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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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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나다 국기

그레나다(영어: Grenada)는 카리브해북대서양 사이에 있는 윈드워드제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나라로 영연방 군주국이다.

개요

역사

  • 콜럼버스가 그레나다를 발견하기 전에 카리브 인디언들이 원주민이던 아라와크족을 몰살하고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 1498년 포르투갈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하고 그후 150년 동안 카리브인이 그레나다를 다스렸다.
  • 1650년 프랑스 총독 마르티니크(Martinique)가 프랑스 회사로부터 그레나다섬을 매입하고 현재의 수도인 세인트조지스에 주거지역을 만들었다.
  • 1674년 이곳은 프랑스령이 되었다.
  • 1763년 파리조약으로 영국연방에 편입되었으나,
  • 1779년 다시 프랑스령으로 되었다.
  • 1783년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다시 영국에 귀속되어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 1833년 흑인노예들이 해방되었다.
  • 1958년 서인도제도연방에 가입했고,
  • 1962년 연방이 해체되면서 영국령 윈드워드 제도에 편입되었다.
  • 1967년 자치권을 획득하여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 1974년 2월 독립국이 되었고, 에릭 게어리(Eric Gairy)가 초대 총리가 되었다.
  • 1979년 무혈쿠데타가 발발해 인민혁명정부(PRG: People's Revolutionary Army)가 수립되었다.
온건좌익인 모리스 비숍(Maurice Bishop)이 주도하는 '새보석운동(New Jewel Movement)'이 정권을 장악했다. 그레나다 정부가 쿠바소련과 친해지면서 1980년대 초반 친미·친서구적인 라틴아메리카국가들과 관계가 악화했다. 또한 PRG 내부의 불화로 모리스 비숍 총리가 폐위 후 처형을 당했다. 결국 비숍 수상의 온건좌익노선에 불만을 품은 극좌세력이 유혈쿠데타를 단행했다. 1983년 10월 13일부터 8일간 쿠바의 조정을 받은 허드슨 오스틴(Hudson Austin) 장군이 내부 쿠데타를 주도해 장관들을 포함한 60여 명을 처형했고, 극좌노선의 군사평의회를 설치한 후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1983년 10월 25일 미국의 군사 개입이 시작되었고, 미국 등 다국적군이 섬을 침공했다. 허드슨 오스틴을 위시한 급진파 PRG 단원들은 체포되었고, 쿠바 노동자와 군인들은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미국과 카리브제국의 평화유지군이 군사적으로 개입해 1984년 2월 1일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 1984년 12월 임시정부하에 민선총선이 실시되어 민주자치정부가 수립되었다.
신국민당(NNP: New National Party)이 총 15석중 14석을 석권하여 허버트 블레이즈(Herbert Blaize)가 총리로 취임했다. 정책노선 이견과 당내 주도권 장악 정쟁 등으로 내각을 간신히 이끌어 오던 허버트 블레이즈가 1989년에 사망하면서 당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던 벤 존스(Ben Jones)가 총리직을 승계하는 등 전반적인 정세는 불안정했다.
1990년 3월 총선에서는 모든 정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최대의석(7석)을 확보한 국민민주의회당(NDC: National Democratic Congress)이 그레나다통일노동당(GULP: Grenda United Labour Party) 소속 의원을 영입하여 과반수를 확보하면서 니콜라스 브레스웨이트(Nicholas Brathwaith)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니콜라스 브레스웨이트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권을 이끌었으나 1995년 2월 고령을 이유로 총리직을 사임했다. 조지 브리잔(George Brizan) 당수가 총리직을 승계했으나 이로 인한 당 지도력 약화, 경제 발전 부진, 과다한 실업문제 등으로 1995년 6월 총선에서 패배한 후 정권을 신국민당에게 넘겨주었다.
키스 미첼 총리(Keith Mitchell)가 이끈 신국민당은 1999년 1월 총선에서도 그레나다 선거 사상 최초로 15석 전부를 석권하며 재집권했으며, 이후 70%에 가까운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과감한 국정 운영을 이끌었다. 2003년 11월 총선에서도 신국민당은 집권에 성공했으나 경기후퇴 등으로 총 15중 8석을 차지한 반면, 야당인 국민민주의회당은 7석을 차지하며 여야 세력에 균형을 이루었다. 결국 2008년 7월 선거에서 국민민주의회당은 집권당이 되었다.

지리

그레나다 본토 섬이 가장 큰 섬이다. 작은 섬이 많이 있으며 대부분의 인구는 그레나다섬에 거주한다. 다이아몬드제도, 론데제도, 라지제도 등이 있다. 수도인 세인트조지스 인근에 가장 많은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섬은 화산섬이며 국토는 비옥한 편이다. 내부는 세인트캐서린산이 840m로 솟아 있다. 여러 작은 강이 폭포를 이루며 산에서 흘러 나온다.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 기후여서 무덥고 습하다. 하지만 무역풍에 의해 건조가 되면 서늘해진다. 그레나다는 허리케인의 반경에서 남쪽 외곽에 있는 덕분에 이제껏 세 번밖에 허리케인 피해를 보지 않았다. 1995년 허리케인 자넷은 그냥 그레나다를 스쳐가기만 했음에도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가장 최근의 허리케인으로는 2004년 7월 강타했던 허리케인 이반(Ivan)으로서 캐리아코 섬이 큰 피해를 봤고 그레나다의 북쪽 지방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주민

주민의 82% 정도가 아프리카계 흑인이다. 흑인과 유럽계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가 13%을 차지한다. 유럽인동인도인이 5%정도를 차지하고, 초기 아라와크와 카리브 인디언(Arawak and Carib Indians)의 흔적도 남아 있다. 영어는 공식어로 사용되며, 프랑스 방언(French patois)을 사용하는 인구도 소수 존재한다.

정치

그레나다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가 원수로 있는 영연방 국가로, 지역적으로 총독이 대표한다. 행정권은 정부 수반인 총리에게 있다.총독의 역할은 대부분 의례적인 것이지만, 총리는 보통 의회에서 가장 큰 당의 대표이다.

그레나다 의회는 상원(13명)과 하원(1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상원의원은 정부와 야당에 의해 임명되고, 대의원은 5년 임기의 국민에 의해 선출된다. 그레나다는 다당제 체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중도우파 신국민당(NNP)과 중도좌파 국민민주회의(NDC)가 최대 정당이다.

경제

경제는 농업, 목축, 수산업 등 1차산업이 위주이다. 독립 이전에는 사탕수수와 카카오 수출국이었으나, 1985년 국제공항 건설 이후 관광업이 외화획득의 주수입원이자 주요 경제기반이 되었으며 그외에 역외금융산업과 함께 제조업과 건설업도 크게 발전하였다.

공업, 제조업은 국내총생산의 14%(2003년), 노동인구의 14%(1999년)를 차지한다.

주요 산업으로 식품 및 음료산업, 섬유업, 경공업, 조립작업, 건설업, 관광업 등을 들 수 있다. 전체 국내총생산의 76.6%를 서비스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현재 주요 외화소득원은 관광업이다.

주요 수출품은 바나나, 코코아, 육두구, 채소, 메이스 등의 농산물이며, 주요 수입품은 식품, 제조품, 기계, 화학, 연료 등이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주변 카리브해 연안국과 미국이다. 세인트루시아, 앤티가바부다, 세인트키츠네비스, 도미니카, 미국이 주요 수출 대상국이며 트리니다드 토바고, 미국, 영국 등 나라에서 주요하게 수입한다..

그레나다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소앤틸리스제도 같이 보기

소앤틸리스제도
리워드제도 1
리워드제도 2
윈드워드제도
리워드 앤틸리스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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