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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타 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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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타 벤츠(Bertha Benz)
독일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발명가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카를 벤츠(Karl Friedrich Benz)
베르타 벤츠의 남편

베르타 벤츠(Bertha Benz)는 독일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이고 발명가이다. 결혼전 이름은 재치리야 베르타 링어(Cäcilie Bertha Ringer)이며 자동차의 발명자 카를 벤츠의 사업 파트너이자 부인이다. 카를 벤츠가 발명한 페이턴트 모터바겐(Benz Patent-Motorwagen)를 가지고 세계 처음으로 장거리(105km) 필드테스트를 추진한 사람이며 자동차 부품 브레이크 라이닝(brake lining)의 발명자이다. 이 필드 테스트로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회사의 첫 번째 판매를 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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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베르타 벤츠는 1849년 5월 3일에 바덴 대공국(Grand Duchy of Baden) 포르츠하임(Pforzheim)에 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872년 7월 20일에 독일의 엔지니어 카를 벤츠와 결혼하였다. 1885년 12월에 카를 벤츠가 그의 첫 번째 자동차 개발을 완성한 뒤에 필드 테스트를 담당하면서 와이어 인슐레이션(wire insulation)을 자동차의 설계에 추가하고 가죽 브레이크 패드(leather brake pads)를 발명하여 나무 재질의 브레이커 적용 시 제동에 실패하는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이외에도 연료 파이프 배선을 비롯한 몇 가지 분야의 문제해결에 동참하고 모터바겐의 개발에 필요한 자금문제도 해결하였다. 현대 법율에 따르면 베르타는 특허의 권리를 소유할 수 있으나 결혼한 여성으로서 그 시절에는 특허발명자의 이름에 등록할 수 없었다.

카를 벤츠와 베르타 벤츠는 다섯 자식을 키웠으며 이들은 오이겐(Eugen 1873–1958), 리하르트(Richard 1874–1955), 클라라(Clara 1877-1968), 칠드(Thilde 1882-1974)와 애렌(Ellen 1890-1973)이다.

1886년에 카를 벤츠는 세계 처음으로 삼륜 자동차 페이턴트 모토바겐(Patent-Motorwagen) 모델Ⅰ을 제작하였으며 그 뒤에 사륜 페이턴트 모터바겐 모델Ⅱ를 제작하였다. 처음으로 판매된 차량은 페이턴트 모터바겐 모델Ⅲ이었으며 후륜 구동, 전륜 조향 시스템을 적용하였다.

1988년 8월 5일, 39세의 베르타는 13세 리하르트와 15세 오이겐을 데리고 남편 카를 벤츠한테 알지지 않은 상황에서 페이턴트 모터바겐 모델Ⅲ을 몰고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106km 장거리 주행을 하였다. 물론 겉 사유는 친정어머니 보러 간다는것이 었지만 그 안에는 남편의 발명을 입증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페이턴트 모터바겐의 개발에 이들 부부는 거대한 투자를 진행하였으며 상업적으로 성공을 볼려면 반드시 공중들에게 페티턴트 모터바겐의 유용성과 미래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했다.

베르타는 주행길에서 발견된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면서 순리롭게 목적지까지 도착하였고 그 길에서 아래에 기재한 사건들을 해결하였다.

  • 주유 - 모터바겐에 연료탱크가 설계 안 되어 있는 연유로 카뷰레이터(carburetor)에 담긴 4.5L의 기름으로 주행하면서 중간 급유가 필요할 때 약방을 찾아 리그로인(ligroin)을 구입하여 연료로 사용하였다. 그 당시는 주요소라는 오일 공급처가 없고 약방에서 화학품으로 오일을 팔았다.
  • 연료라인 - 연료 라인이 막혔을 때 모자에 달린 핀으로 청결작업을 하고 가터를 절연재로 사용하였으며 그 때 대장장이가 한 포인트를 수리하였다.
  • 제동 - 나무 재질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을 못 할때 신발수리공을 찾아 가죽 패드를 설치하였으며 전 세계 처음으로 브레이크 라이닝을 만들었다.
  • 증발식 엔진냉각 시스템 - 모터바겐에 증발식 엔진냉각 시스템을 적용한 관계로 여행중에 냉각수공급이 문제로 되었으며 세 사람은 차가 설 때 마다 물을 보충하였다.
  • 기어 - 모터바겐에 장착된 2개 기어로 경사를 극복하기에 충족하지 않아 험한 비탈길에 부딪힐 때 오이겐과 리하르트는 내려서 밀었다.

베르타의 장거리 주행을 통해 사람들은 모터바겐을 알게 되었고 카를 벤츠는 주행중에서 발견 된 문제점들 예하면 경사 길 극복을 위한 기어 추가와 제동파워를 증대시키기 위한 브레이크 라이닝 등의 개선을 추진하였다.

베르타 벤츠는 1944년에 그의 별장에서 별세하였으며 거기에는 1906년에 카를 벤츠와 아들들이 설립한 가족 사업 카를벤츠산스(C.Benz Sons)가 있었다. 카를 벤츠는 다임러-벤츠의 성공을 거둔 뒤 1929년에 별세하였고 가족은 30년 넘게 그 곳에서 생활하였다. 현재 벤츠 자택은 역사문화재로 정해져있고 비영리조직인 고틀리프 다임러 앤드 카를 벤츠 파운데이션(Gottlieb Daimler and Karl Benz Foundation)의 과학기술회의 장소로 쓰이며 자동차 역사에서 베르타와 카를 벤츠가 나타낸 역할을 존중한다.

1925년에 카를 벤츠는 '삶이라는 자그마한 배가 가라앉을 운명처럼 보일 때 한 사람이 나하고 같이 남았다면 그는 바로 나의 안해이다. 그는 용감하고 단호하게 희망의 새 돛을 달아주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1][2][3]

영예

2008년에 베르타 벤츠 기념 코스(Bertha Benz Memorial Route)는 공식적으로 인류의 산업유산으로 승인받았다. 코스는 1888년에 베르타 벤츠가 세계 처음으로 진행했던 장거리 주행 길을 따랐으며 만하임에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를 거쳐 포르츠하임까지 총 194km 거리이다.

2011년 9월 10일부터 11일기간에 카를 벤츠의 자동차 발명 133주년 공식 기념행사와 <베르타 벤츠 도전>이라는 모토가 반영 된 독일의 공식 이벤트 "오토모바일 여름 2011"(Automobile Summer 2011)이 베르타 벤츠 기념 코스에서 개최되었다.

2011년 1월 25일 독일공영방송 도이체 벨레(Deutsche Welle)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카를 벤츠의 자동차 발명에 관한 tv 다큐멘토리 독일 제조를 방송하면서 베르타 벤츠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높게 평가하였다.

2011년에 카를 벤츠와 베르타 벤츠의 삶을 대상으로 제작한 tv 드라마가 있었으며 제목은 카를과 베르타라 달았다.

2019년 인터내셔널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에 다임러회사는 4분 길이의 홍보영상을 의뢰하였으며 이중에 베르타 벤츠의 1888년 여정을 각본화하였다.[1]

각주

  1. 1.0 1.1 "Bertha Benz", Wikipedia
  2. "Bertha Benz", Mercedes-Benz
  3. "Bertha Benz", Daimler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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