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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설립했으며 오랫동안 혁신적인 기술을 많이 선보였고 특색 있는 차를 생산했다. 현재 피아트(Fiat)의 자회사로 주로 고급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그리스어 알파벳을 사용해 차 이름을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빈센초 란치아는 어린 시절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자동차를 좋아하여 19세 때 피아트의 검사부장이 되었으며 그 회사에서 시험주행을 담당했다. 이후 경주용 차를 직접 운전했고 경주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06년 빈센초 란치아는 피아트에서 나와 자신의 동료인 클라우디오 포골린(Claudio Fogolin)과 함께 토리노에 란치아를 설립했다. 1913년 나온 세타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표준화된 시동장치와 전기 램프를 사용했다. 1922년에는 더 진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앞바퀴에 독립식 현가장치가 장착되어 좌우 앞바퀴가 제각기 움직이는 람다를 출시했다. 이러한 람다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22년부터 1931년까지 1만 대 넘게 팔렸다. 1950년 세계 최초로 V형 6기통 엔진이 장착된 아우렐리아를 선보였다. 란치아는 경영난을 겪다가 1955년 이탈리아의 사업가인 카를로 페센티에 소유권이 넘어갔고 1966년 피아트에 인수되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51432&cid=43167&categoryId=43167 란치아]〉, 《네이버 지식백과》</ref> | 1906년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설립했으며 오랫동안 혁신적인 기술을 많이 선보였고 특색 있는 차를 생산했다. 현재 피아트(Fiat)의 자회사로 주로 고급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그리스어 알파벳을 사용해 차 이름을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빈센초 란치아는 어린 시절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자동차를 좋아하여 19세 때 피아트의 검사부장이 되었으며 그 회사에서 시험주행을 담당했다. 이후 경주용 차를 직접 운전했고 경주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06년 빈센초 란치아는 피아트에서 나와 자신의 동료인 클라우디오 포골린(Claudio Fogolin)과 함께 토리노에 란치아를 설립했다. 1913년 나온 세타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표준화된 시동장치와 전기 램프를 사용했다. 1922년에는 더 진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앞바퀴에 독립식 현가장치가 장착되어 좌우 앞바퀴가 제각기 움직이는 람다를 출시했다. 이러한 람다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22년부터 1931년까지 1만 대 넘게 팔렸다. 1950년 세계 최초로 V형 6기통 엔진이 장착된 아우렐리아를 선보였다. 란치아는 경영난을 겪다가 1955년 이탈리아의 사업가인 카를로 페센티에 소유권이 넘어갔고 1966년 피아트에 인수되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51432&cid=43167&categoryId=43167 란치아]〉, 《네이버 지식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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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년에는 마구간을 뜻하는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자신의 공장을 차려 진정한 페라리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페라리 엠블럼에는 말 그림과 함께 "SF"라는 영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뜻하는 약자이다. 1939년에는 스쿠데리아 팀을 흡수하면서 자신을 내쫓으려는 알파 로메오를 뛰쳐나와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1940년에는 첫 생산 차량인 Tipo 815를 만들었지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파 로메오와의 계약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싱카를 생산할 수 없었다. 1947년에는 드디어 페라리의 진가가 그랑프리와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고 페라리 125 스포츠는 1947년 피아첸차 서킷에 데뷔한 지 2주 만에 우승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1년 후 엔초 페라리는 토리노(Torino) 모터쇼에서 첫 도로용 양산형 스포츠카인 페라리 166을 발표했다. 페라리 166은 여러 레이싱 대회를 휩쓸며 미국과 영국에까지 페라리의 이름을 알렸다. 1951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당시 세계 최고였던 알파 로메오의 레이싱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뛰어난 성능과 그랑프리 연속 우승으로 전설의 슈퍼카로 불리던 페라리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엔초 페라리는 피아트(Fiat)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페라리는 1969년에 50% 지분을 피아트에 넘겨준 뒤 피아트 그룹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 1988년 엔초 페라리 사망 이후 페라리는 90% 지분을 피아트에 넘기면서 피아트의 계열사로 편입되었지만 피아트와는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ref>REV,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989804&memberNo=15178086 (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 ) 페라리의 역사 #1]〉, 《네이버 포스트》, 2017-08-06</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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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5일 (일) 15:33 판
잔니 아넬리(Gianni Agnelli)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 창업자조반니 아넬리의 손자로 1966년부터 1996년 피아트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란치아, 알파 로메오, 마세라티, 페라리를 인수하고 피아트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1]
개요
잔니 아넬리는 1921년 3월 12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피아트의 창업자인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이다. 14살 때 아버지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조반니 아넬리의 후계자로 배양되었다. 토리노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1941년 할아버지는 그를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피아트에서 일하라고 촉구하였지만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1963년에 피아트의 상무 이사가 되고 1966년 회장이 되었으며 1969년 당시 이탈리아 3위 업체인 란치아를 인수했고 페라리의 지분 50%를 인수하고 1985년에는 85%까지 확장했다. 1차 오일쇼크를 거친 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1975년 네덜란드에 상용차 브랜드 이베코를 설립했다. 1987년 알파 로메오, 1993년 마세라티를 인수하며 이탈리아 내 승용차 시장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1996년 75세에 피아트에서 은퇴했으며 2003년 1월 24일 사망할 때까지 명예회장을 지냈다.[2]
주요 활동
란치아
1906년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설립했으며 오랫동안 혁신적인 기술을 많이 선보였고 특색 있는 차를 생산했다. 현재 피아트(Fiat)의 자회사로 주로 고급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그리스어 알파벳을 사용해 차 이름을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빈센초 란치아는 어린 시절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자동차를 좋아하여 19세 때 피아트의 검사부장이 되었으며 그 회사에서 시험주행을 담당했다. 이후 경주용 차를 직접 운전했고 경주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06년 빈센초 란치아는 피아트에서 나와 자신의 동료인 클라우디오 포골린(Claudio Fogolin)과 함께 토리노에 란치아를 설립했다. 1913년 나온 세타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표준화된 시동장치와 전기 램프를 사용했다. 1922년에는 더 진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앞바퀴에 독립식 현가장치가 장착되어 좌우 앞바퀴가 제각기 움직이는 람다를 출시했다. 이러한 람다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22년부터 1931년까지 1만 대 넘게 팔렸다. 1950년 세계 최초로 V형 6기통 엔진이 장착된 아우렐리아를 선보였다. 란치아는 경영난을 겪다가 1955년 이탈리아의 사업가인 카를로 페센티에 소유권이 넘어갔고 1966년 피아트에 인수되었다.[3]
페라리
1929년에는 마구간을 뜻하는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자신의 공장을 차려 진정한 페라리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페라리 엠블럼에는 말 그림과 함께 "SF"라는 영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뜻하는 약자이다. 1939년에는 스쿠데리아 팀을 흡수하면서 자신을 내쫓으려는 알파 로메오를 뛰쳐나와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1940년에는 첫 생산 차량인 Tipo 815를 만들었지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파 로메오와의 계약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싱카를 생산할 수 없었다. 1947년에는 드디어 페라리의 진가가 그랑프리와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고 페라리 125 스포츠는 1947년 피아첸차 서킷에 데뷔한 지 2주 만에 우승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1년 후 엔초 페라리는 토리노(Torino) 모터쇼에서 첫 도로용 양산형 스포츠카인 페라리 166을 발표했다. 페라리 166은 여러 레이싱 대회를 휩쓸며 미국과 영국에까지 페라리의 이름을 알렸다. 1951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당시 세계 최고였던 알파 로메오의 레이싱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뛰어난 성능과 그랑프리 연속 우승으로 전설의 슈퍼카로 불리던 페라리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엔초 페라리는 피아트(Fiat)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페라리는 1969년에 50% 지분을 피아트에 넘겨준 뒤 피아트 그룹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 1988년 엔초 페라리 사망 이후 페라리는 90% 지분을 피아트에 넘기면서 피아트의 계열사로 편입되었지만 피아트와는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4]
알파 로메오
마세라티
각주
- ↑ "Gianni Agnelli", "wikipedia"
- ↑ 〈지아니 아그 넬리〉, 《위키피디아》
- ↑ 〈란치아〉, 《네이버 지식백과》
- ↑ REV, 〈(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 ) 페라리의 역사 #1〉, 《네이버 포스트》, 2017-08-06
참고자료
- 피아트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fiat.com/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