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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0일 (월) 11:11 판

운송도구는 사람을 태워 보내거나 물건 따위를 실어 보내기 위해 필요한 방법이나 수단, 도구를 말한다. 현재는 자동차, 기차고속철도, 자기부상열차위그선뿐만 아니라 미래형 운송수단까지 첨단과학기술이 지배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지게, 달구지, 썰매, 구판, 가마 등이 주요한 운송도구였다.

달구지

달구지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로 운반수단이면서 교통수단이다. 달구지를 '큰술위'라고도 했으며, 보통 소가 끌면 '우차(牛車)', 말이 끌면 '마차(馬車)'라고 불렀다. 당시 소보다는 말이 귀하여 달구지는 대체적으로 소를 이용하였으며, 짐을 나르는 소의 경우 '역우(役牛)'라고 하여 구별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달구지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가장 능률적인 운반수단으로 오랫동안 이용한 것은 분명하다.

한편 달구지는 바퀴에 개수에 따라 '두바퀴달구지'와 '네바퀴달구지'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두바퀴달구지는 험한 산골지방을 제외하고 전국의 모든 지방에서 많이 쓰였고, 네바퀴달구지는 전라도일대나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소와 수레를 연결할 때는 소의 등에 길마를 얹어 놓고 길마에 연결하여 몸으로 끌도록 하는 방식과 소목에 멍에를 연결하여 목으로 끌도록 하는 방식이 있다. 달구지 '한바리'에 짐을 가득 실으면 볏가마니로 약 15~20가마니를 실을 수 있다고 한다.[1]

길마

길마는 가축의 등에 짐을 실을 때 사용하던 도구로 일종의 짐을 싣는 안장이다. 말굽쇠 모양으로 생긴 나무판 두 짝을 40-50cm 간격으로 앞뒤로 세우고, 그사이에 세장을 박아서 고정한다. 그리고 길마를 가축의 등에 올렸을 때 등이 아프지 않도록 멍석처럼 짠 ‘겉언치’를 깔아줘야 한다. 길마는 지역에 따라 기르매, 질마, 지르마, '질매' 등으로 불리고, 일반적으로 소 (동물)를 많이 이용하며, 일부지역에서는 조랑말이나 당나귀를 이용하기도 하였다.[1]

썰매, 구판

수레를 대신한 운송도구에는 썰매구판(駒板)이 있으며, 주로 수레가 다니기 어려운 지역에서 물건을 옮길 때 긴요하게 쓰였다. '썰매'는 눈이나 얼음판 위에서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도구이고, 서르매, 산서르매, 설매 등으로도 부른다. 또한 썰매는 빙판이 아닌 갯벌에서 빠지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게 이동하거나 물건을 옮길 때 사용되었으며, 논에서 볏짐을 운반할 때 소가 끌 수 있도록 만든 '논썰매'도 있다. 한편 '구판'은 나무판자 밑에 둥근 통나무를 깔고 이들을 바퀴 삼아 판자를 끌어 짐을 운반하는 도구이며, '끌개'라고도 부른다. 주로 공사장에서 무거운 돌 등을 옮길 때 쓰였다.[1]

지게

옛 사람들이 흔히 구할 수 있었던 나무와 짚을 가지고 만든 도구로 산에서 나무를 하여 져다 나를때나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 무거운 물건들을 실어나르던 손쉬운 운송도구였고 각 가정마다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2]

발구

무거운 물건을 먼 길까지 날라야 하는 경우에는 말이나 소의 목에 큰 썰매를 걸어 짐을 날랐다. 수레가 가기 힘든 산간지역을 힘들지 않게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문경과 같은 산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운송수단이다.[2]

삭도

삭도는 공중에 매달린 밧줄에 운반기를 설치하여 여객 또는 화물을 운송하는 교통 수단이다. 운반기는 차량 형태일 수도 있고 의자 형태일 수도 있는데, 특히 운반기가 차량 형태인 경우를 케이블카라고 한다.[3]

가마

조선시대에는 주로 신분이 높은 사람이 타고 다니던 주요한 이동 수단이었다. 대개 조그마한 집 모양인데 보통 네모난 상자 모양의 커다란 몸채가 있고 이 위를 지붕으로 덮었다. 몸채 앞에는 문을 내고 사람이 이 문으로 들어가 그 안에 앉는다. 몸채의 밑 부분에는 가마채라고 하는 두 개의 긴 막대를 나란히 덧대어 두 사람 또는 네 사람이 이 막대를 손으로 들거나 끈으로 매어 가마를 운반한다.[4]

컨테이너 박스

컨테이너가 없던 시절, 해상 운송비의 약 절반은 인건비였다. 선박에 제각각 다른 모양과 무게를 가진 화물들을 실으려면 항구 노동자 수백 명이 달라붙어도 최소한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까지 소요됐다. 그만큼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해운이었다. 화물의 분실과 파손도 잦았다. 태평양을 건너는 비용보다 항구에서 짐을 싣고 내리는 비용이 더 많이 들곤 했다. 운송비 때문에 한국 같은 후진국뿐 아니라 미국 같은 선진국들도 대부분의 공산품 소비를 자국 내에서 해결했다.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 품목은 커피원두나 위스키, 생고무 같은 특산품이나 원자재 정도였다. 자국에서 생산 가능한 물건은 자국에 서 조달하는 게 당연했다. 1970년대 이후 상황이 변했다. 미국의 해운 사업가 말콤 맥린(Malcom McLean)이 주창해 보급한 컨테이너 박스 덕분에 육상 및 해상 운송비가 떨어졌다. 선박은 점차 커졌고 항구의 크기도 덩달아 커졌다. 대형 크레인들이 항구에 설치되면서 배가 항구에서 노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항구 노동자들은 해고됐고 해운사의 인건비 지출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줄었다. 오늘날의 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수천 개의 컨테이너를 운반하는데 선원은 고작 10∼20명이다. 항구에서 하역 작업도 워낙 빠르게 이뤄져 선원들이 쉴 시간이 없다고 불평할 정도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길이 약 12미터(40피트)짜리 컨테이너박스 약 2000만 개가 물건의 운송과 보관에 쓰이고 있다. 석유와 가스처럼 특수 선박이 필요한 원자재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상품 화물이 컨테이너 박스에 담긴 채 바다를 따라, 철도와 도로를 따라 운송된다.[5]

각주

  1. 1.0 1.1 1.2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도구〉, 《한국문화원연합회》, 
  2. 2.0 2.1 베티짱, 〈옛날 사람들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문경 옛길 박물관 | 〉, 《YES24 블로그》, 2010-07-15
  3.  〈삭도〉, 《위키백과》, 
  4.  〈가마〉, 《위키백과》, 
  5. 조진서 기자, 〈단순한 ‘박스’가 역사를 바꿨다. 컨테이너의 표준화, 혁신의 표준이 됐다〉, 《동아일보》, 2016-01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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