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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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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윷놀이

설날은 대한민국 명절의 하나이다. 정월 초하룻날이다. 구정(舊正, 음력 설) 또는 정일(正日)이라고도 한다.

개요

설날, 구정(舊正, 음력 설) 또는 정일(正日)은 한민족의 전통적인 명절로, 음력 한 해의 시작이자 음력 새해의 첫날(음력 1월 1일)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설날 하루 전과 다음 날을 포함한 '설날 연휴'는 '추석 연휴'와 함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전 세계는 그레고리력(양력)을 표준 달력으로 쓰기 때문에 공식적인 새해의 첫날은 양력 1월 1일이다. 따라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양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이자 설날로 기념한다.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정월 초하루를 설날(Asian Lunar New Year)로 삼았다. 한국에서 설날은 설, 원일(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단월(端月)이라고도 하며, 조심하고 근신하는 날이라 하여 신일(愼日)이라고도 일컫는다. 영어로는 양력 1월 1일 새해 첫날을 New Year’s Day라 한다. 다만, 음력 1월 1일은 Lunar New Year’s Day라 한다.

'설', '설날'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설이 있으나, 나이를 세는 의존명사 '살'과 동계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의존명사 '살'도 원래 형태는 '설'이었으며 설날은 세는나이 기준 말 그대로 한 '살'을 먹는 날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익숙하지 않다는 뜻의 '설다', 한 해가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라는 뜻의 '선날', 서럽다는 뜻의 '섧다' 등과 연관짓기도 하나 근거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한편 설 전날을 '까치설'이라고도 하는데, 동물 까치와는 관계없고 작은 설을 뜻하는 '아치설'이 와전된 말이라고 한다. 아마 설날 동요의 가사 처음에 나오는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가사 때문에 까치의 설이라는 뜻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적다는 뜻의 옛말 '앛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현전하는 문헌 중 《역어유해(1690)》에서는 어원이 같은 '아ᄎᆞᆫ설'이 문증된다.[1][2]

역사

연 날리기 행사 모습

설은 곧 새해의 첫 날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역법체계가 갖춰져야만 지낼 수 있는 명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지내던 명절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태음력에서 역법 전체의 기준이 되는 달은 동지가 든 달이다. 여기에 동짓달을 기준으로 12지를 적용해서 동짓달이 자월(子月), 그 다음 달이 축월이라는 식으로 나가는데, 역법은 초기부터 문제가 생긴다.

즉, 하·은·주 세 나라 중 어디의 역법을 쓰느냐에 따라서 정월이 변한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전국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고육력 중 위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역법 중 황제가 만들었다는 황제력과 노나라 역법인 노력은 주나라와 마찬가지로 동짓달 첫날이 새해의 시작이었고, 전욱이 만들었다는 전욱력은 '동짓달 전 달인 해월'(음력 10월)이 정월이 된다. 참고로 진시황의 진나라가 전욱력을 사용했다. 이후 한무제 때에 하력을 복원시켜서 음력 1월을 설날로 만들고, 동짓달을 11월로 고정했는데, 이것이 태초력이다.

이후 중국 역법은 수많은 자잘한 수정을 통해서 역법이 완성되어 가는데, 중간에 서양역법이 들어와서 태양태음력이 되었고 그 중 최종본이 청나라 대에 완성된 시헌력이다. 이 때문에 공식적으로 음력 1월이 정월이 되고, 음력 1월 1일이 설날이 된 것은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부여가 시헌력 기준 음력 12월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을 통해 한국사에서도 이미 원삼국시대부터 설날을 기리는 풍습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후 《수서》에 의하면 6세기 신라인들은 새해 첫날에 서로 문안을 드렸고, 왕은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군신들을 차례로 격려하며 일월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백제 고이왕이 정월에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냈고 책계왕 때 시조 동명왕에게 정월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설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전통도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주요 명절로 설날은 빠지지 않았는데 이는 설날이 이미 오래 전부터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전통적으로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쭉 이어지는 축제 기간으로 이 기간 중에는 빚독촉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을미개혁에 따라 1896년부터 태양력이 시행되면서 음력이 폐지되었으나 양력은 낯선 것이었고 그동안 음력에 맞춰 살아온 사람들은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보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메이지유신을 거쳐 음력절을 구시대 관습이라며 완전히 금지시켰기에 양력 1월 1일이 공식적인 새해 첫날이었고 음력의 과세(過歲)를 타파시키고자 하였으나 일제에 대한 증오에 의한 반발심과 오랫동안 음력절을 따른 것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기에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지내던 풍습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도 신정만 연휴였고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 쉬었으며 음력 1월 1일은 공휴일은 아니었지만 재량에 따라 음력 1월 1일에 휴무하는 기업은 많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음력에 맞춰 친척과 만나 제사를 지내고 성묘와 세배를 지냈다.

이렇게 태양력 도입 이후에도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여겨 명절로 보내는 풍습은 꾸준히 유지가 되었기 때문에 이에 음력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야한다는 사회의 목소리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음력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한 첫 사례는 1976년이었으나 혼란이 가중된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되었고, 1981년에도 공휴일 지정이 검토되었으나 내무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처럼 정부에서 양력설을 고집한 이유는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 선진국과 일본이 양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들을 근대화 모델로 삼아 양력을 사용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과 매번 날짜가 바뀌는 불편함에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던 중 전통 민속 문화를 계승·발전 시키자는 취지로 1985년부터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로 호칭해서 공휴일로 지정했고 1989년부터는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호칭하고 연휴기간을 3일로 연장해서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대신 신정 연휴는 1990년부터 3일에서 2일로 줄이고, 아예 1999년부터는 1월 1일 하루만을 공휴일로 지정했으며, 명칭도 신정에서 그냥 1월 1일로 변경했다. 이는 근로 효율성 문제를 감안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실생활에서 양력의 사용 비중이 늘어나고 있고 음력은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설날(음력 1월 1일)을 새해의 첫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낸다기보다는 연휴 그 자체로서 지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설의 본래 목적인 새해의 첫날을 기념하는 행사(타종행사, 해돋이 관람 등...)는 양력 1월 1일에 하는 추세이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은 과거 한국에서도 양력설을 연휴로 쇘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부모나 조부모 시대에 음력설이 없었고 양력설만이 연휴였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연휴로서 신정을 쇠는 집안도 있으며 그런 경우 대기업가나 공무원 집안이 많다고 한다. 음력설을 쇠지 않았을 시기에는 정부 산하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여 신정을 쇠도록 독려했기 때문이며, 또 다른 경우로는 가족의 합의에 의해 양가 가족을 모두 방문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도 있다. 음력설을 지내지 않는 외국인과 국제결혼을 한 사람이면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두 설날 모두 쇠기 쉽다.[1]

특징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설날은 양력 1월 1일(양력설이자 새해 첫날, 신정)과 음력 1월 1일(음력설, 구정) 모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본 문서에서는 한국의 전통 명절인 음력 1월 1일 음력설에 관해 기술한다.

음력 1월 1일 설날은 추석과 함께 명절 전날과 다음 날을 포함한 3일이 법정 공휴일인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 중 하나다. 섣달그믐이 윤달일 경우 윤달만 휴일로 인정되고 평달은 휴일이 아니다. 이는 윤12월이 생길 경우 12월 → 윤12월 → 1월 순서대로 달이 바뀌기 때문. 한국의 학기제 특성상 그 학년도 마지막 공휴일이며 전통적으로 겨울방학 또는 봄방학 중이다.

음력설의 날짜는 음력 1월 1일이다. 구정(舊正), 정월(正月) 초하루, 음력설로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신일(愼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단월(端月), 원일(元日) 등으로 불린다.[1]

풍습

전통 풍습

설날에는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다양한 풍습들이 있는데 차례, 세배, 떡국, 설빔(새옷),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등이 그것이다.

눈썹 세는 날

먼저, 섣달 그믐날에서 설날로 넘어가는 밤에는 방이나 마루, 부엌, 다락, 뒷간, 외양간에 불을 밝게 밝히고 밤을 새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날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미신이 있었다. 이는 섣달 중의 경신일(庚申日)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는 도교(道敎) 장생법의 하나인 경신수세(庚申守歲)에서 유래하였다.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사람 몸에 기생하던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을 빠져나와서 옥황상제에게 지난 60일 동안의 죄(罪)를 고해 바쳐 수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않음으로써 삼시충이 옥황상제께 고해바치지 못하도록 하여 천수를 다하려는 신앙의 한 형태이다.

피곤에 못 이겨 잠 든 아이들의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발라 장난을 치는 어른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가리켜 수세(守歲), 제석(除夕), 제야(除夜)라고도 한다. 현대에는 양력을 기준으로 해가 바뀌기 때문에 설날에 이런 풍습은 사라졌지만, 12월 31일에서 1월 1일 넘어가는 밤에는 제야의 종이나 해돋이 때문에 밤을 새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그리고 옛 풍습을 기억하는 70대 이상 어르신들 중에느 제야의 종 방송을 보면서 온 집안의 불을 환하게 켜놨다가 자정 넘으면 그 때에 가서야 소등하는 분들도 많다.

청참

청참(聽讖)이란 새벽에 집 근처에서 맨 처음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로 한 해의 길흉을 점쳐보는 것으로, 까치 소리가 들리면 길조, 까마귀 소리가 들리면 흉조다. 때문에 설날에 까치 소리를 듣고자 아예 집 근처에 까치가 집을 짓고 살도록 담장에 죽나무를 심어놓기도 했다.

복조리

설날 새벽에는 집 밖에 복조리(福笊籬)라는 것을 걸어 한 해가 풍족하길 빌었다. 본래 조리란, 쌀에 섞인 모래나 돌 같은 걸 걸러내고 물에 씻어내는 일종의 체를 일컫는데,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죽사(竹絲)로 엮어 만들었다. 설날이 되면 원래 쓰던 조리 말고, 정초에 새로 조리를 장만하는데, 그게 바로 복조리다. 섣달그믐날 자정이 지나고 잠시 뒤면 복조리 장수들이 "복조리 사려." 라고 외치며 복조리를 팔고 다니거나, 혹은 복조리 장수가 담 너머로 복조리를 던져 놓고 다음날 돈을 받아가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복조리를 샀는데, 복을 사는 것이라 여겨 복조리 값은 흥정을 하지 않았다. 한 해 동안 사용할 갯수만큼 조리를 사서 실이나 성냥, 엿 등을 담아 문 위나 벽 등에 걸어두는데, 이는 장수와 재복을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기 때문에 한 해의 복이 쌀알처럼 일어나라는 의미와 함께 농경민족의 주된 곡식인 쌀을 다루는 도구로서 더욱 중시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나무를 엮은 틈새가 눈이 많은 것으로 여겨져, 광명을 통해 삿된 것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인다는 상징성을 아울러 담고 있다.

현대에는 쌀에 모래나 돌이 섞이는 경우가 없어 조리를 쓸 일이 없으니 현대의 조리는 순전히 장식용의 복조리만 남았다. 조부모님 댁이나 혹은 친척이 사는 시골 집에 내려가 보면 집 밖에 복조리를 걸어둔 풍경이 보이는데, 꼭 정초라고 하여 달아놓는 것도 아니고, 그냥 1년 내내 걸어두는 경우가 많다. 옛날처럼 정초에 복조리를 팔고 다니는 장수도 없고, 사려면 인터넷이나 마트 같은 곳에서 구매하고 있다. 사실상 사라진 풍습이라고 봐야겠다.

설빔

설날의 대표적인 풍속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세배(歲拜)로, 원래는 차례가 끝난 뒤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다니며 새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차례가 끝나면 조부모, 부모, 백숙부모의 순서대로 새해 첫인사를 드리는데 이를 세배라 한다. 집안의 세배가 끝나면,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를 받은 측에서는 어른에게는 술과 밥, 아이에게는 과일과 돈으로 대접하며 서로 덕담을 나눈다.

요즘에는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고 세뱃돈을 받는 풍속이 있기 때문에 어른들보단 아이들이 더 손꼽아 이 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원래는 세배상이라고 하여 떡과 과일 같은 간식들을 내오는 게 보통이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돈을 주는 걸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이 돈을 주는 풍속이 중국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설날에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식들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의미로 붉은 봉투에 돈을 조금 넣어서 주는 풍습이 있다. 일본에서도 お年玉(오토시다마)라고 해서 작은 봉투에 용돈을 담아서 준다. 세배는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세배가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와 충돌한다고 해서, 무슬림들은 절하는 것이 알라에게 예배할 때만 허용된다는 교리에 따라 세배를 하지 않는다. 만삭 임산부들도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세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안비

과거에는 여자의 집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고, 또한 출가외인(出家外人)이라 하여 시집 간 여자는 더 이상 친정의 구성원이 아니라 시집의 구성원이라 하여 특별한 날이 아니면 친정에 갈 일이 없었다. 설날이라도 여자가 친정에 가서 세배를 드리는 일은 없었는데, 대개 명절에는 여자들이 시집의 제사를 준비하느라고 여념이 없다보니 친정에 갈 수 없었다.

하여 양반가의 부녀자들은 친정의 식구와 일가친척들에게 안부를 묻고자 문안비(問安婢)라는 것을 보냈다. 본인이 직접 갈 수는 없으니, 집에 있는 계집종더러 대신 친정에 가서 안부를 묻고 오라는 것이었다. 계집종을 근사하게 입혀 친정에 보내면, 계집종은 그곳에서 세배를 올려 문안을 여쭙는다. 그러면 친정에서는 계집종에게 세배상을 차려주며 세뱃돈을 약간 쥐어주기도 한다. 계집종에게 세배를 받았으면 친정에서도 자기 집의 계집종을 답례로 딸이 있는 사돈댁에 보내어 문안을 여쭙는다.

현대에는 웬만해서는 시집과 처가 모두 방문하여 설을 쇠므로 문안비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친정이 가지 못 한다고 해도 전화통화, 하다 못해 카톡이라도 남기면 소통이 가능하니 이제는 사라진 풍습이다.

야광귀 쫒기

야광귀(夜光鬼)란, 정월 초하루(설날) 밤이나 정월대보름 밤에 인가로 내려와 발에 맞는 신발을 찾다가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찾으면 그대로 신고 사라진다는 민간신앙 속의 귀신이다. 야광귀에게 신발을 빼앗기면 1년 내내 재수가 좋지 않다고 하여 어린 아이들은 신발을 방 안에 감추어 놓곤 했다. 현대에는 집 안에 신발장이 있어서 거기에다 신발을 보관하지만, 옛날 한옥을 보면 툇마루 밑에 있는 디딤돌 위에다가 신발을 벗어놓곤 했기 때문에 방 안에 감추었던 것이다.

야광귀는 체를 보면 홀린 듯이 체의 구멍의 갯수를 세게 되는데, 그 구멍의 갯수를 세다가 그만 날이 밝아 발에 맞는 신발은 찾지도 못 하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정월 초하루나 정월대보름 밤이면 긴 장대 끝에다가 체를 매달아 집 마당에 우뚝 세워놓곤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신발장이 실내에 있어서 도둑 맞을 일이 없으므로 사라진 풍습이 되었다.

현대의 풍습

개신교인은 추도예배를, 천주교인은 위령미사를, 불자들은 초하루법회와 명절법회를 드리기도 한다. 흔히 "크리스천들은 명절에 제사 안 지내니 좋겠다"라는 관념이 있지만 이것도 케바케다. 실제로 차례를 지내지 않고 해외여행을 가거나 하는 개신교 집안도 많지만, 일반 유교 풍습 가정과 똑같이 설날 음식상은 그대로 차려놓고 차례 대신 예배(기도)로 대신하는 집도 은근히 있기 때문이다.

설날 전이면 신권을 바꾸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의 은행에 모이게 된다(그러면서 은행은 의도치 않은 핫플레이스가 된다.) 그래서 신권을 교환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한국조폐공사는 시도 때도 없이 돈만 발행한다. 그 중에서 만원권만. 손자와 자녀들에게 줄 용돈에서 5만원권은 너무 많고 달랑 몇 천원 주자니 적어서 가장 만만하게 아이들한테 줄 수 있는 단위가 만원이기 때문이다. 은행에서는 이 때면 신권이 너무 발행돼서 깨끗한 돈이면 된다고 몇 년째 홍보하는 중이다.

또, 설날에는 사람들이 서로 명절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는데, 연중에 이런 날은 설날과 추석 밖에는 없다. 대부분은 직장 상사과 부하직원 간, 혹은 거래처 간에 이루어지는데, '지난 한 해 신세 많았습니다.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의미에서 주고받는 선물이다. 품목은 대충 비싼 홍삼이나 와인, 고량주 같은 주류에서부터 스팸 세트, 식용유 세트 같은 것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 대목에는 물류량이 갑자기 늘어서 배송지연이 이루어지므로, 그때 즈음에 물건을 시키려는 사람들은 넉넉히 시간을 잡아서 미리 배송을 예약해 놓아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택배업체는 이 즈음이 매우 바쁘다. 모두가 행복해야 할 이 명절 대목에 과로로 쓰러지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사고는 명절 즈음의 9시 뉴스에서 꽤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3]

세계의 설

대한민국의 설

대한민국은 양력 1월 1일과 음력 1월 1일을 모두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으며 법정공휴일이다. 양력 1월 1일의 달력상 명칭은 "신정"이며, 보통 새해 첫날, 또는 양력설이라고 부른다. 음력 1월 1일의 달력상 명칭은 "설날"이고, 보통 설날, 구정, 음력설이라고 부른다. 음력설은 추석과 더불어 2대 명절 중 하나로, 이 날에는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께 세배를 하는 것이 고유의 풍습이다. 한국에서는 1896년부터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양력 1월 1일이 공식적인 새해의 첫날이지만, 음력을 썼던 전통에 따라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한다. 현대 한국에서는 양력설인 새해 첫날을 해(年)의 한 간지가 끝나고 새 간지가 시작되는 날로 여기며, '설'은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 '삼가다' 등의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한민국에서는 1985년부터 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하였고, 1989년부터 민속의 날을 '설날'로 이름을 바꾸고 설날을 3일 연휴(음력 12월 30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로 하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음력 1월 1일 음력설을 전통적인 명절로 간주하고, 묵은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한 해의 첫날이라는 새해 첫날의 의미는 양력 1월 1일인 양력설이 더 강하다.[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설

북한은 양력 1월 1일을 설날로 간주하며 중요한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다만, 전통을 중시하기 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67년부터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북한은 음력 1월 1일을 단지 휴식일로 간주하고, 새해의 첫 날이라는 의미는 양력 1월 1일에 두고 있다. 양력 1월 1일 새해 첫날을 북한에서는 설날이라 부르며 더 중시하고 있다.

중국의 설

중국에서는 양력 1월 1일과 음력 1월 1일을 모두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양력 1월 1일 양력설을 공식적인 새해 첫날로 간주하고 원단(元旦)이라고 부른다. 음력 1월 1일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로 간주하고, 춘절(중국어 간체자: 春节, 农历新年, 정체자: 春節, 農曆新年, 병음: Chūnjié, Nónglì xīnnián 춘지에)이라고 부르며 국경절과 함께 가장 큰 양대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양력설인 새해 첫날에는 카운트다운 행사와 해맞이, 불꽃놀이 등의 축제가 벌어지며, 보통 새해 인사를 나눈다. 음력설인 춘절에는 대규모 귀성객이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등 한국의 음력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국토가 방대하기 때문에 보통 1주일 이상을 휴일로 한다. 중국에서 춘절은 전통적인 명절의 의미가 강하며, 중국도 양력을 공식 달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새해의 첫날이라는 의미는 양력 1월 1일에 둔다. 양력설과 음력설(춘절)은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서도 국경일이며, 그 밖의 나라에 사는 화교들도 명절로 즐긴다.

일본의 설

일본의 설(正月 오쇼가쯔)은 양력 1월 1일이며, 설날은 일본의 연중 최대 명절이다. 이는 서양의 설이 양력 1월 1일인 점을 그대로 답습한 메이지 유신에 따른 것이다.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음력 1월 1일이었다. 이 날 일본인들은 조니(雑煮)라고 불리는 떡국을 먹는데, 한국의 떡국과는 달리 찰떡을 사용하며, 국물도 간장국이나 된장국을 사용한다. 또한 한 해 동안의 무사안녕을 위해 기모노를 입고 신사나 절을 참배하는데, 이를 하쓰모데라 한다. 법으로 정해진 설 연휴는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이지만, 대부분 일본의 기업, 관공서들은 연말인 12월 29일부터 1월 3일까지 연휴이다. 음력 1월 1일은 일본에서 의미를 두지 않으므로 평일이다.

다른 나라의 설

  • 베트남의 설은 뗏(Tết, 節)이라 불린다.
  • 몽골의 설은 차강사르(Tsagaan Sar, 하얀 달)이라 불린다.
  • 태국의 설은 송끄란(สงกรานต์, Songkran)이라 불린다.
  • 미얀마에서는 설에 띤쟌이라는 물축제를 한다.
  • 스리랑카 : 스리랑카의 새해 (අලුත් අවුරුද්ද, Aluth Avurudda)
  • 캄보디아 : 캄보디아의 새해 (បុណ្យចូលឆ្នាំថ្មី, Chaul Chnam Thmey)
  • 라오스 : 새해 라오스 (ປີໃໝ່, Pii Mai)[2]

서양의 신년 맞이 축제

유럽 국가들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신년전야부터 양력 1월 1일 새해 첫날까지를 설날로 기념하여 축제를 연다. 유럽의 영향을 받은 미국 등 아메리카 국가들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오세아니아 국가들도 비슷하다. 이것이 서양에 있는 나라에서는 설날 같은 것이다.[2]

이슬람권의 설

이슬람권에서는 음력인 이슬람력을 사용하여 이슬람력 1월 1일을 설날로 하고 있다. 양력으로 양력 8월 중순~10월 초 사이에 오며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 사이에 흔히 오는 기념일이다. 아랍어로는 라스 앗싸낫 알히즈리야(رأس السنة الهجرية, Ras as-Sanah al-Hijriyah)이라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이슬람의 설날이다.[2]

동영상

각주

  1. 1.0 1.1 1.2 1.3 설날〉, 《나무위키》
  2. 2.0 2.1 2.2 2.3 설날〉, 《위키백과》
  3. 설날/풍습〉, 《나무위키》

참고자료

  • 설날〉, 《네이버 국어사전》
  • 〉, 《한국세시풍속사전》
  • 설날〉, 《위대한 문화유산》
  • 설날〉, 《나무위키》
  • 설날〉, 《위키백과》
  • 설날/풍습〉, 《나무위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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