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카
포니카(pony car)는 미국의 날렵한 2도어 스포츠카의 한 종류이다. 주로 젊은 층을 겨냥해 출시한다. 조랑말을 뜻하는 영어 포니(Pony)에서 알 수 있듯이, 포니카는 정통 머슬카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다루기 쉬운 차체 크기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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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포니카의 원조는 1964년 4월 17일 뉴욕박람회에서 데뷔한 포드 머스탱(Mustang)이다. 머슬카는 미국 자동차 산업과 문화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제시했지만 젊은 소비자들이 접근하기에는 가격이 높았다. 그래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머슬카보다 작은 차체와 배기량을 가진 스포츠카인 포니카를 출시한다. 비록 크기와 배기량은 줄었지만 무게당 마력비가 우수해 큰 인기를 얻었다. 포니카라는 명칭은 머스탱의 이름과 관련이 깊다. 머스탱은 미국 서부와 중부에 걸쳐 분포하는 야생마의 일종으로, 포드의 디자이너 필립 클락(Phillip Clar)의 마음을 사로잡은 동물이기도 하다. 필립은 학생 시절, 집과 인접한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로 가던 중에 이 말들을 보았고, 이를 오래 간직해 오다 포드의 디자니어가 됐을 때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따라서 머스탱이 한 장르를 차지할 만큼 입지를 굳히자 포니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라는 의견이 유력하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날이 갈수록 엄격해지는 환경 규제 등에 의하여, 1980년대 이후로 정통파 머슬카들은 시장에서 사장되었지만 포니카는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꾸준히 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정통파 머슬카의 역할은 현재의 포니카가 대신하고 있다.[1][2]
역사[편집]
포니카의 역사는 20세기 초중반 미국의 자동차 장르이자 문화인 핫로드(Hot Rod)와 관련이 깊다. 1930년대부터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방치된 공군 활주로를 이용한 1마일(약 1.6km) 내외의 단거리 경주가 성행했다. 즉, 드래그 레이스의 시초인 셈이다. 이 드래그 레이스용으로 기존 차량에 보다 큰 배기량의 엔진을 얹어 개조한 차량이 바로 핫로드이다. 따라서 핫로드는 요즘 식으로 이해하면 튜닝 분야 중 엔진 스왑 차량에 해당한다. 머스탱은 소형차인 팰콘을 기반으로 제작되어서 이와 비슷한 4,760㎜의 전장과 2,743㎜의 휠베이스를 갖게 되었다. 머스탱의 장점은 최고 출력 101hp를 발휘하는 2.8리터(2,761cc) 직렬 6기통부터, 335hp를 발휘하는 7.0리터(6,997cc)의 V8까지 다양한 엔진 라인업이었다. 애초 포드는 머스탱의 판매량을 10만 대에 조금 못 미칠 것으로 생각했지만 8개월만에 30만 대 이상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며, 미국 스포츠카의 한 장르가 되었다. 당시 머스탱은 그야말로 미국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다. 특히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전설적 싱어 짐 모리슨(James Morrison)의 애마로, 그의 이미지와 동일시되면서 머스탱은 미국 대중문화사에 있어서도 상징적 아이콘이 되었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지만, 자동차 산업에서 한 장르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뜨거운 라이벌 관계다. 특히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의 라이벌 관계는 이러한 스포츠카 장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머스탱의 독주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제너럴모터스는 야심작인 카마로(Chevrolet Camaro)를 내놓는다. 특히 1966년 기자회견은 당시 자동차 공업의 성지였던 디트로이트의 스타틀러 힐튼 호텔에서 진행되었으며, 동시에 14개 도시 주요 언론사와 직접 전화 연결로 진행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카마로'라는 이름이 무슨 뜻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너럴모터스의 담당자가 '머스탱을 잡아먹고 사는 사악한 동물'이라고 표현한 일화는 제너럴모터스와 포드의 라이벌 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쉐보레(Chevrolet)의 포니카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동차가 코르벳(Chevrolet Corvette)이다. 1953년부터 미국식 럭셔리 스포츠카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코르벳은 모터스포츠에서 경기 종료를 뜻하는 체커기와 쉐보레의 기존 엠블럼을 마치 날개처럼 구현한 독자적인 로고를 갖고 있을 만큼, 브랜드 안의 브랜드로 독보적 위치를 점했다. 특히 코르벳은 성능뿐만 아니라 당시 비엠더블유(BMW) 등 유럽 자동차들이 가진 유려한 디자인 감각으로, 부유한 스피드광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미국 소비자들의 가치관과 취향도 바뀌어 갔다. 특히 오일 쇼크 이후에는 큰 배기량의 머슬카 및 포니카의 인기가 급락했다. 판매량을 비롯한 기존 입지에 타격을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포드가 이러한 시대 변화에 적응해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에 적절한 변화를 가한 데 반해, 제너럴모터스는 과거의 머슬카와 포니카가 주는 가치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결국 카마로가 2002년 단종되는 아픔도 맛보았다.[1][3]
주요 모델[편집]
포드 머스탱[편집]
포드 머스탱은 흔히 포니카 또는 머슬카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머스탱의 디자인 총괄은 포드 제품담당 책임자인 도날드 프레이(Donald N. Frey)가 맡았다. 하지만 당시 포드의 사업본부장이던 리 아이아코카(Lee A. Iacocca, )가 없었다면 머스탱은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리 아이아코카는 놀라운 판매 능력으로 말단사원으로 입사한 지 5년 만에 부사장에, 나중엔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당시 미국인들이 어떤 자동차를 원하는지 꿰뚫어보고 있었다. 아이아코카가 개발진에 원했던 것은 사회적 욕구를 철저히 반영한 변화였다. 즉, 경제적이면서 빠르고, 복고적이지 않으면서 새롭게 차별화된 자동차이다. 구체적으로 경주차에서 주로 사용되는 4인승의 버킷시트를 장착하고, 길이 180인치 이하, 차량 무게 2500파운드 이하면서 판매 가격 2500달러 이하로 맞출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 후드는 길고 지붕은 짧은 반면, 트렁크 공간은 여유로워야 했다. 이렇게 해서 포드는 포드 머스탱의 프로토타입 모델이 된 T-5(Mustang 1)를 제작해 1962년 10월 미국 그랑프리 대회를 통해 공개한다. T-5는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포드의 경영진은 단순한 T-5라는 이름 대신 새로운 이름을 원했다. 개발 단계에서는 T-5를 비롯해 쿠거(Cougar), 아벤투라(Aventura), 알레그로(Allegro), 스틸레토(Stilletto), 투리노(Turino), 토리노(Torino), XT-버드(XT-Bird) 등의 다양한 이름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첫 번째 머스탱은 빨간색의 실내 장식을 한 흰색 컨버터블로 1964년 3월 미시간 주 데어본(Dearborn)에서 생산됐다. 개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포드 팔콘(Falcon)에 쓰이던 섀시와 서스펜션, 프레임 등을 차용했다. 전체적인 차체 길이는 팔콘과 동일했지만 휠베이스(2740㎜)는 380㎜ 가량 짧았다. 폭은 1732㎜로 팰콘보다 61㎜ 짧았다. 6기통 엔진의 차체 중량은 1162㎏, V8엔진 모델은 1360㎏이다. 엔진은 2.8ℓ 101마력과 V8 4.2ℓ 164마력, V8 4.8ℓ 210마력 등이었다. 이듬해인 1965년에는 당시 최고의 레이서 중 한 명이자 AC 코브라로 유명했던 캐롤 쉘비(Carroll Shelby)와 함께 개발한 머스탱 쉘비 GT350을 내놓으면서 고성능 모델로서의 이미지를 쌓기 시작했다. 개조에 참여했던 쉘비는 섀시와 하체를 대대적으로 교체했으며 V8엔진의 출력도 300마력 이상 높였다. 쉘비 GT350의 제로백은 6.3초, 최고속도는 210㎞/h로 끌어올렸다. 머스탱의 성공은 업계의 경쟁을 불러왔다. 쉐보레는 1967년 머스탱과 여러모로 유사한 신차 카마로를 출시했다. 140마력 3.8ℓ 엔진을 장착한 카마로는 데뷔 첫 해에 무려 22만 대 이상 판매되며 머스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자 포드는 1968년 315마력의 6.4ℓ 엔진을 얹은 신형 머스탱을 새롭게 출시했다. 빅 블록 엔진으로 불리며 화제가 됐던 이 머스탱은 그해 스티브 매퀸(Steve Mcqueen) 주연의 블리트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에 들어 머슬카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어 갔다. 1973년 1차 석유파동과 치솟는 보험료,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머스탱을 비롯한 머슬카의 판매는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엔진의 사이즈와 출력, 차체 크기가 줄어들었고 머슬카의 대명사인 V8 엔진도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미국인의 드림카답게 머스탱은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출시 44년을 맞은 2008년 4월, 머스탱은 전 세계적으로 900만 대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2012년 3월에는 2013년형 포드 머스탱 GT와 쉘비 GT500를 내놓으며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또한 포드는 2021년, 7년 만에 완전히 새로워진 7세대 머스탱을 선보일 예정이며 이는 마지막 가솔린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4][5]
쉐보레 카마로[편집]
쉐보레 카마로는 포드의 머스탱의 경쟁 모델인 쉐보레의 포니카이다. 1967년에 초대 모델이 등장한 이래 다섯 번의 세대교체를 거치며 오늘날의 6세대로 발전해 왔다.[2] 쉐보레 카마로는 1967년 1세대, 1970년 2세대, 1982년 3세대, 1993년 4세대, 1999년 5세대 모델 출시됐다. 데뷔 첫 해인 1967년에 무려 22만 906대가 판매되며 머스탱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1968년에 23만 5,147대, 1969년에 24만 3,085대가 판매되는 등 1974년까지 114만 449대가 판매되며 7년 약간 넘은 시점에 100만 대 판매를 돌파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1970년 데뷔한 2세대 모델은 첫 해에는 12만 4,901대 판매에 그쳤고 1972년에는 6만 8,651대까지 떨어졌었다. 그러나 모델 말기인 1979년에는 28만 2,571대까지 판매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카마로는 3세대 모델의 1984년 26만 1,591대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결국 2002년 단종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6년 디트로이트 오토쇼를 통해 닷지 챌린저와 함께 약속이나 한듯이 콘셉트카로 시장의 반응을 떠 보았고 2009년부터 6세대 모델이 판매됐다. 2006년 1월 디트로이트 오토쇼 현장에서 목격한 시보레 카마로의 발표회는 그야말로 대단했었다. 전형적인 미국 문화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런 미국인들의 머슬카에 대한 욕망을 다양한 유명인들을 대동해 강조했고 쇼장을 찾은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첫 해 판매 실적은 금융위기와 맞물려 6만 1,648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에는 포드 머스탱의 7만 3,716대보다 더 많은 8만 1,299대가 판매되며 상승곡선을 탔다. 31.9%나 증가해 1981년 이래 처음으로 포드 머스탱을 앞질렀다는 점도 카마로에게는 고무적인 소식이다.[6]
각주[편집]
- ↑ 1.0 1.1 온갖차, 〈미국 스포츠카의 상징, 머슬카와 포니카〉, 《네이버 포스트》, 2017-04-20
- ↑ 2.0 2.1 박병하 기자, 〈정통파 아메리칸 포니카와의 만남 - 쉐보레 카마로SS 시승기〉, 《모토야》, 2017-09-26
- ↑ 김기범 객원기자, 〈60년대부터 이어진 ‘포니카’ 시장의 영원한 맞수〉, 《중앙선데이》, 2016-09-18
- ↑ 안광호 기자, 〈34. 머슬카의 상징 ‘포드 머스탱’〉, 《경향신문》, 2012-06-12
- ↑ 김미영 기자, 〈포드, 차세대 ‘머스탱’ 하이브리드 모델로 등장?〉, 《지피코리아》, 2021-10-26
- ↑ 채영석 기자, 〈쉐보레 카마로, 미국형 머슬카와 포니카의 전형〉, 《글로벌오토뉴스》, 2011-02-10
참고자료[편집]
- 온갖차, 〈미국 스포츠카의 상징, 머슬카와 포니카〉, 《네이버 포스트》, 2017-04-20
- 김기범 객원기자, 〈60년대부터 이어진 ‘포니카’ 시장의 영원한 맞수〉, 《중앙선데이》, 2016-09-18
- 안광호 기자, 〈34. 머슬카의 상징 ‘포드 머스탱’〉, 《경향신문》, 2012-06-12
- 김미영 기자, 〈포드, 차세대 ‘머스탱’ 하이브리드 모델로 등장?〉, 《지피코리아》, 2021-10-26
- 박병하 기자, 〈정통파 아메리칸 포니카와의 만남 - 쉐보레 카마로SS 시승기〉, 《모토야》, 2017-09-26
- 채영석 기자, 〈쉐보레 카마로, 미국형 머슬카와 포니카의 전형〉, 《글로벌오토뉴스》, 2011-02-10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