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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수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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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수크로 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
야무수크로 위치

야무수크로(프랑스어: Yamoussoukro, 문화어: 야무쑤끄로)는 코트디부아르의 법률상 수도이자 자치구이다. 인구는 42만 명으로 코트디부아르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이전 수도 아비장이 여러 정치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지만, 야무수크로는 1983년 코트디부아르의 법적 수도가 되었다.[1]

개요[편집]

야무수크로는 코트디부아르의 옛 수도인 아비장에서 북서쪽으로 270㎞ 떨어진 코트디부아르 중남부에 있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작은 마을에 불과했으나, 이곳 출신의 독립운동 지도자인 우푸에부아니(Félix Houphouët-Boigny)가 1960년 코트디부아르의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우푸에부아니는 자신의 고향인 이곳을 수도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당시 수도였던 아비장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도시개발기금을 투자해 현대적인 도로와 호텔, 사무실, 아파트, 성당 등을 건설하였다. 또 인공호수까지 갖춘 초호화 대통령궁을 짓는 등 현대적 도시로 탈바꿈시킨 뒤, 1983년 수도를 아비장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우푸에부아니가 자신의 고향에 야심차게 건설한 신도시였으나, 코트디부아르 자체가 1980년대에서 2010년대 초까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속적인 혼란을 겪었던 탓에 야무수크로에 추가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2011년 이전에, 현재 야무수크로 지역은 라크주의 일부였다. 이 지역은 2011년에 만들어졌으며 아티에구아크로현과 야무수크로현 부서로 나뉜다. 이 지역은 총 169개의 정착지를 포함하고 있다. 야무수크로는 야무수크로현의 하위 현이며 2012년부터 야무수크로는 야무수크로 자치구의 유일한 코뮌이기도 하다. 덥고 건조한 열대기후이며 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계획도시라 교통 대란으로 혼란한 아비장에 비해 비교적 깔끔하다. 대부분의 관청과 외국 대사관이 아직도 이전 수도인 아비장에 남아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주코트디부아르 대한민국 대사관도 야무수크로가 아니라 아비장에 있다. 야무수크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회가 있는 곳으로 1990년 9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봉헌된 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2]

기후[편집]

야무수크로는 쾨펜의 기후 구분 체계 하에서 사바나 기후(Aw)를 특징으로 한다. 야무수크로는 3월부터 10월까지 이르는 긴 우기와 남은 4개월을 포함하는 더 짧은 건기를 특징으로 한다. 서아프리카의 다른 많은 도시들처럼, 야무수크로는 도시의 건기의 주요 원천인 하마탄의 영향을 받는다. 긴 우기에도 불구하고, 야무수크로는 아비장에서 경험하는 강우량의 수준을 보지 못한다. 야무수크로는 평균적으로 매년 약 1,130mm의 강수량을 보인다.

역사[편집]

수십만 년 전 코트디부아르에서 발견된 석기는 야무수크로 주변이 고대부터 사람들이 거주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사하라 사막화로 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환경을 피해 남쪽으로 이주했다.

쿠아시 은고(Kouassi N'Go)의 조카인 야무수(Yamoussou) 왕비는 1929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은곡로를 통치했다. 은곡로 마을은 바울레(Baoule)의 마을을 뜻하는 접미사인 크로(Kro)인 야무수크로(Yamousoukro)로 개명되었다.

그 후 외교 및 상업 관계가 수립되었지만 1909년 잠라보(Djamlabo) 족장의 명령에 따라 아쿠에(Akoué) 족은 행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부아플레 도로 야무수크로에서 7km 떨어진 본지(Bonzi) 역에 불이 났고, 프랑스 관리자인 시몬 모리스(Simon Maurice)는 쿠아시 은고의 개입에 의해서만 목숨을 건졌다.

상황이 악화되자 모리스는 본지가 안전해졌다고 판단해 프랑스는 군 기지를 야무수크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야무수크로에서는 1910년 아쿠에 반군에 의해 암살된 아쿠에 족장 쿠아시 은고(Kouassi N'Go)를 추모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1919년 야무수크로의 시민 역이 철거되었다. 펠릭스 후푸에 보이니(élix Houphouët-Boigny)는 1939년에 마을의 지도자가 되었다. 야무수크로는 아직 작은 농촌 마을이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것은 아프리카 농업 연합이 창설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와 그 첫 회의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야무수쿠로가 마침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독립과 함께였다. 1950년에 그 마을은 500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었다.

1964년 이후 펠릭스 후푸에 보이니(Félix Houphouët-Boigny) 통령은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건설을 시작했다. 1965년 야무수크로의 위대한 교훈으로 불리게 된 그는 현의 지도자들과 함께 농장을 방문하여 지역의 노력과 농업의 성과를 자신들의 마을로 옮기도록 초대했다.

1983년 3월 호푸에 보이니 대통령은 야무수크로를 코트디부아르의 정치 및 행정 수도로 정했다. 이것은 나라의 수도가 한 세기 동안 네 번째로 움직인 것이다. 코트디부아르의 이전 수도는 그랑바삼, 빙거빌, 아비장이었다.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여전히 아비장에서 이루어지며, 아비장은 공식적으로 국가의 "경제 수도"로 지정되었다.

야무수크로는 야무수크로주와 인접한 벨리에(Bélier) 주의 소재지이지만 야무수크로 자체는 이 지역의 일부가 아니다.[3]

통치[편집]

2001년부터, 그 도시는 야무수크로현의 일부로서 통치되었고 라크주로 통합되었다. 2011년, 그 부서는 폐지되었고 야무수크로 자치구가 만들어지고 나머지 라크주로부터 분리되었고, 이것은 별개의 구역이 되었다.

대부분의 구와 달리 야무수크로 자치구는 지역으로 세분화되지 않다. 그러나 이 구는 부서, 하위 현 및 코뮌으로 구분되었다. 이 구는 아티에구아크로와 야무수크로의 부서로 구성되었다. 부서는 다시 아티에구아크로, 코소우, 롤로보, 야무수크로의 하위 현으로 나뉜다. 하나의 코뮌이 있으며, 이 코뮌은 야무수크로라고도 명명되며, 이 지역과 동일한 국경을 공유다. 2011년 야무수크로 시장의 자리는 국가 원수가 임명하는 구청장으로 대체되었다.

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편집]

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영어: Basilica of Our Lady of Peace of Yamoussoukro, 프랑스어: Basilique Notre-Dame de la Paix de Yamoussoukro)은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야무수크로에 위치한 초대형 가톨릭 대성당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다. 초대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자 독재자인 펠릭스 우푸에부아니(1905~1993)가 프랑스 식민통치에서 코트디부아르가 독립한 것을 기념해 1985년부터 1989년까지 3억 달러를 들여 건설했다. 비록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짝퉁처럼 보이긴 해도 1990년 9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축성한 준대성전이다. 한국어 명칭은 '야무수크로의 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의 성당으로 기록된 건물이다. 건축면적은 약 30,000m², 연면적은 약 70,000m², 미사공간 면적은 약 7,400m²이다. 건물 높이느느 158m이며 좌석 7000석, 입석 11000석으로 무려 18000명이 미사를 드리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여전히 성당의 실내 면적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더 크다. 이 때문에 여전히 성 베드로 대성당을 가장 큰 성당으로 보는 자료들이 많다. 실내 면적 부문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다음으로는 1980년에 완공된 브라질의 아파레시다 대성당(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Our Lady of Aparecida)을 꼽는다.

대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노골적으로 본떠서 지었다. 두 성당을 비교했을 때 이 성당의 돔은 너무 거대한 가분수라 조형미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실내는 제법 독창적이다. 돔 아래에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간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스테인드 글라스를 수입해 왔으며 꽤 예술적이다. 세계 최대 크기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고 한다. 대리석도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수입해 왔다고 한다. 우푸에부아니가 수도를 아비장에서 자기 고향인 야무수크로로 옮기면서 야심차게 건설했지만 코트디부아르가 60-70년대의 호황기를 지나고 막 파탄기에 접어들 때 지어진지라 당시 말이 많았고 결국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허허벌판에 저거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게다가 이 나라는 종교인구가 아프리카 토속종교가 25~40%, 북부 지역의 이슬람(35~40%), 남부 중심의 기독교로 나눠져 있다. 이처럼 기독교 세가 약하지는 않아도 기독교가 대다수인 나라가 아닌지라 이슬람이나 토속신앙에서 반발이 거셌다. 결국 왈가왈부 진통을 겪고 완성된 지 30년이 다 되었지만 최근 들어 발생한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 간 내전으로 나라 상황이 복잡해지자 이 성당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4]

코트디부아르[편집]

코트디부아르(프랑스어: Côte d'Ivoire, 영어: Ivory Coast) 또는 코트디부아르공화국(프랑스어: République de Côte d'Ivoire)은 아프리카 서부 기니아만 연안에 위치하였으며 북쪽으로 부르키나파소·말리, 동쪽으로 가나, 서쪽으로 기니·라이베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기니만에 면한다. 수도는 야무수크로이며, 최대 도시인 아비장은 경제 수도이기도 하다. 구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로, 1960년 8월 6일에 독립했다. 기니만 연안은 열대 몬순 기후를 띠고 있고 연 2회 우기가 있다. 내륙의 고원지대는 우량이 적어 열대 사바나성 기후를 보인다. 국가 원수는 대통령이고 단원제의 국민의회가 있다. 친프랑스적이며 자유주의 경제를 표방한다. 주요 수출품은 커피, 코코아, 목재 등의 농림 생산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커피·코코아 생산량은 세계 3위이고, 코코아 수출량은 세계 1위이다. 1970년대에 아비장 남쪽 해저에서 유전 2개소가 발견되면서 석유 수출국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인근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되고, 경제수도 아비장에는 국제공항과 국내 최대의 항구가 있으며 자동차 조립·알루미늄·과일 통조림 제조 공업이 성하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야무수크로〉, 《위키백과》
  2. 야무수크로(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야무수크로〉, 《요다위키》
  4. 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 《나무위키》
  5. 코트디부아르〉,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서아프리카 국가
서아프리카 도시
서아프리카 지리
서아프리카 문화
서아프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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