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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마르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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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 Marchionne)
피아트(Fiat)

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 Marchionne)는 2004년부터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인 피아트(Fiat)의 CEO를 맡으면서 피아트를 파산의 위험에서 구해내고 2009년 미국의 크라이슬러(Chrysler)를 인수하고 2014년 두 회사를 합병하여 피아트 크라이슬러(Fiat Chrysler)를 출범하였다. 그는 피아트 크라이슬러 CEO, 페라리(Ferrari) 회장 겸 CEO, 마세라티(Maserati) 회장을 겸직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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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1952년 6월 17일 이탈리아 아브루초 치에티(Chieti)에서 태어났다. 그는 군경찰이던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크로아티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르치오네의 할아버지 지아코모 주콘(Giacomo Zuccon)은 1943년 9월 이스트리아 바반 인근에서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인들에게 살해당했고 같은 해 삼촌 주세페 주콘(Giuseppe Zuccon)은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다. 1945년 이 지역이 유고슬라비아군에 점령당하자 마르치오네의 부모는 아브루초 치에티로 이주하고 13살에 가족과 함께 친척들이 거주하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로 이민을 갔다. 캐나다 시민권과 이탈리아 시민권을 동시에 소지한 그는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토론토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윈저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그는 대학을 마치고 회계법인 딜로이트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1985년부터 토론토의 로슨 마돈 그룹(Lawson Mardon Group)에서 개발 이사로 근무하였다. 1989년부터 글레넥스 인더스트리(Glenex Industries)의 부사장으로 2년간 근무하였으며,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아클랜드 재정 및 최고 재무 책임자로 근무하였으며 1994년 취리히에 본사를 둔 Alg그룹(Algroup)에서 CEO, 전무이사, 회장 등 직무를 담당하였다. 마르치오네는 2002년 세계 최대 품질안전성을 인증하는 민간 기업 SGS에서 CEO로 근무할 당시 위기에 빠진 SGS를 회생시키면서부터다. 피아트는 SGS를 살려낸 마르치오네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2003년 마르치오네를 피아트 이사로 선임하고 이듬해인 2004년 피아트 수장으로 전격 발탁하였다. 당시 피아트는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 휘청거렸는데 마르치오네는 CEO 취임 2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놔 자동차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마르치오네는 피아트 CEO를 맡은 2004년부터 시작해 14년간 FCA 매출은 3배 늘었고 기업가치는 60억 유로(약 7조 9,000억 원)에서 600억 유로로 10배 이상 높아졌다. 2009년 정부 구제금융으로 겨우 연명하던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2년 만에 파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2014년 10월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를 합쳐 FCA를 출범시켰다. 마르치오네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미국 GM에도 끊임없이 합병을 제안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생존하려면 규모가 커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GM 합병은 성사되지 않았다. 2015년 페라리를 그룹에서 분리시켰으며 페라리는 독립적인 회사가 되었으며 마르치오네는 페라리의 CEO를 겸임하였다. 마르치오네는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이란 평을 받는 일벌레로 유명하였으며 2009년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CEO"로 선정했다. 마르치오네는 2018년 7월 23일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은하였으며 2018년 7월 25일 66세를 일기로 스위스 취리하에서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2][3]

주요 활동

2000년 GM은 피아트 지분 20%를 사들이면서 체결한 계약 때문에 경영난에 허덕이는 피아트를 인수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GM은 피아트를 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때 마르치오네가 나서서 이 계약을 종료하는 조건으로 GM에 20억 달러를 요구했고 GM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의 취임 전 2년 동안 무려 4명의 CEO가 아무런 성과 없이 물러날 정도였으나 2004년 말 CEO로 부임하자마자 그가 한 일은 조직 개편이다. 2005년 피아트의 관리직 간부 2,000여 명을 해고했다. 그 대신 젊고 유능한 중간 관리자를 간부도 승진시켰다.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체질이 개선됐다. 피아트는 2년 만에 4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그는 신차 개발에도 아낌없이 투자했으며 2007년 등장한 피아트 500의 신형 모델은 유럽 시장 판매량을 회복시켰다. 마르치오네는 비핵심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많은 자동차 업체와 제휴를 모색하며 생산비 절감을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생각보다 빨리 결실을 맺었다. 바로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피아트는 크라이슬러 인수에 나선 것이다. 미국 자동차 빅3이자 2009년 정부 구제금융으로 겨우 연명하던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2년 만에 파산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후 2014년 피아트크라이슬러를 합쳐 FCA를 출범시켰다.[4][5]

각주

  1. "Sergio Marchionne", wikipedia
  2. 이다비, 〈(His 스토리) ‘줄담배 일벌레’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를 살려내고 떠나다〉, 《조선일보》, 2018-07-26
  3. 박홍준, 〈마르치오네 전 FCA 회장 별세..그가 남긴 족적은?〉, 《데일리카》, 2018-07-26
  4. 최진석,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일벌레’ 마르치오네, 피아트를 구하다〉, 《매거진한경》, 2014-08-07
  5. MENAISSANCE MAN,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 CEO〉, 《네이버 블로그》, 2015-06-05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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