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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본'''(일본어: 北日本)은 [[일본]]의 북부를 가리키는 범칭이다. 일반적으로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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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본'''(일본어: 北日本)은 [[일본]]의 북부를 가리키는 범칭이다. 일반적으로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을 가리킨다. 동북 [[일본호]]가 거의 일치하며 [[이시카리 저지]]에서 홋카이도 주부로 분리된다. 동해, 화산을 수반하는 우에치(羽越) 산지·[[오우 산맥]] 두 산지간의 분지역(盆地列), [[기타카미]]·[[아부쿠마 저지]], 기타카미·아부쿠마 산지 등 남북방향의 대상 구조가 탁월하다.
  
동북 [[일본호]]가 거의 일치하며 [[이시카리 저지]]에서 홋카이도 주부로 분리된다. 동해, 화산을 수반하는 우에치(羽越) 산지·[[오우 산맥]] 두 산지간의 분지역(盆地列), [[기타카미]]·[[아부쿠마 저지]], 기타카미·아부쿠마 산지 등 남북방향의 대상 구조가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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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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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는 보통 일본 열도의 역사와 동일시되지만 엄밀히 ‘일본’이라는 국호는 8세기 전반에 성립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역사와 일본 열도의 역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다. 일본의 역사의 시대 구분은 고고학과 역사학 구분으로 나뉜다. 고고학에서 시대 구분은 구석기 시대(선토기 시대),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 고훈 시대, 그리고 역사 시대로 일반적으로 나누는 한편, 역사학 상에서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고대(아스카 시대 및 그 이전 ~ 헤이안 시대), 중세(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센고쿠 시대), 근세(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 근현대(메이지 시대·다이쇼 시대·쇼와 시대, 헤이세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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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의 인류의 역사는 약 10만 년 전에서 약 3만 년 전 사이에 시작되었다. 당시의 일본 열도는 아시아 대륙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시베리아나 화베이 일대의 몽골 인종과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인류의 왕래가 이루어진 일본 열도[20]:17는 최후 간빙기를 거치면서 약 1만 2천 년 전에 대한해협(현해탄)과 쓰가루 해협의 생성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에서 완전히 분리되었지만[20]:17, 그 후에도 일본 열도와 대륙 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져 일본 열도도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점차 편입되는 한편 동북아시아 지역의 최동단에 있다는 지리적 요인에 따라 다소 이질적인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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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 경 이후 대륙으로부터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 양식이 전해지면서 각지에 ‘무라’, ‘구니’와 같은 정치 조직이 천천히 형성되어 1세기 ~ 2세기 전후에는 각 구니의 연합체로서 왜국이라는 대규모 정치 조직이 출현했다. 이 연합 정치 조직은 3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야마토 정권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663년 백제 부흥 운동에서 백제를 도왔다가 신라와 당나라에 패배하고 백제의 지배 계층이 대량 유입되어 7세기 후반 한자 문화권에 본격적으로 흡수되어 중국식 법체계, 사회 제도를 급속도로 받아들여 8세기 초 고대 율령 국가 체제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 일본은 수나라, 당나라나 신라, 발해 들과 교류 이후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장원을 중심으로 한 봉건 체제를 바탕으로 귀족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귀족들의 세력 투쟁 사이에서 발달한 사무라이 계층은 13세기 이후 가마쿠라 막부를 세워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다. 한편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에서 센고쿠 시대까지 명나라에 조공을 행하였으며 쇼군 가문인 아시카가 씨가 명나라 천자로부터 일본 국왕으로서 책봉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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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 16세기에는 15세기 후반에 등장한 센고쿠 다이묘 세력에 의한 지방 자치 체제의 형성이 급속도로 진전되었다가 16세기 후반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의 주도 하에 통일 정권을 수립하기에 이루러 근세로 이행하였다. 또 이 시기에 홋카이도와 지시마(쿠릴), 가라후토(사할린)의 에조치를 점령함으로써 국가로서의 일본의 영토 범위 또한 넓어지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뒤를 이은 근세의 에도 막부는 바쿠한(幕藩) 체제 밑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을 고정하고, 기독교 금지를 구실로 쇄국(鎖國)을 행하고, 후에는 유교적 교화(敎化)도 이용하면서 전국 지배를 강화했다. 평화의 지속은 교통·상공업의 발전과 시정인(市井人)의 대두, 화폐 경제의 성립, 다수의 도시 출현을 촉진시켰고, 에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겐로쿠 문화(元祿文化), 화정기(化政期)의 문화를 번성케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5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 대에 에도 막부는 겐로쿠 호황이라고 부르는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겐로쿠와 쇼토쿠 시대의 짧은 호황을 지나면서 견고했던 막부 체제는 점차 모순을 드러냈고 19세기 중엽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교류 과정을 거치면서 에도 막부는 붕괴, 근대로 이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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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의 붕괴 이후 메이지 유신을 맞이한 일본은 근대 국가의 건설을 빠르게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인접국들과의 국경 확정을 행하여 가라후토 지역을 러시아 제국에 양도하는 대신 지시마 열도(쿠릴 열도) 전역을 일본령으로 하였고, 난세이 제도와 류큐국은 류큐 처분을 통해 실효적인 지배력을 확보하여 지금의 일본 영토 범위가 거의 확정되었다. 한편으로는 자유 민권 운동이 이루어져 1885년 내각 제도가 성립하고, 1889년에는 일본 제국 헌법을 제정하여 이듬해인 1890년 중의원 총선거를 실시해 제국의회를 설치함으로써 명목 상의 입헌 국가가 되었다. 이와 함께 20세기 초반까지 제국주의적인 국제 정세 속에서,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통해 조선(대한제국), 타이완, 미나미카라후토(사할린섬 남부)를 강제 합병하고 상하이 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 조차지를 설치하는 등 주변국 침략에 뛰어들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 일본에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통해 정당 정치와 보통 선거가 실현되기도 하였으나 1930년대 군부의 정치적 대두와 함께 무리한 주변국 침략을 감행하면서 주변국의 저항과 미국 등 기존 열강과의 충돌을 통해 일어난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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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의 패배로 인해 주권을 상실한 일본은 연합군의 지배 하에서 청일 전쟁 이후에 조약으로 획득하였거나 강제 병합, 불법으로 획득한 대부분의 영토에 대한 권한을 주변국에 돌려주었다. 또, 국가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 현재의 일본국 헌법 제정이 이루어졌으며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주권을 회복하였으며 1972년까지 아마미 제도, 오키나와현의 영토권을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았다. 한편, 1970년대에 이룬 경제의 고도 성장은 1980년대에 이르러 ‘버블 경제’라고 부를 정도로 일본 경제를 크게 번성시켰다. 그러나 과도한 주가의 증가와 부동산 매입으로 인해 1990년부터 부동산과 주식 가격의 폭락이 진행되어 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하면서 10년 이상 0%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불황 상태에 빠졌다.[24] 그로 인하여 지지를 상실한 자유민주당은 한 때 10개월 정도 정권을 상실하기도 하였다가[23] 진보 정당과의 연정을 거쳐 계속 55년 체제의 집권 골격을 유지해 왔다.[23] 그러나 2009년 8월 30일에 치러진 제45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자유민주당에 압승을 거둬 전후 최초로 완전한 정권 교체[25] 가 이루어져 2009년 9월 16일에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성립하였다.[26] 그러나 경제난과 2011년에 발생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등으로 신임을 잃은 민주당 정권은 2012년 중의원 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에게 다시 여당 자리를 빼앗겼고, 2012년 12월 26일부터 자유민주당의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한 내각이 출범했다. 현재는 기시다 후미오가 일본의 총리에 선출되어 자유민주당이 오랫동안 여당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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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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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훗가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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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는 일본의 홋카이도 지방에 위치한 도(道)이자, 일본 열도를 이루는 4개 주요 섬(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중 하나로서 일본 북단에 위치한 큰 섬이다. 도청소재지는 삿포로시이다. 동쪽과 북동쪽에는 러시아가 관할하는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가 있다. 16세기 이후 일본인들이 섬의 남쪽 끝에 정착지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당시까지도 홋카이도는 아이누족으로 알려진 섬의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외국 영토로 여겨졌다. 에도 시대에 도쿠나이 모가미, 린조 마미야 등의 지리학자들이 섬을 탐험하기도 했으나 일본의 통치는 17세기까지 오시마 반도에 국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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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일본인 정착민들이 홋카이도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일본인과 아이누인 사이에 종종 충돌과 반란이 일어났다. 1869년 메이지 유신 이후 에조는 일본에 공식적으로 병합되었고 홋카이도(北海道)로 개칭되었다. 이후 일본이 홋카이도를 본격적으로 식민화하면서 아이누인들은 땅을 빼앗기고 순식간에 일본에 동화되어 사라져 갔다. 47개 도도부현 중 유일한 도(道)이며 브랜드종합연구소에 의하면 도도부현 매력도 순위에서 2019년 기준 11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으며, 관광산업, 상품구매 의욕도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거주 의욕도에서는 3위를 차지해 각 의욕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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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지역은 과거 일본인들에게는 에조 민족이 산다 하여 에조치로 알려져 있었다. 홋카이도라는 이름은 8세기 후반에 성립된 고키시치도의 사이카이도(西海道), 난카이도(南海道), 도카이도(東海道) 등의 도 이름을 모방한 것으로, 명명자는 에도 막부 말기에 에조치를 탐험한 마쓰우라 다케시로(일본어판)로 알려져 있다. 마쓰우라는 아호를 홋카이도진(北海道人)이라고 지을 정도로 에조치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1889년 그는 에조치를 대체할 명칭으로 홋카이(北加伊), 가이호쿠(海北), 가이토(海島), 도호쿠(東北), 지시마(千島), 히다카미(日高見)의 6가지 후보를 제안했다. 마쓰우라는 의견서에서 가이(加伊)는 선주민인 아이누인들이 이 섬을 부르는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가이를 같은 발음의 가이(海)로 바꾸어, 고키시치도의 명칭을 모방해 홋카이도(北海道)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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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부터 1947년까지 홋카이도를 관할한 지방행정관청은 홋카이도청이었다. 이 경우, 「홋카이도」는 단순한 지역 호칭으로, 「홋카이도청」이 「도쿄부」나 「아오모리현」등과 나란히 놓여진 관청의 이름이다(가할린과 사할린청의 관계에 같다). 이 「홋카이도청」은, 현재 이용되고 있는 지방 자치체의 중앙 관청이 아니다. 1901년 홋카이도 회법 및 홋카이도 지방비법이 공포·시행되어 「홋카이도 회」라는 의회를 가지는 지방 자치체가 되었지만, 자치체로서는 「홋카이도 지방비」라고 불렸다. 전후, 1946년의 제1차 지방 제도 개혁으로 시제·정촌제·도쿄도제와 함께 부현제가 개정되었을 때, 홋카이도 회법과 홋카이도 지방비법이 폐지되어 도부현제로 통합되었다. 또 개정 법률의 부칙 규정에 의해, 종래 「홋카이도 지방비」라고 불리고 있던 자치체를 「도」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방행정 관청으로서의 홋카이도청은 1947년 지방자치법 시행에 의해 '홋카이도청 관제'와 함께 폐지되어 동법에 근거한 보통지방 공공단체로서의 홋카이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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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호쿠 지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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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 지방은 일본 혼슈 동북부에 있는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아키타현, 야마가타현, 후쿠시마현의 6현을 말한다. 동일본(히가시니혼)에 속하지만, 기후나 역사지리학 등에서는 홋카이도와 함께 북일본(기타니혼)으로 분류한다. 최대 도시는 센다이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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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구조론에서 도호쿠 지방은 홋카이도와 함께 북아메리카 판상에 존재하고 있어, 동측에서 태평양 판이 일본 해구에서 섭입한다. 이때문에 도호쿠 지방의 중앙에는 일본 해구와 평행하게 남북으로 나스 화산대가 놓여있다. 이 화산대 상으로 시모키타 반도의 오소레 산 산지, 오우 산맥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오소레 산·핫코타 산·하치만타이·이와테 산·구리코마 산·자오 산·아즈마 산·아다타라 산 등의 화산이 있다. 나스 화산대 상에는 칼데라 호도 많고, 온천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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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측으로는 유라시아 판과 북아메리카 판이 남북으로 접하고 있어, 나스 화산대와 평행하여 조카이 화산대가 남북을 종단하고 있다. 이 화산대 상에는 시라카미 산지나 데와 산지, 에치고 산맥 등이 위치하고 있어 이와키 산·조카이 산·갓 산 등의 화산을 볼 수 있다. 산지가 바다와 접하는 부분에서는, 해안가를 따라 온천이 위치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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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측으로는 기타카미 산지와 아부쿠마 고지가 있다. 이는 융기한 지형이 침식되어 형성된 완만하고 낮은 산지이다. 해발고도 1917m의 하야치네 산도 있지만, 기본은 완만한 산지로 동해 측의 산지와 비교할 때 강설량도 적어 스키장 등은 없다. 또한 화산대도 아니라 온천도 적다. 다만 석회 동굴 등의 석회암 지형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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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카미 산지가 바다측으로 뻗은 리아스식 해안인 산리쿠 해안에서는 복잡한 해안선이나 백사장이 있어 오야시오 해류가 만들어 내는 코발트청색의 바다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산맥과 산지의 사이로 기타카미 강이나 아부쿠마강, 오모노강, 모가미강 등의 하천이 흐르며 많은 분지와 평야를 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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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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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행정 지도|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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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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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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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ggLQe0fZxB0</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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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7rET93fFxoU</youtube>
  
 
== 참고자료 ==
 
== 참고자료 ==
* 〈[https://ko.wikipedia.org/wiki/%EB%B6%81%EC%9D%BC%EB%B3%B8 북일본]〉,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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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99%8B%EC%B9%B4%EC%9D%B4%EB%8F%84    홋카이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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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8F%84%ED%98%B8%EC%BF%A0_%EC%A7%80%EB%B0%A9    도호쿠 지방]〉,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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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   일본]〉, 《위키백과》
  
 
== 같이 보기 ==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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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호쿠]]
 
* [[도호쿠]]
  
{{지역|토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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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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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일본의 지역]]

2023년 3월 29일 (수) 10:18 판

북일본(일본어: 北日本)은 일본의 북부를 가리키는 범칭이다. 일반적으로 홋카이도도호쿠 지방을 가리킨다. 동북 일본호가 거의 일치하며 이시카리 저지에서 홋카이도 주부로 분리된다. 동해, 화산을 수반하는 우에치(羽越) 산지·오우 산맥 두 산지간의 분지역(盆地列), 기타카미·아부쿠마 저지, 기타카미·아부쿠마 산지 등 남북방향의 대상 구조가 탁월하다.

역사

일본의 역사는 보통 일본 열도의 역사와 동일시되지만 엄밀히 ‘일본’이라는 국호는 8세기 전반에 성립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역사와 일본 열도의 역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다. 일본의 역사의 시대 구분은 고고학과 역사학 구분으로 나뉜다. 고고학에서 시대 구분은 구석기 시대(선토기 시대),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 고훈 시대, 그리고 역사 시대로 일반적으로 나누는 한편, 역사학 상에서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고대(아스카 시대 및 그 이전 ~ 헤이안 시대), 중세(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센고쿠 시대), 근세(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 근현대(메이지 시대·다이쇼 시대·쇼와 시대, 헤이세이 시대)이다.

일본 열도의 인류의 역사는 약 10만 년 전에서 약 3만 년 전 사이에 시작되었다. 당시의 일본 열도는 아시아 대륙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시베리아나 화베이 일대의 몽골 인종과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인류의 왕래가 이루어진 일본 열도[20]:17는 최후 간빙기를 거치면서 약 1만 2천 년 전에 대한해협(현해탄)과 쓰가루 해협의 생성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에서 완전히 분리되었지만[20]:17, 그 후에도 일본 열도와 대륙 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져 일본 열도도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점차 편입되는 한편 동북아시아 지역의 최동단에 있다는 지리적 요인에 따라 다소 이질적인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기원전 8세기 경 이후 대륙으로부터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 양식이 전해지면서 각지에 ‘무라’, ‘구니’와 같은 정치 조직이 천천히 형성되어 1세기 ~ 2세기 전후에는 각 구니의 연합체로서 왜국이라는 대규모 정치 조직이 출현했다. 이 연합 정치 조직은 3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야마토 정권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663년 백제 부흥 운동에서 백제를 도왔다가 신라와 당나라에 패배하고 백제의 지배 계층이 대량 유입되어 7세기 후반 한자 문화권에 본격적으로 흡수되어 중국식 법체계, 사회 제도를 급속도로 받아들여 8세기 초 고대 율령 국가 체제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 일본은 수나라, 당나라나 신라, 발해 들과 교류 이후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장원을 중심으로 한 봉건 체제를 바탕으로 귀족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귀족들의 세력 투쟁 사이에서 발달한 사무라이 계층은 13세기 이후 가마쿠라 막부를 세워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다. 한편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에서 센고쿠 시대까지 명나라에 조공을 행하였으며 쇼군 가문인 아시카가 씨가 명나라 천자로부터 일본 국왕으로서 책봉을 받기도 하였다.

15세기 ~ 16세기에는 15세기 후반에 등장한 센고쿠 다이묘 세력에 의한 지방 자치 체제의 형성이 급속도로 진전되었다가 16세기 후반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의 주도 하에 통일 정권을 수립하기에 이루러 근세로 이행하였다. 또 이 시기에 홋카이도와 지시마(쿠릴), 가라후토(사할린)의 에조치를 점령함으로써 국가로서의 일본의 영토 범위 또한 넓어지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뒤를 이은 근세의 에도 막부는 바쿠한(幕藩) 체제 밑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을 고정하고, 기독교 금지를 구실로 쇄국(鎖國)을 행하고, 후에는 유교적 교화(敎化)도 이용하면서 전국 지배를 강화했다. 평화의 지속은 교통·상공업의 발전과 시정인(市井人)의 대두, 화폐 경제의 성립, 다수의 도시 출현을 촉진시켰고, 에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겐로쿠 문화(元祿文化), 화정기(化政期)의 문화를 번성케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5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 대에 에도 막부는 겐로쿠 호황이라고 부르는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겐로쿠와 쇼토쿠 시대의 짧은 호황을 지나면서 견고했던 막부 체제는 점차 모순을 드러냈고 19세기 중엽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교류 과정을 거치면서 에도 막부는 붕괴, 근대로 이행하게 된다.

에도 막부의 붕괴 이후 메이지 유신을 맞이한 일본은 근대 국가의 건설을 빠르게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인접국들과의 국경 확정을 행하여 가라후토 지역을 러시아 제국에 양도하는 대신 지시마 열도(쿠릴 열도) 전역을 일본령으로 하였고, 난세이 제도와 류큐국은 류큐 처분을 통해 실효적인 지배력을 확보하여 지금의 일본 영토 범위가 거의 확정되었다. 한편으로는 자유 민권 운동이 이루어져 1885년 내각 제도가 성립하고, 1889년에는 일본 제국 헌법을 제정하여 이듬해인 1890년 중의원 총선거를 실시해 제국의회를 설치함으로써 명목 상의 입헌 국가가 되었다. 이와 함께 20세기 초반까지 제국주의적인 국제 정세 속에서,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통해 조선(대한제국), 타이완, 미나미카라후토(사할린섬 남부)를 강제 합병하고 상하이 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 조차지를 설치하는 등 주변국 침략에 뛰어들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 일본에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통해 정당 정치와 보통 선거가 실현되기도 하였으나 1930년대 군부의 정치적 대두와 함께 무리한 주변국 침략을 감행하면서 주변국의 저항과 미국 등 기존 열강과의 충돌을 통해 일어난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의 패배로 인해 주권을 상실한 일본은 연합군의 지배 하에서 청일 전쟁 이후에 조약으로 획득하였거나 강제 병합, 불법으로 획득한 대부분의 영토에 대한 권한을 주변국에 돌려주었다. 또, 국가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 현재의 일본국 헌법 제정이 이루어졌으며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주권을 회복하였으며 1972년까지 아마미 제도, 오키나와현의 영토권을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았다. 한편, 1970년대에 이룬 경제의 고도 성장은 1980년대에 이르러 ‘버블 경제’라고 부를 정도로 일본 경제를 크게 번성시켰다. 그러나 과도한 주가의 증가와 부동산 매입으로 인해 1990년부터 부동산과 주식 가격의 폭락이 진행되어 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하면서 10년 이상 0%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불황 상태에 빠졌다.[24] 그로 인하여 지지를 상실한 자유민주당은 한 때 10개월 정도 정권을 상실하기도 하였다가[23] 진보 정당과의 연정을 거쳐 계속 55년 체제의 집권 골격을 유지해 왔다.[23] 그러나 2009년 8월 30일에 치러진 제45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자유민주당에 압승을 거둬 전후 최초로 완전한 정권 교체[25] 가 이루어져 2009년 9월 16일에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성립하였다.[26] 그러나 경제난과 2011년에 발생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등으로 신임을 잃은 민주당 정권은 2012년 중의원 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에게 다시 여당 자리를 빼앗겼고, 2012년 12월 26일부터 자유민주당의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한 내각이 출범했다. 현재는 기시다 후미오가 일본의 총리에 선출되어 자유민주당이 오랫동안 여당을 유지하고 있다.

주요 지역

훗가이도

홋카이도는 일본의 홋카이도 지방에 위치한 도(道)이자, 일본 열도를 이루는 4개 주요 섬(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중 하나로서 일본 북단에 위치한 큰 섬이다. 도청소재지는 삿포로시이다. 동쪽과 북동쪽에는 러시아가 관할하는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가 있다. 16세기 이후 일본인들이 섬의 남쪽 끝에 정착지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당시까지도 홋카이도는 아이누족으로 알려진 섬의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외국 영토로 여겨졌다. 에도 시대에 도쿠나이 모가미, 린조 마미야 등의 지리학자들이 섬을 탐험하기도 했으나 일본의 통치는 17세기까지 오시마 반도에 국한되었다.

17세기에 일본인 정착민들이 홋카이도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일본인과 아이누인 사이에 종종 충돌과 반란이 일어났다. 1869년 메이지 유신 이후 에조는 일본에 공식적으로 병합되었고 홋카이도(北海道)로 개칭되었다. 이후 일본이 홋카이도를 본격적으로 식민화하면서 아이누인들은 땅을 빼앗기고 순식간에 일본에 동화되어 사라져 갔다. 47개 도도부현 중 유일한 도(道)이며 브랜드종합연구소에 의하면 도도부현 매력도 순위에서 2019년 기준 11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으며, 관광산업, 상품구매 의욕도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거주 의욕도에서는 3위를 차지해 각 의욕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홋카이도 지역은 과거 일본인들에게는 에조 민족이 산다 하여 에조치로 알려져 있었다. 홋카이도라는 이름은 8세기 후반에 성립된 고키시치도의 사이카이도(西海道), 난카이도(南海道), 도카이도(東海道) 등의 도 이름을 모방한 것으로, 명명자는 에도 막부 말기에 에조치를 탐험한 마쓰우라 다케시로(일본어판)로 알려져 있다. 마쓰우라는 아호를 홋카이도진(北海道人)이라고 지을 정도로 에조치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1889년 그는 에조치를 대체할 명칭으로 홋카이(北加伊), 가이호쿠(海北), 가이토(海島), 도호쿠(東北), 지시마(千島), 히다카미(日高見)의 6가지 후보를 제안했다. 마쓰우라는 의견서에서 가이(加伊)는 선주민인 아이누인들이 이 섬을 부르는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가이를 같은 발음의 가이(海)로 바꾸어, 고키시치도의 명칭을 모방해 홋카이도(北海道)로 정했다.

1886년부터 1947년까지 홋카이도를 관할한 지방행정관청은 홋카이도청이었다. 이 경우, 「홋카이도」는 단순한 지역 호칭으로, 「홋카이도청」이 「도쿄부」나 「아오모리현」등과 나란히 놓여진 관청의 이름이다(가할린과 사할린청의 관계에 같다). 이 「홋카이도청」은, 현재 이용되고 있는 지방 자치체의 중앙 관청이 아니다. 1901년 홋카이도 회법 및 홋카이도 지방비법이 공포·시행되어 「홋카이도 회」라는 의회를 가지는 지방 자치체가 되었지만, 자치체로서는 「홋카이도 지방비」라고 불렸다. 전후, 1946년의 제1차 지방 제도 개혁으로 시제·정촌제·도쿄도제와 함께 부현제가 개정되었을 때, 홋카이도 회법과 홋카이도 지방비법이 폐지되어 도부현제로 통합되었다. 또 개정 법률의 부칙 규정에 의해, 종래 「홋카이도 지방비」라고 불리고 있던 자치체를 「도」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방행정 관청으로서의 홋카이도청은 1947년 지방자치법 시행에 의해 '홋카이도청 관제'와 함께 폐지되어 동법에 근거한 보통지방 공공단체로서의 홋카이도가 되었다.

도호쿠 지방

도호쿠 지방은 일본 혼슈 동북부에 있는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아키타현, 야마가타현, 후쿠시마현의 6현을 말한다. 동일본(히가시니혼)에 속하지만, 기후나 역사지리학 등에서는 홋카이도와 함께 북일본(기타니혼)으로 분류한다. 최대 도시는 센다이 시이다.

판 구조론에서 도호쿠 지방은 홋카이도와 함께 북아메리카 판상에 존재하고 있어, 동측에서 태평양 판이 일본 해구에서 섭입한다. 이때문에 도호쿠 지방의 중앙에는 일본 해구와 평행하게 남북으로 나스 화산대가 놓여있다. 이 화산대 상으로 시모키타 반도의 오소레 산 산지, 오우 산맥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오소레 산·핫코타 산·하치만타이·이와테 산·구리코마 산·자오 산·아즈마 산·아다타라 산 등의 화산이 있다. 나스 화산대 상에는 칼데라 호도 많고, 온천도 많다.

동해 측으로는 유라시아 판과 북아메리카 판이 남북으로 접하고 있어, 나스 화산대와 평행하여 조카이 화산대가 남북을 종단하고 있다. 이 화산대 상에는 시라카미 산지나 데와 산지, 에치고 산맥 등이 위치하고 있어 이와키 산·조카이 산·갓 산 등의 화산을 볼 수 있다. 산지가 바다와 접하는 부분에서는, 해안가를 따라 온천이 위치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태평양 측으로는 기타카미 산지와 아부쿠마 고지가 있다. 이는 융기한 지형이 침식되어 형성된 완만하고 낮은 산지이다. 해발고도 1917m의 하야치네 산도 있지만, 기본은 완만한 산지로 동해 측의 산지와 비교할 때 강설량도 적어 스키장 등은 없다. 또한 화산대도 아니라 온천도 적다. 다만 석회 동굴 등의 석회암 지형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기타카미 산지가 바다측으로 뻗은 리아스식 해안인 산리쿠 해안에서는 복잡한 해안선이나 백사장이 있어 오야시오 해류가 만들어 내는 코발트청색의 바다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산맥과 산지의 사이로 기타카미 강이나 아부쿠마강, 오모노강, 모가미강 등의 하천이 흐르며 많은 분지와 평야를 끼고 있다.

지리

일본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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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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