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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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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시티
파나마시티 위치

파나마시티(스페인어: Ciudad de Panamá, 영어: Panama City, 문화어: 빠나마시)는 중앙아메리카 파나마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원래 도시명은 파나마이지만, 국가명인 파나마와 구별하기 위해서, '파나마시티'라고 부른다. 도시 인구는 약 88만 명이고 대도시권은 150만 명이다. 파나마운하태평양 초입상에 자리잡고 있는 항구도시이며 파나마의 정치와 행정 중심지이다.[1]

개요

파나마시티는 파나마운하의 남쪽 입구, 태평양 연안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파나마의 정치와 행정 중심지이자 금융과 상업의 허브인 파나마시티는 태평양과 파나마 북부의 열대우림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파나마 시티 주변의 열대 우림은 파나마 운하의 운영에 필요한 물을 공급함으로써 운하 운영에 필수적이다. 파나마 경제에서 운하가 차지하는 중요성으로 인해 운하 주변의 열대 우림은 잘 보존되어 왔다. 1519년 에스파냐 정복자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가 최초로 시가지를 건설했지만, 이후의 대화재, 지진, 폭동, 해적의 침략 등으로 폐허가 되었다. 1673년 구 시가지 남쪽에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1821년 그란 콜롬비아의 한 주로 합병되었다가 1903년에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여 파나마의 수도가 되었다. 금융, 교통, 관광 등 서비스업이 발달해 있다. 파나마시티의 주요 산업은 건설, 양조, 정유, 제련, 제당, 목재 가공업 등이다. 주요 수출품은 바나나, 새우, 설탕, 커피, 섬유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자본재, 식품, 소비재, 화학제품 등이다. 주요 수출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 국가와 유럽 연합 등이며, 파나마시티의 수출품 생산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이 밖에 관광업은 최근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분야 중 하나이다. 파나마시티에는 공립 학교와 사립 학교가 있으며, 상당수 사립 학교들은 이중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학은 총 16곳으로 국립 대학이 2개이며, 나머지는 사립 대학이다. 국립 대학에는 파나마 국립대학교(Universidad de Panamá)와 국립 공과대학(Universidad Tecnológica de Panamá)이 있다. 파나마 비에호 고고 유적과 파나마 역사 지구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2]

지리 및 기후

파나마시티는 중앙아메리카에 자리한 파나마태평양 연안 도시이다. 위치는 서경 79°19′, 북위 8°54′로, 파나마만파나마운하의 입구에 있다. 도시의 면적은 2,011㎢이다. 파나마 지협은 남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이다. 파나마시티는 이 지협의 태평양 연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평균 해발고도는 0m로 평평하다. 지대는 동북 지역으로 갈수록 낮아지며 파나마시티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높아진다. 지대가 가장 높은 곳은 앙콘 산(Cerro Ancón)이다. 총 8개의 강이 흐르며, 도시의 양편 경계 지역에는 체포 강(Río Chepo)과 차그레스 강(Río Chagres)이 흐른다. 파나마에서 가장 길고 유량이 풍부한 차그레스 강은 총연장이 125㎞에 달한다. 이 강을 막아 만든 423㎢의 가툰 호(Lago Gatún)는 파나마 운하의 주요 수로로 이용된다.

파나마시티는 열대 우림 기후 지역으로 기온은 연중 고른 편이다. 일 년 내내 21℃에서 35℃를 오르내리며, 평균 기온은 약 30℃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900㎜이며, 일평균 강수량은 5.1㎜이고, 연평균 상대 습도는 75%이다. 5월부터 12월까지 겨울이자 우기이며, 1월부터 4월까지는 여름이자 건기이다. 파나마를 둘러싼 열대 우림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인데, 이 열대 우림은 파나마 운하의 운행을 위한 수량 공급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역사

파나마시티는 본래 어촌이었다. 식민 초기에는 70여 채의 오두막에 약 400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이 정착민들은 1532년 페루의 정복이 끝나자, 대부분 페루로 이주했다. 이듬해까지 이 지역에 13명의 에스파냐 남성 정착민들이 500여 명의 원주민들과 함께 남아 있었다. 콜럼버스가 제4차 항해에서 파나마 지협의 대서양 연안에 도착하여 아름다운 항구라는 의미로 포르토벨로(Portobelo)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1519년 8월 15일 에스파냐의 정복자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Pedro Arias de Dávila)가 처음으로 시가지(현재의 파나마 비에호 고고 유적지)를 건설했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에서 에스파냐 인이 건설한 최초의 도시였다. 도시는 잉카 제국으로 향하는 탐험대의 출발지이자 무역로의 주요 경유지가 되었다. 안데스 주변 국가들의 금과 은은 파나마시티를 거쳐 에스파냐로 반출되었다. 주교청과 왕립 재판소 등이 건립되는 등 점차 번성하던 도시는 대화재, 지진, 폭동 등으로 인해 황폐해졌다. 특히 1671년에는 해적 헨리 모건(Henry Morgan)이 침략했을 때 발생한 대화재로 약 4,000명이 사망했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1673년 안토니오 페르난데스 코르도바 멘도사(Antonio Fernández de Córdoba y Mendoza)는 구 시가지에서 8㎞ 남쪽의 반도 지역에 신도시(현재의 카스코 비에호 역사 지구)를 건설했다. 신도시는 유럽의 계획 도시 개념을 적용하여 격자형으로 설계되었고, 해적을 막기 위한 요새도 건설했다. 건설 당시 인구는 약 900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무역이 번성하면서 1700년대에는 2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에스파냐의 몰락에 의한 영향과 1737, 1756, 1781년에 일어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고, 도시는 점차 쇠퇴하여 1790년대에는 도시의 인구가 7,000명으로 줄어들었다. 1751년에 누에바그라나다(Nueva Granada) 부왕령에 편입되었고, 1821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의 한 주로 합병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gold rush) 시기에 대서양(카리브해)의 콜론(Colón)과 파나마시티를 연결하는 철도가 건설되어 뉴욕샌프란시스코 사이의 경유지가 되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파나마시티를 거쳐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프랑스가 파나마운하 건설에 뛰어든 1890년대 건설과 상업이 활성화되기도 했지만, 19세기 말 운하 회사의 파산으로 다시 침체기를 겪었다.

파나마시티는 파나마가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한 1903년에 수도가 되었다. 이는 파나마 운하 건설을 둘러싼 미국 등 강대국 간의 갈등과 협상의 결과였다. 미국이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이유로 군대를 파견하고, 1903년 11월 3일 파나마시티의 주민들이 콜롬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미국 함대가 이를 저지하여 파나마의 분리 독립이 이루어졌다. 1904년에 파나마 운하와 그 주변 8㎞ 이내가 포함된 파나마 운하 지대(Panama Canal Zone)가 미국에 조차(租借)되는데, 이때 파나마시티는 제외되었다.

파나마시티는 파나마 운하의 건설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건설 공사를 위해 자메이카와 바베이도스 등 카리브해 여러 지역에서 흑인 노동자들이 유입되었고, 이는 파나마시티뿐만 아니라 파나마의 인종적 구성과 사회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흑인 노동자들은 영어를 사용하며, 도시의 주요 계층으로 성장했다. 도시는 교역의 증대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도로, 상하수도, 위생 등이 개선되었으며, 전신, 철도, 의료 등 각종 현대적 시설이 들어섰다. 특히 벨리사리오 포라스(Belisario Porras) 대통령의 재임 기간(1912~1916)에는 도시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만성적인 주택 부족이 발생했지만, 운하 지대의 배후 도시로서 발전을 계속했다. 파나마시티는 1903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갈 무렵까지 중요 도시로 부상한다.

한편 파나마시티는 운하 지역의 주권 회복을 위한 활동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1959년 11월 3일 독립 기념일에는 파나마시티에 파업과 폭동이 발생했고, 1963년에 발생한 폭동에서 미국과 파나마 국민 사이에 유혈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1989년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할 당시에는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Manuel Antonio Noriega) 장군의 본거지라는 이유로 공격의 주요 목표가 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파나마 운하 인도 및 주둔 미군(미국 남부 사령부)은 1999년 12월에 이르러서야 철수하였다.[3]

교통

1848~1869년 미국에 의해 파나마 지협을 가로질러 카리브해태평양을 연결하는 최초의 대륙 횡단 철도인 파나마 철도(Panama Railroad)가 완성되었다. 현재 이름은 파나마 운하 철도(Panama Canal Railway)로, 대서양 연안에 자리한 콜론(Colón)과 파나마시티가 연결된다. 철도 이외에도 파나마시티에는 2개의 고속도로가 있다. 대부분 북쪽에 자리한 교외 지역과 연결되는 반면, 남쪽은 파나마 만을 통과하여 샌프란시스코 지역까지 연결된다.

시내 앙콘에 위치한 알브룩 버스터미널(Terminal de Transporte de Albrook)은 도시 내외의 버스 수송을 담당한다. 버스는 파나마시티에서 가장 활성화된 공공 교통수단이다. 파나마의 다른 지역과 파나마시티를 오가는 버스의 일일 수송객은 수천 명에 달한다. 이 밖에도 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팬아메리칸 하이웨이(Pan-American highway)를 경유하여 중앙아메리카를 왕래하는 국제노선도 있다.

파나마시티는 자가용 이용자의 비율이 높아 교통 체증이 잦다. 택시는 노란색이며, 요금제는 거리(m) 단위가 아니라 지구(zone)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파나마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시내버스인데, 2013년부터 공공 버스인 메트로버스(MetroBus)가 운영되고 있다. 이전에는 내외부가 화려한 색채와 유명 정치가, 연예인, 스포츠 선수의 사진 등으로 장식된 시내버스 디아블로 로호(diablos rojo)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는데, ‘붉은 악마’를 의미하며, 이는 주로 스쿨버스 등을 개조하여 개인이 운영하던 것이었다.

파나마시티에는 토쿠멘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de Tocumen)과 마르코스 A. 헬라베르트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Marcos A. Gelabert)이 있다. 파나마시티에서 북동쪽으로 27㎞의 거리에 있는 토쿠멘 국제공항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크며, 운행량도 가장 많은 공항이다. 일평균 52회의 항공기가 미국과 일부 유럽 도시들, 상파울루(São Paulo),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등을 연결한다.

파나마시티의 알브룩(Albrook)에 자리한 마르코스 A. 헬라베르트 국제공항은 지역의 허브 공항의 역할을 한다. 주로 국내선과 민간 및 상업 항공 수송에 이용된다. 특히 파나마와 태평양과 카리브 해 주변의 섬과 연계 노선이 활성화되어 있다. 파나마시티의 항구 시설은 발보아(Balboa)에 인접한 서남부 지역에 위치한다. 운하를 통해 대서양 연안의 콜론(Colón)과 연결되어 있다.

관광

거대한 열대 우림대로 둘러싸인 파나마시티의 도시 내부는 고층 빌딩이 밀집한 경관을 이룬다. 한편 시가지에는 식민지 양식의 건축물과 광장, 가톨릭 성당과 시장이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내 주변의 대표적 관광지로는 아마도르 산책길(La Calzada de Amador)을 들 수 있다. 산책길은 1913년 파나마 운하 건설을 위한 굴착 과정에서 발생한 돌로 만들어졌다. 파나마시티와 태평양 연안의 나오스(Naos), 페리코(Perico), 푼타쿨레브라(Punta Culebra), 플라멩코(Flamenco) 섬을 연결한다. 이 섬들은 포트아마도르(Fort Amador)라고 불리는 미군 기지의 일부였다. 오늘날에는 주로 관광 및 위락 시설로 이용된다.

파나마시티의 주변에는 메트로폴리탄 자연공원(Parque Natural Metropolitano), 카미노데크루스 국립공원(Parque Nacional Camino de Cruces), 소베라니아 국립공원(Parque Nacional Soberania) 등의 녹지가 존재하며, 상대적으로 열대 우림의 훼손이 적다. 대표적으로 메트로폴리탄 자연공원은 운하를 따라 북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200여 종의 조류와 원숭이, 파충류 등이 서식한다. 서쪽에 자리한 소베라니아 국립공원의 중심부에는 캐노피 타워(canopy tower)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조류와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본래 이 탑은 파나마 운하의 방위를 위한 미 공군의 레이더기지로 건설된 것으로, 1996년에 파나마 정부가 반환받아 생태계 관찰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파나마시티에는 전통시장에서 대형 쇼핑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쇼핑 장소가 있다. 최대 규모인 알브룩몰(Albrook Mall), 멀티프라사 태평양몰(Multiplaza Pacific Mall) 등이 대표적이다.

총면적 57만㎡인 파나마 비에호(Viejo) 고고 유적지는 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해안에서 최초로 유럽 인이 정착했던 곳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식 도시 유적으로서 이곳에 남아 있는 도시의 구조와 건축물은 에스파냐 식민 초기의 사회 발달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03년에는 파나마 역사 지구와 함께 다시 확대 지정되었다.

파나마 비에호 고고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파나마 역사 지구는 ‘카스코 비에호(Casco Viejo)’ 또는 ‘카스코 안티구오(Casco Antiguo)’라고도 불리며, 산펠리페(San Felipe)에 자리한다. 파나마 비에호 지구가 파괴된 이후 1673년 새롭게 건설된 도시이다. 역사 지구에는 본래의 도로 형태와 초기 정착지의 특성을 보여 주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 약 800동이 보존되어 있다. 에스파냐, 프랑스, 아메리카 양식이 결합된 건축 양식은 파나마의 문화적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파나마시티〉, 《위키백과》
  2. 파나마시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파나마시티〉, 《요다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중앙아메리카 같이 보기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앙아메리카 도시
중앙아메리카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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