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음태양력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 lunisolar calendar)은 달의 위상이 변하는 주기를 기준으로 한 달을 정하고, 계절 변화의 주기에 맞게 2~3년마다 윤달을 두어 1년이 열두 달 또는 열세 달이 되는 역법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음력, 히브리력, 중국력 따위가 있다.
개요
태음태양력은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모두 고려하여 만든 역법으로 날짜의 계산은 달의 차고 기욺을 기준으로 하고, 계절의 변화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다. 한국에서 음력이라고 하면 통상 1653년에 시행된 시헌력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 시헌력은 청나라의 예수회 신부 아담샬이 서양역법을 적용하여 만든 달력체계로, 태양의 움직임이 배제된 순수 태음력이 아닌 태음태양력을 가리킨다. 태음태양력에는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사용되었으며 그밖의 나라에는 다양한 태음태양력이 있었다.
태음력은 달이 차고 기우는 변화의 규칙성을 관찰하여 이를 기준으로 만든 역법으로, 계절의 변화를 주관하는 태양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알수 없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24절기라는 태양력법의 개념을 도입하여 태음태양력을 만들었다. 24절기를 통하여 계절의 변화에 대한 예측이란 기독교 문명을 가진 서양에서 부활절 등 교회의 년중행사 진행에 중요한 기준이 되며, 농경중심사회였던 한국과 중국 등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맞게 파종과 수확을 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였다.
태음태양력은 달의 삭망월 주기를 기준으로 한 달을 삼는다. 보름에서 보름까지인 달의 삭망월 주기는 29.5306일이기 때문에 큰 달은 30일, 작은 달은 29일로 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12개월을 1년으로 하면 354일이 되어 실제 지구의 공전주기인 365.242199에 비해 약 11일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태음태양력은 윤달을 만들어 계절과 달력을 맞춘다. 윤달은 19년에 7번 돌아온다.
태음태양력은 고대부터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에서 사용되어 왔다. 이들 나라는 근래에 흔히 양력이라고 부르는 그레고리력을 공식 역법으로 채택하고 있으나, 설날을 비롯한 전통 명절은 태음태양력에 맞추어 쇠고 있다. 한편,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명절을 대부분 양력으로 쇤다.
시간과 날, 달, 해는 간지를 붙여 구분한다. 간지는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의 10간과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12지로 이루어져 60주기마다 다시 같은 간지를 맞게 된다. 간지(干支)는 정확한 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일반적으로 한나라 시기에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네 가지의 간지로 구분되는 시각을 사주(四柱)라고 한다.[1]
상세
태음태양력은 태양의 겉보기 운동을 기반으로 하여 정해진 역법 체계인 태양력과 달의 운행을 기초로 하여 정해진 역법 체계인 태음력을 혼용한 역법체계이다. 즉, 달의 삭망에 기준을 두면서, 계절에도 맞춘 역법이다.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모두 고려해서 만든 달력으로, 날은 달의 삭망월을 기준으로 하되 계절의 변화는 태양의 주기로 맞추었다. 순수 태음력과의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윤달로, 순수 태음력과 달리 계절의 변화를 맞추기 위해서 특정한 시기에 13번째 달을 넣은 것이다. 또 24절기 또한 계절의 변화가 태양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태양의 황경을 따라서 제정한 것이다.
태음태양력은 30일 큰달과 29일 작은 달을 번갈아 두며 12개월 또는 13개월을 1년으로 한다.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4가지 1년이 있다. 치윤법으로 19년에 7회 윤달을 두는 메톤법이 채용되었다. 큰달(30일)과 작은달(29일)을 조합하여 12개월(平年) 또는 13개월(閏年)을 1년으로 하는데,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네 가지 1년이 있다. 치윤법(置閏法)으로는 처음에는 2년에 1회 윤달을 두었는데, 나중에 19년에 7회 윤달을 두는 메톤법(法)이 채용되었다. 큰달과 작은달을 배치하는 방법에는 평삭(平朔:평균삭망월 29.53059일에 맞추는 것)과 정삭(定朔:실제의 삭망에 맞추는 것)이 있다.
평삭에서는 큰달과 작은달이 교대로 나타나며 단지 16개월 또는 17개월마다 큰달이 3회 계속된다. 정삭에서는 달의 운동이 같지 않은 데서 큰달 또는 작은달이 4회 계속되는 일이 있다. 서양의 역은 모두 평삭이었으며, 한국과 중국의 역도 처음에는 평삭이었으나, 나중에 정삭으로 변하였다. 태음태양력은 달의 차고 기울기를 주로 하면서 태양의 운행에 맞춰보려고 노력한 역법이다. 이 역법은 달과 태양의 두 운행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매우 복잡하게 되기는 하지만, 실지로는 고대의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이 이 역법을 채택하였다. 물론 1태양년이 12삭망월과 정확히 일치한다면 태음력·태양력·태음태양력의 구분이 없게 되겠지만, 실제로는 태양년과 삭망월과의 비는 12.36827(=365.24220÷29.53059)이다.
이 소수부 0.36827(월)은 10.875일인데 이것이 쌓이면 한 달을 이루고 평년은 12달의 1년, 윤년(閏年)에는 13달의 1년을 만든다. 이렇게 덧붙인 한 달을 윤달이라고 한다. 계산에 의하면 윤달의 수는 8태양년에는 3개월을, 19태양년에는 7개월을, 27태양년에는 10개월을 두어야 역년(曆年)과 계절이 맞는다. 이들 8년법(99삭망월)·19년법(235삭망월)·27년법(334삭망월)의 총일수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8태양년= 2921.9376일, 99삭망월=2923.5284일 19태양년=6939.6018일, 235삭망월=6939.6887일 27태양년=9861.5394일, 334삭망월= 9863.2171일 이중 19태양년은 235삭망월의 길이와 매우 같음을 볼 수 있다.
이 일수 6940일을 중국에서는 장(章)이라고 하여, 이미 BC 600년경인 춘추시대의 중엽에 발견한 주기이고, 그리스에서는 BC 432년경에 메톤주기라고 하여 아테네의 메톤에 의하여 발견된 주기이다. 그리하여 19년 동안에 윤달을 7회 넣는 방법이라 하여 19년 7윤법(十九年七閏法)이라고 하였다. 태음태양력에는 바빌로니아력, 히브리력, 그리스력, 인도력, 중국력, 한국에서의 음력(陰曆) 등이 있다. 한국은 중국 문화권 내에 속해 있어서 역에서도 중국력을 수입하여, 이것을 그대로, 또는 약간의 손질을 하여 우리의 역으로 써왔다. 그 중 백제에서는 중국에서 들여온 역법을 다시 일본에게 전달해 준 일도 있었다. 이들의 모든 역이 태음태양력이다.
각 시대별로 채택된 역법을 간단히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 674년(문무 14)에 대나마덕복(大奈麻德福)이 당나라에서 역술(曆術)을 배워와서 역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역은 이순풍(李淳風)의 인덕력(麟德曆)일 것이라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적혀 있다. 인덕력은 당나라가 665년에 반포하여 그후 64년간 쓰였던 역인데 1태양년을 489428/1340, 1태음월을 39571/1340이라는 일수를 주고 있다. 당시에는 소수(小數)를 다룰 줄을 몰라 이와같이 분수로 표현했는데 년과 월의 분모가 과거의 역에서는 달랐지만, 인덕력부터는 같은 값을 취하였다. 다음에 당나라 부인균(傅仁均)이 만든 무인력(戊寅曆)은 정삭법 때문에 넉 달이 연속 컸었지만, 인덕력에서는 진삭법(進朔法)을 써서 연4대월(連四大月)을 피하게 되었다. 진삭법이란 합삭 시각이 오후 6시 이후이면 다음 날을 음력 초하루로 정하는 방법이다.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서문(序文)에는 신라에서 대연력(大衍曆)도 쓰였다고 한다. 이 역은 인덕력의 일식예언이 맞지 않아 729년에 일행(一行)이라는 중이 엮었는데, 태양운동의 부등속을 나타내는 주요항인 중심차(中心差)를 밝혔다. 대연력은 729년 동안이나 채택된, 당의 대표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후주서(後周書)》와 《수서(隋書)》의 각 <열전(列傳)>에 백제는 송나라의 원가력(元嘉曆)을 썼고 인월(寅月)을 연초로 한다고 적혀 있다. 백제의 기록과 《니혼쇼키[日本書紀]》에는 일본에게 역박사를 보내어 역법을 알려준 후, 일본에 원가력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백제가 원가력을 썼다는 증거이다. 원가력의 흔적은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지석에 있다. 원가력은 송나라 때 하승천(何承天)이 만들어서 445년 이래 65년간 송나라에서 채택되고 백제에서는 건국 초부터 계속 이 역을 썼다. 1일의 시작은 밤중이 되고, 갑자삭 오전 0시, 우수(雨水) 입기시각을 1년의 시작으로 하였다. 원가력에서는 평기법과 평삭법이 쓰였다.
고려 태조 때 고려에서는 당의 선명력을 이어받아 썼다고 하는데 이것은 나당(羅唐) 사이의 국교로 보아 830년경에는 신라에서도 선명력이 사용되었으리라고 믿어진다. 선명력에서는 태음시차(太陰視差)를 고려하여 일월식 계산에 약간의 진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특별한 과학사상이 새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선명력은 고려시대에도 건국 이래 충선왕까지 근 500년간 쓰였다. 중국에서는 당(唐)·송(宋)이 자주 개력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말기부터 고려 말기에 이르는 약 500년간 선명력을 계속 써왔다. 그러나 이 역법에 오차가 생겼을 때 고려에서는 해결하려고 매우 애썼을 것이다.
그후 1281년(충렬 7) 원나라 사신 왕통(王通)이 수시력(授時曆)을 가져왔었고, 이어 충선왕(재위 1309∼14) 때에 최성지(崔城之)가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수시력을 얻어와 이것을 준용하게 하였다. 원나라에서는 이 역을 1280년부터 88년간 채택하였다. 수시력은 곽수경(郭守敬)·허형(許衡)·왕순(王恂) 등이 여러 관측기계를 제작하여 면밀한 관측과 정밀한 계산을 하여 엮은 역법인데 중국력으로서 최선의 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역원(曆元)을 너무 멀리 잡지 않고, 소수를 활용하여 1년의 길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소장법(消長法)을 채택하였다.
대통력은 이 수시력의 소장법을 없앤 것인데 1370년(공민왕 19)에 성준득(成准得)이 명나라에서 얻어왔다. 그러므로 대통력은 수시력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대까지 합치면 중국에서의 수시력의 수명은 근 500년이나 되며, 한반도에서는 1370~1652년(효종 3)의 약 350년간 쓴 셈이 된다. 1653년(효종 4)에 서양역법인 시헌력이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시헌력에서는 처음으로 정기법(定氣法)이 채택되었고, 삼각함수에 의한 수식계산을 하였으며 천체운동에 관하여는 처음에는 이심원(離心圓:複合圓)의 사상을, 나중에는 타원궤도의 사상으로 전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896년 태양력의 실시까지 쓰였다.[2][3]
종류
동아시아
중국
흔히들 한국에서 전통 달력을 음력이라고 하지만, 엄밀히는 태음태양력을 말한다. 현대에도 한국, 중화권, 베트남, 오키나와는 이 태음태양력을 기준으로 설날, 춘절 같은 명절을 쇤다. 중국의 상나라 때부터 윤달을 사용한 기록이 있는 것을 통해 매우 오래전부터 태음태양력을 적용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때 천문학이 발전하면서 메톤 주기가 발견되는 등 비약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한 달력은 한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한자 문화권으로 퍼져나갔다.
명나라 말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상류층에게 접근했을 때 중국에서 역법이 중시된다는 것을 알고 숭정제 때 마테오 리치가 아담 샬을 불러들여 가며 숭정력을 만들었지만 반포되기도 전에 명나라가 멸망해서 청나라 때 시헌력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된다. 시헌력은 과거의 오차를 상당히 수정했으며, 케플러의 법칙까지 받아들여 정밀성을 높였다. 현대 사용되는 동아시아의 태음태양력은 시헌력이다.
제후국은 중국의 천자가 만든 달력을 받아 사용해야 했고, 하늘을 보고 관장하는 것은 천자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본래 제후국에서는 만들 수 없었지만, 인프라가 좀 자리잡힌 나라들은 자국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었다. 물론 중국에게는 비밀이었는데 세종 시대에 만든 칠정산 역법을 선조 시대 때 명나라 눈치 때문에 제정을 그만두거나 효종 때 청나라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시헌력의 계산법을 몰래 배워 한양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역법을 사용한 게 그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 태양력의 원리를 이용해 24절기를 개발했으며, 춘추시대까지는 춘추春秋의 개념밖에 없다가 나중에 하동의 개념이 생겼다고 한다. 이 중 여름夏은 본래 고대국가 하나라에서 따온 이름이다. 십이지는 상나라 이전부터 존재했기에 달에 십이지를 넣는 개념은 그 시대부터 존재하였다.
- 맹(孟)
- 맹춘(孟春) : 초봄, 이른 봄, 음력 정월, 초춘(初春), 조춘(早春).
- 맹하(孟夏) : 초여름, 음력 사월, 초하(初夏)
- 맹추(孟秋) : 초가을, 음력 칠월, 초추(初秋), 신추(新秋).
- 맹동(孟冬) : 초겨울, 음력 시월, 조동(早冬)
- 중(仲)
- 중춘(仲春) : 봄이 한창인 때, 음력 이월, 중양(仲陽).
- 중하(仲夏) : 한여름, 음력 오월.
- 중추(仲秋) : 가을이 한창인 때, 음력 팔월, 중상(仲商). cf:중추(仲秋): 한가위.
- 중동(仲冬) : 한겨울, 동짓달.
- 만(晩)
- 만춘(晩春) : 늦봄, 계춘(季春), 모춘(暮春), 잔춘(殘春).
- 만하(晩夏) : 늦여름, 계하(季夏), 잔하(殘夏).
- 만추(晩秋) : 늦가을, 계추(季秋), 모추(暮秋), 잔추(殘秋).
- 만동(晩冬) : 늦겨울, 섣달, 모동(暮冬), 계동(季冬).
- 성(盛)
- 성하(盛夏) : 한여름
- 성동(盛冬) : 한겨울
- 1월: 인월(寅月), 정월(正月), 원월(元月), 개세(開歲), 맹춘(孟春).
- 2월: 묘월(卯月), 여월(如月), 영월(令月), 화경(華景), 화월(花月), 중양(仲陽), 중춘(仲春)
- 3월: 진월(辰月), 가월 (嘉月), 도월(桃月), 희월(喜月), 앵월(櫻月), 혜풍(惠風), 계춘(季春), 만춘(晩春), 모춘(暮春), 잔춘(殘春), 혜풍(惠風).
- 4월: 사월(巳月), 등월(燈月),여월(余月), 조하(肇夏), 하반(夏半), 음월(陰月). 맹하(孟夏)
- 5월: 오월(午月), 우월(雨月), 중하(仲夏), 미음(微陰).
- 6월: 미월(未月), 모하(暮夏), 만하(晩夏), 선우―월(蟬羽月), 계하(季夏), 잔하(殘夏).
- 7월: 신월(申月), 난월(蘭月), 난추(蘭秋), 상추(上秋), 신추(新秋), 오추(梧秋), 조추(肇秋), 맹추(孟秋), 초추(初秋).
- 8월: 유월(酉月), 계월(桂月), 계추(桂秋), 수성(壽星), 영한(迎寒), 장월(壯月), 청추(淸秋), 중추(仲秋), 중상(仲商).
- 9월: 술월(戌月), 계추(季秋), 만추(晩秋), 모추(暮秋), 잔추(殘秋), 양추(凉秋), 현월(玄月), 중양(重陽).
- 10월: 해월(亥月), 양월(良月·陽月), 소춘(小春), 상동(上冬), 방동(方冬), 맹동(孟冬), 응종(應鐘)
- 11월: 동짓달(冬至―), 자월(子月), 창월(暢月), 지월(至月), 중동(仲冬)
- 12월: 섣달, 제월(除月), 사월(蜡月), 축월(丑月), 가평(嘉平), 극월(極月), 납월(臘月)
역법에 관한 옛 문헌에 보면 매번 되풀이되는 월별 명칭을 여러 가지로 다르게 부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예를 들어보면 정월正月을 맹춘孟春, 2월을 중춘仲春, 3월을 계춘季春, 4월을 맹하孟夏, 5월을 중하仲夏, 6월을 계하季夏, 7월을 맹추孟秋, 8월을 중추仲秋, 9월을 계추季秋, 10월을 계동孟冬, 11월을 중동仲冬, 12월을 계동季冬이라고 했다. 또 한 해의 첫째 달이라는 뜻에서 1월을 정월, 마지막 달이라는 뜻으로는 섣달이 사용된다.
그런데 11월을 특별히 동짓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달에 동지가 들어있기 때문인데, 양易의 이치로 보면 동지는 음양의 교차점이니, 비로소 음이 가득하여 지극한 이때 하나의 양이 자라나는 시점이 된다고 하여 사실상의 한 해가 시작되는 날로 여겼다. 중국 역법의 계산 기준점이 춘분이 아니라 동지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앞의 월별 명칭 가운데 맹孟·중仲·계季는 일년 12달을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로 구분했을 때 하나의 계절 속에 들어 있는 3개의 달수를 초初·정正·만晩의 명칭과 함께 세분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기의 운행이 변하는 기준점을 나타내는 바 그 변화가 보여주는 자연의 조화를 음률로 나타낸 것이 바로 12율려律呂다.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 의하면 황종黃鐘은 자월子月을 천정天正으로 하고 림종월林鐘月은 미월未月의 충에 해당하는 맞은편의 축월丑月을 지정地正으로 하고 천족월太簇月은 인월寅月을 인정人正으로 한다는 뜻이 기록으로 나타나 있다. 이 구절의 천정天正·지정地正·인정人正의 삼원三元은 천지·만물을 구성하는 양易의 삼재三才를 말한다.
시대에 따라서 역법을 편찬할 때 하늘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면 고대 하나라처럼 한 해 첫머리인 세수歲首(해의 첫머리, 설)를 자월子月에 두게 될 것이고, 땅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면 상나라처럼 한 해 첫머리인 세수歲首를 축월丑月에 두게 될 것이며 사람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면 고대 주나라처럼 한해 첫머리인 세수歲首를 인월寅月에 두게 될 것이다. 이것은 물론 한 해의 순환하는 단위를 12지지地支로 접근했을 때 생겨나는 명칭이다. 한무제 시절 인월을 정월로 고정하면서 우리가 아는 동아시아의 달이 완성된다.
- 계절의 변화를 드러낸 명칭 : 모춘(暮春)·전춘(殿春)·여하始夏·유하維夏·신하新夏·입하立夏·계하(槐夏)·맥추(麥秋)·모추(暮秋)·잔추(殘秋)·고추(高秋)·입동(立冬)·소춘(小春)·상동(上冬)·조동(肇冬)·모동暮冬·궁동(窮冬) 등
- 음양의 기운을 근거로 한 명칭 : 청양(靑陽)·맹양(孟陽)·재양(載陽)·재양(災陽)·중양(仲陽)·건월乾月·복월(復月)·양복(陽復)·구월姤月 등
- 식물의 발육을 근거로 한 명칭 : 개나리 진달래 등이 피는 것을 반영한 화월花月·매화와 관련된 매월梅月, 매하梅夏, 매천梅天·류월(榴月)·무성한 창포잎을 대신한 포월(蒲月)·오동나무와 오이의 발육에 근거한 동월(桐月)과 과월(瓜月)·국화꽃의 향기로움이 반영된 국월(菊月) 등
- 동물의 활동을 근거로 한 명칭 : 누에 치는 달을 뜻하는 잠월(蠶月)·메추라기와 매미의 출현이 반영된 순월(鶉月)·조월蜩月·명조(鳴蜩)·선월(蟬月)·안월(雁月) 등
- 낮과 밤 동안에 생겨나는 해 그림자를 기준으로 생겨난 명칭 : 하지(夏至)·장지長至·지월(至月)·남지(南至) 등
- 기온과 강수량에 관련된 명칭 : 청명淸明·곡우穀雨·중화中和·복월伏月·류월流月·우월雨月·소서(小暑)·양월(凉月)·랭월冷月·류화流火·처서(處暑)·한단(寒旦)·白露·상진(霜辰)·수의(授衣)·엄월(嚴月)·납월臘月·사월(蜡月)·除月·수월氷月 등
- 달빛의 상태를 반영한 명칭 : 여월如月·령월(令月)·려월(麗月)·대장월(大壯月)·교월(巧月)·가월(佳月)·장월(壯月) 등
- 팔풍의 명칭이 응용된 예 : 혜풍(惠風)·훈풍(薰風) 등
한국
한국은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태음태양력을 보편적으로 사용했으며, 중국의 달력을 가져와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와 고구려는 인덕력麟德曆을 사용했고 백제는 원가력元嘉曆을 사용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접어들어 대연력大衍曆이나 선명력宣明曆을 사용했다. 고려시대에도 초기에는 선명력宣明曆을 사용했고 공민왕 19년에 원으로부터 대통력을 수입해서 사용했다. 고려시대 때는 십정력(十精曆), 칠요력(七曜曆), 견행력(見行曆), 둔갑력(遁甲曆), 태일력(太一曆)과 같은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때 세종은 원나라 때부터 사용되던 대통력을 조선 실정에 최적화시킨 칠정산 역법을 편찬했고, 이게 일본에도 퍼져나가 고유의 역법을 제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칠정산 역법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눈치로 역법 제정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명나라 숭정제 때 개발된 숭정력이 청나라 때 시헌력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되자 효종은 시헌력의 계산법을 청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주면서 몰래 배워 한양에 맞춰 수정한 후 사용했다. 이후 개화기에 접어들어 서력기원을 원년으로 삼은 태양력(太陽曆)의 반포로 실생활에서는 잊히지만, 명절과 24절기는 아직 남아 현대까지 내려오고 있다.
일본
일본은 1643년 조선통신사 사절중 독축관(讀祝官) 박안기에게 칠정산 계산법을 전수받고 이것을 연구하여, 1682년 시부카와 하루미(澁川春海)가 일본 최초의 역법인 정향력(貞享曆)을 완성하였다.
춘하추동을 하루(春はる) 나츠(夏なつ) 아키(秋あき) 후유(冬ふゆ)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인명에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계절을 뜻하는 단어로 키세츠季節きせつ(계절), 시키四季しき(사계), 간탄元旦がんたん(원일), 슌분春分しゅんぶん(춘분), 슈분秋分しゅうぶん(추분), 게시夏至げし(하지), 토지冬至とうじ(동지), 츠유梅雨つゆ(장마), 하츠유키初雪はつゆき(첫눈), 인레키陰暦いんれき(음력), 요레키陽暦ようれき(양력), 立春りっしゅん(입춘), 立夏(입하), 立秋りっしゅう(입추), 立冬りっとう(입동)
일본은 옛날 음력 시절에 사용하던 명칭과 현대 태양력으로 사용하는 명칭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달의 앞에 인레키陰曆いんれき를 붙여서 발음하기도 하지만, 태양력으로 교체된 이후에도 각 달을 부르는 고어古語는 여전히 달력에 표기된다.[3]
간지순환법
세차(歲次)
태음태양력의 시간 단위인 시(時), 일(日), 월(月), 연(年)에는 간지를 붙여 표기한다. 시에 붙이는 간지를 시진(時辰), 일에 붙이는 간지를 일진(日辰)이라 하고, 월에 붙이는 것은 월건(月建), 년에 붙이는 것은 세차(歲次) 또는 태세(太歲)라고 한다. 예를 들어 2022년 음력 6월 24일 오전 8시는 임인(壬寅)년, 정미(丁未)월, 병자(丙子)일 임진(壬辰)시 라고 하는데, 이렇게 나타내는 시각을 사주(四柱)라고 한다. 그레고리력(양력)에서는 연대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서기(西紀, AD)를 쓰는데 한국 등에서 사용하는 태음력체계에서는 '병자년, 정축년'과 같이 간지로 표기한다. 이를 간지기년법(干支紀年法)이라 하며 이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동한 건무 30년(AD 54) 부터이다.
무령왕릉 표지석에는 백제 무령왕의 사망일을 "계묘년 5월 병술 삭 7일 임진"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차례대로 세차는 계묘, 월건은 병술, 일진은 임진이며 이 날이 5월 초이레라는 뜻이다. 또한, 세차의 간지를 활용하여 1911년에 있었던 혁명을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1592년에 발생한 조선과 일본간의 전쟁을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명명하고 기록하기도 한다. 그레고리력 2015년 2월 19일부터 2016년 2월 7일까지는 을미년(乙未年)이다. 같은 간지가 돌아오는데 걸리는 기간은 60년으로 이를 회갑이라 한다.
월건과 일진
월건(月建)의 경우는 지지를 고정해놓고 천간(天干)만 순환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를 간지기월법(干支記月法)이라 한다. 즉, 정월의 지지는 인(寅)으로 고정되어 있고 2월의 지지는 묘(卯)가 되며, 3월은 진(辰)이 되는 식이다. 월의 지지(地支)는 정월을 인(寅)으로 하여 순차적으로 12지지(地支)를 배속하여 마지막 12월은 축(丑)이 되는 방식이다. 천간은 순환하기 때문에 5년에 한번씩 되풀이된다. 예를 들어 2022년 음력 1월은 임인(壬寅)월이 되지만 2023년 음력 1월은 갑인(甲寅)월이 된다. 간지(干支)로 일을 기록한 것은 노음공 3년(BC 722) 2월부터 시작되었다. 이 간지기일법(干支記日法)은 약 2,7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동안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체계적 기일법이다.
생활속의 영향
시각을 나타낼 때 사주(四柱)체계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주어 한국어에는 "일진(日辰)이 사납다"라는 표현이나, 축문의 시작을 "유세차(維歲次)..…"로 하는 것과 같은 관습이 남아있다. 또한, 간지는 10간과 12지를 합쳐 두글자로 나타내므로 사주는 여덟자로 나타내게 된다. 이를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 하며 간단히 팔자라고도 한다. 태양태음력을 사용하는 문화권에서는 태어난 시각이 그 사람의 운세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이 있어 사람의 타고난 운수나 분수를 팔자라고 부른다.[12] 한국어에는 “팔자가 세다”라거나 “팔자를 고쳤다”는 표현이 있다.[1]
태음력
태음력(太陰曆)은 달의 운행을 바탕으로 하는 역법 체계이다. 달의 차고 기욺을 기준으로 한 달을 정하는 역법을 말하는 데, 주로 대부분 계절의 변화(즉, 태양의 일주)까지 고려한 태음태양력이나 이슬람력이 속한 순태음력으로 나뉠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음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에서는 농력(農曆, 农历), 일본에서는 구력(旧暦)이라고 부른다. 단 중국식 태음태양력이 아닌 달을 기준으로 한 달력의 총칭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음력으로 부른다. 태양은 모습이 일정하고 남중 고도 정도만 변하는데 그 주기도 1년이라 변화를 측정하기가 어려운 반면 달은 날마다 모습(위상, 位相)이 변하고 그 주기도 30일 남짓이라 측정이 용이해 기준으로 삼기 좋다.[4][5]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