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를라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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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를라마르(Porlamar)는 베네수엘라 누에바 에 스파르타 주(스페인어: Estado Nueva Esparta)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주요 항구이자 중심지이다.[1]
개요
포를라마르는 베네수엘라 북부, 누에바 에스파르타 주를 구성하는 남미 본토에서 떨어져 카리브해에 있는 3개의 섬 중 하나인 마르가리타섬(Margarita Island)의 남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도에서 10km 거리에 있다. 포를라마르는 누에바 에스파르타 주를 나누는 11개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인구가 많은 마리뇨(Mariño)의 수도이다. 포를라마르의 인구는 14만 명으로 마르가리타섬 인구의 약 1/3이 살고 있다. 포를라마르는 마르가리타섬의 상업 중심지이다. 1973년 자유항으로 인정된 이후 부티크가 늘어서 있는 거리는 관광객들로 붐볐으나 1990년대 후반, 경제적 몰락이 폴라마를 강타했다. 폴라마르의 델카리브 국제공항(PMV)은 유럽과 콜롬비아로 가는 전세 서비스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목적지로 가는 정기 여객 항공편이 있으며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프로야구팀 브라보스 데 마르가리타의 홈구장 에스타디오 누에바 에스파르타가 있다.[2]
역사
포를라마르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처음 항해한 지 40년이 채 되지 않은 1536년 남동부 해안에 푸에르토 드 라 마르(현재의 포를라마르)로 설립되었다. 1561년, 라틴아메리카 정복자이자 반란군인 로페 드 아기레(Lope de Aguirre)에 의해 잠시 점령되었다. 아기레와 그의 부하들은 주지사를 포함하여 마을 주민들 몇 명을 처형하고 왕실 재무부를 약탈했다. 아기레가 본토에서 죽은 후에도, 그가 처음 섬에 상륙한 해변은 여전히 플레이아 델 티라나(폭군의 해변)로 불린다.
1680년, 인도 평의회(스페인어 : Consejo de las Indias)는 마르가리타 태생인 후안 페르민 데 우이도브로(Juan Fermín de Huidobro)에게 산 카를로스 보로메오(San Carlos Borromeo)로 알려진 4개의 요새와 망루를 갖춘 요새를 건설하라고 명령했다. 포를라마르는 항공 여행이 시작되기 전까지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그 이후 이곳은 주로 유럽과 베네수엘라 관광의 지원을 받는 상점, 레스토랑, 유흥 시설이 있는 섬의 중심지가 되었다.[3]
마르가리타섬
마르가리타섬(Margarita Island, 스페인어: Isla Margarita, Isla de Margarita)은 베네수엘라 누에바에스파르타주의 중심 섬이다. 베네수엘라 본토에서 38km, 카라카스에서 비행기로 30분 거리에 있는 섬으로 그 크기와 뛰어난 자연환경으로 ‘카리브 해의 진주’라고 불린다. 열대 풍경과 식민지시대의 역사적인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이상적인 휴가지로 각광받는 장소이며 아름다운 해변가는 물론이고 신선한 해산물도 가득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8년에 마르가리타섬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이다. 섬의 원주민들은 과이쿼리족이며 해안에는 진주가 풍부했는데 이는 스페인 왕실에 바치는 신세계 공물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마르가리타섬은 해적의 공격 위협에 대비해 요새화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도 몇 개의 요새가 남아 있다. 마르가리타섬은 1525년에 설립된 스페인 식민지 마르가리타 지방의 중심지였다. 1561년 섬은 폭력적이고 반항적인 정복자로 악명 높은 로페 드 아기레(Lope de Aguirre )에 의해 점령되었다. 1675년경 이 섬은 인간성과 도덕성으로 유명한 해적인 레드 레그 그리브스(Red Legs Greaves)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는 스페인 선박의 함대를 항구에서 나포한 후 그가 공격한 요새에 포를 대고 진주나 금으로 된 큰 전리품을 요구했다. 그리브스가 섬을 점령했다는 이야기는 스페인 역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아 허구일 수도 있다. 산타 로사 데 라 에미넨시아(Santa Rosa de la Eminencia) 성의 건설은 1676년 초 프랑스 해적 후작 데 마인테논이 섬을 공격한 후 주지사 후안 무뇨즈 데 가데아에 의해 명령되었다. 섬은 1814년 베네수엘라 제1공화국이 붕괴된 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베네수엘라에서 첫 번째 영구 자유 영토가 되었다. 1914년 루이사 카세레스 데 아리스멘디(Luisa Cáceres de Arismendi)는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남편 후안 바우티스타 아리스멘디(Juan Bautista Arismendi)에게 압박하기 위해 산타로사 요새 지하 감옥에 구금됐다. 그녀의 구금은 3년 넘게 지속되었다. 시몬 볼리바르는 1816년 베네수엘라 제2공화국의 총사령관으로 확정되었다. 그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를 스페인 왕국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9년간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오늘날 마르가리타섬은 주로 관광지이다. 1974년 섬의 면세항은 1974 년 상업 및 관광 산업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저렴한 수입품으로 인해 방문객이 증가하고 호텔이 개발되었다. 마르가리타섬은 2010년과 2014년에 북남미 프로 야구팀의 최대 규모 대회인 캐리비안 시리즈 개최지이다.[4]
마르가리타섬은 카리브해 소앤틸리스제도의 리워드 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섬으로 누에바에스파르타주에서 가장 큰 섬이다. 누에바에스파르타주의 주도 아순시온이 섬에 있으며 최대 너비는 34.6km, 길이는 69.2km, 면적은 약 1,100km², 인구는 489,917명(2014)이다. 아라야반도 앞바다의 카리브해의 다리로 연결된 2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의 마카나오 반도는 동서 방향으로 중앙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최고 고도는 760m이다. 서부는 산이 많아서 염소 목장과 수렵장을 이룬다. 동부는 휴양지로 비가 적어서 물이 부족하며 본토에서 파이프로 물을 받는다. 주도(主都) 아순시온은 농업의 중심지이고 포들라마르는 최대의 항구이자 상업의 중심지이며 어업기지이다. 섬의 주민 42만 명 대부분은 폴라마와 팜파타, 그리고 주도 라 아순시온을 포함한 더 발전된 섬의 동부에 살고 있다. 마르가리타섬에는 식민시대의 건조물을 많이 보존하고 있으며, 1498년 콜럼버스의 제3차 항해 때 발견된 섬이다. 주산업은 진주 채취, 어업, 해먹과 맥고모자 등의 제조업이며 특히 진주 채취 계절에는 관광객이 많다. 마르가리타섬의 평균 온도는 32°C이며 7월부터 10월까지는 장마철이다. 마르가리타섬은 적도부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외선이 강하다.[5]
누에바에스파르타주
누에바에스파르타주(스페인어: Estado Nueva Esparta)는 베네수엘라 북동부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한 리워드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주로 주도는 라아순시온이다. 1909년에 신설되었으며 11개 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베네수엘라에서 유일하게 섬으로만 구성된 주이기도 하다. 주 이름은 베네수엘라 독립 전쟁 당시에 주민들의 영웅적인 행동이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인 스파르타의 병사들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요산업은 어업·진주채취업·다랑어·정어리 등의 통조림제조업 등이며, 관광업도 주요산업의 하나이다. 진주채취업은 콜럼버스 시대부터 주요산업이었으나, 남획(濫獲)에 의해 1960년대부터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코코야자와 사탕수수를 소규모로 재배한다.[6]
소앤틸리스제도
소앤틸리스제도(영어: Lesser Antilles, 네덜란드어: Kleine Antillen, 프랑스어: Petites Antilles)는 카리브제도(서인도 제도)에서 대앤틸리스제도와 함께 앤틸리스제도를 이룬다. 소앤틸리스제도에는 버진제도, 앵귈라, 세인트키츠 네비스, 앤티가 바부다, 영국령 몬트세랫, 프랑스령 과들루프, 도미니카 연방,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바베이도스, 그레나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제도가 속해있다. 대부분 스페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스페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남서부는 리워드 앤틸리스 제도라고 한다. 소앤틸리스제도는 남아메리카 북동부의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쿠바 남쪽의 밀워키섬까지 이르는 아치 모양의 제도이다. 소앤틸리스제도는 솜브레로, 생마르탱, 과들루프, 마리갈란트 등 대서양 쪽 섬들과 사바, 세인트크리스토퍼네비스, 레돈다, 도미니카, 마르티니크,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앤티가바부다, 그레나다 등으로 형성된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사화산(死火山)이나 개석(開析)이 진행된 산들로 되어 있으며 석회암 대지(臺地)를 볼 수 있는데 사탕수수가 재배된다. 후자는 활화산으로 고도가 높으며 비옥한 화산성 토양으로 농업이 성하다. 앤틸은 활(矢)같이 휘었다라는 뜻도 있지만 상상의 나라명이기도 하다. 중세 때 에스파냐에 이슬람 교도가 침입하자 이를 피해 도망친 수도사들이 대서양에 나라를 세워서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이 가상의 나라가 앤틸리스라는 것이다. 옛 이름은 카리바스(Caribbes)이다. 땅은 기름져서 사탕수수가 재배되고, 소의 방목지(放牧地)도 조성되어 있다. 사탕수수는 가장 중요한 상품작물이며, 앤티가섬과 과들루프섬이 그 중심지이다. 후자에 속하는 섬들은 기원이 새롭고 활화산이며(1902년 마르티니크섬의 몽타뉴플레가 폭발하였음) 고도도 높다.[7]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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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마르가리타섬〉, 《위키백과》
- 〈누에바에스파르타주〉, 《위키백과》
- 〈소앤틸리스 제도〉, 《위키백과》
- 〈포를라마르〉, 《나무위키》
- 〈폴라마〉, 《요다위키》
- 〈마르가리타 섬〉, 《요다위키》
- "Porlamar", Wikipedia
같이 보기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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