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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3일 (수) 01:27 판

호러스 닷지(Horace Elgin Dodge)
닷지(Dodge)

호러스 닷지(Horace Dodge)는 미국 자동차 제조의 개척자이자 닷지(Dodge)의 공동 설립자이다. 호레이스 엘진 닷지(Horace Elgin Dodge) 또는 간략히 호레이스 닷지(Horace Dodge)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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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호러스 닷지는 1868년 5월 17일 미국 미시간주(Michigan) 나일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주조소와 기계 공장을 운영했다. 그와 그의 형인 존 닷지(John Francis Dodge)는 어린 시절과 성인으로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1866년 닷지 형제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Detroit)로 이사하여 보일러 제조 공장에서 일했다. 1894년 그들은 온타리오주(Ontario) 원저(Windsor)에 있는 디트로이트강 건너편에 있는 캐나다 타이포그래프 컴퍼니(Canadian Typograph Company)에서 기계공으로 일하게 되었다. 1896년 호러스 닷지는 던디(Dundee)에서 태어난 스코틀랜드 이민자인 안나 톰슨(Anna Thompson)과 결혼했으며, 이 부부 사이에는 아들 호러스 주니어(Horace Jr.)와 딸 델파인 닷지(Delphine Dodge)가 있었다. 형제인 존 닷지는 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관리자 유형이고, 호러스 닷지는 타고난 정비공이자 열성적인 수리공이었다. 1897년 존 닷지는 자전거를 제조하기 위해 제3의 투자자와 합류하는 거래를 주선했다. 몇 년 사이에 그들은 사업을 매각했고, 1901년에는 판매 수익금으로 디트로이트에 그들만의 기계 공장을 차렸다. 사업 첫 해에 닷지 형제의 회사는 자동차 산업을 위한 부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2년에 그들은 품질과 서비스에 대한 확고한 명성을 쌓은 올즈 모터 비클 컴퍼니(Olds Motor Vehicle Company)를 위한 변속기 제작 계약을 따냈다. 그러나 이듬해 올즈모빌(Oldsmobile)이 헨리 포드(Henry Ford)의 엔진 제작을 위해 공장을 개조하기로 한 두 번째 계약을 거절했으며, 이 거래는 새 포드 모터 컴퍼니(Ford Motor Company)의 지분을 포함한다. 그들은 포드의 사업에 투자했고, 결국 포드는 닷지 형제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 1910년 호러스 닷지와 그의 형제는 매우 성공적으로 미시간주 햄트래믹(Hamtramck)에 새 공장을 지었다. 10년 동안 닷지 형제의 회사는 포드의 공급업체였으며, 존 닷지는 포드사의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1913년 닷지 형제는 포드 계약을 종료하고 닷지 자동차 생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으며, 그들은 1914년 11월 닷지 형제 30(Dodge Brothers 30)을 소개했다. 그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 미군용 트럭, 구급차 및 기타 차량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1981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

주요 경력

닷지

닷지(Dodge)는 스텔란티스(Stellantis) 산하의 자동차 제조사이다. 1913년 닷지 형제가 창업하여 1928년 크라이슬러에 인수됐는데, 2021년 피아트 크라이슬러(FCA)와 PSA그룹(PSA Group)이 합병함에 따라 스텔란티스 산하의 브랜드가 되었다. 승용차, 픽업 트럭, 미니밴, SUV차량 등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닷지 브랜드의 역사는 19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영국 이민자 부모의 아들로 태어난 존 닷지(John Dodge)와 호러스 닷지(Horace Dodge) 형제가 디트로이트에서 자전거 공장을 운영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닷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닷지 형제는 미국 최초의 자동차 회사인 올즈모빌(Oldsmobile)에 그들의 베어링 기술을 활용한 변속기를 납품했다. 그리고 자동차 대중화의 선구자, 헨리 포드(Henry Ford)와 인연을 맺고 포드(Ford)에 엔진을 제작하여 공급하면서 자동차 부품기업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포드와의 인연은 모델 T를 만드는 과정에서 헨리 포드와의 의견 차이로 인해 끝나고 만다. 닷지 형제는 포드와 결별하게 됐지만 그 동안 포드와의 제휴로 인해 그들의 기술력은 이미 완성차를 제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닷지 형제의 부품은 이미 포드 차량의 대부분에 걸쳐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획득한 자동차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닷지 형제는 1914년 닷지 브라더스 사(Dodge Brothers)를 설립하고 1호차 닷지 모델 30을 내놓았다. 닷지 모델 30은 포드 모델 T보다 가격이 100달러가 더 비쌌다. 당시에 주로 사용했던 목재의 비율을 줄이고, 철재의 비율을 대폭 늘려 제작했기 때문이다. 닷지 형제는 모델 30에 29마력을 발휘하는 3.5리터 엔진을 장착하여 모델 T보다 우수한 성능을 끌어냈다. 거기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차체 색상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내세웠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고 닷지의 브랜드인식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했다. 닷지 형제의 엔지니어라는 배경은 닷지 브라더스사의 분위기 또한 자연스럽게 기술력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닷지 브라더스는 전기 전조등, 제동등, 도어록 등 현대의 자동차에 보편화되어 있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던 자동차 성능 시험장을 최초로 운영하여 주행 성능 테스트 후 자동차를 시판하는 체계를 확립했다. 이렇게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닷지는 1920년, 포드에 이어,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로 거듭났다.[2]

그러나 1920년, 창업주인 닷지 형제가 폐렴으로 별세하는 바람에, 닷지 브라더스는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1929년 당시 미국 자동차 산업계의 신흥 강자로 부상한 크라이슬러에 인수되어 크라이슬러 산하의 디비전으로 탈바꿈했다. 크라이슬러의 창업주인 월터 크라이슬러(Walter Chrysler)는 생전에 “닷지를 인수한 것이 가장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회고할 만큼, 닷지 브랜드의 비중을 크게 여겼다. 크라이슬러에 합병된 이후, 닷지는 픽업트럭 분야에서 성장을 거듭했고,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닷지는 픽업트럭의 엔진을 제조하던 기술을 바탕으로, 차저(Charger)와 챌린저(Challenger) 등의 머슬카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84년 최초의 미니밴캐러밴(Caravan)을 발표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냈다. 이는 부진했던 크라이슬러의 성장과 부활에 크게 기여하는 원동력이 되기도한다. 닷지는 1989년 다시한번 시장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 바로 본격적인 아메리칸 스포츠카 바이퍼(Viper)를 공개한 것이다. 닷지는 여전히 스텔란티스 산하의 크라이슬 디비전으로 남아있다. 닷지 산하의 픽업트럭 브랜드 (RAM)과 고성능 디비전이었던 에스알티(SRT)는 각각 분리시켜 운영하고 있다. SRT디비전에서 신형 바이퍼를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닷지는 2003년부터 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현 피아트-크라이슬러 코리아)의 산하 브랜드 형태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크라이슬러는 닷지 브랜드를 SUV와 픽업트럭 전문 브랜드로 시장에 소개하였고 꾸준한 판매고를 올렸다. 첫 진출한 2003년도에는 바이퍼 5대를 한정 판매하는 형태로 수입하기도 했다. 2008년도의 금융위기는 크라이슬러사를 존폐위기로까지 내몰았다. 여기에 미국차 특유의 무거움과 높은 연비, 만만치 않는 가격정책 등은 더욱 국내에서의 입지를 약하게 했다. 반면, 탁월한 경제성을 내세운 유럽차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시장점유율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결국 2011년을 끝으로 한국에 시판되는 모든 닷지 모델의 수입이 중단되었다. 닷지는 2003년 진출 이후 2012년 수입 중단에 이르기까지 총 2,157대를 판매했다.[3]

각주

  1. "Horace Elgin Dodge", Wikipedia
  2. 박병하 기자, 〈(한국 시장을 떠난 메이커들을 돌아보다) 닷지 편〉, 《모토야》, 2017-06-02
  3. 모토야, 〈한국 시장을 떠난 메이커들을 돌아보다 - 닷지 편〉, 《이데일리》, 2014-09-25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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