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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9일 (목) 11:38 판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는 이탈리아 명품 자동차 브랜드이자 고성능 스포츠카 제조 업체인 페라리(Ferrari)의 창시자이며 유명한 레이싱 선수이자 F1 자동차 경주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창설자이다.[1]
개요
엔초 페라리의 풀 네임은 엔초 안셀모 주세페 마리아 페라리(Enzo Anselmo Giuseppe Maria Ferrari)이며 엔초 안셀모 페라리(Enzo Anselmo Ferrari)라고도 부른다. 1898년 2월 18일 이탈리아의 모데나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나 10살 때 우연히 볼로냐에서 열린 자동차 레이스를 본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13살 때부터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여 16세에는 스포츠 신문에 축구 기사를 기고하면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이후 엔초는 이탈리아 3차 포병연대에 입대하여 참전하여 복무하였으며 그 무렵 엔초의 아버지 알프레도와 형이 독감으로 인해 사망하게 되었다. 엔초도 당시 독감으로 크게 앓아누었지만 회복하며 혼자만 퇴원을 하게 된다. 아버지와 형의 사망으로 인해 가내수공업을 이어오던 목공 사업이 문을 닫게 되면서 엔초 페라리는 20세에 본인이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자동차 회사의 트럭 운전사로 취직하였으며 그러던 중 이탈리아 최고의 레이서 중 한 명인 펠리체 나차로(Felice Nazzaro)를 만나 그의 소개로 밀라노의 스포츠카 제조사 CMN(Costruzioni Meccaniche Nazionali)으로 직장을 옮기고 테스트 드라이버로 일하는 동시에 트럭 차체를 승용차로 제조하는 일도 하였다. 1919년 엔초 페라리는 처음으로 레이싱 대회에 출전하여 전체 4위를 기록하여 운전 실력을 인정받아 레이싱에 데뷔하게 된다. 1920년에 알파 로메오 팀에 입단 후 점점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1923년에는 처음으로 그랑프리 수상을 이루게 되며 1년 후 1924년에는 3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동료였던 안토니오가 주행 중 사고로 인해 사망하게 되자 엔초 페라리는 깊은 충격에 빠지게 되었으며 1932년 그의 아들 알프레도 디노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경주 차량 관리와 개발에 더욱 집중을 하게 되었다. 1929년에는 마구간을 뜻하는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라는 자신의 F1 레이싱 팀을 차려 진정한 페라리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페라리 엠블럼에는 말 그림과 함께 "SF"라는 영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뜻하는 약자이다. 1939년에는 스쿠데리아 팀을 흡수하면서 자신을 내쫓으려는 알파 로메오를 뛰쳐나와 기존 스쿠데리아 페라리 본사에 자신의 회사인 오토 아비오 코스트루찌오니(Auto Avio Costruzioni)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1940년에는 첫 생산 차량인 1,500cc 8기통 Tipo 815를 만들었지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파 로메오와의 계약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싱카를 생산할 수 없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모든 자동차 경주가 중단됐고 1943년 말 오토 아비오 코스트루찌오니 작업장은 모데나에서 마라넬로로 이전했다. 1944년 11월과 1945년 2월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생산은 계속됐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디자인과 자동차 생산이 재개돼 페라리의 가장 첫 번째 차량인 1,500cc 12기통 125 Sport 가 탄생했다. 이 차는 프랑코 코르테즈(Franco Cortese)에 의해 1947년 5월 11일에 열렸던 삐아첸짜(Piacenza) 서킷에서 데뷔했다. 2주 뒤인 그 달 25일에는 떼르메 디 까라깔라(Terme di Caracalla) 서킷에서 열린 로마 그랑프리(Rome Grand Prix)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페라리의 진가가 그랑프리와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고 1988년까지 무려 5,000번이라는 우승 타이틀을 거머쥘 정도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막강한 팀으로 성장하게 된다. 1969년 엔초 페라리는 늘어나는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회사 지분 중 50%를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 그룹에 매각했으며 그 지분은 1988년에 이르러서 90%까지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라리는 그 제품들의 특수성 덕분에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돼 온 것이 사실이다. 1977년에는 1950년대부터 페라리의 GT 섀시와 차체를 만들어온 카로체리아 스칼리에티(Carrozzeria Scaglietti)라는 모데나의 자동차 디자인 및 설계 회사가 페라리에 합병됐다. 1988년 8월 14일 페라리는 90세의 일기로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2][3] [4]
주요 활동
페라리 125 스포츠
1939년에 알파 로메오와 결별하고 자신이 직접 경주차를 만들어 출전하기 위해 회사를 차린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계획은 미뤄졌고 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다시 자동차 개발에 나선 그는 1947년 알파 로메오와의 결별 직후 설립한 아우토아비오 코스트루치오니에서 만들었던 AAC 815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에 나섰다. 우선 엔진 기술자로 이름난 조아키노 콜롬보(Gioacchino Colombo)를 영입해 새 차의 엔진 개발을 맡겼다. 전쟁 전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한 아우토 우니온과 콜롬보가 설계한 엔진을 쓴 알파 로메오 경주차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페라리는 자신의 차에도 그 차들처럼 V12 엔진을 올리기로 결심한다. 아울러 당시 구체화되고 있던 포뮬러 원(F1) 경주를 염두에 두고 F1 규정에 맞춘 엔진을 만드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두 개의 실린더 블록을 60도 각도로 연결한 V12 1,497cc 엔진이 완성되었다. 실린더는 보어 55mm, 스트로크 52.5mm로 아주 작았고 SOHC 2밸브 구성에 세 개의 웨버 카뷰레터로 연료를 공급했다. 최고출력은 6,800rpm에서 118마력을 냈다. 이후 개선과 확대를 거듭하며 명차로 꼽히는 250시리즈 등 여러 페라리에 두루 쓰인 이른바 콜롬보 엔진의 시작이 된다. 차체 구조는 철제 파이프를 용접해 만들었고 서스펜션은 앞쪽이 판 스프링을 가로로 배치한 더블 위시본, 뒤쪽이 라이브 액슬 구조였다. 변속기는 당대 많은 경주차에 쓰인 4단 수동 대신 페라리의 제안으로 엔진의 고회전 특성을 고려해 특별히 만든 5단 수동을 썼다. 브레이크는 앞뒤 모두 유압식 드럼을 썼다. 첫 시험주행은 1947년 3월 12일에 있었다. 엔초 페라리는 차체를 씌우지 않은 롤링 섀시(rolling chassis) 상태인 차를 직접 몰고 마라넬로 거리를 달렸다. V12 엔진의 실린더당 배기량이 125cc였기 때문에 차 이름은 125 S(Sport)로 정해졌다. 이 이름 짓기 방식은 그 뒤로 나온 페라리 V12 엔진 모델들에도 꾸준히 이어진다. 125 S는 두 대가 만들어졌는데 차체 형태가 크게 다르다. 처음 만들어진 섀시 번호 01C의 차체는 모데나의 코치빌더인 주세페 페이레티(Guiseppe Peiretti)가 만들었다. 차체 앞에는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커다랗게 자리를 잡았고 차체가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보트테일 형태면서도 뒤 펜더가 차체와 매끈하게 이어져 뒷바퀴를 품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뒷바퀴 위쪽에는 차체와 같은 평면을 이루는 덮개를 달았다. 독특한 차체 뒷모습 때문에 이 차에는 알라 스페사(Ala spessa, 두터운 펜더)라는 별명이 붙었다. 실내는 경주차로 만들어진 만큼 요즘 페라리의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시보드는 단순한 패널에 대형 엔진 회전계, 다섯 개의 계기, 몇 개의 스위치가 있었다. 좌석은 헤드레스트나 안전벨트는 없었지만 몸을 감싸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앞 유리는 운전석과 동반석에 한 쌍이 달렸다. 또한 도어가 동반석쪽(왼쪽)에만 있고, 운전석 쪽은 운전자가 뛰어올라 탈 수 있도록 위쪽을 약간 파놓기만 했다. 두 번째로 만들어진 섀시 번호 02C는 2인승 시가형 차체에 바퀴가 노출되어 있었고 섀시 번호 01C와 같은 V12 엔진의 출력을 120마력으로 높여 올렸다. 이 차는 나중에 페라리 첫 F1 경주차인 125 F1로 개조된다. 125 S는 1947년 5월 11일에 있었던 데뷔 경주에서는 완주하지 못했지만 2주 뒤에 열린 로마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그 해 13차례 경주에 출전해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페라리의 이름을 알렸다. 페라리의 첫차가 경주차였다는 사실은 모터스포츠를 중시하는 페라리의 중요한 자산일 뿐 아니라 누구나 페라리를 정상의 스포츠카 브랜드로 인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48년 당시 유일한 V12 엔진으로 화제를 모았던 125의 엔진은 나중엔 166시리즈로 계승되었으며 2,000cc, V형 12기통의 강력한 심장을 가진 166 스파이더 코사(Spider Corsas)와 166 스포츠(Sports)를 제작했다.[5][6]
페라리 F40
1987년에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F40을 제작하였다. F40은 엔초 페라리의 유작으로 당시 페라리의 최신 기술이 도입된 동시에 일반 도로에서 주행 가능한 레이싱카를 만들고자 하는 페라리의 초심을 담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308 GTB 와 288 GTO 에볼루치오네를 기반으로 개발된 F40은 디자인과 성능 두 가지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페라리 컬렉션의 명작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페라리 역사상 최고의 슈퍼카로 항상 거론되며 괴물같은 퍼포먼스를 자랑하던 포르쉐 959를 눌렀다고 평가되는 페라리 역사에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페라리 F40은 288GTO에 사용했던 티포 120(Tipo 120) 엔진을 개량한 티포 120A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478마력/7,000rpm의 최고출력과 58.8kg.m/4,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그리고 여기에 288GTO와 마찬가지로 308/328의 섀시를 토대로 차체 구조를 설계하여 가볍고 빠른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카를 구현해냈다. 페라리 F40은 단 4초 안에 제로백을 넘을 수 있었고 최고 속도는 포르쉐 959보다 빠른 322km/h를 기록했다.[7]
각주
- ↑ "Enzo Ferrari", "wikipedia"
- ↑ 〈엔초 페라리〉, 《나무위키》
- ↑ 〈엔초 페라리〉, 《위키백과》
- ↑ 포튼가먼트 부산점, 〈엔초페라리 전세계가 열광하는 빨간차를 만든자, 부산맞춤정장 포튼가먼트〉, 《네이버 블로그》, 2020-04-02
- ↑ 오토헤럴드, 〈브랜드 역사의 시작 #20. V12 슈퍼카의 전설 '페라리 125 S'〉, 《네이버 포스트》, 2019-01-29
- ↑ 〈페라리〉, 《네이버 지식백과》
- ↑ 모토야, 〈최강의 온로드 머신, 페라리 하이퍼카의 역사〉, 《네이버 포스트》, 2021-03-09
참고자료
- 페라리 공식 홈페이지 - http://www.ferrari.com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