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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니 아넬리는 1921년 3월 12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피아트의 창업자인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이다. 14살 때 아버지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조반니 아넬리의 후계자로 배양되었다. 토리노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1941년 할아버지는 그를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피아트에서 일하라고 촉구하였지만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1963년에 피아트의 상무 이사가 되고 1966년 회장이 되었으며 1969년 당시 이탈리아 3위 업체인 란치아를 인수했고 페라리의 지분 50%를 인수하고 1985년에는 85%까지 확장했다. 1차 오일쇼크를 거친 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1975년 네덜란드에 상용차 브랜드 이베코를 설립했다. 1987년 알파 로메오, 1993년 마세라티를 인수하며 이탈리아 내 승용차 시장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1996년 75세에 피아트에서 은퇴했으며 2003년 1월 24일 사망할 때까지 명예회장을 지냈다.<ref>〈[https://ko.vvikipedla.com/wiki/Gianni_Agnelli 지아니 아그 넬리]〉, 《위키피디아》</ref>
 
잔니 아넬리는 1921년 3월 12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피아트의 창업자인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이다. 14살 때 아버지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조반니 아넬리의 후계자로 배양되었다. 토리노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1941년 할아버지는 그를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피아트에서 일하라고 촉구하였지만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1963년에 피아트의 상무 이사가 되고 1966년 회장이 되었으며 1969년 당시 이탈리아 3위 업체인 란치아를 인수했고 페라리의 지분 50%를 인수하고 1985년에는 85%까지 확장했다. 1차 오일쇼크를 거친 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1975년 네덜란드에 상용차 브랜드 이베코를 설립했다. 1987년 알파 로메오, 1993년 마세라티를 인수하며 이탈리아 내 승용차 시장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1996년 75세에 피아트에서 은퇴했으며 2003년 1월 24일 사망할 때까지 명예회장을 지냈다.<ref>〈[https://ko.vvikipedla.com/wiki/Gianni_Agnelli 지아니 아그 넬리]〉, 《위키피디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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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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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설립했으며 오랫동안 혁신적인 기술을 많이 선보였고 특색 있는 차를 생산했다. 현재 피아트(Fiat)의 자회사로 주로 고급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그리스어 알파벳을 사용해 차 이름을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빈센초 란치아는 어린 시절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자동차를 좋아하여 19세 때 피아트의 검사부장이 되었으며 그 회사에서 시험주행을 담당했다. 이후 경주용 차를 직접 운전했고 경주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06년 빈센초 란치아는 피아트에서 나와 자신의 동료인 클라우디오 포골린(Claudio Fogolin)과 함께 토리노에 란치아를 설립했다. 1913년 나온 세타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표준화된 시동장치와 전기 램프를 사용했다. 1922년에는 더 진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앞바퀴에 독립식 현가장치가 장착되어 좌우 앞바퀴가 제각기 움직이는 람다를 출시했다. 이러한 람다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22년부터 1931년까지 1만 대 넘게 팔렸다. 1950년 세계 최초로 V형 6기통 엔진이 장착된 아우렐리아를 선보였다. 란치아는 경영난을 겪다가 1955년 이탈리아의 사업가인 카를로 페센티에 소유권이 넘어갔고 1966년 피아트에 인수되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51432&cid=43167&categoryId=43167 란치아]〉, 《네이버 지식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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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5일 (일) 15:07 판

잔니 아넬리(Gianni Agnelli)
피아트(Fiat)

잔니 아넬리(Gianni Agnelli)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 창업자조반니 아넬리의 손자로 1966년부터 1996년 피아트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란치아, 알파 로메오, 마세라티, 페라리를 인수하고 피아트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1]

개요

잔니 아넬리는 1921년 3월 12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피아트의 창업자인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이다. 14살 때 아버지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조반니 아넬리의 후계자로 배양되었다. 토리노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1941년 할아버지는 그를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피아트에서 일하라고 촉구하였지만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1963년에 피아트의 상무 이사가 되고 1966년 회장이 되었으며 1969년 당시 이탈리아 3위 업체인 란치아를 인수했고 페라리의 지분 50%를 인수하고 1985년에는 85%까지 확장했다. 1차 오일쇼크를 거친 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1975년 네덜란드에 상용차 브랜드 이베코를 설립했다. 1987년 알파 로메오, 1993년 마세라티를 인수하며 이탈리아 내 승용차 시장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1996년 75세에 피아트에서 은퇴했으며 2003년 1월 24일 사망할 때까지 명예회장을 지냈다.[2]

주요 활동

란치아

란치아(Lancia)

1906년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설립했으며 오랫동안 혁신적인 기술을 많이 선보였고 특색 있는 차를 생산했다. 현재 피아트(Fiat)의 자회사로 주로 고급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그리스어 알파벳을 사용해 차 이름을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빈센초 란치아는 어린 시절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자동차를 좋아하여 19세 때 피아트의 검사부장이 되었으며 그 회사에서 시험주행을 담당했다. 이후 경주용 차를 직접 운전했고 경주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06년 빈센초 란치아는 피아트에서 나와 자신의 동료인 클라우디오 포골린(Claudio Fogolin)과 함께 토리노에 란치아를 설립했다. 1913년 나온 세타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표준화된 시동장치와 전기 램프를 사용했다. 1922년에는 더 진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앞바퀴에 독립식 현가장치가 장착되어 좌우 앞바퀴가 제각기 움직이는 람다를 출시했다. 이러한 람다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22년부터 1931년까지 1만 대 넘게 팔렸다. 1950년 세계 최초로 V형 6기통 엔진이 장착된 아우렐리아를 선보였다. 란치아는 경영난을 겪다가 1955년 이탈리아의 사업가인 카를로 페센티에 소유권이 넘어갔고 1966년 피아트에 인수되었다.[3]

페라리

알파 로메오

마세라티

각주

  1. "Gianni Agnelli", "wikipedia"
  2. 지아니 아그 넬리〉, 《위키피디아》
  3. 란치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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