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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롤스는 1877년 8월 27일 영국의 대지주 귀족 가문에서 찰스 롤스(Charles Rolls)가 태어났다. 그는 명문 이튼(Eton) 스쿨을 졸업하고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1896년 19살이던 해 3.5마력의 푸조를 한 대 구입했는데 당시 런던에서 푸조를 구입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롤스는 마침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 고향인 웨일즈 동부로 가야 했는데 이틀 동안 푸조를 직접 운전해 갔을 정도로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1900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미 운전 경험이 풍부했던 그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 경주에 뛰어들어서 1,000마일 경주에서 우승할 정도의 프로레이서였다. 부유한 집안 덕분에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걱정 없이 레이서 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던 그였다. 1902년 사업을 시작해 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수입차 판매업자가 되었다. 롤스는 훌륭한 영국제 자동차가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1904년 맨체스터에서 생산되던 '''[[헨리 로이스]]'''의 차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 찰스는 평소 취급하는 차의 엔진이 4기통이었던 데 비해 로이스 차의 엔진은 2기통이라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나, 직접 운전해 본 후 조용함과 주행의 부드러움에 감탄해 로이스 차 전체의 판매를 담당하기도 했다. 대신 앞으로 생산될 로이스의 모든 차에 자신의 이름까지 붙여 "롤스로이스"(Rolls-Royce)라고 명명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1906년 호기심과 모험심이 유난히 많았던 롤스는 초기에는 자동차 판매에 열중했으나 라이트형제의 비행 성공에 흥미를 갖고 항공기에 빠져들었다. 1909년 라이트형제 라이센스에서 제작된 비행기를 구입하여 영국해협 왕복 비행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1910년 7월 12일 33살의 나이에 비행 시범 중 꼬리 날개가 파손되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공중 사고로 사망한 최초의 영국인이다.<ref>wlswn12u, 〈[http://www.carlab.co.kr/news/2397 찰스 롤스(Charles Rolls) 1877 - 1910]〉, 《CARLAB(카랩)》, 2014-08-1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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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롤스는 1877년 8월 27일 영국의 대지주 귀족 가문에서 찰스 롤스(Charles Rolls)가 태어났다. 그는 명문 이튼(Eton) 스쿨을 졸업하고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1896년 19살이던 해 3.5마력의 푸조를 한 대 구입했는데 당시 런던에서 푸조를 구입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롤스는 마침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 고향인 웨일즈 동부로 가야 했는데 이틀 동안 푸조를 직접 운전해 갔을 정도로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1900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미 운전 경험이 풍부했던 그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 경주에 뛰어들어서 1,000마일 경주에서 우승할 정도의 프로레이서였다. 부유한 집안 덕분에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걱정 없이 레이서 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던 그였다. 찰스 롤스의 적극적이고도 뛰어난 활약 덕택에 그는 웨일즈에서 가장 운전을 잘 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당시 자동차 제한 속도는 6km/h에 불과했는데 찰스 롤스의 주도로 19km/h로 상향 조정되었다. 1903년 열기구로 비 착륙 최장거리 비행을 해 열기구 대회 고든 베넷컵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는 1902년 사업을 시작해 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수입차 판매업자가 되었다. 롤스는 훌륭한 영국제 자동차가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1904년 맨체스터에서 생산되던 '''[[헨리 로이스]]'''의 차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 찰스는 평소 취급하는 차의 엔진이 4기통이었던 데 비해 로이스 차의 엔진은 2기통이라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나, 직접 운전해 본 후 조용함과 주행의 부드러움에 감탄해 로이스 차 전체의 판매를 담당하기도 했다. 대신 앞으로 생산될 로이스의 모든 차에 자신의 이름까지 붙여 "롤스로이스"(Rolls-Royce)라고 명명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1906년 호기심과 모험심이 유난히 많았던 롤스는 초기에는 자동차 판매에 열중했으나 라이트형제의 비행 성공에 흥미를 갖고 항공기에 빠져들었다. 1909년 라이트형제 라이센스에서 제작된 비행기를 구입하여 영국해협 왕복 비행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1910년 7월 12일 33살의 나이에 비행 시범 중 꼬리 날개가 파손되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공중 사고로 사망한 최초의 영국인이다.<ref>wlswn12u, 〈[http://www.carlab.co.kr/news/2397 찰스 롤스(Charles Rolls) 1877 - 1910]〉, 《CARLAB(카랩)》, 2014-08-19</ref>
  
 
귀족 가문에서 성장한 찰스 롤스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는 곧 사라질 일시적 유행이라고 치부했던 시대의 개척자였다. 빈틈없는 사업가이자 재능 있는 엔지니어 그리고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이뤄졌던 시대의 공상가였다. 자전거, 모터사이클,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열정적인 자동차광이었던 그는 롤스로이스 설립 이전 런던에 위치한 자동차 판매점 겸 정비소인 C.S. 롤스앤코(C.S. Rolls&Co.)를 운영했다. 그러나 자신이 판매하는 자동차가 대부분 수입차라는 사실에 실망했고 초라한 영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904년 5월 4일 자신이 판매할 만한 차를 찾고 있던 찰스 롤스는 C.S. 롤스앤코의 파트너였던 클로드 존슨과 로이스(Royce Ltd.)의 이사 헨리 에드먼즈의 제안에 따라 미드랜드 호텔에서 헨리 로이스를 만나기로 하고 맨체스터로 향한다. 찰스 롤스는 이날 직접 운전해 본 헨리 로이스의 차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오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를 만났다"는 말을 남기고 맨체스터를 떠났다. 그리고 찰스 롤스는 헨리 로이스가 제작하는 모든 자동차를 본인이 판매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는 각각의 성을 붙여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를 정하고 성의 첫 번째 글자인 R을 서로 겹쳐 로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 고유의 라디에이터 형태도 이때 고안됐다. 지금 롤스로이스는 세계 최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이자 최고라는 수식어와 어울리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찰스 롤스가 헨리 로이스를 만나기 위해 맨체스터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헨리 에드먼즈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최고의 차를 "자동차"의 대명사로 만들고 싶다고 했던 찰스 롤스의 말은 현실이 됐다.<ref>심양우, 〈[https://www.iheadlin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4 110년 역사의 롤스로이스…브랜드 탄생 비화]〉, 《헤드라인뉴스》, 2014-05-15</ref>
 
귀족 가문에서 성장한 찰스 롤스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는 곧 사라질 일시적 유행이라고 치부했던 시대의 개척자였다. 빈틈없는 사업가이자 재능 있는 엔지니어 그리고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이뤄졌던 시대의 공상가였다. 자전거, 모터사이클,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열정적인 자동차광이었던 그는 롤스로이스 설립 이전 런던에 위치한 자동차 판매점 겸 정비소인 C.S. 롤스앤코(C.S. Rolls&Co.)를 운영했다. 그러나 자신이 판매하는 자동차가 대부분 수입차라는 사실에 실망했고 초라한 영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904년 5월 4일 자신이 판매할 만한 차를 찾고 있던 찰스 롤스는 C.S. 롤스앤코의 파트너였던 클로드 존슨과 로이스(Royce Ltd.)의 이사 헨리 에드먼즈의 제안에 따라 미드랜드 호텔에서 헨리 로이스를 만나기로 하고 맨체스터로 향한다. 찰스 롤스는 이날 직접 운전해 본 헨리 로이스의 차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오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를 만났다"는 말을 남기고 맨체스터를 떠났다. 그리고 찰스 롤스는 헨리 로이스가 제작하는 모든 자동차를 본인이 판매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는 각각의 성을 붙여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를 정하고 성의 첫 번째 글자인 R을 서로 겹쳐 로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 고유의 라디에이터 형태도 이때 고안됐다. 지금 롤스로이스는 세계 최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이자 최고라는 수식어와 어울리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찰스 롤스가 헨리 로이스를 만나기 위해 맨체스터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헨리 에드먼즈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최고의 차를 "자동차"의 대명사로 만들고 싶다고 했던 찰스 롤스의 말은 현실이 됐다.<ref>심양우, 〈[https://www.iheadlin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4 110년 역사의 롤스로이스…브랜드 탄생 비화]〉, 《헤드라인뉴스》, 2014-05-15</ref>

2021년 4월 19일 (월) 09:06 판

찰스 롤스(Charles Rolls)
롤스로이스(Rolls-Royce Motor Cars Limited)
비엠더블유(BMW, Bayerische Motoren Werke)

찰스 롤스(Charles Rolls)는 독일의 비엠더블유(BMW) 그룹 산하의 최고급 수공 자동차 제조사 브랜드인 롤스로이스(Rolls-Royce)의 창업자이며 가장 인기 있는 젊은 스포츠맨 중 한 명이었으며 1910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였다.[1]

개요

찰스 롤스는 1877년 8월 27일 영국의 대지주 귀족 가문에서 찰스 롤스(Charles Rolls)가 태어났다. 그는 명문 이튼(Eton) 스쿨을 졸업하고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1896년 19살이던 해 3.5마력의 푸조를 한 대 구입했는데 당시 런던에서 푸조를 구입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롤스는 마침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 고향인 웨일즈 동부로 가야 했는데 이틀 동안 푸조를 직접 운전해 갔을 정도로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1900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미 운전 경험이 풍부했던 그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 경주에 뛰어들어서 1,000마일 경주에서 우승할 정도의 프로레이서였다. 부유한 집안 덕분에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걱정 없이 레이서 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던 그였다. 찰스 롤스의 적극적이고도 뛰어난 활약 덕택에 그는 웨일즈에서 가장 운전을 잘 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당시 자동차 제한 속도는 6km/h에 불과했는데 찰스 롤스의 주도로 19km/h로 상향 조정되었다. 1903년 열기구로 비 착륙 최장거리 비행을 해 열기구 대회 고든 베넷컵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는 1902년 사업을 시작해 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수입차 판매업자가 되었다. 롤스는 훌륭한 영국제 자동차가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1904년 맨체스터에서 생산되던 헨리 로이스의 차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 찰스는 평소 취급하는 차의 엔진이 4기통이었던 데 비해 로이스 차의 엔진은 2기통이라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나, 직접 운전해 본 후 조용함과 주행의 부드러움에 감탄해 로이스 차 전체의 판매를 담당하기도 했다. 대신 앞으로 생산될 로이스의 모든 차에 자신의 이름까지 붙여 "롤스로이스"(Rolls-Royce)라고 명명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1906년 호기심과 모험심이 유난히 많았던 롤스는 초기에는 자동차 판매에 열중했으나 라이트형제의 비행 성공에 흥미를 갖고 항공기에 빠져들었다. 1909년 라이트형제 라이센스에서 제작된 비행기를 구입하여 영국해협 왕복 비행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1910년 7월 12일 33살의 나이에 비행 시범 중 꼬리 날개가 파손되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공중 사고로 사망한 최초의 영국인이다.[2]

귀족 가문에서 성장한 찰스 롤스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는 곧 사라질 일시적 유행이라고 치부했던 시대의 개척자였다. 빈틈없는 사업가이자 재능 있는 엔지니어 그리고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이뤄졌던 시대의 공상가였다. 자전거, 모터사이클,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열정적인 자동차광이었던 그는 롤스로이스 설립 이전 런던에 위치한 자동차 판매점 겸 정비소인 C.S. 롤스앤코(C.S. Rolls&Co.)를 운영했다. 그러나 자신이 판매하는 자동차가 대부분 수입차라는 사실에 실망했고 초라한 영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904년 5월 4일 자신이 판매할 만한 차를 찾고 있던 찰스 롤스는 C.S. 롤스앤코의 파트너였던 클로드 존슨과 로이스(Royce Ltd.)의 이사 헨리 에드먼즈의 제안에 따라 미드랜드 호텔에서 헨리 로이스를 만나기로 하고 맨체스터로 향한다. 찰스 롤스는 이날 직접 운전해 본 헨리 로이스의 차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오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를 만났다"는 말을 남기고 맨체스터를 떠났다. 그리고 찰스 롤스는 헨리 로이스가 제작하는 모든 자동차를 본인이 판매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는 각각의 성을 붙여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를 정하고 성의 첫 번째 글자인 R을 서로 겹쳐 로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 고유의 라디에이터 형태도 이때 고안됐다. 지금 롤스로이스는 세계 최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이자 최고라는 수식어와 어울리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찰스 롤스가 헨리 로이스를 만나기 위해 맨체스터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헨리 에드먼즈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최고의 차를 "자동차"의 대명사로 만들고 싶다고 했던 찰스 롤스의 말은 현실이 됐다.[3]

각주

  1. "Charles Rolls", "wikipedia"
  2. wlswn12u, 〈찰스 롤스(Charles Rolls) 1877 - 1910〉, 《CARLAB(카랩)》, 2014-08-19
  3. 심양우, 〈110년 역사의 롤스로이스…브랜드 탄생 비화〉, 《헤드라인뉴스》, 2014-05-15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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