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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일 (월) 23:25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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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르크주(노르웨이어: Telemark fylke)는 노르웨이 남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2020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베스트폴주와 통합하여 베스트폴-오그-텔레마르크주가 되었다. 이후 2024년 베스트폴-오그-텔레마르크주가 2개로 분할되어 텔레마르크주가 다시 설치되었다.[1]
개요[편집]
텔레마르크주의 면적은 15,299㎢이며 인구는 171,333명(2014년)이며 주도는 시엔이다. 북쪽으로는 부스케루주, 동쪽으로는 베스트폴주, 남쪽으로는 북해, 서쪽으로는 아그데르주와 로갈란주와 접한다. 18개 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렌란(Grenland), 베스트텔레마르크(Vest-Telemark),미트텔레마르크(Midt-Telemark), 외스트텔레마르크(Øst-Telemark)와 베스트마르(Vestmar) 지구 등 총 5개 지구 18개의 자치도시로 이루어졌다. 문장은 전쟁에 사용하던 도끼를 나타내며, 근대 스키 창시자 손레 노르헤임(Sondre Norheim)에 의해 개발된 텔레마르크 스키의 명칭은 이 주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2]
주요도시[편집]
시엔[편집]
시엔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텔레마르크(Telemark)주의 주도다. 1000년 이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14세기부터 시장도시로 특권을 부여받은 목재 운송의 주요 항구였다. 유럽 내륙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노르웨이의 가장 중요한 상업도시로 꼽혔다. 1838년 지자체로 독립한 뒤 1964년 행정구역상의 시가 되었다. 인형의 집의 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시엔은 노르웨이 목재 운송의 주요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덴마크를 포함한 인접 국가들과 광범위한 교류를 하면서 노르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로 대표적인 상업도시가 됐다. 1838년 지자체로 독립한 뒤 1964년 주변 농촌 지역을 합병해 행정구역상의 시가 되었다. 도시 인구 중 이민자가 여섯 명 중 한 명꼴로 많은 편이다. 전체 인구의 67%가량이 노르웨이 교회에 속해 있다.
1979년 동물을 새긴 그림이 이곳에서 출토되면서 1,000년 이전부터 시엔 일대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당시 내륙 농부와 해양 상인들의 교류가 빈번한 곳으로 텔레마르크주 내륙에서 생산되는 숫돌을 무역 거래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노르웨이 최초의 수녀원이던 짐쉐이 수도원(Gimsøy Abbey)이 12세기 시엔에 세워졌다. 석조 건물로 영국 수녀와 석공들이 건너와 건축했으나 1546년 불에 타 사라졌다. 시엔은 1358년 노르웨이 왕으로부터 상업도시의 특권을 부여받았다. 시엔은 목재를 주요 거래 품목으로 삼아 16세기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목재 선적 항구가 되었다. 이곳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은 예르펜(Gjerpen) 교회로 1150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부터 시엔은 여러 귀족 가문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통치되었다. 1886년 마지막 화재 이후 현재와 같은 도시 구획이 이루어졌다. 1964년 주변 농촌 지역을 합병하여 시엔 시가 되었다. 목재상이면서 선박 소유주였던 한 영주 부부를 위해 지어진 저택 프롱네르 마노르(Frogner Manor)가 눈길을 끈다. 이 저택의 본관은 이탈리아 르네상스풍으로, 정원은 영국식으로 지어졌다.
카피텔베르(Kapitelber) 교회는 중세 교회로 1100년대 초 브랏츠베르(Bratsber) 농장에 속한 예배당으로 사용되다 방치된 후 1156년 화재로 허물어졌다. 1576년 한 성직자 겸 역사가가 폐허를 샅샅이 조사해 기록을 남겼다. 이후 1901년 묻혀있던 잔해의 발굴이 이루어졌고, 1928년에서 1933년까지 보존과 복원 작업을 통해 카피텔베르 교회의 현재 모습이 되었다.
시엔에서 태어난 극작가 입센은 노르웨이 출신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 속 배경으로 19세기 시엔 거리가 자주 등장한다.
입센의 생가는 1958년 입센박물관이 되었다. 현재는 여러 유적들을 관리하는 텔레마르크 박물관에 편입되어 관리되고 있다. 입센후세(Ibsenhuset)는 시엔의 지역 문화 센터 겸 회의장으로 이 도시에서 다양한 예술과 문화 활동의 중심지다. 시엔 교회는 텔레마르크주에서 가장 큰 교회로 쌍둥이 탑과 웅장한 오르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국 출신 팝스타 엘튼 존이 2009년 여름 축구 경기장인 스카게락 경기장(Skagerak Arena)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경기장 옆에는 자동차 쇼, 벼룩시장이 열린다. 시엔에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야외 등반 시설인 히말라야 파크(Himalaya Park)가 있다. 시엔의 산업으로는 엔지니어링, 제지, 전기 분야가 꼽힌다.[3]
포르스그룬[편집]
포르스그룬은 노르웨이 남부 텔레마르크주에 있는 항구도시다. 이 도시는 1576년 작가 페데르 크라우쇤 프리스(Peder Claussøn Friis)의 노르웨이 왕국에 관하여'(Concerning the Kingdom of Norway)'라는 저서를 통해 처음 'Porsgrund'으로 언급되었다.
그는 '해상에서 2.5마일(mile) 떨어진 시엔(Skien)강이 피오르(fjord)로 흘러드는 곳, 그곳이 바로 포르스그룬(Porsgrund)'이라고 설명했다. 중세시대 김쇠위수도원(Gimsøy Abbey)의 수녀들이 습지에 관목(por)을 가지러 오가면서 이곳의 지명을 'Porsgrund'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grund(grunn)'은 '땅(ground)'이란 의미로 1931년 이전까지 도시의 이름은 'Porsgrund'으로 표기되었다. 포르스그룬은 16세기 말 활발한 원목산업 등과 연계한 주요 항구 중 하나였다.
1653년 시엔에 있던 세관이 포르스그룬으로 옮겨 오면서 도시가 크게 번성했다. 1842년 시장도시(market town)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
남동쪽 헤뢰위아 반도는 1928년 비료공장을 시작으로 글로벌 기업 30여 개가 밀집한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도시 외곽으로 분류되다 도회지로 발전했다. 포르스그룬은 헤뢰위아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에너지, 반도체, 비료, 화학, 도자기, 건축, 시멘트 등 다양한 첨단 산업이 활기를 띠는 노르웨이에서도 손에 꼽히는 산업도시다.
포르스그룬에는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최초의 지질공원인 게아노르베기카 지질공원(Gea Norvegica Geopark)이 있다. 공원은 텔레마르크(Telemark)주와 베스트폴(Vestfold)주, 포르스그룬, 시엔 등 모두 8개의 주와 시의 공동 관할이다. 1985년 해양도시의 역사를 상징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암피트리테(Amphitrite)가 세워졌다.
포르스그룬은 16세기 말부터 시엔을 포함한 그렌란(Grenland)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다. 도시 일대에서 원목 운송과 가공산업이 발달했다.
산업폐기물인 톱밥이나 진흙 등이 강의 하상에 쌓이면서 수심이 얕아져 배가 움직이기 어려워지자 1653년 세관 건물이 시엔에서 포르스그룬으로 강을 따라 훨씬 하류쪽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세관이 들어 오면서 포르스그룬은 항구로서 더욱 활력을 얻어 번성하게 되었다. 1807년 제한된 도시의 권한을 부여 받은 이후 1842년 완전한 시장도시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18세기 포르스그룬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알스(Aalls), 카페렌스(Cappelens), 뢰벤스키올스(Løvenskiolds), 데이크만스(Deichmans) 등의 가문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들이 거주하던 시기 포르스그룬은 노르웨이의 문화 중심지로 꼽히기도 했다.
1890년 이곳에서 강철로 된 범선 스콤베르(Skomvær)가 처음으로 건조되었다. 당시 노르웨이에서 획기적인 가장 큰 선박이었으나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설 자리를 점차 잃어 1924년 수명을 다했다.
1985년 이곳에 세워진 암피트리테는 포르스그룬의 해양시대 역사를 상징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으로 나체의 여성이 커다란 파도 위를 새 두 마리와 함께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에너지, 반도체, 비료, 화학, 도자기, 건축, 시멘트 등 다양한 업종의 글로벌 기업이 이 도시에 밀집해 있다. 헤뢰위아 반도는 서쪽에 피에르피오르(Frierfjord), 동쪽으로 텔레마르크바스드라게강 어귀의 구네클렙피오르 사이에 있다.
이 반도에는 1928년 대규모 산업단지가 건립되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비료회사 야라(Yara), 알루미늄 및 에너지회사 노르스크휘드로(Norsk Hydro), 태양광 분야의 REC 등 30여 기업과 연구소가 입주해 있다.
원래 반도의 남쪽에 근로자들의 주거지가 들어서 있었으나 현재는 도시의 교외지역으로 변모했다. 이 반도로 철도 브라츠베르그선(Bratsberg Line)이 들어간다.
원래 헤뢰위아는 농경지로 사용되던 섬이었으나 1928년 노르스크휘드로가 새로운 인공합성 비료공장 휘드로포르스그룬(Hydro Porsgrunn)을 짓기로 결정한 뒤 단 16개월 만에 질산칼슘 생산 공장과 이를 실어 나를 선적 항구를 건설했다.
비료공장이 이곳에 들어선 것은 비료 성분 중 하나인 질산칼슘을 함유한 석회암이 이곳에 많아 비료생산이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건설과정에서 섬과 본토 사이의 좁은 해협이 메워지면서 육지와 연결되어 반도가 되었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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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텔레마르크주〉, 《위키백과》
- ↑ 〈두산백과 : 텔레마르크주〉,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노르웨이 시엔〉,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노르웨이 포르스그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텔레마르크주〉, 《위키백과》
- 〈두산백과 : 텔레마르크주〉,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노르웨이 시엔〉,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노르웨이 포르스그룬〉,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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