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페 (미국)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산타페 또는 산타페이(영어: Santa Fe, 스페인어: Santa Fe; 나바호어: Yootó)는 미국 뉴멕시코주 중부에 있는 400년의 역사를 가진 뉴멕시코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8만7천 명으로 주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도시는 1610년 누에보 멕시코의 수도로 설립되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도로 되었다.[1]
개요
산타페는 뉴멕시코주 중북부 샌타페이군의 군청소재지로서 로키산맥 남동단의 상그레데크리스토산맥 기슭에 위치한 해발고도 2,100m의 아름다운 고원도시이다. 라스베이거스 서쪽 64km 지점으로 페이커스강 상류와 리오그란데강을 끼고 있으며,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지에 사는 한국인은 한글로 산타페로 쓰는 표기가 보편화되어 있다. 스페인어로 산타페는 거룩한 믿음(Holy Faith)이라는 뜻이다. 도시는 상그레 더 크리스토(Sangre de Cristos) 산 밑 해발 2,234m의 고지대에 있으며 푸에블로 리바이벌 건축양식으로 지은 어도비(Adobe) 집들의 매력과 고풍이 짙은 거리들이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산타페는 1610년에 스페인의 식민지 뉴스페인(New Spain)때의 뉴멕시코 지역의 수도로 설립되어 미국에서 제일 역사가 오래된 수도(Capital City)가 되었다. 연방, 주, 도시 정부 기관이 산타페의 가장 큰 고용주이며 관광업과 미술관계 업종이 산타페의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는 여러 박물관이 있으며 산타페 오페라와 산타페 축제가 여름의 행사를 제공한다. 미국의 3대 미술시장이 되고있는 만큼 갤러리(화랑)가 많기로 유명하다. 산타페는 푸에블로 인디언과 히스패닉의 오랜 역사와 전통의 문화적 배경 위에 1900년 초기부터 많은 예술가들이 지역의 독특한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에 이주해 온것이 이곳 예술과 문화를 더 풍성하게 했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스페인시장(Spanish Market)은 300여 미술가의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전통 예술, 춤과 음악의 축제이기도 하다. 매년 8월에 열리는 인디언 시장은 천 여명의 인디언 미술공예가가 참여하는 인디언의 문화예술 행사이다. 해발 2,133m에 위치한 고산도시이며, 진흙으로 만든 건축물인 '어도비'가 유명하다. 스페인이 건설한 도시이기에 중남미 식민도시풍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고, 20세기 들어서도 '산타페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푸에블로 리바이벌 건축물들이 지어져서 미국 내에서도 관광도시로서 명성이 높다. 교육기관으로는 샌타페이대학(1859), 세인트존스대학(1964), 샌타페이 인디언 학교, 뉴멕시코 농아학교 등이 있다. 샌타페이 국유림의 관리본부, 인디언 마을, 반델리어 국립명승지가 있다. 현대자동차가 2000년에 출시한 SUV 싼타페는 이 도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2]
지리
지리적으로 산타페는 해발 7,199ft(2,134m) 고지에 있다. 앨버커키 다운타운과 비교한다면 약 1,887ft (515m)가량 더 높은곳에 있어서 여름 기온을 비교해보면 앨버커키보다 화시 10도 정도 낮다. 산타페는 앨버커키에서 북쪽, I-25로 한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94km,59마일)에 있다. 근래에 앨버커키와 산타페 간의 운행이 시작된 기차(Railrunner Express)편을 이용해서 방문할 수도 있다. 알버커키에서 기차로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산타페 공항이 있으나 소형 비행기만이 운항하므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앨버커키 공항을 이용하게 된다. 도시의 북쪽은 로키산맥의 남쪽 끝이 되는 상그레 데 크리스토(Sangre de Cristos)산이 있다. 산이름은 스페인어로 그 의미는 '그리스도의 피'란 뜻이다. 산위의 스키장은 겨울철 여행객과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 되고 있다.
역사
1598년 스페인의 오냐테(Oñate)장군이 이끄는 뉴멕시코 원정팀은 리오그란데 강 상류 지역에 스페인 이주민을 정착 시키면서 이 지역을 통치했다. 그의 통치는 억압적이여서 푸에블로 인디언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스페인의 왕은 이런 사실을 알고 오냐테를 소환하고 페드로 데 페랄타(Pedro de Peralta)를 1609년 뉴멕시코에 임명했다. 그 이듬해 1610년 페랄타는 산타페를 수도로 정하고 "라 빌라 레알 데 라 산타 페"(La Villa Real de la Santa Fe)라고 이름을 지었고 뉴멕시코 지역을 다스렸다. 스페인사람들은 푸에블로 인디언과 상호 의존의 관계속에서 평화를 유지해 나갔으나 1675년 인디언 고유의 종교의식에 박해를 가하는 일이 일어났다. 47명의 종교 지도자를 체포하고 4명에게 교수형 언도를 내렸다. 프에블로 지도자 70명이 산타페를 쳐 들어가 협박하여 살아 있는 종교 지도자를 구출 해내긴 했으나 이로 인해 상호간의 갈등이 고조 되었다. 그때 석방된 자 중의 한사람인 포페이(Popé 혹은 Popay)란 산환(San Juan)푸에블로 인디언은 스페인 사람들의 통치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여러 부족과 비밀리에 동맹을 맺고 1680년 8월10일 일제히 봉기하여 푸에블로 반란(Pueblo Revolt)을 일어켰다. 11일 동안의 격전 끝에 산타페는 2,500명의 인디언 병사의 승리로 인디언 손에 넘어갔다. 산타페에 있던 3,000명의 스페인 사람들은 뉴멕시코 남쪽 엘파소로 피난을 갔고 스페인의 통치는 막을 내렸다. 포페이는 그 후 스페인 군인들의 두 차례에 걸친 공격을 막아 내긴 했으나 부족을 연합 시키는 일에는 힘이 부족했고 1692년 디에고 데 발가스(Diego de Vargas)는 스페인 군인150명과 우호적 관계를 가진 인디언 다수를 거느리고 다시 산타페에 무혈로 입성하여 인디언 지도자들과 평화적인 협상을 맺고 산타페는 스페인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200여 년이 지난 1821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뉴스페인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멕시코라는 이름으로 독립 국가를 선언하게 된다. 따라서 뉴멕시코는 신생 독립 국가인 멕시코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25년밖에 안 된다. 1846년 멕시코와 미국간의 영토 분쟁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2년뒤 전쟁이 끝나고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에 의거 이곳 뉴멕시코는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뉴멕시코는 1912년 1월 미합중국의 47번째 주로 편입 되었고 산타페는 뉴멕시코주의 주도가 되었다. 20세기 초에는 많은 화가와 예술가들이 이주해 와서 산타페는 미술의 메카로 알려지게 되었다. 도시는 푸에블로 인디언, 스페인 그리고 앵그로 문화가 함께 자라온 역사 깊은 도시가 되어 2005년 UNESCO에서 창조의 도시(Creative City)로 지명을 받았다.[3]
관광명소
관광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월간 잡지로 “Travel + Leisure”라는 잡지가 있다. 매년 독자의 설문조사로 북미주 안에서 인기있는 관광지 도시 10개를 선정하는데 산타페는 2008년과 2009년 두 번 모두 5등으로 선정되었다. (2009년도의 1등은 뉴욕, 2등은 샌프란시스코였다) 산타페가 관광도시로 인기가 높은 이유는 깊은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스페인, 인디언 그리고 앵글로 문화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점이 큰 이유가 된다.
- 산미겔교회(San Miguel Chapel) : 산미겔 교회(차플)은 주청사 건물 앞에 있는 방문객안내소(Visitor Center)의 건물옆 북쪽에 자리잡은 오래된 어도비(Adobe)양식의 작은 교회로 미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교회로 알려져 있다. 1610년에 지었는데 1680년 푸에블로 반란(Pueblo Revolt)으로 지붕은 불에 타버렸으나 1692년 지붕을 다시 복구했다.
- 로레토교회(Loretto Chapel) : 로레토교회(차플)는 1873년에 지은 고딕식 건물인데 그 안에 있는 스프링 나선 형태로 만든 나무계단이 유명하다. 360도로 두 번 회전하며 성가대석으로 올라가는 이 계단은 못을 전혀 쓰지 읺았고 계단을 지탱해주는 기둥도 없다. 신기한 계단(Miraculous Staircase)이란 별명이 붙은 이 계단의 단수는 33개로 예수가 이 땅에서 살았던 햇수와 일치한다. 옛날 교회 건물을 처음 지었을 때 기본적인 공사는 마쳤으나 뒤쪽의 성가대석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미완성 이어서 이를 위한 공사를 앞두고 수녀들이 열심히 기도했는데 어느 날 이름 모르는 목수가 나타나서 자원해서 계단을 만들어 주고 일을 끝내고는 대가도 받지 않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 산타페 프라자(Santa Fe Plaza) : 도시 중앙에 있는 산타페 프라자는 처음 오는 관광객에게는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들이 많아서 공예품이나 미술품등 쇼핑하기에 좋은 곳이다. 여름철에는 스페인춤과 음악을 즐길수 있는 축제도 자주 이곳에서 열린다. 팔레스 오브 더 가버너스(Palace of the Governors)로 불리는 오래된 건물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 건물은 1610년에 건축된 건물로서 지금까지 계속 사용해온 정부 청사의 건물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 앞은 인디언들의 공예품을 파는 노점 마켓 자리가 되고 있다.
- 성 프란시스 대성당(St. Francis Cathedral) : 프라자에서 동남쪽으로 가면 역사 깊은 라폰다 호텔(La Fonda Hotel)이 있고 그 앞을 지나 동쪽으로 가면 이 지역 건축양식과는 전혀다른 프랑스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성 프란시스 대성당앞에 이른다. 이 성당은 2005년 Pop Benedict XVI에 의해서 바실리카(Basilica)로 승격되었다. 라미(Lamy)대주교에 의해서1869년 공사를 시작했고 1886년에 완공했지만 원래 계획했던 두 개의 뾰족탑은 공사 비용 문제로 끝내질 못한체 지금에 이르렀다. 고딕양식의 교회건축에서 보게되는 정면의 큰 원형 유리창은 12개의 꽃잎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예수의 12제자를 의미한다. 정문 위에보면 히브리어로 Yahweh(야훼:JHWH)란 글씨를 새겨 놓은게 있다. 유태인들이 성당 건축에 많이 도왔기 때문에 그 들을 생각하며 히브리어로 "야훼" 이름을 새겼다고 전해진다. 미사가 없을 때는 들어가서 아름다운 스테인 유리창과 내부의 건축미를 구경할 수 있다.
- 캐니언로드(Canyon Road) : 산타페에는 약 300개의 갤러리(Gallery,화랑)가 있는데 100여개의 갤러리는 캐니언로드 길가에 모여있다. 그림이나 공예품을 사지는 않더라도 미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곳이다. 이곳을 구경해 보면 왜 산타페가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미국의 미술 3대 시장에 꼽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
각주
- ↑ 〈산타페 (뉴멕시코주)〉, 《위키백과》
- ↑ 〈샌타페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산타페, 뉴멕시코 주〉, 《요다위키》
참고자료
- 〈산타페 (뉴멕시코주)〉, 《위키백과》
- 〈산타페, 뉴멕시코 주〉, 《요다위키》
- 〈샌타페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