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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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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piao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5월 8일 (토) 11:55 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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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얼(Harley Earl)

할리 얼(Harley Earl)은 1930~1960년대 제너럴모터스(GM)의 스타일링 부문를 이끌며 미국 자동차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준 디자이너이며 최초로 컨셉카(Concept car)라는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1937년부터 1958년 퇴임할 때까지 제너럴모터스의 부사장을 역임하였다.[1]

개요

할리 얼의 풀네임은 할리 제퍼슨 얼(Harley Jefferson Earl)이고 1893년 11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본래 마차 제조 업자였으나 코치빌더로 4륜 차와 왜건, 레이싱용 2륜 차 등을 만들었다. 할리 얼이 자동차에 일생을 걸게 된 것은 1908년 얼의 아버지가 얼 오토모티브(Earl Automotive Works)라는 회사를 세우고 차체 제작으로 업종을 바꾸면서다. 그는 스탠포드대에 입학했지만 중퇴하고 당시 유명 인사들이 주문한 자동차 바디를 만드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디자인 경력을 쌓았으며 개인적으로는 스포츠카에 관심이 많았다. 1918년부터는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아 호화로운 차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영화제작자 세실 드 밀(Cecil De Mille)과의 만남을 계기로 유명 배우들의 차를 여러 대 고가로 디자인해주었다. 그는 2만 8,000달러를 받고 차체를 카우보이 스타 톰 믹스에게 만들어 줌으로써 유명해졌다. 그의 아름다운 맞춤형 차체는 곧 유명세를 타면서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을 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1927년 얼 오토모티브가 팔리면서 GM의 디자인팀에 들어갔다. 1927년 6월 23일 GM의 최고 경영자였던 알프레드 슬론(Alfred p. Sloan)은 운영위원회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50명으로 구성된 미술 색채 심사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새 부서 책임자로 물망에 오른 인물은 1년 전 호평을 받은 캐딜락 라실(Cadillac LaSalle)의 설계 자문으로 일 한 적이 있는 할리 얼이었다. 1927년 당시 GM은 캐딜락과 뷰익의 갭을 메워줄 차로 라살레를 발표했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얼은 엔지니어링 부서로부터 라살레를 인계받아 새로운 디자인으로 갈아입혔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부활한 라살레는 V8 75마력 엔진을 얹어 평균 시속 150km의 속도를 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메모리얼데이 500경주에서 우승했으며 1929년까지 5만 대 가까이 판매되었다. 컨셉카(Concept car)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인 그 당시에는 연구의 결과물로 생겨난 자동차들은 양산과 연결되던지 아니면 스케치로만 남아 폐기되었다. 1937년 입사 10년 뒤 그는 GM의 부사장이 되었으며 회사의 디자인 정책을 주도하게 되었으며 GM의 첫 번째 디자인 책임자가 된 이후 그는 디자인팀의 명칭을 아트&컬러(Art and Colour)에서 스타일링(Styling)으로 바꾸고 단순한 스케치나 렌더링뿐 아니라 모델링과 클레이 모델을 이용해 실물 크기의 목업(Mock-up) 모델 제작 등을 도입했다. 이것은 그대로 지금까지 내려와 자동차 디자인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미래의 자동차 디자인을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살펴보려고 했던 할리 얼은 1938년 뷰익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찰스 체인(Charlie chayne)과 GM의 첫 번째 모터쇼 출품작이자 세계 최초의 컨셉카인 뷰익 Y-Job를 만들게 되었다. 이 차에 적용된 스타일링과 기술은 1940년대에 양산된 뷰익과 캐딜락 차에 그대로 채용됐다. 1948년 캐딜락 시리즈 62(Cadillac Series 62) 모델에 처음 반영된 테일 핀(Tailfins)은 할리 얼이 미 공군의 P-38 라이트닝(P-38 Lightning)이라는 전투기에 양쪽 꼬리날개를 보고 힌트를 얻어 적용되었다. 캐딜락 시리즈 62에서의 테일 핀은 아주 작은 모습이었으나 이후 대중의 인기가 테일 핀에 집중되자 GM에 모든 차종에 테일 핀 스타일이 반영되었다. 얼이 만든 1950년형 뷰익 르사브레(Buick LeSabre)는 기능적인 스타일링과 혁신적인 기술로 출시 당시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고 5, 60년대에 자동차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캐딜락 라살레, 뷰익 Y잡, 쉐보레 코오벳 등을 만들어 미국 드림카의 아버지란 명성을 쌓았다. 그는 GM에서 31년간 근무했으며 디자인 관련 직원들을 50명에서 1,100명으로 늘였고 그가 책임을 맡아 양산한 차만도 3,500만 대가 넘으며 6,000만 대가 넘는 차들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다. 할리 얼은 1969년 4월 10일 플로리다 웨스트 팜비치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1986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2][3][4]

주요 활동

각주

  1. "Harley Earl", "wikipedia"
  2. 할리 얼〉, 《네어버 지식백과》
  3. 월하, 〈할리 얼 Harley Earl (1893~1969)〉, "Horseless Vehicle", 2017-12-24
  4. 진희정, 〈미국 ‘드림카’의 아버지, 할리 얼〉, 《오토타임즈》, 2005-10-19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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