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치아
란치아(Lancia)는 이탈리아의 고급 자동차 제조 기업이다. 1906년 11월 29일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설립했으며, 현재 피아트(Fiat)에 속해 있다. 생산하는 제품에 그리스 알파벳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특징이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전기점화장치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노코크(monocoque)라고 불리는 일체형 섀시와 더블 오버헤드 캠샤프트(Double OverHead Camshaft) 등과 같은 기술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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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편집]
1906년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설립했으며, 오랫동안 혁신적인 기술을 많이 선보였고 특색있는 차를 생산했다. 현재 피아트(Fiat)의 자회사로 주로 고급승용차를 생산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그리스어 알파벳을 사용해 차 이름을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빈센초 란치아는 어린 시절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자동차를 좋아하여 19세 때 피아트의 검사부장이 되었으며 그 회사에서 시험주행을 담당했다. 이후 경주용 차를 직접 운전했고 경주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06년 빈센초 란치아는 피아트에서 나와 자신의 동료인 클라우디오 포골린(Claudio Fogolin)과 함께 토리노에 란치아를 설립했다. 란치아 설립 이후 처음 만든 자동차는 12 HP 였으며, 이 차는 나중에 ‘알파’라고 불렸다. 알파는 4기통 2.5리터 엔진을 장착해 높은 출력과 빠른 속도로 호평을 받았다. 이후 란치아는 계속해서 혁신적인 차량을 선보였으며, 1913년 나온 ‘세타’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표준화된 시동장치와 전기램프를 사용했다. 1922년에는 더 진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앞바퀴에 독립식 현가장치가 장착되어 좌우 앞바퀴가 제각기 움직이는‘람다’를 출시했다. 이러한 람다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22년부터 1931년까지 1만 대 넘게 팔렸다. 빈센초 란치아는 마지막으로 아프릴리아를 설계한 뒤 1937년 심장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아내와 아들이 회사를 넘겨받아 1950년 세계 최초로 V형 6기통 엔진이 장착된 아우렐리아를 선보였다. 란치아는 경영난을 겪다가 1955년 이탈리아의 사업가인 카를로 페센티에 소유권이 넘어갔고, 1966년 피아트에 인수되었다.[1]
주요 인물[편집]
-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 1881~1937) : 란치아의 창업자이다. 1881년 9월 이탈리아 포벨로라는 마을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빈센초 란치아는 회계학을 공부하였으나 17세 되던해 빈센초는 회계학을 중단하고 자동차 공장에 취직하였다. 이곳에서 기술이 없던 빈센초 란치아는 경리직으로 일을 하면서 자동차 만드는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19세 되던 해에 피아트로 옮겨 피아트 자동차 회사의 검사 부장이 되었다. 또한 시기 적절하게 1900년에 일기 시작한 자동차 레이스 붐이 란치아를 사로 잡았으며, 란치아는 10년 동안 20여 차례의 레이스 우승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1906년 동업자인 클라우디오 포골린과 함께 피아트를 떠나 란치아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렇게 25세의 젊은 사장이된 란치아는 이탈라라는 자동차 공장을 사들여 공장을 늘리면서 자동차의 기술분야와 제작분야를 직접 담당하고 동업자 클라우디오 포골린은 판매를 담당하였다. 1907년 1호차인 "알파"가 완성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1922년에는 "람다"라는 란치아 최대 걸작을 만들게 되었다. 이 람다는 오늘날 승용차가 가지고 있는 앞스프링 구조로 앞 두바퀴가 제각기 상하로 움직이는 독립 현가식 스프링 구조였던 것이다. 란치아는 이 람다를 계속 발전시켜 오늘날의 안락한 승차감을 가진 승용차를 만드는데 엄청난 공을 세우고 1937년 마지막 작품 아프릴리아(Aprilia)를 설계하고 첫차가 출시되는 것도 보지 못한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2]
역사[편집]
1906년 11월 9일 이탈리아의 빈센초 란치아가 설립한 회사로, 창업자인 빈센초 란치아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19세에 피아트의 테스트 드라이버가 될 정도로 실력있는 드라이버이자 기술자였으며, 레이서로 발탁되어 레이서로 활동하던 중에 동료와 함께 란치아를 창업했다. 란치아는 유럽에서 최초로 전기점화장치를 쓰기 시작했으며 모노코크(Mono Coque), 더블 오버헤드 캠샤프트(DOHC: Double Overhead Camshaft), 풍동을 통한 공기역학(aerodynamics) 중심 디자인, 5단 변속기, 복서 엔진(boxer engine) 등과 같은 선진기술을 도입했다. 또한 란치아는 한때 성능과 수려한 디자인으로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어 흥행하기도 했다. 당시 란치아의 주력 차종이었던 란치아 베타(Lancia Beta)나 란치아 감마(Lancia Gamma), 란치아 풀비아(Lancia Fulvia), 란치아 2000(Lancia 2000)같은 차들이 이 시대에서 기술력이 뛰어난 고급차로 인정받았고, 이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1970~80년대의 랠리(Rallying) 경기와 포뮬러 원(F1: Formula One) 등에서 큰 활약을 펼쳤으며,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WRC: World Rally Championship) 1974년부터 1976년까지 3회 연속 우승, 그리고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연속우승을 하는 등 여러 기록을 남겼지만 현재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에선 1990년대 초반 이후를 기점으로 더이상의 활약이 없자 철수한 상태다. 이러한 란치아는 1960년대 이후 경영난을 이유로 피아트 그룹 산하에 인수합병 되었으며, 1980년대까지는 준수한 차들을 생산했었지만, 1990년대부터 란치아 차량에 복고적인 코드의 디자인을 도입하는 시도를 하였고 이러한 복고 코드로만 오래 머문 것도 자동차 시장에서 란치아가 자동차 시장에서 자리를 점점 잃어갔던 원인이라고 예상된다. 그 외에도 베타, 감마같은 차들이 뛰어난 완성도와 성능으로 인한 높은 상품성과는 별개로 차체 부식 문제, 심각한 품질 문제로 브랜드 이미지를 하락 시킨 적이 있었고, 이로인해 판매량을 회복하지 못한 채 1993년부터는 우핸들 국가 시장에서 철수했다. 심지어 피아트와 크라이슬러(Chrysler)의 합병 이후 크라이슬러 산하로 들어간 후에 크라이슬러 차량에 로고만 란치아로 변경하여 차량을 판매하고 있는 추세다. 그 예로 2010년대 초반에 출시한 란치아 보이저(Lancia Voyager), 란치아 테마(Lancia Thema), 란치아 플라비아(Lancia Flavia)는 각각 크라이슬러 타운&컨트리(Chrysler Grand Voyager / Town & Country), 크라이슬러 300(Chrysler 300), 크라이슬러 200(Chrysler 200)을 로고만 변경하여 출시한 것이다.
이러한 판매 방식 마저도 유럽 시장을 겨냥하여 최적화된 세팅을 한 게 아닌 방향지시등 색깔 변경, 계기판 단위 변경만 해서 수입했던 것이 전부였다. 즉 이 회사의 고유모델은 란치아 입실론(Lancia Ypsilon)과 델타 2개의 모델만이 존재했으나, 델타가 2014년 단종되며 결국 입실론 1종만 남게되어 영국과 아일랜드 시장에서는 모든 모델이 크라이슬러 뱃지를 달고 판매되다가 다시 철수했다. 또한, 2015년에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발표에 의하면 기존의 크라이슬러 베이스 차종들도 전부 철수시킨 뒤 입실론만 2018년까지 이탈리아 내수용으로 판매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2016년 현재로서는 3세대 입실론의 페이스리프트 버전만 이탈리아 내수에서 판매중이며 그나마 란치아 브랜드 자체를 부활시키거나 폐지하는 일은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산하에서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선언한데다가 페이스리프트가 예정되어 있어 푼토와 입실론을 한 차종으로 통합한 후속차종 개발안을 고려중이라는 소식이 있어 란치아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큰 기대를 하고 있다. 한동안은 미술 관련 이벤트에 협찬하는 등으로 근근하게 소식을 전하다가 2017년 11월에 피아트크라이슬러(FCA: Fiat Chrysler Automobiles)에서 신형 파이어플라이(Firefly) 엔진과 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장착한 부분변경 입실론을 출시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루머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란치아는 2017년 5월 9일 기준으로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 나머지 지역에서는 판매를 중단한 채 애프터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내수에서도 입실론 판매와 각종 판촉, 문화행사 후원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한동안 하락세를 보이던 입실론의 판매량이 2018년 11월부터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언론사에 의하면 10월에 이탈리아 내수 시장의 하락세와 함께 판매량이 같이 낮아졌음에도 2018년 11월 판매량은 13.97% 증가하고 2018년 12월 판매량은 38.65%의 성장세를 보여 시장점유율도 올라갔다. 이후 2019년 1월에도 성장세를 이어가 결국 2019년 3월, FCA 회장 마이크 맨리는 란치아 브랜드가 이탈리아 내수용으로 존속할 것이라고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표했다. 이후에도 입실론의 판매량이 꾸준하게 증가하여 알파로메오(Alfa Romeo)의 판매량을 뛰어 넘을 정도로 이탈리아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란치아는 한국에서 80년대 후반 수입차 시장이 개방되면서 금호그룹(Kumho Group), 한보그룹(Hanbo Group)에서 피아트와 함께 수입되었다가 한보그룹이 외환위기로 회사 내부 상황이 악화되면서 철수하였다[3]
특징[편집]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편집]
대중들은 란치아라는 브랜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랠리일정도로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였고, 란치아의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란치아의 랠리 히스토리는 WRC가 출범하기 전 1972년 란치아 풀비아(Lancia Fulvia)부터 시작되어 WRC 출범 이후 오직 WRC 우승을 위해 개발하여 호몰로게이션(Homologation)을 받은 희대의 명차라고 평가받는 란치아 스트라토스(Lancia Stratos)를 내놓아 1974년, 1975년, 1976년 세 시즌을 연속 석권했다.[4] 이탈리아 브랜드답게 엔진은 페라리(Ferrari) V6를 장착하였고, 이는 오직 랠리만을 위해 제작된 차였다. 이후 1983년 전설의 그룹 B가 신설되자, 당시 높은 수준이었던 란치아 엔지니어들은 직렬 4기통 2리터 트윈 캠 엔진에 265에서 325마력을 뿜어내는 란치아 랠리(Lancia Rally)이라는 괴물을 가지고 왔고, 아우디 콰트로(Audi quattro), 푸조 205(Peugeot 205)와 같은 훌륭한 랠리카들과 진검승부를 벌여 1983년에는 제조사 종합우승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 때 전설적인 랠리스트들인 발터 뢸, 디디에 오리올, 헨리 토이보넨아가 이 차를 사용했다. 1980년대부터 아우디(Audi)를 시작으로 경쟁자들이 사륜구동의 단점을 보완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란치아는 란치아 델타 S4(Lancia Delta S4)를 출시했다. 델타 S4는 출력을 높이기 위해 터보차져를 달고 저회전 영역의 출력을 받쳐주기 위해 슈퍼차처까지 장착하면서 란치아의 우승에 대한 욕심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도입 이후 콰트로를 상대로 호각의 성능을 보였으나 델타 S4가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여 완전히 전소되어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의 시신조차 수습을 못할정도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후 국제 자동차 연맹(FIA: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은 바로 그룹 B를 폐지하였다.[5] 그룹B가 폐지된 후 WRC는 그룹 A로 재편되어 예전 사건의 아픔을 뒤로하고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룹 A 또한 출력이 만만치 않은 차들이었지만 예전과 같은 사고가 나지 않을 정도로 더 인간적이고 안전한 성능의 차들끼리 경쟁하였다. 이에 란치아는 기존의 델타를 베이스로 란치아 델타 HF 인테그랄레(Lancia Delta HF Integrale)를 선보였다. 그 결과 란치아는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우승을 놓치지 않을정도로 WRC에서 독보적인 기록을 세웠고, 푸조나 아우디와 같은 그룹 B 시절 경쟁 기업들이 랠리에 관심이 없어져 더 이상 란치아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랠리의 전설이 되었다.[3]
기술력[편집]
오늘날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의 상당 부분이 란치아에서 개발한 기술인 경우가 많다. 란치아는 과거부터 유럽에서 기술력 하나는 인정 받았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자동차 제조사로 랠리를 비롯한 각종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쌓인 경험과 기술력을 양산차에 그대로 투입하여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으며 양산차에 대해서는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인정받아왔다. 이러한 란치아 양산차의 대표 기술로는 양산차 최초의 V형 4기통 엔진 및 V형 6기통 엔진 도입, 양산차 최초의 모노코크 차체구조 도입, 양산차 최초로 전륜 독립식 서스펜션 상용화, 양산차 최초로 수퍼차저와 터보차저가 합쳐진 트윈차저 엔진 적용, 양산차 최초의 5단 변속기 제공, 양산차 최초의 팝업식 리어 스포일러 적용 등의 당시에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혁식적인 기술력을 보여주었다.[6]
주요 차종[편집]
생산 모델[편집]
란치아 입실론[편집]
란치아가 피아트 산하에서 1996년부터 지금까지 생산하고 있는 해치백 경차로 현재 란치아 브랜드로 생산 중인 마지막 자동차다.
- 란치아 입실론 1세대(type 800)
란치아 입실론 1세대는 고급 경차 시장에서 10년간 인기를 끌었던 란치아 아우토비안키 Y10(Lancia Autobianchi Y10) 후속으로 2년간 개발되었다. 입실론 1세대는 1996년 1월에 로마에서 정식으로 출시됬으며, 아치형 곡선으로 이루어진 캐릭터라인은 입실론의 특유의 디자인으로 사랑받았다. 또한, 입실론보다 한 단계 위의 피아트 푼토(FIAT PUNTO)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Y10 대비 크기가 상당히 커진 것은 물론, 스테빌라이져 바와 연결되도록 재설계된 트래일링 암 구조의 독립식 뒷바퀴 서스펜션, 독립식 맥퍼슨 앞바퀴 서스펜션을 적용해 훨씬 조용하고 쾌적한 운전을 가능하게 했다. 본래는 우핸들 버전도 계획하고 있었지만 1994년에 란치아가 영국에서 철수하는 등의 문제로 인해 무산되었다. 당시 라인업은 LE, LS, LX의 3개 트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에어컨은 LS에서 선택옵션으로 제공하고 있었으며, LX 트림은 에어컨을 기본 옵션으로 채택하고 타코미터와 외부 온도계가 장착된 계기판이 쓰였다. 나중에는 LX 트림을 기반으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라는 특별 옵션을 동명의 잡지사와 합작하여 판매하기도 했다. 또한 란치아 칼레이도스코프(Lancia Kaleidoscope) 개인화 프로그램을 통하여 100가지 이상의 패인트 옵션을 포함한 수많은 액세서리와 알칸타라 천 마감이 포함되는 5종류의 시트, 부드러운 플라스틱으로 된 대시보드 등과 같은 럭셔리한 옵션을 제공하며 고급 경차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계기판은 대칭형으로 변하여 중앙에 계기판을 장착했는데, 이러한 설계의 대시보드는 이후 출시된 란치아 무사(Lancia Musa) 소형 미니밴과 나중 세대의 입실론에도 장착되었다. 당시 엔진 라인업은 1108cc와 1241cc 8밸브 OHC 엔진과 당시 피아트 대표 엔진이었던 "FIRE" 엔진 시리즈를 이어받았고, 나아가 피아트 브라보(Piat bravo)로부터 가져온 1.4리터 12밸브 80마력의 프라톨라 세라(Pratola Serra) 엔진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프라톨라세라 엔진의 흥행이 저조하 피아트에서는 MPI 구성의 16밸브 설계가 적용된 "SuperFIRE" 엔진을 개발해 장착하였고, 입실론이 SuperFIRE 엔진을 적용하여 출시된 첫 차로 낙점되었다. 이때 적용된 SuperFIRE 엔진은 1242cc에 최고출력 86마력을 기록했고, 지금도 이 엔진은 현재 생산되고 있는 입실론과 그 형제차들인 피아트 500(Piat 500), 포드 카(Ford Ka)가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스포티 라인업으로는 란치아의 역사적인 HF계 스포츠카들로부터 이름을 이어받은 엘레판티노 로쏘(Elefantino Rosso)가 있었으며, 티타늄 색상의 15인치 알로이휠과 백미러, 차체 색상의 장식이 들어간 회색 알칸타라 천 시트, 회색 가죽과 빨간색 스티치로 마감된 스티어링 휠과 변속기 손잡이, 에어컨 등이 적용되었다. 또한 기어비를 짧게 잡아 가속력을 보완하였고, 예전과 비교 했을 때 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파워스티어링,훨씬 큰 롤바와 낮고 단단한 서스펜션이 적용되어 좀 더 스포티한 주행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최고시속은 약 177km/h를 기록했다. 반면 고급스러우면서 조용한 분위기와 편안한 승차감을 중시한 LX는 호두나무 마감이 들어간 인테리어와 알칸타라 천 마감이 들어갔고, LS와 마친가지로 프레톨라세라 엔진과 비슷한 성능을 지닌 SuperFIRE 엔진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입실론 1세대는 처음 두달간 4만 2천대가 판매되었을 정도로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2000년 10월에는 내관과 외관 전체를 페이스리프트했는데, 외관은 차체 색상에 맞추어진 더 큰 그릴과 몰딩, 새 휠커버 디자인, 새 범퍼와 후미등이 적용되었고, 인테리어는 시트와 스티어링 휠을 란치아 리브라의 것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또한, 공조 장치를 조절하는 버튼을 레버로 대체하여 계기판에 LED를 추가하는 등의 개선 조치를 통해 판독성을 보완하였고, 문에서 반사등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인테리어 마감이 옵션에서 사라지면서 차량의 구성이 더욱 현대적으로 변화하였다. 라인업 구성도 변경되어 LX와 엘레판티노 로쏘에 에어컨, 잠김 방지 제동장치(ABS: Anti lock Braking System), 운전석 및 조수석 에어백, 파워 스티어링, 블라우풍트(Blaupunkt)제 라디오 및 내비게이션과 6스피커 시스템, 둘로 나누어진 뒷좌석과 헤드레스트, 외부 온도계, 알칸타라 인테리어 마감, 차체 색삭으로 마감된 전동 백미러, 리모컨 기능이 포함된 센트럴 로킹 시스템, 파워 윈도우, 조절식 시트와 스티어링, 기존의 녹색 대신 빨간색으로 바뀐 계기판 조명, 휠 등을 기본장비로 추가했다. LX 트림 전용으로는 14인치 알로이휠과 안개등이, 엘레판티노 로쏘 전용으로는 가죽 인테리어 및 빨간색 스티치, 15인치 알로이휠이 들어가 있었다. 더 나아가 파워트레인의 경우는, 새로운 유로 3 배기가스 규정을 만족시켜야해서 16밸브 엔진의 출력이 6마력 가량 떨어졌고, 1108cc 54마력 엔진이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삭제되었다. 이 시기에 제공되던 1242cc 8밸브 엔진은 59마력을 기록했으며, 16밸브 엔진은 79마력을 기록했다. 이와 같은 입실론 1세대는 2003년 9월에 단종되기까지 8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7]
- 란치아 입실론 2세대(type 843)
2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입실론에서부터 "입실론"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는 것이다. 입실론 2세대는 3도어 해치백만 제공되었으며, 2005년 6월까지는 멜피(Melfi)의 피아트 공장에서 생산되다가 시칠리아에 위치한 테르미니집 이메르세 팔레르모(Termini Imerese Palermo)로 생산 라인을 옮겼다. 1939부터 1951년까지 생산된 소형차인 아르데아(Ardea)의 디자인 코드를 넣어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디자인을 변경되었고, 란치아 특유의 커다란 크롬 그릴과 큼직한 헤드램프, 일자형 범퍼 몰딩, 길쭉한 수직형 후미등, 둥글둥글하게 다듬어진 좁다란 트렁크와 작은 뒷창문, 뒤로 갈수록 내려가는 캐릭터라인 등이 들어가 기존 디자인과는 다르게 개성적인 면모를 부각하였다.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2세대 푼토의 가로배치 앞바퀴굴림 플랫폼을 바탕으로 제작되었고, 서스펜션으로는 맥퍼슨 스트럿 앞바퀴 서스펜션과 철제 암이 적용되는 스테빌라이저 바, 반독립식(semi independent) 토션빔 뒷바퀴 서스펜션이 적용되었으며 앞바퀴에 환기형 디스크브레이크, 뒷바퀴에 드럼브레이크가 적용되어 내수시장을 겨냥하는 구성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모든 모델에 ABS, 전자 제동력 분배 시스템(EBD: Electronic Brake Distribution), 개선된 전자 파워스티어링이 기본 적용되었고, ECS와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TCS: Traction Control System)를 같이 묶은 패키지 옵션도 고를 수 있었다. 엔진 라인업은 60마력짜리 1.2리터 8밸브 FIRE 엔진과 79마력 16밸브 버전이 제공되었고, 2003년부터는 1.3리터 멀티젯(Multijet) 69~74마력 디젤엔진이 추가되었다. 이같은 사양을 가진 입실론 2세대의 인테리어는 이전 모델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계기판, 에어컨 및 오디오 시스템, 내비게이션 옵션 등을 중앙에 장착하였고, 사양에 따라 가죽, 알칸타라, 에어텍스 천 중 하나로 대시보드를 마감할 수 있었으며, 시트의 마감을 에어텍스, 스웨이드 천, 가죽 중 하나를 선택이 가능했다. 또 다른 변경사항으로는 문손잡이 주변과 같은 일부 부분은 알루미늄 느낌을 낸 플라스틱으로 마감하기도 했고, 앞좌석 수납장은 많은 용량의 짐을 넣을 수도 있었으며, 투톤컬러 옵션이나 파노라마 선루프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생겼다.
2006년 가을에는 입실론 2세대의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는데, 2005년에 자가토(Zagato)가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한 입실론 스포츠 자가토(Ypsilon Sports Zagato)컨셉트카의 디자인을 반영하여 새로운 그릴과 앞범퍼, 크롬 도금된 후미등 베젤을 장착했다. 또한, 새로운 페인트 도장과 휠이 추가되는 동시에 사양별 트림도 실버, 패션, 화이트 골드, 옐로우 골드, 플라티늄의 5개가 준비되었고 인테리어에는 새로운 천 마감과 블루투스 및 USB 포트가 동시적용되는 Blue&Me 핸드프리가 추가 적용되었따. 또한 경사로 밀림 방지장치(Hill Holder)와 ECS를 제공함에 따라 부드러운 서스펜션 세팅으로 인한 바디 롤을 통해 기존에 문제가 되었던 점을 개선하기도 했다. 엔진으로는 기존의 16밸브 1.2리터를 대신하는 1.4리터 FRIE 8밸브 77마력 및 16밸브 94마력 가솔린 엔진, 멀티젯 디젤엔진의 90마력 및 105마력 버전이 추가되었다. 나아가 2007년에는 자가토의 컨셉트카 버전을 참조해 모모디자인과 합작한 스포츠 모모디자인(Sport MomoDesign)을 추가했으며, 여기에는 사륜 디스크브레이크와 높이를 낮추고 강화된 서스펜션, 스포티한 알로이휠 및 인테리어, 진회색 지붕, 1.4리터 16밸브 엔진이나 1.3리터 멀티젯 74, 90, 105마력 버전 엔진이 적용되었다. 2008년부터는 105마력 자동변속기 사양을 제외한 모든 디젤 사양에 디젤 미립자 필터(DPF: Diesel Particulate Filter)를 기본으로 장착했고, 2009년부터는 1.4리터 8밸브 엔진의 에코시크(EcoChic) LPG 버전이 추가되었다.
2008년 5월에는 크롬 장식과 투톤 멀티스포크 휠이 들어간 대시보드가 적용된 모다밀라노(ModaMilano) 한정판을 2006년에 이어 출시하였고, 2009년에는 베르사체(Versace)와 손잡고 Bronzino Bronze 색상의 차체 및 인테리어가 적용된 입실론 베르수스(Ypsilon Versus)"를 1천대 한정 판매했으며, 여성 잡지사인 엘레(Elle)와의 합작으로 파리 2009 컨셉트카를 양산화한 입실론 엘레(Ypsilon Elle) 도 안팎으로 핑크색으로 마감해서 출시했을정도로 특별사양 모델들이 꾸준하게 출시되었다. 또한, 2009년에는 투톤컬러와 배기가스를 최소화한 엔진을 얹은 E-컬렉션(E-Collection)"이 출시되었다. 2010년에는 백미러 크기를 키우고 헤드램프을 어두운 색으로 마감하는 변경이 있었으며, 2011년에는 유로5 배기가스 규정을 따르면서 동시에 새로운 인테리어 색상을 추가했고, 유광 검정색 페인트로 마감된 포물선 룸미러가 탑재되었다. 입실론 2세대의 마지막 한정판인 입실론 유니카(Ypsilon Unyca)를 출시한 뒤 2011년 11월 23일에 테르미니 이메르세 공장의 폐쇄와 함께 단종되었다. 이와 같은 입실론 2세대는 평균적으로 매년 6만대가 판매되면서 2000년대 란치아 차들 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차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고, 이들 중에서 패션 트림과 모모디자인과의 합작 버전이 가장 인기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8]
- 란치아 입실론 3세대(Type 846)
201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3세대는 피아트 500(Piat 500), 피아트 판다(Piat Panda) , 포드 카 등에 쓰는 피아트 미니 플랫폼이 적용되었다. 디자인은 이미 2006년 말과 2007년 초에 란치아 스타일 센터(Lancia Style Center)에서 알베르토 딜릴로(Alberto Dilillo)의 지휘 하에 개발되었고, 최종 결과물은 원본에서 약간 수정된 형태였고 크라이슬러 차량이 쓰는 형태의 그릴이 적용되었다. 이전 세대와 달 3도어 해치백이 아닌 5도어 해치백으로만 나왔고, 뒷문 손잡이는 쉐보레 스파크(Chevrolet Spark)와 같이 C필러에 위치시켰다. 이전보다 아르데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곡선을 더 많이 사용했고. 전고를 낮추면서 루프라인 역시 완만하게 변경했다. 이전 세대들이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것과는 다르게 3세대는 폴란드의 티히(Tychy)에 있는 피아트 현지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엔진은 직렬 2기통 0.9L 트윈에어, 직렬 4기통 1.2L Fire 가솔린 2종과 직4 1.3L 멀티젯 디젤, 직4 1.2L 에코시크(Ecochic) LPG 엔진이 존재했고, 5단 수동 또는 5단 반자동변속기와 맞물렸으며, 서스펜션은 전륜에 맥퍼슨 스트럿, 후륜에 토션빔이 적용되었다. 입실론 3세대 모든 차량에는 4에어백 시스템과 ABS, EBD, TCS, 언덕 보조장치가 기본 장착되었으며, 트림별 라인업으로는 실버, 골드, 플래티넘이 준비되었다. 이외 편의장비로는 자동 주차 시스템인 매직 파킹(Magic Parking), 바이제논 헤드램프와 LED 후미등, 일부 엔진에 탑재되는 자동식 스타트 앤 스톱 시스템이 있었으며, 실내에는 이전처럼 중앙 배치된 계기판과 천으로 마감된 대시보드가 들어갔다. 이전처럼 한정판도 꾸준히 투입되어 모모디자인과의 합작이나 엘레판티노, 입실론 탄생 30주년 기념판같은 특별 사양들을 지속적으로 도입되었다. 또한, 영국, 아일랜드, 일본에는 우핸들 버전이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판매되었고, 미국에도 수출하려 했지만 멕시코의 톨루카 공장에서 만든 피아트 500과의 경쟁을 회피하기 위해서 무산되면서 크라이슬러 버전은 2015년에 단종되었다.
2015년 9월에는 입실론 3세대가 페이스리프트를 거쳐서 만들어진 후기형이 출시되었다.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이 이전보다 가로로 납작해졌고 안에 있던 가로줄이 제거되었으며, 앞범퍼 디자인도 바뀌었다. Blu di Blu, Ivory Chic의 2가지 외장색상이 추가되었고, 엔진은 유로6를 만족하도록 보완하였다. 우핸들 버전을 포함해 수출 시장에서는 후기형이 출시되지 않았으며 이탈리아 내수시장에서 판매되었다. 2016년에는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펄 그레이 색상을 적용한 미야(Mya)를, 2017년에는 청보라색 도장이 적용된 사양인 유니카(Unyca)를 도입했다. 현재로서는 이탈리아 시장에서 문화행사 초청과 후원 소식 등이 나오며 근근히 버티다가 피아트크라이슬러에서 신형 파이어플라이(Firefly) 엔진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업데이트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등 아주 소소한 소식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입실론 3세대는 2017년에는 이탈리아 내수 판매량 2위를 기록했고, [9] 2018년 12월에는 오히려 시장점유율이 증가했다. 2019년 3월, 마이크 맨리 FCA 회장이 란치아 브랜드가 이탈리아 내수용으로 존속할 것이라고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표해 입실론은 계속해서 생산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2019년에 특별판으로 모노그램(Monogram) 모델을 추가했으며, 2020년 3월에는 트림 수를 2가지로 정리하고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했다. 형제차인 피아트 500과 판다에서 쓰는 1.0L 파이어플라이 3기통 엔진과 벨트 스타터식 마일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적용했다. 란치아 브랜드가 사실상의 폐지 수순을 밟게 되면서 란치아 델타 등 기존에 있던 라인업이 거의 대부분 단종이 되었고, 2015년에 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의 뱃지 엔지니어링판인 란치아 보이저도 단종됨에 따라 란치아의 라인업은 입실론 하나만 남아있는 상태다.[10]
단종 모델[편집]
란치아 카파[편집]
란치아 카파(Lancia Kappa)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에 란치아가 최초로 출시한 차량이며, 란치아 세타의 고급 사양 겸 후속으로 출시되었다. 총 1,810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당시에는 세타를 누르고 란치아 브랜드에서 가장 판매량이 높았던 자동차였다. 파워트레인은 기존의 모노 블록 방식의 엔진 대신 실린더 헤드가 장착된 4,940cc 티포 64형 사이드밸브 I4 엔진이 적용되었으며,차량의 최고 속도는 125km/h를 기록하였고,2,200rpm에서 70마력의 파워를 내는 당시에는 뛰어나 성능을 보여주었다. 또한 분리형 구조의 사다리형 프레임이과 반 타원형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이 적용되었다. 이와 더불어 브레이크는 차량의 변속기와 후륜에 위치해 있었으며,멀티-플레이트 드라이 클러치 방식의 4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후속 차종은 란치아 람다로 이어지며,차량의 이름인 '란치아 카파'는 1994년부터 판매된 세단의 이름으로 계승되면서 1922년 단종되었다.
란치아 디카파[편집]
란치아 디카파(Lancia Dikappa)는 1919년에 출시된 란치아 카파에서 알루미늄 금속과 호두나무 구조물 형태를 바탕으로 토피도 방식의 차체를 이용해 차체 경량화를 이룩하는 당시에는 뛰어난 기술력을 통해 와이어 휠 방식을 이용해 차량의 무게를 감소시킨 차량이자 카파의 스포츠 사양으로 파생된 차량이었다. 파워트레인은 카파에 적용되던 실린더 헤드가 탑재된 4,940cc 티포 64형 사이드밸브 I4 엔진 대신 2개의 평행한 형태의 오버헤드 밸브가 장착된 4,940cc 티포 66형 I4 엔진이 적용되었다. 차량의 최고 속도는 130km/h였으며,2,300rpm에서 87마력의 파워를 내는 성능을 보여주었다. 1919년에 출시된 카파 차량처럼 분리형 구조의 사다리형 프레임이 적용되었으며, 반 타원형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이 적용되었다. 또한, 브레이크는 차량의 변속기와 후륜에 위치해 있었으며,멀티-플레이트 드라이 클러치 방식의 4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이러한 란치아 디카파는 1922년 단종되었다.
란치아 감마[편집]
1976년에 란치아는 1976 제네바 모터쇼에서 내놓을 타입 830의 이름을 인용하여 감마를 다시 부활시켰다. 1971년에 등장한 베타의 전례를 따라 세로배치 전륜구동 설계]를 공유했으며, 이름도 그리스 문자를 사용하는 전통을 이어서 감마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디자인적으로는 해치백을 닮은 패스트백 세단의 외향을 하고 있었는데, 디자인을 담당했던 피닌파리나에 의하면 해치백을 적용하지 않은 이유로는 짐을 싣을 때 승객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와 같은 디자인으로 제작하였다고 설명했다. 변속기로는 5단 수동변속기가 먼저 제공되다가 4단 자동변속기를 추가했고, 처음에는 감마 2500을 먼저 출시했다가 이탈리아의 세금제도를 고려하여 감마 2000을 추가 제작했다. 엔진으로는 란치아만을 위한 1999cc 115마력과 2484cc 140마력 8밸브 SOHC 4기통 복서엔진을 사용했으며, 웨버(Weber)에서 제작한 카뷰레터가 양쪽에 모두 사용되었다. 본래는 3.0~4.0L 가량의 V6엔진을 개발할 예정이었으나, 개발이 성공적이지 못하자 엔진 설계자인 드 비르질리오(De Virgilio)는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4기통 복서엔진을 보완재로 개발하였다. 이 당시 4기통 복서엔진밖에 없었다는 점은 다른 대형차과 비교했을 때 불리한 입지를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매우 가벼운데다가 2000rpm의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도 높은 토크를 낼 수 있었고, 엔진이 작고 낮았던 덕분에 피닌파리나의 알도 브로바로네(Aldo Brovarone)가 쿠페 버전을 디자인할 때 보닛 라인과 앞창문 각도를 낮추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감마의 복서엔진은 결함으로 인해 오일이 유출되거나, 엔진이 금세 과열되어 캠샤프트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고, 파워스티어링도 캠벨트(Cam belt)를 통해 돌아가는 구조상 위시본 부쉬(Wishbone bush)가 금세 닳아버리거나, 핸들을 끝까지 돌리다가 벨트가 끊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문제들도 발생하였다.
이는 란치아 베타의 골격 부식문제와 함께 란치아의 브랜드 평판에 악영향을 끼쳤으며, 란치아에서는 이들 결함을 바로잡으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였으나 이미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말았다. 감마 베를리나와 쿠페의 디자인은 모두 피닌파리나가 맡았으며, 이탈리아 내수용 버전은 약 10,495 여대가 생산되었다. 이러한 란치아 감마는 1978년에 이탈디자인 쥬지아로가 디자인을 맡아 1978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된 란치아 메가감마 컨셉트카가 대중에 선보였다. 메가감마는 지붕을 힘껏 높인 해치백의 모습을 해서 미니밴(MPV: Multi-Purpose Vehicle)의 시초격으로 평가받는 중이며, 지붕과 좌석 높이를 동시에 높이면서 소비자들에게 쾌적한 실내공간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이 디자인 테마는 1983년의 피아트 우노에도 일부 반영되었지만, 디자인이 너무 도전적이라고 판단했던 피아트는 이를 양산화시키진 않았다. 또한, 1980년에는 피닌파리나가 디자인을 맡은 감마 시리즈 2가 출시되었다. 엔진은 카뷰레터식에서 보쉬 L-제트로닉(Bosch L-Jetronic) 연료분사 장치를 적용한 연료분사식으로 변경되었으며. 디자인도 그릴과 엠블럼, 핸드브레이크 및 변속기 레버를 바꾸고 15인치 "선버스트" 알로이휠을 추가하여 인테리어를 업그레이드해 실내 조명과 계기장치를 갱신했다. 또한, 1982년에는 왜건 버전인 란치아 감마 올지아타가 1982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란치아 감마는 단종 때까지 15,272대의 베를리나와 6,790대의 쿠페가 만들어졌고, 1984년 단종되면서 테마가 1986년에 후속 모델로 출시되었다.[11]
각주[편집]
- ↑ 란치아 네이버 지식백과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51432&cid=43167&categoryId=43167
- ↑ 월하, 〈빈센초 란치아 Vincenzo Lancia (1881~1937)〉, 《홀스레스바이클》, 2017-12-24
- ↑ 3.0 3.1 란치아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9E%80%EC%B9%98%EC%95%84
- ↑ 박병하, 〈란치아 랠리 전설의 시작, 풀비아 이야기〉, 《모토야》, 2016-11-14
- ↑ 김하은 기자, 〈(클래식카리뷰) 1983년 란치아 랠리 037(그룹 B)〉, 《한국일보》, 2018-05-27
- ↑ 박병하〈광기와 혁신의 이탈리안 - 란치아 이야기〉, 《모토야》, 2020-05-28
- ↑ 란치아 입실론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9E%80%EC%B9%98%EC%95%84%20%EC%9E%85%EC%8B%A4%EB%A1%A0
- ↑ 란치아 입실론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9E%80%EC%B9%98%EC%95%84%20%EC%9E%85%EC%8B%A4%EB%A1%A0
- ↑ 강호석, 〈란치아 입실론 판매 고공행진, 유럽서는 알파 로메오 보다 인기〉, 《오토캐스트》, 2019-07-31
- ↑ dennis0203, 〈(이 주의 자동차) 란치아 입실론 (1881~1937)〉, 《아카라이브》, 2017-06-03
- ↑ 란치아 감마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9E%80%EC%B9%98%EC%95%84%20%EA%B0%90%EB%A7%88
참고자료[편집]
- 란치아 네이버 지식백과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51432&cid=43167&categoryId=43167
- 란치아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9E%80%EC%B9%98%EC%95%84
- 란치아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B%9E%80%EC%B9%98%EC%95%84
- 란치아 입실론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9E%80%EC%B9%98%EC%95%84%20%EC%9E%85%EC%8B%A4%EB%A1%A0
- 월하, 〈빈센초 란치아 Vincenzo Lancia (1881~1937)〉, 《홀스레스바이클》, 2017-12-24
- 김하은 기자, 〈(클래식카리뷰) 1983년 란치아 랠리 037(그룹 B)〉, 《한국일보》, 2018-05-27
- dennis0203, 〈(이 주의 자동차) 란치아 입실론 (1881~1937)〉, 《아카라이브》, 2017-06-03
- 강호석, 〈란치아 입실론 판매 고공행진, 유럽서는 알파 로메오 보다 인기〉, 《오토캐스트》, 2019-07-31
- Dennis K, 〈2018년 이후의 란치아를 위한 생각들〉, 《네이버블로그》, 2017-06-07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