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비스마르크해

위키원
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0월 23일 (월) 02:18 판 (같이 보기)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비스마르크해

비스마르크해(Bismarck Sea)는 태평양 남서쪽에 위치한 바다로, 비스마르크 제도와 애드미럴티 제도 남쪽, 파푸아뉴기니 북쪽에 위치한다. 면적 약 4만 km². 평균 수심 2,000m. 최대 수심 2,500m, 남쪽으로는 비티야즈 해협을 거쳐 솔로몬해로 흐른다. 바다 이름은 독일의 재상을 지낸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제2차 세계 대전중 1943년 3월 3일부터 3월 4일까지 이 곳에서 비스마르크해 해전이 벌어졌으며 일본 해군이 대패한 곳이다.[1]

개요[편집]

비스마르크해는 서태평양의 비스마르크 제도로 에워싸인 바다로 해역에 면한 주요 섬들로는 동쪽으로 뉴아일랜드, 동남쪽으로 뉴브리튼, 북서쪽으로 애드미럴티 제도, 남서쪽으로 파푸아뉴기니 등이 있다. 산호초가 산재하며 해안에 암초가 많다. 남동 무역풍이 불며 열대다우 기후에 속한다. 비스마르크해는 해저 탐사를 통해 황화물, 구리, 아연, 은, 금의 광물이 풍부한 층이 발견되었으며 파푸아뉴기니는 국제법상 광물에 대한 채굴권을 소유하고 있다.[2][3][4]

비스마르크 제도[편집]

비스마르크 제도(Bismarck Archipelago)는 서태평양 뉴기니섬의 북동부 해안의 섬들로 파푸아뉴기니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파푸아뉴기니 북동부에 있는 제도로 총면적 약 49,700km²이다. 뉴브리튼, 뉴아일랜드의 두 섬을 비롯하여 애드미럴티 제도, 가까이에 있는 약 2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태평양 조산대의 일부를 이루는 호상(弧狀)의 습곡산지로서 대체로 화산이 많으며, 최고봉은 2,500m에 이른다. 반년마다 부는 남동 및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리며, 섬의 대부분이 열대우림으로 뒤덮여 있다. 1617년 네덜란드의 J.루메르와 W.스하우텐에 의하여 발견되었고, 1700년 영국인 댐피어에 의하여 탐험되었다. 1885년 북동 뉴기니와 함께 독일 영토로 편입,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위임통치령,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신탁통치령이 되었다가, 1975년 파푸아뉴기니의 일부로서 독립하였다. 독일은 짧은 지배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라바울을 새로이 건설하였고, 남해 개발의 거점으로 삼아왔으며, 특히 뉴브리튼섬의 북동부에 있는 가젤 반도는 코코야자와 코코아의 아름다운 농원으로 개발하였다. 주민은 멜라네시아계 원주민이다.

비스마르크 제도의 주요생산물은 코프라, 코코아, 조개이나, 커피, 케이폭, 잎담배, 땅콩, 목화, 고무, 사이잘삼(麻), 차, 쌀 등도 시험경작에 성공하였다. 지하자원도 풍부하며 아울러 어업과 임업도 유망하다. 취락은 화산 기슭과 좁은 해안평야에 흩어져 있다. 뉴브리튼섬의 라바울, 뉴아일랜드섬의 캐비엥은 각각 주요취락으로 모두 양항(良港)인데, 라바울은 북부 멜라네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이 제도는 독일의 정치가 O.v.비스마르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5][6]

애드미럴티 제도[편집]

애드미럴티 제도(Admiralty Islands)는 태평양 남서부에 위치한 제도로, 비스마르크 제도에 속하며 뉴기니섬 바다 북동쪽에 위치한다. 마누스섬과 23개 화산섬, 산호섬을 포함하며 면적은 2,072km2, 인구는 약 28,000명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마누스주에 속한다. 섬 대부분은 우림으로 뒤덮여 있고 최고점은 해발 914m이며 환초 지대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최고 기온은 30–32 °C(86–90 °F), 야간 기온은 20–24 °C(68–75 °F)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3,382mm이다. 주요 산업은 진주 채집과 코코야자 재배이다.[7]

파푸아뉴기니[편집]

파푸아뉴기니 독립국(영어: Independent State of Papua New Guinea), 약칭 파푸아뉴기니(영어: Papua New Guinea)는 오세아니아의 나라이다. 이 나라는 뉴기니섬의 동반부에 위치해 인도네시아(서파푸아)와 국경을 접하며, 수도는 포트모르즈비이다. 남태평양 서쪽 끝 뉴기니섬 동반부에 걸쳐 있는 도서국가이다. 1660년 네덜란드가 뉴기니섬의 영유권을 최초로 주장하였다. 1885년 뉴기니섬 동부의 북쪽은 독일이, 남쪽은 영국이 각각 분리 점령하였고,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의 통치를 거쳐 1975년 독립하였다. 뉴기니섬 서반부는 인도네시아의 이리안자야주(州)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연맹은 옛 독일령 뉴기니에는 대표를 허락한 반면 파푸아 보호령은 외부 영토로 간주되어 대표가 허락되지 않았다. 파푸아 보호령은 공식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외부 영토로 남아 있었으며, 이는 1975년 독립 이후의 사법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옛 독일령 뉴기니와 파푸아 보호령의 차별화된 법적 상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 지배가 일원화된 것이 아니라 두 지역을 각각 별개로 간주했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두 영토는 파푸아 보호령으로 통일되었으며, 이후에 "파푸아뉴기니"로 불리며, 1975년 9월 16일에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독립했다.[8]

비스마르크해 해전[편집]

비스마르크해에 떠있는 일본배
연합군의 폭격에 피격당한 일본 육군 수송선 켐부마루

비스마르크해 해전(Battle of the Bismarck Sea, 1943년 3월 2일-4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남서 태평양 지역에서 있었던 전투이다. 연합국 측이 현재의 파푸아뉴기니의 라에 지방으로 이동 중이었던 일본 호위 수송 병력을 공격한 해전이다. 일측의 대부분의 병력은 파괴되었고 일본은 큰 피해를 입었다. 1942년 12월 23일, 일본 고위장성은 뉴기니(과거 파푸아뉴기니의 이름)의 라에 지방의 병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서 차출한 약 105,000명의 병력을 수송하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주에 퇴각하라고 명령했던 과달카날 해전의 패배로부터 일본의 후퇴가 시작되었다. 연합국이 공격할 것이라 예상한 라에 지방 근방에 배치될 예정이었던 병력이었다. 그 섬에서 일본군의 퇴각으로 51사단은 뉴기니섬의 라에로 수송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이 사단의 계획된 병력 수송은 위험할 수 있었는데, 연합군 공군이 매우 강했던 비티아즈 해협을 통과해야만 하였기에 위험한 작전이었다. 최고속도 7노트로 이동하던 호위선단은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솔로몬해와 비스마르크해에서 발생한 두 번의 태풍으로 인해 수일간 발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3월 1일 15시경,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가 홀맨 곶 북쪽에서 순찰하던 조종사가 발견하였다. 3월 2일 10시경, 다른 리버레이터가 호위선단을 발견하였고, 맑은 날씨 덕에 미국 B-17 플라잉 포트리스 폭격기 몇몇은 공격하여 코쿠세이 마루를 포함한 세 척의 상선이 침몰했다.

호위선단은 판단이 확실히 설 때까지 후온 반도 주위를 맴돌았다.90대의 연합군 공군이 케이프 월드 헌트를 향해 모즈비섬에서 이륙하였다. 동시에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소속 더글러스 A-20 22대가 라에에 있는 일본 전투기 기지를 공격했는데, 호위선단의 대공 방어를 약하게 만들 목적이었다. 기지 공격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10시 정각에 꼬리번호 8160번이 이끄는 B-17 13대가 호위선단에 도달하였고 배를 분산시키고 항로를 이탈하도록 중고도에서 폭격하였다. 배의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미 공군 소속 P-38 라이트닝기가 수비를 했고, 3대의 라이트닝이 격추되는 동안 20대의 일본 전투기가 격추되었다. 그 중 2대는 39 전투 비행기였다. 이 작전에서 에이스 파우롯과 호이트 이슨이 전사하였다. 오후동안 미첼기와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소속 보스톤기가 추가 공격을 했다. 구축함 시라유키, 아라시오 및 토키츠카제를 따로 남은 일곱 척 수송선 모두 침몰했다. 구축함 중 네 척은 가능한 모든 생존자를 데리고 라바울로 퇴각했다. 나머지 세척은 후속타격을 받고 침몰했다.

이 전투는 일본군에게는 재앙이었다. 뉴기니에 반드시 필요했던 6,900명 이상의 병력 중 단지 800명만이 라에에 도착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전쟁 기념관에는 2890명의 일본군과 선원이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맥아더 장군은 그의 어록 중에서 "자비로운 신의 의지가 우리를 승리로 이끌었다(A mercful providence guarded us in this great victory)"라고 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연합국은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주도권을 잡게 됐고 유럽에서는 독일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크게 패아는 등 추축국의 세력이 크게 약해졌다. 일본도 이 전쟁으로 세력이 많이 꺾기고 자신들의 식민지를 빼앗겼다.[9][10]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비스마르크해〉, 《위키백과》
  2. 비스마르크해〉, 《네이버 지식백과》
  3. 비스마르크 해〉, 《요다위키》
  4. "Bismarck Sea", Wikipedia
  5. 비스마르크 제도〉, 《위키백과》
  6. 비스마르크제도〉, 《네이버 지식백과》
  7. 애드미럴티 제도〉, 《위키백과》
  8. 파푸아뉴기니〉, 《위키백과》
  9. 비스마르크해 해전〉, 《위키백과》
  10. 비스마르크해 해전〉,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멜라네시아 같이 보기[편집]

멜라네시아 국가와 도시 1
멜라네시아 국가와 도시 2
멜라네시아 국가와 도시 3
멜라네시아 산맥과 바다
멜라네시아 주변 지역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비스마르크해 문서는 세계의 바다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