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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부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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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
부가티(Bugatti)
폭스바겐(Volkswagen)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는 독일의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Volkswagen) 산하의 프랑스 최고급 고성능 수공 자동차 제조업체인 부가티(Bugatti)의 창업주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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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에토레 부가티는 1881년 9월 1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명하고 부유한 예술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르누보 가구, 조각가, 보석 디자이너로 명성 있던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 할아버지는 건축가, 이모는 화가, 남동생은 동물 조각가였다. 예술가들에게 프랑스란 곳은 좋은 예술적 환경을 가질 수 있는 혜택 받은 나라로 알려졌기에 부가티 가족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환경을 향유시키고자 프랑스로 이사했다. 그는 어린 나이 때부터 예술가 가족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자동차, 건설 등 광범위한 측면에 대해 깊은 이해를 보여주었고 여러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차 디자인과 제작 기술을 익혔다. 그는 천재라 불리었고 19살에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 자동차 전시회에서 주목할 만한 디자인으로 영광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부가티는 1902년 독일로 가서 오스트리아의 디이트리히(Dietrich) 자동차 회사와 계약하고 디히트리히-부가티란 이름으로 약 100여 대의 차를 생산하였다. 부가티는 자동차 경주에서 자신이 만든 차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려고 1909년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몰샤임 지역에 부가티자동차회사를 설립하고 첫 번째 차인 타입 13을 출시하고 첫해에는 5대를 만들고 다음 해 75대로 늘어났고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꾸준히 생산하였다. 1911년 르망 레이스에 모습을 드러낸 에토레의 레이싱카는 다른 차에 비하면 미니어처에 가까울 정도로 작았다. 심지어 스페어타이어를 넣을 공간도 없어 같이 탄 미캐닉이 들고 있어야 할 정도였으나 이 차가 배기량과 힘이 훨씬 큰 차들을 제치고 피아트에 이어 2위를 하며 명성이 쌓이면서 주문은 밀려들었고 회사도 점점 커졌다. 1차 세계대전 후 제작한 경량 스포츠카는 1920년 르망에서 승리하였고 1921년 브레시아에서는 3번이나 더 승리하였으며 1925년까지 400승 이상을 기록하였다. 당시는 모든 부품을 수공으로 만들 때였는데 부가티의 정교함이 그 어떤 차보다 뛰어났다. 모든 부품이 완벽하게 맞았고 엔진은 별도의 밀봉을 하지 않아도 비가 한 방울도 스며들지 않았고 연료나 오일의 누유도 없었다. 1924년에 나온 타입 35는 스타일과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으며 스페이스 프레임에 알루미늄 보디를 쓰고 직렬 8기통 엔진을 얹은 타입 35는 타르가 플로리오 5연승을 비롯해 1,500회의 우승을 일구며 유럽 레이스 무대를 휩쓸었다. 당시 고성능 차들은 대부분 경주차를 손봐서 만든 것이었고 타입 35도 도로용 버전인 타입 43으로 출시하였다. 1926년에는 자동차 역사상 가장 크고 호화로운 부가티 타입 41 르와이얄이 탄생했다. 르와이얄은 길이 6.5m에 휠베이스가 4.3m에 이를만큼 거대했으며 첫차는 직렬 8기통 15.0L 엔진을 얹고 300마력의 힘을 냈고 그 뒤로는 배기량을 12.7L로 줄이고 출력도 250마력으로 낮췄다. 에토레는 스페인 국왕을 비롯한 세계 왕족들을 위해 르와이얄 25대를 생산할 계획이었으나 4만 달러에 이르는 비싼 값과 미국 경제공황의 여파로 단 6대만 만들고 그중 3대가 팔렸다. 에토레는 아들 장 부가티에게 회사를 맡기고 파리로 가서 비행기와 보트 디자인을 하였으며 아들 장 부가티는 1933년 타입 57을 공개하였다. 타입 57은 뛰어난 성능은 물론 예술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함을 자랑했다. 직렬 8기통 3.3L 트윈캠 엔진을 얹은 타입 57은 유선형 보디의 경주차로 개조되어 37년과 39년 르망 24시간에서 우승했다. 부가티는 전 세계의 왕족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차를 판매하려고 했지만 1차 세계대전과 1920년대 경제공황에 부딪치고 제2차 세계대전에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는 공장을 강제 매입했고 전쟁으로 공장이 파괴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고 에토레 부가티는 1947년 8월 21일 숨을 거두었고 2000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2][3][4]

주요 활동

부가티 타입 35
부가티 타입 41 로와이얄

타입 35

타입 35(Type 35)는 부가티에서 1924년부터 1931년까지 생산한 레이싱카이며 1925년부터 1929년까지 5회 연속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 대회 우승을 비롯한 각종 자동차 레이스에서 1,850번 이상 우승컵을 거머쥔 부가티에서 만든 레이싱카 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 중 하나이며 부가티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인 말발굽 그릴(horseshoe grille)이 장착된 첫 모델이다. 타입 35는 자동차 최초의 알루미늄 합금 휠을 사용하였으며 타입 35 이전까지 자동차는 자전거처럼 철사 혹은 쇠줄 여러 개로 림을 지탱하던 스포크 휠 형태를 많이 하고 있었지만 가볍고, 강하고, 관리가 상대적으로 쉬운 알로이 휠이 등장하면서 안전성과 주행 경쟁력 등이 향상되었으며 제동 시 열을 줄이고 공기 역학까지도 고려가 되었다. 타입 35는 일반도로용(35A)부터 레이싱 전용(35 C, T, B)으로 세분화해 순차적으로 출시되었다.[5]

타입 41

르와이얄(Royale)로 잘 알려진 부가티 타입 41(Type 41)은 1927년에서 1933년까지 4.3m 휠베이스와 6.4m의 전체 길이로 지어진 대형 럭셔리카이다. 무게는 약 3,175kg이며 12,763cc의 인라인 8 엔진을 사용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중 하나이다. 에토레 부가티는 이 차를 25대 제작하고 가장 호화로운 자동차로 로열티로 판매할 계획을 세웠지만 경제공황 시기에 유럽의 왕족도 그런 물건을 사지 않아 7대를 제작하였지만 3대만 판매하였다. 그 후 부가티 타입 41은 크기가 대폭 축소되어 부가티 46이라는 모델로 바뀌어 대중적인 차를 출시하였다.[6]

각주

  1. "Ettore Bugatti", "wikipedia"
  2. 손을래, 〈(자동차大家)에토레 부가티 자동차를 예술로 승화〉, 《한경닷컴》, 2001-12-24
  3. 올댓파츠,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의 자동차 열정〉, 《네이버 포스트》, 2018-10-25
  4. 김학수, 〈(히스토리) 11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부가티 브랜드 히스토리〉, 《한국일보》, 2021-04-04
  5. 모터그래프, 〈(이완 칼럼) 부가티 전설의 시작 타입 35, 그리고 알로이 휠의 등장〉, 《네이버 포스트》, 2019-10-29
  6. 대니얼, 〈부가티 타입 41 르와이얄 모델 구경해보기〉, 《네이버 블로그》, 2019-06-04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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