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스트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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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스트폴주(노르웨이어: Østfold fylke)는 노르웨이 남동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2020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아케르스후스주, 뷔스케뤼주와 통합하여비켄주가 되었다. 이후 2024년 비켄주가 3개로 분할되어, '외스트폴주'가 다시 설치되었다.[1]
개요[편집]
외스트폴주의 면적은 4,180.7㎢이며 인구는 284,962명(2014년)이며 주도는 사릅스보르그이다. 남쪽으로는 북해, 서쪽으로는 베스트폴주, 북쪽으로는 아케르스후스주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스웨덴과 국경을 접한다. 18개 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글로마강(Glomma River)이 흐르고, 해발 340m 이하의 산들이 많은 저지대 지형이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정착민들이 생활한 지역으로, 암벽화 및 고분 등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조선소 및 화강암 광산 등 많은 제조업들이 발달하였다. 하랄 (Harald Fairhair) 왕 이전까지 스웨덴의 통치를 받았고 덴마크 통치를 받을 때 여러 주로 분리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다른 주와 달리 각 도시의 문화들이 조화롭게 발전하였다.
문장은 자연과 생명을 불어넣는 태양을 나타내며, 명칭은 폴(Fold)의 동쪽 지역, 즉 오슬로피오르(Oslofjord) 의 동쪽지역을 의미한다.
교통[편집]
모스 공항[편집]
노르웨이 외스트폴주(Østfold)의 모스(Moss)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12km 거리에 위치한다. 오슬로로부터는 60km 거리에 있다. 오슬로 리게 공항(Oslo Rygge Airport)으로도 불린다. 1942년 설립된 리게의 구공항을 대체할 신 민간공항으로 2008년 2월 14일 개항했으며, 공항 코드는 RYG(IATA), ENRY(ICAO)이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다. 활주로는 2,442m×45m 크기로 총 1개소를 운영한다. 라이언에어(Ryanair)가 중점지역으로 삼고 있으며 본 공항의 유일한 취항 항공사이다. 국제선 노선만을 운항하며 벨기에 브뤼셀(Bruxelles), 리투아니아 카우나스(Kaunas), 그리스 코르푸(Corfu)·로도스(Rhodes)·코스섬(Kos)·테살로니키(Thessaloniki)·카니아(Khaniá), 리투아니아 빌뉴스(Vilnius), 아일랜드 더블린(Dublin), 크로아티아 자다르(Zadar)·풀라(Pula), 스페인 마요르카섬(Mallorca)·테네리페섬(Tenerife)·라스팔마스(Las Palmas)·알리칸테(Alicante)·말라가(Málaga)·마드리드(Madrid), 에스토니아 탈린(Tallinn), 이탈리아 베르가모(Bergamo), 리투아니아 빌뉴스(Vilnius), 라트비아 리가(Riga), 프랑스 파리(Paris)·베지에(Beziers), 체코 프라하(Praha),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 폴란드 포즈난(Poznań)·우치(Łódź)·바르샤바(Warszawa)·브로츠와프(Wrocław)·크라쿠프(Kraków)·그단스크(Gdańsk), 영국 런던(London)·맨체스터(Manchester) 등의 총 33개 도시로의 정기 직항 노선이 있다. 공항과 오슬로(Oslo), 프레드릭스타(Fredrikstad) 시내를 잇는 셔틀버스(Flybussen) 및 40번, 42번 버스 노선이 운행되며 도로 교통편으로는 E6 도로가 인접한다.[3]
사릅스보르그[편집]
사릅스보르그는 노르웨이 외스트폴주의 주도다. 수도 오슬로에서 90km 거리에 있다. 인근 도시 프레드릭스타(Fredrikstad)와 함께 노르웨이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 지역을 이루고 있다.
사릅스포센(Sarpsfossen)폭포는 유럽에서 가장 큰 폭포 중 하나로 물살이 세기로 유명해 서핑과 카약의 명소다. 풍부한 수자원을 기반으로 펄프, 제지, 발전 산업이 발달했다.
사릅스보르그는 노르웨이에서 긴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도시 중 하나로 7,0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16년 바이킹 왕 올라프 하랄손(Olav Haraldsson)에 의해 도시로 설립된 뒤 2016년 1,000주년(millennium)을 맞았다.
외스트폴 지역은 보르그의 지역임을 뜻하는 보르가르쉬슬라(Borgarsýsla)로 지칭되었다. 이후 이 도시에 위치한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글로마(Glomma)강의 마지막 폭포 사릅스포센(Sarpsfossen)에서 앞부분을 따와 오늘날의 도시명인 'Sarpsborg'가 되었다.
보르그란 명칭은 노르웨이 교회의 교구인 보르그 교구(diocease of Borg)에도 쓰인다. 보르그 교구는 1969년 오슬로 교구에서 분리된 외스트폴주와 에르케후스(Arkeshus)주의 대부분을 관장한다.
1995년 문을 연 오슬로 소재 고등법원(Borgarting Court of Appeal) 명칭에도 보르그를 사용한다. 이 도시의 주력산업은 펄프, 제지, 화학 산업이며 노르웨이에서 주요 맥주 생산지 중 하나다.
사릅스보르그는 7,000년 전부터 인류가 정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016년 바이킹 왕 올라프 하랄손에 의해 ‘보르그(Borg)’라는 이름의 도시로 설립되었다. 하랄손 왕은 배로 글로마강을 거슬러 오르다 웅장한 폭포(사릅스포센 : Sarpsfossen)를 발견하자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
노르웨이-덴마크 연합이 스웨덴과 싸운 북방 7년 전쟁(1563~1570) 중이던 1567년 스웨덴의 침공으로 도시가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거주민의 절반가량이 글로마강의 흐름을 따라 15km 거리 하구로(오늘날의 프레드릭스타) 이주했다.
폐허가 된 보르그 지역이 재건되었으나 1702년 산사태로 강으로 쓸려 내려가 버리자 다시 도시를 재건했다. 투네(Tune)에 속해 있다 1839년 지자체로 독립했다.
사릅스보르그는 2016년 도시탄생 1,000년을 맞아 역사적 가치를 일깨우고 문화와 사적 보존을 장려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일년 내내 축하 행사와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이 도시에 있는 사릅스포센 폭포는 글로마강의 폭포 중 가장 하류에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폭포 중 하나이며 물살이 가장 세다.
폭포 바로 위의 교량과 폭포 동쪽에 전망대가 두 곳 있어 도시를 잘 조망할 수 있다. 사릅스보르그는 충분한 수자원을 활용해 1800년대부터 펄프, 제지산업이 발달했고, 1898년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수력발전소가 이곳에 지어졌다.
펄프, 제지 산업은 오늘날 바이오 화학산업으로 발전했다. 사릅스포센 폭포의 거센 물살로 인해 하류 2~3km 지점에는 큰 파도가 장관을 이룬다.
이곳은 노련한 서퍼나 카약 매니아들에게 인기가 많은 명소다. 도심 동편의 합슬룬 저택(Hafslund Manor)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택 중 하나로 이 나라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합스룬은 원래 중세 장원(Manor)으로 1600년대 중반부터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1700년대 중반부터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복지 제도를 확립하는 등 고도로 발달한 공동체로 운영되었다.
기술의 발달로 풍차에 전기가 공급되자, 이를 기반으로 합스룬은 1898년 현대적인 발전 산업체(노르웨이 최대 발전소)로 탈바꿈했다. 원래 장원 저택은 1758년 화재로 불타 없어졌고, 1762년 본관이 새로 지어졌다.
합스룬 저택은 여러 명문가들의 소유를 거쳐 한때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던 마렌 유엘(Maren Juel)이 소유했다. 정원에 3,000년 된 암각화와 묘지, 사릅스부르그의 역사를 기록한 기념비가 서 있다.
보르가르쉬셀 박물관(Borgarsyssel Museum)은 중세 시대 성니콜라스 교회(St. Nikolas Church, 1115)가 있던 자리에 1924년 건립되었다. 20개의 옛날 건물과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중세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릅스보르그시와 외스트폴주의 역사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암각화 비에른스타 선(Bjørnstad Ship) 유적도 이 도시에 있다. 항해하는 큰 배 한 척과 작은 배 두 척을 하나의 돌에 새긴 것으로 긴 배 그림만 길이가 4m, 높이가 1.5m에 달한다. 노르웨이 암각화는 청동기시대 유적(기원전 1,000~500년)으로 추정된다.
인스피리아 과학센터(INSPIRIA Science Centre)는 탐구, 체험형 첨단 과학관으로 어른과 어린이 모두 과학기술과 수학을 즐기면서 학습하는 공간으로 인기가 많다. 과학센터의 웹사이트를 공개해 방문객들이 기록을 남기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
이 도시의 게코 실내 암벽등반 센터(Gekko - Rock Climbing Sarpsborg)를 방문하면 숙련된 등반 전문가들로부터 볼더링(bouldering : 돌출 바위를 타는 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암벽등반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 노르웨이 산악에는 빙하에 쓸려 옆으로 돌출한 바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릅스보르그에는 다양한 하이킹, 자전거, 도보 여행로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중 글로마강변을 따라 프레드릭스타까지 이어지는 총 32km의 도보 겸 자전거 길 글로마스틴(Glommastien)이 유명하다.[4]
로알 아문센[편집]
로알 아문센은 노르웨이의 극지탐험가로 1911년 인류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하였다. 그 외 북서항로 항행에 최초로 성공, 북자극 위치를 확인했고, 북동항로 항행, 북극점 상공 통과 횡단비행에도 성공했다.
로알 아문센은 선원의 아들로 보르게에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북극탐험을 꿈꾸었다. 크리스차니아(지금의 오슬로)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1895년 1등항해사가 되고, 1897∼1899년 벨기에의 남극탐험대에 참가하였다. 이어서 탐험가 F.난센의 조언을 얻어 북자극(北磁極) 및 북서항로의 탐험을 기획, 1901년 그린란드 해양을 조사하였다. 1903∼1906년 소형선 이외아호(號)를 타고 대서양에서 북극해를 거쳐 태평양에 이르는 북서항로 항행에 사상 처음으로 성공하였으며, 이 항해에서 북자극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1909년 미국인 R.E.피어리가 북극점에 도달하자 목표를 남극으로 바꾸어 1910년 프람호(號)로 남극탐험을 떠났다. 로스해(海)의 고래만(灣) 대빙벽에 기지를 설치하고 개썰매로 남극점을 향해 출발한 지 55일 만인 1911년 12월 14일 인류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하였으며, 영국의 스콧 일행보다 35일 앞섰다. 1918∼1920년 모드호(號)를 타고 북동항로 항행에 성공하였고, 1925년 미국의 L.엘즈워스와 함께 비행정(飛行艇)에 의한 북극비행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1926년 다시 엘즈워스, 이탈리아의 U.노빌레와 함께 비행선(飛行船) 노르게호(號)로 스피츠베르겐으로부터 알래스카의 테러까지의 북극점 상공 통과 횡단비행에 성공하였다.
1928년 노빌레 일행의 북극탐험대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출하기 위해 비행정으로 포롬세 기지를 출발하였으나 돌아오지 못하고 조난사하였다. 저서에 《남극점》(1912), 《북극해 최초 횡단》(1927, 엘즈워스와 공저) 등이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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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외스트폴주〉, 《위키백과》
- ↑ 〈두산백과 : 노르웨이 외스트폴주〉,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 노르웨이 모스 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노르웨이 사릅스보르그〉,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 로알 아문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외스트폴주〉, 《위키백과》
- 〈두산백과 : 노르웨이 외스트폴주〉,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 노르웨이 모스 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노르웨이 사릅스보르그〉,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 로알 아문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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