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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 피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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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 피에히(Louise Piëch)
포르쉐KG 창시자
포르쉐(Porsche)
폭스바겐(Volkswagen)

루이제 피에히(Louise Piëch)는 자동차산업의 선구자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딸이다. 1928년에 오스트리아-독일 비엔나의 변호사 안톤 피에히(Anton Piëch)와 결혼하였다. 남편인 안톤 피에히는 1941년부터 1945년 사이에 카데에프슈타트(KdF-Stadt)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을 이끌었다. 이들 부부는 아이 넷을 갖고 있었으며 이 중에는 1993년부터 2015년 사이에 폭스바겐의 CEO와 회장, 감사회 감사로 지냈던 아들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가 있다. 1952년에 남편이 별세한 뒤 오스트리아의 여자사업가로 포르쉐폭스바겐 자동차의 오스트리아 수입 사업을 1971년 퇴직 전까지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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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루이제 피에히는 1904년 8월 29일에 오스트리아 비엔나 남부의 도시 비너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에서 자동차산업의 선구자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딸로 출생하였다. 비엔나에서 예술사와 미술을 배웠으며 1928년에 변호사 안톤 피에히(Anton Piëch)와 결혼하였다. 이들 부부는 에안스트(Ernst), 루이제(Louise), 페르디난트(Ferdinand), 한스 미셸(Hans-Michel) 등 4명의 자식을 두었으며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오스트리아의 첼 호수(Lake Zell) 근처에서 35명의 포르쉐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1945년 12월 15일에 루이제의 아버지 페르디난트, 남동생 페리, 남편 안톤이 프랑스군에 체포되었다가 남동생 페리만 풀려나오고 페르디난트와 안톤이 지속적으로 감금되어있을 때 루이제는 프랑스 변호사에 협조를 요청하고 백만 프랑의 보석금으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20개월 뒤인 1947년 8월에 페르디난트와 안톤이 풀려나오게 하였다.

루이제는 1943년 10월에 오스트리아에 있는 포르쉐 KG 슈투트가르트(Porsche KG Stuttgart)의 자산을 그와 그의 남편의 소유로 넘겼다가 1947년 4월에 동생 페리와 공동으로 그뮌드(Gmünd)에 설립한 포르쉐 KG(Porsche Konstruktionen GesmbH)에 편입시켰으며 1949년에 회사본부를 잘츠부르크(Salzburg)로 옮겼다. 그 뒤 루이제와 안톤은 폭스바겐 자동차의 오스트리아 수입 사업을 추진하고 페리는 슈투트가르트에 돌아갔다.

1948년 9월에 안톤 피에히는 포르쉐 KG를 대표하여 폭스바겐과 계약을 체결하고 폭스바겐의 개발을 맡기로 하였으며 폭스바겐에서 지급하는 라이선스 비용과 대표권리는 포르쉐 AG의 재무기반을 다져주었다.

1951년에 아버지 페르난디트가 별세하고 18개월 뒤에 남편 안톤이 별세하였다. 네 자식의 어머니인 루이제는 1952년부터 포르쉐 홀딩스 오스트리아의 매니징 디렉터로 1971년까지 임직하였으며 폭스바겐과 포르쉐 자동차 수입업무와 마케팅 활동에 주력하였다. 퇴직한 뒤 좋아했던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28년간 지냈다.[1][2][3][4]

각주[편집]

  1. "Louise Piëch", Wikipedia
  2. MÁTÉ PETRÁNY, "The Story of Louise Piëch's Last Porsche 911", Road & Track, 2018-08-14
  3. "Porsche", Wikipedia
  4. "Anton Piëch", Wikipedia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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