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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즈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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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즈시티
벨리즈시티 위치

벨리즈시티(영어: Belize City)는 중앙아메리카벨리즈에 있는 도시이다. 벨리즈구의 행정 중심지이며 인구는 약 7만 명이며 벨리즈 최대의 도시이다.[1]

개요[편집]

벨리즈시티는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해 있으며, 벨리즈강 하구에 접해 있다. 맹그로브가 울창한 카리브해 연안의 저지에 위치하며, 함석으로 지붕을 인 고상식 목조가옥이 이채를 이루고 있다. 고대 마야 문명의 중심지였으나 17세기에 목재 채취를 위하여 건너온 영국인에 의하여 개발된 곳이다. 벨리즈시티는 벨리즈의 주요 항구이자 경제, 상업, 무역의 중심지이다. 원래 이 도시는 영국령 온두라스의 수도였으나 허리케인의 피해를 자주 받아 1970년 내륙에 건설된 신도시 벨모판으로 옮겼다. 하지만 벨모판의 인구는 2만여 명이며 벨리즈시티의 인구는 벨모판의 3배로 훨씬 크다. 아직 일부 정부 부처와 대법원은 벨리즈시티에 있다. 주요 산업은 코코야자, 바나나, 쌀, 감귤류 등이 집산되는 외에 마호가니 제재, 어업 등이 활발한 무역 중심지를 이룬다. 벨리즈시티의 대표적인 고등 교육 기관으로는 벨리즈 대학교(University of Belize)와 서인도 제도 대학교(University of the West Indies)의 벨리즈 캠퍼스가 있다. 벨리즈시티의 해안 지대는 ‘벨리즈 산호초 보호지역’으로 불리며, 1996년 유네스코(UNESCO)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초 지대인 그레이트 블루홀은 스쿠버 다이빙의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벨리즈(Belize)라는 국명은 과거의 수도인 벨리즈시티(Belize City)의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벨리즈의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벨리즈 강을 일컫는 마야 족(Maya)의 언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벨리즈시티는 처음에는 벨리즈타운(Belize Town)으로 불렸다. 벨리즈시티는 중앙아메리카 유카탄 반도(Yucatán Peninsula)의 동남부 카리브해 연안에 자리한다. 수리적 위치는 북위 17°30′이고, 서경 88°11′이다. 면적은 ​​35.667㎢로 서울시 노원구의 크기와 비슷하다.

벨리즈시티는 벨리즈강 하구에 위치한다. 벨리즈에서 가장 긴 강인 벨리즈강은 카리브해로 흘러든다. 이 도시는 평균 고도가 45㎝에 지나지 않고 맹그로브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홍수에 취약하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벨리즈시티는 열대 계절풍 기후(Am)에 속한다. 연중 고온에 습윤한 날씨로 23~28℃의 기온을 오르내리며, 연평균 기온은 26℃에 이른다. 5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가 우기이며, 연 강수량은 1,952㎜ 정도이다. 건기는 2월경에 시작되어 4월경까지 계속되는데, 건기에는 월 강수량이 50㎜ 안팎으로 비교적 건조하다. 8~9월에는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한다.[3]

벨리즈 시티는 1900년 이후 1931년 허리케인, 1961년 허리케인 해티 등 두 차례 허리케인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1999년과 2004년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도시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다. 또한 2010년 허리케인 리차드와 2016년 허리케인 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역사[편집]

기원전 250년경부터 기원후 900년까지 현재의 벨리즈 지역은 마야 족(Maya)과 켁치 족(Kekchi)이 거주하던 고대 마야 문명의 중심지였으며, 마야 제국의 주요 무역로로 번성하였다. 그러나 마야 문명은 14세기에 이르러 급속히 쇠퇴하였다.

150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제4차 항해에서 벨리즈를 발견하였다. 17세기 초 영국이 벨리즈의 식민 통치를 시작할 무렵 벨리즈시티는 홀주즈(Holzuz)라고 불리는 마야의 작은 도시였다. 영국의 식민 활동은 1638년 스코틀랜드의 해적인 피터 월리스(Peter Wallace)가 벨리즈강 하구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영국은 1655년에 자메이카(Jamaica)의 영국군과 선원들을 벨리즈 지역으로 이주시키면서 식민 활동을 본격화하였다. 당시 벨리즈시티는 벨리즈타운(Belize Town)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카리브해와 벨리즈강에 인접한 벨리즈타운은 이상적인 정착지였다. 영국인들은 수천 명의 흑인 노예를 데려와 삼림을 벌채하여 강과 운하, 해안을 통해 반출하였다. 그러나 영국 해적들이 유카탄반도 인근에서 에스파냐 선박들을 약탈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영국과 에스파냐 사이의 갈등이 표출되었다. 1798년 세인트조지 카예(St. George's Caye) 전투에서 영국은 에스파냐군을 격퇴하고, 벨리즈의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영국은 1862년에 벨리즈를 영국령 식민지로 편입시켜 자메이카 총독의 관할에 두었다. 1884년 벨리즈가 자메이카에서 영국령 온두라스(British Honduras)로 분리되면서 벨리즈시티는 수도가 되었다.

1954년에 헌법을 제정하고, 1964년 내각 제도와 입법 기관이 마련되면서 영국령 온두라스의 내정 자치권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1961년 10월에 발생한 허리케인 해티(Hattie)와 조수의 영향이 겹치면서 벨리즈시티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허리케인 해티는 시속 400㎞의 속도로 벨리즈시티 해안 저지대의 가옥과 상업 시설의 약 75%를 파괴하였고, 260여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1962년 카리브해 연안에 자리한 벨리즈시티에서 서쪽으로 약 82㎞ 떨어진 내륙의 벨모판(Belmopan)이 새 수도 부지로 결정되었다. 1970년에 수도를 이전하였고, 1973년 영국령 온두라스는 옛 수도인 벨리즈시티의 명칭을 따서 국명을 ‘벨리즈’로 변경하였다. 벨리즈의 영유권을 주장하던 과테말라와 영국, 벨리즈 3개국의 협상 결렬로 1981년에 과테말라는 영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고, 영국은 1981년 9월 21일 벨리즈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후에도 과테말라는 벨리즈의 영유권을 주장하였으나, 1991년에 벨리즈를 승인함으로써 벨리즈의 독립은 마무리되었다.

허리케인 해티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벨리즈시티는 허리케인의 피해를 여러 차례 입었는데, 지리적으로 해안에 위치하고 평균 고도가 45㎝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도시계획가들은 벨리즈시티에 교육, 경제, 정치, 문화 등 국가 기능의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우려하였다. 한편으로 벨리즈시티는 빈민 구역의 열악한 환경, 위생 시설의 부족, 과밀한 인구 등으로 도시화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벨리즈 정부는 상대적으로 개발이 미약한 내륙의 벨모판 지역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수도는 벨모판으로 이전되었지만, 벨리즈시티는 여전히 벨리즈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한 곳이며 국가의 중심지이다. 벨리즈 대법원은 현재에도 벨리즈시티에 소재해 있으며, 많은 대사관들이 벨리즈시티에 자리하고 있다.[4]

경제[편집]

벨리즈시티는 벨리즈의 옛 수도로 현재에도 국가의 경제 중심지이다. 국내외 은행과 보험사 등이 밀집한 금융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기계와 운송 장비, 식음료, 건설 자재, 의류 등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도 활발한 편이다.

벨리즈시티의 주요 수출품은 감귤류, 석유, 바나나, 사탕수수, 해산물, 목재 등이 있다. 특히 마호가니(mahogany)를 비롯한 삼림 자원과 치클 껌의 원료가 되는 사포딜라(sapodilla) 수액, 감귤류, 사탕수수 등 상품 작물의 중요성이 크다. 최근에는 관광 분야가 국가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교통[편집]

벨리즈시티는 국내외 교통의 요지로, 도시 북서쪽 레이디빌(Ladyville)에 벨리즈 최대의 국제공항인 필립골드선 국제공항(Philip S. W. Goldson International Airport)이 있다. 미국, 엘살바도르 등 해외 지역을 연결하고, 수도인 벨모판 및 기타 지역으로 통하는 국내 노선이 운항된다.

해상으로는 항구인 벨리즈 항(Port of Belize)에서 국내외 수출입이 이루어지고, 유람선과 여객선이 운항된다.

관광[편집]

벨리즈시티의 대표적 랜드 마크인 세인트존스 대성당(St. John's Cathedral)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성당이다. 벨리즈에서도 매우 오래된 건축물로 1812~1820년에 완공되었다. 이 밖에도 식민 시대의 유적인 조지 요새(Fort George)가 있으며, 이곳에 자리한 벨리즈 박물관(Museum of Belize)은 1855년에 감옥으로 건설되어 여왕 폐하의 감옥(Her Majesty’s Prison)으로 불린 곳이다. 이후 1998년 벨리즈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2002년에 개관하였다.

벨리즈시티 앞의 해안은 ‘벨리즈 산호초 보호지역(Belize Barrier Reef Reserve System)’으로 불리며, 1996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벨리즈시티의 앞바다에는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운 산호초, 산호섬(atoll), 연안 석호(coastal lagoon) 등이 형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해안선과 나란히 좁고 길게 이어져 있는 산호초인 보초(barrier reef)는 북반구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또한 수백 개의 산호섬과 모래섬, 맹그로브 숲 등으로 이루어진 해안 지대는 서인도제도매너티(West Indian Manatee), 바다거북(green turtle), 대모거북(hawksbill turtle), 아메리카바다악어(American Marine Crocodile) 등 멸종 위기 종의 주요 서식지로 유명하다. 총 178종의 육상 식물과 247분류군의 해양 식물이 이 지역에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벨리즈시티 해안에서 약 70㎞ 떨어진 라이트하우스 산호섬(Lighthouse Reef)에는 그레이트 블루홀(Great Bluehole)이라고 불리는 환초(環礁) 지대가 있다. ‘블루홀’이란 지하의 수로 등이 붕괴되면서 카르스트 지형의 일종인 돌리네(Doline)에 연못이 생긴 지형을 말하는데, 그레이트 블루홀은 지름이 300m, 깊이가 124m에 이른다. 특히 이곳은 스쿠버 다이빙의 세계적인 명소로, 영국의 다이버이자 작가인 네드 미들턴(Ned Middleton)이 ‘그레이트 블루홀’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벨리즈시티의 대표적인 축제로는 5월 9일 ‘배런 블리스 기념일(Baron Bliss Day)’, 11월 19일 ‘가리푸나 정착일(Garifuna Settlement Day)’, 벨리즈시티 카니발(Belize City Carnival)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벨리즈시티 카니발은 도시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매년 ‘세인트조지스 카예 기념일(St. George's Caye Day)’인 9월 10일에 열린다. 이날은 1798년 벨리즈를 침략한 에스파냐 인들을 영국인과 노예, 원주민이 함께 싸워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이날 벨리즈시티 시민들은 카리브 해 연안의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전통 음악과 춤을 즐긴다.

벨리즈의 카니발은 1975년 5명의 여성들이 벨리즈시티의 킹스파크(King's Park) 거리에서 기념일 행사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춘 데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화려한 의상을 입은 댄서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춤을 추는 벨리즈 카니발의 전통이 시작되었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벨리즈시티〉, 《위키백과》
  2. 벨리즈시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Belize City", Wikipedia
  4. 벨리즈 시티〉, 《요다위키》
  5. 벨리즈 시티〉,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중앙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앙아메리카 도시
중앙아메리카 지리
중앙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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