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ech)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ech)는 포르쉐(Porsche)와 폭스바겐의 창업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이며 포르쉐 엔지니어, 아우디 경영이사회 이사, 부의장, 의장, CEO로 활동하였으며 1993년부터 2002년까지 폭스바겐 CEO를 역임하고 2002년부터 이사회 의장으로 회사를 이끌었으며 2015년 4월 사임하였다. 그는 폭스바겐을 경영하며 적극적인 인수 합병을 추진하여 부가티, 벤틀리, 포르쉐, 두카티, 스카니아, 만트럭 등을 그룹에 합류시켰다.[1]
개요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1937년 4월 1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안톤 피에히는 당시 독일의 저명 엔지니어였던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법률자문을 맡다가 1928년 포르쉐 박사의 딸인 루이제와 결혼했다. 이 같은 집안 내력 덕분에 피에히는 일찍부터 자동차 마니아가 됐다. 1962년 취리히 연방공대를 졸업하고 1963년 외할아버지 포르쉐가 설립한 포르쉐에 입사하여 전설적인 스포츠카 포르쉐 917 개발을 주도했다. 이 차는 1970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떨쳤고 천부적 엔지니어 소질을 바탕으로 미래 CEO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1971년 포르쉐의 주식을 절반씩 가진 포르쉐 가문과 피에히 가문이 경영권 다툼을 벌였고 양쪽 모두 포르쉐 경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일단락되고 이 때문에 피에히는 1972년 아우디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아우디가 속한 폭스바겐 그룹에서 36년에 걸친 화려한 경력을 시작한다. 피에히는 아우디로 옮긴 후에도 눈부신 능력을 발휘했다. 기술 엔지니어링 부서의 책임자로 취임해 아우디80, 아우디100 등 모델 개발을 주도하고 직분사 엔진인 TDI와 4륜구동 시스템 콰트로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개발 담당 임원까지 오른다. 1988년 아우디 최고경영자로 되었으며 1993년에는 경영난에 빠진 모기업 폭스바겐의 최고경영자까지 오른다. 피에히는 뛰어난 정치력으로 노조 그리고 폭스바겐의 대주주이기도 한 니더작센주를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제품만이 살길이다고 하며 제품군을 혁신적으로 바꿨다. 그는 그룹 산하의 브랜드에서 공통 사용 가능한 모듈 구조 기술 개발을 주도하며 회사를 살렸다. 동시에 스코다와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자동차 명가 이미지를 구축했고 트럭 제조업체 만과 카니아, 오토바이 두카티도 손에 넣었다.
2002년 나이 제한에 걸려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이사회 의장을 맡았지만 심복들을 그룹 내 요직에 심어 실권을 장악했다.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그룹이 되고자 했던 그에게 최대 위기는 친정인 포르쉐에서 나왔다. 포르쉐 CEO인 비데킹은 폭스바겐과 SUV를 공동 개발 이후 포르쉐에서는 카이엔, 폭스바겐에서는 투아렉, 아우디에서는 Q7로 출시하면서 폭스바겐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당시 저평가돼 있던 폭스바겐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최대주주 등극을 시도한다. 비데킹은 포르쉐 이사회 의장이자 피에히의 사촌인 볼프강 포르쉐의 지원 아래 2005년부터 폭스바겐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 결국 2008년 말 33% 이상을 인수했다. 연산 10만 대의 포르쉐가 연산 600만 대의 폭스바겐 그룹을 자회사로 편입하게 되는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포르쉐는 무리하게 빌려온 자금이 경제위기로 회수당할 처지에 놓이자 어쩔 수 없이 자본금이 많은 폭스바겐에 도움을 청했고 피에히는 궁지에 몰린 볼프강 포르쉐를 압박해 비데킹을 쫓아내는 동시에 포르쉐를 폭스바겐 그룹의 10번째 브랜드로 편입하였다.[2]
페르난트 피에히는 1999년 세계자동차선거재단에 의한 "세기의 자동차 기업가"(Car Executive of the Century)에 선정됐고 2014년에는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 폭스바겐 그룹에서 물러난 후 조용히 은퇴자의 삶을 살고 있다가 2015년 8월 25일 세상을 떠났다.[3]
주요 활동
포르쉐 917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외할아버지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기술 유전자를 가장 잘 물려받은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1960년대 중반 20대 후반의 나이로 포르쉐 개발 담당자 자리에 오른 피에히는 포르쉐의 사운이 걸린 프로젝트를 몰래 진행하게 된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등 대형 자동차 업체와의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다. 당시 국제자동차연맹은 25대 이상의 판매 가능한 동일한 모델을 검사를 받아야 양산형 레이싱카로 분류하고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폭스바겐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피에히가 원하는 수준의 917을 그것도 25대나 만들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고민하던 피에히는 어머니이자 포르쉐 박사의 딸인 루이제 피에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917 제작과 레이싱 참가가 가능한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차가 바로 포르쉐의 전설 917이다. 피에히는 자서전에서 917을 통해 포르쉐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이 확신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917을 위해 준비된 엔진은 4.6리터급 12기통의 멋진 공랭식 엔진이었다. 하지만 기술적 고민거리들이 그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고속에서 양력이 증가해 차가 떠오르는 현상을 막아내는 기술이 시급했고 무게 제한에 맞추기 위해 차체 중량을 최소화해야 했으며 피에히는 우여곡절 끝에 560마력, 46.9kg·m의 강력한 힘을 내는 첫 번째 917을 세상에 내놓았다. 차는 완성됐지만 르망 레이스에 출전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실전 테스트를 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드라이버가 차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드라이버들은 시속 300km가 넘어갈 때 917의 조정 안전성이 불안하다며 레이스에 참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대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피에히는 국제자동차연맹의 허가를 받았고 917을 끌고 레이스에 출전하게 된다. 첫 출전한 1969년도 내구 레이스에서는 기계적인 문제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1970년과 1971년 르망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917은 1972년부터 1973년까지 북미 캔암 레이싱에서도 우승하며 당시 최고 레이스 자동차로 사랑받았다.[4]
구조 조정
피에히는 회장 취임 이후 스코다와 세아트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한편 폭스바겐에 대한 강도 높은 자구책도 시행했다. 1993년 폭스바겐은 국내에만 3만 명의 과잉 인력을 고용하고 있었다. 임금은 포드나 오펠보다 20%나 높았다. 피에히는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주 4일 근무로 근무 일수를 줄이면서 임금도 줄이는 방식으로 고용 안정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이뤘다. 피에히 회장은 또 오늘날 일반화된 플랫폼 공유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폭스바겐 그룹을 최고의 생산성을 가진 자동차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플랫폼 공유는 한 군데서 개발한 뼈대를 다른 브랜드도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예들 들어 골프 4세대에 쓰인 A 플랫폼은 나중에 폴크스바겐의 보라, 비틀, 아우디 A3와 TT, TT로드스터, 스코다의 옥타비아, 세아트의 톨레도 등 12개 모델에 쓰여 엄청난 개발비를 아낄 수 있었던 것이다.[5]
인수 합병
각주
- ↑ "Ferdinand Piëch", "wikipedia"
- ↑ 박상원, 〈(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페르디난트 피에히〉, 《조선일보》, 2009-09-18
- ↑ 배수경, 〈‘자동차 업계 전설’ 페르디난트 피에히 별세.향년 82세〉, 《이투데이》, 2019-08-27
- ↑ 스케치북, 〈(스케치북 칼럼) 페르디난트 피에히, 그리고 포르쉐 917의 나비효과〉, 《모터그래프》, 2015-05-18
- ↑ 이재원, 〈13명 자식 둔 '자동차 전설' 폴크스바겐 1인자 피에히 의장〉, "Chosunbiz", 2013-09-10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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