 것은 유럽이나 중동에서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해당 권력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때인지 금방 감이 오겠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면 언제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고대 로마가 건국됐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753년을 원년으로 삼아 연도를 헤아리는 방법도 있었다. 라틴어로는 'Ab Urbe Condita(로마 도시가 세워진 이래)'라고 썼는데 약칭하여 'AUC'라 한다.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로마에게 정복된 해를 기준으로 연도를 헤아리기도 했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피아 제전을 연도표기에 사용하기도 했다. 로마 제국의 동남쪽, (오늘날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 재위)가 즉위한 해(284)를 원년으로 삼은 순교자기원(Anno Martyrum)을 4세기부터 사용하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황제로 재위하던 시절에 마지막으로 대규모 그리스도교 박해를 행했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직접 통치한 이집트에서 박해가 강력해서 순교자들이 많이 나왔던 점도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순교자기원을 만들고 사용한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순교자기원은 알렉산드리아 등 동로마에 있는 교회 일부에서 사용했을 뿐이었고, 서로마 교회에서는 결코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라틴어로 인딕티오(Indictio)라는 것도 연대를 표기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쓰였다. 인딕티오는 본래 '포고령' 또는 '공고'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로마 제국에서 15년마다 한 번씩 토지세 계산 목적으로 대규모 재산평가를 하라고 황제의 명으로 포고령을 내리던 것을 가리킨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재산평가 포고령 주기로 연대를 표기하는 방법을 도입했는데, 로마의 일반 역법과는 달리 시작일을 9월 1일로 잡았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회계연도'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서 secundus annus indictionis(포고령의 두 번째 해)라고 하면 포고령이 내리는 해의 이듬해를 가리켰다. 포고령이 내리는 당년은 primus annus indictionis(포고령의 첫 번째 해)라고 표현했다.

나중에는 인딕티오가 15년 주기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처럼 쓰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기의 두 번째 해를 secunda indictio(두 번째 포고령)이라고 표현하는 식이었다. 인딕티오 방식은 동양에서 60갑자만으로 연도를 표기하는 것과 비슷해서 '몇 번째 포고령 주기'인지는 무시했다. 그래서 서양의 고문서에서 인딕티오 방식으로 연도를 표기했다면, 그것이 정확히 어느 해를 뜻하는지는 따로 계산해야 한다.[2]

서력기원 유래와 발전

서기 525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라는 소스키티아(Scythia Minor) 출신 동로마 수도자가 교황 요한 1세에게 요청을 받아 서기 532년부터 626년까지 95년간의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여 표를 만들었다. 디오니시우스 전에도 부활절 계산표는 있었지만, 동방에서 만들어 연도를 주로 순교자기원으로 표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디오니시우스는 근거를 밝히지 않고 로마기원(AUC) 754년을 예수의 탄생년으로 잡아 자기가 만든 부활절 계산표에서 연도를 표기하는 기준으로 처음 사용했다. 디오니시우스가 순교자기원을 거부한 이유는 박해자 황제의 즉위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표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로마교회는 그가 제작한 표를 받아들였어도 연대를 적는 방법까지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력기원은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대중화되지 못했다. 서기 691년 정교회권에서는 창세기 내용을 따져서 세계가 창조된 해라고 생각한 기원전 5509년을 원년으로 삼는 '우주력'을 사용했고, 988년 동로마 제국과 키예프 공국은 우주력을 공식 연호로 채택하기도 했다. 서력기원이 비로소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8세기부터였는데, 영국 베네딕토회 수도자이자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가경자 베다(Venerable Bede)가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만든 부활절 계산표를 디오니시우스의 방법에 따라 이후의 시대까지 확장하여 725년 저서 《시기계산론De temporum ratione》에 수록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당연히 그는 디오니시우스가 만든 '서력기원'을 잘 알고 또 익숙했다.

베다는 731년 즈음에 탈고한 저서 《앵글족 교회사》를 집필하며 서력기원을 채택했다. 물론 다짜고짜 서기로 연대를 표시하면 당대의 독자 대부분이 감을 잡지 못할 테니, 책의 첫 부분에서 잠깐 AUC와 서기를 병행하다가 이후로는 서기만 사용했다.

Verum eadem Brittania Romanis usque ad Gaium Iulium Caesarem inaccessa atque incognita fuit; qui anno ab Urbe condita DCXCIII, ante vero incarnationis Dominicae tempus anno LXmo, functus gradu consulatus cum Lucio Bibulo.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키우스 비불루스와 함께 집정관이던 때, (로마) 도시가 세워진 지 693년, 주께서 육화肉化하시기 60년 전까지 브리타니아는 로마인들이 온 적도 없었고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다.


《앵글족 교회사》 1권 2장 첫 머리에서

베다는 《앵글족 교회사》에서 서기를 사용하며 Anno ab incarnatione Domini(주의 육화肉化한 이래의 해), 또는 Anno incarnationis Dominicae(주의 육화肉化의 해)라고 표현했다. 역사서에 처음으로 서기를 도입해서인지 표현도 고정하지 않았고 줄임말도 쓰지 않았다.

베다의 책을 읽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서기는 참신하면서 또 편리해 보였던 모양이다. 영국의 베네딕토회 수도자 알퀸(Alcuin of York)은 베다가 사망한 해(735)를 전후한 무렵에 태어난 사람으로, 생전에 베다를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노섬브리아 출신이었으므로 베다의 저작을 읽고 명성을 익히 들었음이 분명하다. 알퀸은 훗날 유럽으로 건너가 카롤루스 대제 곁에서 최고 자문위원 노릇을 했는데, 아마도 800년 즈음에 서력기원으로 연대를 표시하는 방법을 그의 조정(朝廷)에 알려주었다. 카롤루스로부터 카롤루스 왕조가 서기를 사용했던 것이 유럽에서 서기가 퍼지는 한 가지 계기가 되었다.

서기는 이렇게 영향력을 넓히다가 11–14세기쯤에는 서유럽에서 대중화되었는데,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포르투갈이 마지막까지 별개의 연대표기방법을 사용하다가 1422년에야 겨우 받아들였다.

서기가 서유럽에서 대중화되는 와중에도 기원전 시대까지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년 전'이라고 기술하는 방식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가경자 베다가 이미 《앵글족 교회사》에서도 '주께서 육화하시기 전'이라는 표현을 한 번 사용했는데도 말이다. 서력기원 이전 시대도 서기 원년에서 거슬러 세는 방식을 대중화한 서적은 17세기 프랑스 예수회 신학자 겸 역사가인 데니 페토(Denis Pétau)가 1627년 출판한 《시대주장론De doctrina temporum》이라고 한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로는 정교회권도 점차 서력기원으로 대체되어 1728년에 이르자 우주력을 버리고 서력기원만을 사용했다. 이후 식민지 개척과 함께 비그리스도교권에도 퍼져 서력기원이 지구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연호가 되었다.[2]

오해

서력기원은 예수가 태어난 날짜부터 시작하는 기력이라고 알려졌고 실제 예수가 태어난 해부터 계산하려 했지만 후에 이 계산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예수가 태어난 시기 자체에 논쟁이 많고 해당 시기에 맞춰 서력 전체를 옮기면 기존 역사서 등에 혼란이 가중될 수 있어 예수의 탄생날짜를 BC로 고쳤다.[1]

원년의 오류

이 기년법은 서기 525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가 탄생했다고 추정한 해를 기원(紀元)으로 한다. 이 해에 대해서는 서기 1년을 참고한다. 디오니시우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근거로 예수의 탄생년이 로마기원 754년이라고 판단했는지는 그가 밝히지 않았으므로 모른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추정하며 약간 오류를 범했고, 예수가 아마도 서력기원(西曆紀元) 원년이 아닌 기원전에 출생했다고 여긴다. 헤로데 대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다는 성경의 기록, 헤로데가 기원전 4년에 사망했다는 점을 결합해 기원전 4년이라는 설이 가장 대중적이다. 국내에서 출판되는 대부분 역사 교과서 부록에는 기원전 4년으로 서술했다.

가톨릭에선 헤로데가 예수를 죽이려 하자 요셉과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헤로데가 죽자 이스라엘로 돌아왔단 서술을 적용해 그보다 좀 더 전인 기원전 6년쯤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그 외에도 기원전 7년이라는 둥 여러 주장이 있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기원전 6년–기원전 2년 사이로 본다. 하지만 학자들도 3–4년 사이로 오차를 좁혔을 뿐 정확한 출생연도를 특정한 것이 아니거니와, 이제 와서 원년을 바꾼다면 터무니없는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므로 현재 그대로 서력기원을 사용한다.[2]

표기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표준 기년법이므로, 아무런 표시 없이 연도를 표기하면 서력기원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연호를 사용했지만 대한민국과 중국, 베트남은 서력기원을 단독 표준으로 결정했고, 자체 연호를 계속 사용하는 나라도 서력기원과 병행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AD는 현재 라틴어 문장 내에서 쓸 때에는 주로 장음 표시 악센트인 마크론(¯)을 덧붙인 'annō Domini'로 표기하기도 하며, 영어 인쇄물이나 컴퓨터 문서에서는 이탤릭체로 입력하는 경우가 많다.[2]

AD/BC의 유래

영어권에서 기원후는 라틴어 약자인 AD(Anno Domini)이다. Anno Domini의 뜻은 '주님의 해(年)로부터'이다. 영어로는 약간 의역해서 'in the year of our Lord'라고 흔히 번역한다. 아래에서 보듯 과거 영어권 국가에서는 'in the year of our Lord'를 써서 연도를 표기하기도 했다.

한국은 물론 영어권에도 After Domine라고 아는 사람들도 많다. 앞은 Before/After 의 반의어 때문에 오해하기 매우 쉽고, Domine는 영어에서 라틴어 파생 외래어로 '주님/신'이라는 뜻으로 특히, 주소 등에 사용된다. 이 경우는 '기원후'로 사용되는 것도 '주님(탄생) 이후'라는 뜻도 AD라는 약자도 모두 맞긴 맞기 때문에, 틀리다고 해야 할지 라틴어 Anno Domini의 영어판 초월번역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After Death (of Jesus Christ)로 잘못 아는 경우도 많다. 기원후를 AC(After Christ)라고 하지 않음은 영어에서 비슷한 약자들이 많기 때문일 수 있다.

근세 서유럽에서는 서기를 라틴어로 Anno Domini 대신 Anno Salutis(구원의 해로부터)라고 표현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편 기원후와는 달리 기원전은 영어 약자인 BC(Before Christ)를 쓴다. 라틴어로 기원전을 가리키는 표현은 고정되지 않았지만, 보통은 Ante Christum natum(그리스도 탄생 이전)이라고 쓰며, 약자로는 A.C.N. 또는 a.Ch.n. 등으로 썼다.[2]

다른 표현

과거 영어권 국가에서는 'in the year of our Lord', '(the) year of our Lord', '(in the) year of our Lord Jesus Christ(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해)'와 같은 표현이 대신 쓰이기도 했다. 비영어권 서유럽에서도 기원후는 흔히 AD를 쓰지만, 기원전은 저마다 자국어에서 유래한 다른 약자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이란 뜻으로 av. J.-C. 또는 라틴어로 AC(Ante Christum)를 사용한다.

현대 영어권에서는 AD와 BC를 CE와 BCE(Before CE)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CE는 Common Era, 또는 Christian Era의 약자인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Common Era라는 표현은 18세기 무렵부터 유대인들 사이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이 시초인 표현으로 이 기년법이 현재 종교와 지역에 무관하게 전 세계에 퍼졌다는 점을 감안해 종교적 의미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다. 반대로 Christian Era는 Anno Domini 같은 특정 종교에서만 사용되는 숭배의 어감을 배제하고 '그리스도교의 연호'라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이러한 CE, BCE는 아직까지 AD와 BC를 대체할 만큼 보급되지는 않았고 주로 유대인의 영향력이 강한 영어권 학계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중화권 학계(특히 중국)를 중심으로 사용된다. 학자들조차도 그냥 AD, BC라고 쓰는 사례도 여전히 많고, 특히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미국 쪽에 그런 경향이 있다. 미터법 사용 여부와 더불어 미국과 다른 영어권 국가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대중문화에서도 영어권에서는 CE/BCE가 AD/BC와 함께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들 문화권을 벗어나면 CE/BCE의 사용 사례가 줄어든다. 영어권 대중문화에서는 주로 현대와 마찬가지로 서력기원을 사용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미래인 작품에서 미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로서 AD/BC 대신 CE/BCE가 쓰이곤 한다. 특히 실생활에서 CE/BCE가 잘 안 쓰이고 학계에서도 CE/BCE의 사용 사례가 적은 미국의 대중문화에서 종교(특히 기독교)의 영향력이 약화된 미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AD/BC가 CE/BCE로 대체된 사회를 자주 묘사하곤 한다.

아무튼 이렇게 영어권 학계와 중화권 학계를 중심으로 CE, BCE가 사용되기 때문에 유니코드에서는 서력기원과 기원전을 나타내는 문자 기호로 CE/BCE를 AD/BC 대신 채용했다. UN 공식 언어들 중 하나이기도 한 영국식 영어를 기준으로는 AD/BC보다는 CE/BCE가 더 권장되는 것. 영국에서는 공교육에서도 CE/BCE를 사용하는 것도 유니코드에서 CE/BCE를 AD/BC 대신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2]

동영상

각주

  1. 1.0 1.1 서력기원〉, 《위키백과》
  2. 2.0 2.1 2.2 2.3 2.4 2.5 2.6 서력기원〉,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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