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정산외편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은 조선 세종 때의 수학자인 이순지(李純之)와 조선전기의 문인ㆍ천문학자인 김담(金淡)이 왕명으로 서역의 회회력을 연구하여 1444년에 편찬한 역법서를 말한다.
개요
칠정산외편은 조선전기 이순지(李純之), 김담(金淡)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역서(曆書)를 말한다. 5책 활자본이며 1444년(세종 26)에 이순지, 김담 등이 세종의 명에 따라 아라비아의 회회력법(回回曆法)을 연구하여 해설한 책이다. 세종은 1423년(세종 5) 학자들에게 《선명력(宣明曆)》, 《수시력(授時曆)》, 《보교회(步交會)》, 《보중성역요(步中星曆要)》 등 여러 역서의 차이를 비교 연구시켰으며, 1432년(세종 14)에는 정인지(鄭麟趾), 정초(鄭招) 등에게 《칠정추보(七政推步)》, 《대통통궤(大統通軌)》, 《태양통궤(太陽通軌)》, 《태음통궤(太陰通軌)》, 《수시력(授時曆)》, 《회회력(回回曆)》 등의 역서를 연구하여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과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을 편찬하게 하였는데, 1442년(세종 24)에는 《내편》이 1444년(세종 26)에는 《외편》이 완성되었다. 이중 《칠정산내편》은 《수시력》을 연구 해석한 것이며 《칠정산외편》은 《회회력》을 연구 해설한 것이다.
《수시력》은 원나라 때 기존의 중국력을 개량한 것이며 《회회력》은 역시 원나라 때 도입된 아라비아의 역이다. 당시 원에는 다른 2가지의 역법이 동시에 시행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수시력》을 해설한 《칠정산내편》과 《회회력》을 해설한《칠정산외편》은 내용상 큰 차이가 있는데, 특히 일식(日蝕) 및 월식(月蝕)의 계산에서 ≪외편≫이 ≪내편≫보다 정확하다고 한다. 즉 《내편》은 원주의 각도를 365˚ 25′ 75′로 하고 있는 반면 《외편》은 360˚ 로 하며, 《내편》의 1년이 365일 2425분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외편》은 365일 5시 48분 45초로 현대 값보다 겨우 1초 짧을 뿐이다. 또 한가지 다른 것은 1년의 기준이 동지가 아니라 춘분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중국이나 대한민국에서 역(曆)의 계산이 중요시되어 동지를 연초로 하였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 천문학에서는 역일(曆日)보다도 천체의 경도, 즉 적경(赤經)이나 황경(黃經)의 기점인 춘분점을 중요시한 결과인 것 같다.
《칠정산외편》의 내용은 태양, 태음, 교식(交食), 오성(五星), 태음오성능범(太陰五星凌犯)의 총 5장이다. 능범이란 오늘날 달이 다른 천체를 가리는 현상을 말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1]
상세
조선전기 문신·천문학자 이순지와 김담이 왕명으로 서역의 회회력을 연구하여 1444년에 편찬한 역법서를 말한다. 5책. 활자본. 왕명에 따라 서역(西域)의 회회력(回回曆)법을 연구하여 해설, 편찬한 책이다.
원나라는 이 회회력 이외도 중국력을 크게 개량한 『수시력(授時曆)』을 만들었으며, 당시 중국에는 계통이 다른 두가지의 역법이 시행되었던 셈이다. 따라서 회회력을 해설한 『칠정산외편』은 수시력을 해설한 『칠정산내편』과는 그 계통이나 방법에 큰 차이가 있다.
『칠정산외편』은 각 도의 단위는 그리스의 전통을 따라 오늘날처럼 원주를 360°로 하여 60진법(進法)이 쓰이고 있다. 또 1태양년(太陽年)의 길이는 역일(曆日)로 365일로 하되 128태양년에 31윤일(閏日)을 두고 있으므로,
128태양년=(365×128+31)일
따라서, 1태양년={{%269}}(365×128+31)일
=365{{%269}}일
=365.242188일
=365일 5시 48분 45초
로 현대값보다 1초 짧을 뿐이다.
이 값은 수시력의 값 365.2425일보다 두 자리나 더 정확한 것이다. 그런데 아라비아는 순전한 음력을 쓰고 있기 때문에 태음년(太陰年=354.36667일)을 태양년 대신에 쓰고 있어서, 그들이 만든 표의 간격이 태음년으로 되어 계산이 복잡하여진다. 왜냐하면, 아무리 음력을 쓰더라도 역계산에는 계절이 순환하는 주기인 태양년이 기준이 되어야 실용성(농업)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다른 점은 1년의 기준이 동지가 아니라 춘분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국이나 대한민국에서 역(曆)의 계산이 중요시되어 동지를 연초로 하였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천문학에서는 역일(曆日)보다도 천체의 경도, 즉 적경(赤經)이나 황경(黃經)의 기점인 춘분점(春分點)이 중요시된 데서 연유하는 것 같다.
『칠정산외편』의 내용은 태양 · 태음 · 교식(交食) · 오성(五星) · 태음오성능범(太陰五星凌犯)의 5장으로 되어 있고, 필요한 곳에 여러 가지 표, 즉 입성(立成)도 실려 있다. 능범이란 달이 다른 천체를 가리는 현상을 말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2]
칠정산
칠정산(七政算)은 운동하는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서술한 산법서다. 《칠정산》의 "칠정"이란 해,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을 말한다.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대통력, 그리고 중국을 통해 건너온 이슬람 역법인 회회력을 기반으로 해서 한양의 경위도에 맞는 밤낮의 길이와 일출입 시간 계산의 보정치를 추가한 것이다. 즉 중국력의 보정수단으로서 부속되는 것이며 독립적인 역법이 아니다.
칠정산은 세종 26년(1444)에 만든 한국사 최초의 역법이다. 기본적으로 태양력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사에서 태양력을 기준으로 계산한 역법은 칠정산이 최초이다. 사서에 고려시대에 십정력(十精曆), 칠요력(七曜曆), 견행력(見行曆), 둔갑력(遁甲曆), 태일력(太一曆)과 같은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었다는 기록들이 있지만 이후의 수 많은 외침때문에 소실되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최초의 역법은 칠정산으로 친다. 조선 세종대왕 때 이순지(李純之)와 김담(金淡), 정인지가 만들었다. 칠요(七曜: 해ㆍ달ㆍ수성ㆍ금성ㆍ화성ㆍ목성ㆍ토성)의 운행을 계산하는 방법이라 하여 칠정산이라 이름 붙였다. 칠정(七政)은 칠요를 뜻하는 다른 표현이다.
한민족은 삼국시대 이래로부터 조선이 들어설 때까지 대외적으로 중국에서 만든 역서를 수입해서 사용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당의 선명력, 고려 충선왕 때 원의 수시력, 조선 초 명의 대통력. 역법을 만들 기술력 부족도 있지만 오직 천자만 하늘을 주관할 수 있다는 중화주의 세계관의 반영이기도 했다. 이에 세종대왕이 조선의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라고 지시, 국내에서 대간의, 소간의 등 천문기구들을 제작하여 수도 한양ㆍ백두산ㆍ강화도 마니산ㆍ한라산 등 주요 지점에 관리들을 파견하여 각지의 북극고도를 측정하고, 별을 관측하여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시간과 오성 운행시간을 알아내는 노력을 기울여 처음으로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을 만들었다.
이후 명나라 원통이 편찬한 대통통궤(大統通軌)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원나라 수시력법(授時曆法)과 대통통궤의 신기술을 적용하여 세종 24년(1442) 정인지와 정흠지, 정초 등이 칠정산을 만들고 세종 26년(1444)에 칠정산내편을 편찬했다. 또한 이순지와 김담 등이 (정확한 편찬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라비아의 역법인 회회력을 바탕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도록 교정하여 칠정산외편을 편찬했다.[3][4]
칠정산 내편
1442년(세종 24년) 정인지, 정흠지, 정초 등이 만들어 1444년(세종 26년)에 출판하였다. 원나라의 수시력과 명나라의 『태음통궤(太陰通軌)』 및 『태양통궤(太陽通軌)』를 참고로 하여 수시력의 원리와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하고 있다. 아울러 날짜 계산과 24절기의 예보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한양(당시 서울)을 기준으로 하여 동지와 하지 후의 일출몰 시각과 밤낮의 길이를 나타낸 표가 포함되어 있다. 이로써 칠정산은 당시 조선의 행정이 천체학과 역법을 완전히 이해하고 새롭게 서울을 기준으로 천문학을 재정비한 기술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기술력
칠정산의 기후와 날씨에 대한 예측은 농업사회인 조선시대에서는 매우 중요한 행정영역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칠정산은 매우 의미있는 과학적 저술로 언급된다. 칠정산 내편이 동양의 24절기등을 다루는 중국등의 역법에 대한 기술력를 전제한다면 칠정산 외편은 서양권에서 다루는 회회력을 이해하고 이를 칠정산 내편과 동등하게 다룸으로써 세상을 다양하고 균형있게 바라봄으로써 실용적으로 행정을 펼치려는 기술력을 보여준다.[4]</ref>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