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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세프 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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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세프 포프(Franz Josef Popp)
비엠더블유(BMW, Bayerische Motoren Werke)

프란츠 요세프 포프(Franz Josef Popp, 1886년 1월 14일 ~ 1954년 7월 29일)는 독일 BMW 그룹의 자동차 및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비엠더블유(BMW)의 설립자이다. 1922년부터 1942년까지 회장을 역임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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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프란츠 요세프 포프는 1886년 1월 14일 오스트리아의 빈(Vienna)에서 태어났고 1901년 가족과 함께 체코로 이사가 그곳에서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을 졸업했다. 1909년 기계공학과 전기공학의 공동 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돌아와 전자제품 제조업체인 AEG(Allgemeine Elektricitäts-Gesellschaft)에서 기술자로 근무했으며 전차 개발 부분 감독을 맡았다. 이때 프란츠 요세프 포프는 감독관으로 하청 엔진 제조업체인 라프 모토렌 베르케에 장기 파견되었고 이곳의 열악한 생산 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 AEG 사내 동기인 막스 프리츠가 합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라프 모토렌 베르케가 경영난을 겪게 되자 프란츠 요세프 포프와 막스 프리츠는 경영권을 인수해 1917년에 바이에리셰 모토렌 베르케(Bayerische Motoren Werke, BMW)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8년 주식회사로 상장시켰다. 이후 프란츠 요세프 포프의 경영하에 BMW는 항공기 엔진을 생산해 독일 군대에 엔진 납품 사업을 따내는 동시에 다임러 모터 생산 하청업을 맡고 대규모 사업을 수주했다. 이데플릭이라는 항공업체에 600개 항공기 엔진을 납품하게 됐고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BMW는 3,5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했다.[2]

BMW가 독일의 대기업 중 하나로 부상한 것은 1922년부터 포프의 경영하에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이 속한 동맹국의 패배로 끝나고 전쟁 피해 처리에 대한 국제 조약인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에 따라 독일은 항공기 엔진을 포함한 일체의 무기류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BMW는 항공기 엔진에서 모터사이클로 눈을 돌려 1923년 첫 번째 모델인 R32를 선보였다. R32는 모터를 이중 튜브 틀 안에 십자형으로 배치하고 샤프트를 이용해 동력을 휠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당시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독일 내에서 자동차보다는 모터사이클의 수요가 높았고 항공기 엔진 기술을 토대로 만든 BMW의 제품들은 큰 인기를 끌게 됐다. 이후 BMW는 모터사이클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 시장에 진출했다. 1928년 프란츠 요세프 포프의 주도 아래 BMW는 비행기 공장인 아이제나흐(Eisenach)를 인수하고 자동차 제작을 시작했다. BMW는 오스틴(Austin Motor Company)사로부터 소형 자동차 모델인 오스틴 세븐(Austin 7)의 제작 및 판매권을 사들였다. 1929년 BMW는 오스틴 세븐을 발전시켜 BMW 딕시(BMW Dixi)를 출시하였으며 이것이 BMW의 첫 번째 자동차 생산이다. 이후 BMW는 후속 모델인 딕시 디에이 투를 시작으로 디에이 포(Dixi DA2~Dixi DA4)까지 연이어 선보였다. 1933년 BMW는 6기통 엔진이 장착된 BMW 303을 출시했다. BMW 303 모델에는 프로펠러 엠블럼(Propeller Emblem)과 두 개의 콩팥을 형상화한 키드니 그릴(Kidney Grille)이 처음으로 적용되었고 이후 이는 BMW의 대표적 상징이 되었다. 1926년에 BMW는 경쟁업체인 다임러-벤츠(Daimler-Benz)와 합병을 시도했으나 BMW 303의 출시로 동종업계에 먼저 뛰어든 다임러-벤츠와 경쟁에 돌입함으로써 1933년 양 사(社)간의 합병 계약이 무산되었다. 1936년 BMW는 항공기를 모티브로 유선형으로 디자인된 2인승 레이싱카인 BMW 328을 출시했다. BMW 328은 강철 프레임을 기반으로 견고한 리어 액슬, 전방 독립식 서스펜션을 장착해 당시 BMW가 가졌던 모든 기술을 집약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1936년부터 1940년까지 BMW 328은 172개 경주에 출전하여 141 차례 우승을 거두었으며 그중 1938년 1,000마일을 달리는 이탈리아의 밀레 밀리아(Mille Miglia)경주에서는 평균 속도 166km/h라는 기록을 세우며 우승해 내구력과 스피드를 인정받았고 이로 인해 BMW는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BMW는 크랭크축이 1개인 항공기 레이디얼 엔진(Radial Engine)인 BMW 132, BMW 801 등을 제작해 독일 공군에 납품했다. 전쟁 후 BMW는 항공기 엔진과 로켓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연합국에 의해 3년 동안 생산 금지 명령을 받았고 이 같은 상황은 BMW에 재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프란츠 요세프 포프는 1933년 독일 나치당에 협력하며 당에 가입하게 되고 BMW 엔진 생산 능력을 이용해 엔진을 납품하는 등 당에 조력한다. 그러나 1942년 나치당으로부터 획일적인 생산을 강요당하자 이에 항의하다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나치당에 협력한 과거 때문에 연합군에 잡혀 옥살이를 한다. 이후 심판에서 나치 조력자로 판결 받았으며 감옥에서 풀려난 뒤 BMW 경영권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요세프 포프는 이후 여생을 슈투트가르트에서 연금생활자로 보내다 1954년 7월 29일 사망하였다.[3]

주요 활동[편집]

1917년 BMW 로고
1923년 BMW R32
BMW 딕시

BMW 로고[편집]

BMW의 로고는 BMW 초대 사장인 프란츠 요세프 포프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첫 번째는 회전하는 항공기 프로펠러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던 BMW가 파란 하늘에 흰색 비행기 프로펠러가 부채꼴로 보이는 모습을 멋지게 형상화하였다는 것이다. BMW의 설립과 엠블럼 공식 상표등록이 1917년인데 BMW의 항공기 엔진 생산은 그 이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프로펠러설은 거짓이라는 주장이 생겼다. 하지만 모체회사이자 인수된 회사인 RMW가 항공기 엔진 회사였고 BMW 설립자들 역시 항공기 엔진 비즈니스를 함께하던 관계였기에 프로펠러설이 거짓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두 번째는 바이에른 주의 문양을 바탕으로 프란츠 요세프 포프가 창안하였다는 것이다. 바이에른주는 파란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무늬의 깃발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변형시켜 디자인한 것이 현재 BMW의 로고가 되었다는 것이다. BMW의 맨 앞 B가 무엇의 약자인지를 생각하면 바로 알 수 있다. 바로 바이에른이다. 당시 상표에 국가 문양을 사용할 수 없는 법률 때문에 주 깃발 모양은 체크형으로 일부 변형되었습니다. 로고가 회사와 명확한 연관성을 가질 경우에만 상표권 승인이라는 기본 방침을 지키고 있었으니 확신에 가깝게 굳어진다. 결국 프로펠러설보다는 바이에른주의 문양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설이다.[4]

BMW R32[편집]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은 독일 공군의 해체와 독일에서의 비행기 제작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BMW도 그에 따라 할 일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사업을 찾게 되었는데 축적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었고 비교적 저가의 물건이다 보니 시장에 빨리 뛰어들 수 있었던 모터싸이클 엔진 제조업을 선택하게 된다. 당시 영국의 모터싸이클 메이커였던 더글라스의 엔진을 참조하여 개발을 진행하여 1921년 마침내 M2B15라는 이름의 500CC 박서엔진을 완성하게 된다. 당시에는 엔진만 제작하였기 때문에 완성 모터싸이클 회사였던 빅토리아(Victoria)와 BFw(Bayerische Flugzeugwerke) 등에 공급하게 되고 두 모터싸이클 회사에서 M2B15 엔진을 장착한 KR1과 Helios라는 이름의 바이크에 장착된 형태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하지만 엔진 실린더가 더글라스의 것과 마찬가지로 체인 구동 방식을 위해 바이크 앞뒤 방향으로 배치된 형태였기 때문에 뒤쪽 실린더가 충분히 냉각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1922년 BMW는 BFw와 합병한 뒤 직접 바이크를 제작하게 되는데 기존 엔진에 대한 냉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엔진 개발자이자 과거 항공기 엔지니어였던 막스프리즈(Max Friz)는 엔진을 90도 돌려 실린더가 바이크 좌우로 배치되도록 하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구동계 문제는 샤프트 구동 방식으로 해결하게 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1923년 마침내 박서엔진과 샤프트 구동 방식을 채택한 최초의 바이크 R32가 탄생하게 된다. 냉각 성능이 개선됨에 따라 내구성이 향상되었으며 덤으로 90도 틀어진 엔진 배치 덕에 앞뒤 길이가 짧아져 좀 더 컴팩트한 디자인이 가능했다. 항공기 엔진 제작 기술이 축적된 R32는 타 바이크들 보다 양질의 소재를 채택하였고 높은 정밀도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운전 방법은 좀 번거로웠는데 오늘날의 바이크는 속도를 내기 위해 단지 핸들의 스로틀그립을 비틀기만 하면 되는 것과 달리 R32는 오른쪽 핸들에 공기량과 연료량을 조절하는 레버가 각각 별도로 있었고 왼쪽 핸들에는 점화시기를 조절하는 레버가 있어서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무려 3가지의 레버를 함께 조작해야 했다. 미션은 3단 기어를 채용했고 중립 기어가 1-2단 사이와 2-3단 사이에 각각 있는 구조였다. R32는 1926년까지 약 3,000대가 만들어졌다.[5]

BMW 딕스[편집]

1928년 프란츠 요세프 포프의 주도 아래 BMW는 비행기 공장인 아이제나흐(Eisenach)를 인수했고 자동차 제작을 시작했다. BMW는 오스틴(Austin Motor Company)사로부터 소형 자동차 모델인 오스틴 세븐(Austin 7)의 제작 및 판매권을 사들였다. 1929년 BMW는 오스틴 세븐을 발전시켜 BMW 딕시(BMW Dixi)를 출시했고 이것이 BMW의 첫 번째 자동차 생산이다. 딕시의 차량의 크기는 3,000(L) x 1,275(W) x 1,625(H), 휠베이스는 1,905mm, 파워 트레인은 747cc 15마력 엔진과 3단 수동변속기가 장착되었다.[6]

각주[편집]

  1. "Franz Josef Popp", "wikipedia"
  2. 김성진, 〈(자동차 인물사)요세프 포프, BMW 초석을 다지다〉, 《시사저널e》, 2017-10-22
  3. "BMW", 《네이버 지식백과》
  4. 레드썬즈 일상, 〈BMW 엠블럼 의미, BMW로고〉, 《네이버 블로그》, 2016-06-20
  5. 열화전차, 〈BMW R32(1923)〉, 《네이버 블로그》, 2019-04-01
  6. 대니얼, 〈BMW 최초의 자동차 Dixi〉, 《네이버 블로그》, 2015-09-30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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