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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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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펙
위니펙 위치

위니펙(Winnipeg, 문화어: 위니페그)은 캐나다 매니토바주주도로, 주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주 내 최대 규모의 도시이다. 위니펙의 도시 인구는 약 75만 명, 대도시 인구는 83만 명으로 캐나다에서 6번째로 큰 도시이자 8번째로 큰 대도시이다. 서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모든 철도고속도로는 이 도시 혹은 그 근처를 지나가므로 이 도시는 '서부로의 관문'으로 불리기도 한다.[1]

개요

위니펙은 캐나다에서 다섯 번째로 크고 세계에서는 열한 번째로 큰 호수인 위니펙호 및 매니토바 호수, 우드 호수를 포함해 수백 개의 호수를 근처에 두고 있다. 위니펙 호수는 남부 캐나다의 경계 안에서는 가장 큰 호수이며, 이 호수의 동쪽 편에는 자연 그대로의 캐나다 순상지와 강이 있다. 1738년 프랑스인이 모피교역을 위한 취락을 이룬 것이 시의 기원이며, 당시에는 포르루즈라고 하였다. 서부 캐나다 대초원 지역의 끝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 경제, 공업, 농업, 교육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8세기 후반에 셀커크경이 거느린 스코틀랜드 농민이 주변에서 밀을 재배하기 시작하였으나 대규모의 식민은 19세기 후반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매니토바주가 연방에 가입한 지 3년 만인 1873년 시가 되었으며, 1885년 캐나다 태평양철도가 완성됨으로써 프레리의 중심도시가 되는 기초가 다져졌다. 서쪽에 봄밀지대가 펼쳐져 있어 세계 굴지의 거대한 밀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밀 저장고, 제분공장, 도살장, 고기통조림공장 등 농축산물과 관계있는 시설이 많다. 그 밖에 자동차, 농업기계, 의복, 종이제품 등의 제조도 활발하다. 도시는 문화의 중심지이며 로얄 위니펙 발레와 위니펙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발생지이다. 위니펙의 역사적 건물들과 아름다운 운하, 오래된 강, 아시니보인 공원을 포함한 수많은 공원, 그리고 특유의 이웃들은 도시의 자랑거리이다. 위니펙은 레드 리버와 아시니보인강을 가로지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스케이팅 링크를 가지고 있다는 타이틀을 주장하고 있다. 도시는 지리학적으로 레드리버와 아시니보인강이 합류하는 북아메리카의 중심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행사나 전시회가 벌어지고 쇼핑, 스케이팅, 식당 및 여행 등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매니토바대학교, 매니토바농과대학교 등의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캐나다 태평양철도와 캐나다 국영철도가 교차하는 동서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국경을 넘어 미국과 통하는 철도의 중심지이다. NHL 아이스하키의 위니펙 제츠와 아마추어 축구팀인 월드 사커 아카데미 위니펙 팀의 연고지이다.[2]

명칭

도시 이름 위니펙(Winnipeg)은 인근의 위니펙호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위니펙 호수의 이름은 해당 지역의 원주민 언어인 크리어(Cree)에서 해당 호수를 부르던 '윈니페'(ᐏᒼᓂᐯᐁ, winipīhk)에서 유래하였다. 윈니페의 뜻은 흙탕물로서, '흐리다'라는 뜻의 윈(ᐏᒼ)과 '물'을 뜻하는 니페(ᓂᐯᐁ)로 구성된 복합어이다.

지리 및 기후

위니펙은 캐나다에서 다섯 번째로 크고 세계에서는 11번째로 큰 호수인 위니펙호 및 매니토바 호수나 우드 호수를 포함해 수백 개의 호수를 근처에 두고 있다. 위니펙 호수는 남부 캐나다의 경계 안에서는 가장 큰 호수이며, 이 호수의 동쪽 편에는 자연 그대로의 캐나다 순상지와 강이 있다. 도시는 지리학적으로 레드 리버와 아시니보인 강이 합류하는 북아메리카의 중심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행사나 전시회가 벌어지고 쇼핑, 스케이팅, 식당 및 여행 등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기후는 캐나다 대초원 지역의 내륙에 있는 도시답게 엄청난 연교차를 자랑하며,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캐나다 대도시들 중에서도 북미 격해도가 아주 높아 겨울은 가장 춥고 여름은 가장 더운 매우 높은 연교차를 보여준다. 일단 추위는 북아메리카의 어떤 도시와 견주어보아도 살벌한 축에 속하는데, 훨씬 북쪽에 있는 에드먼턴보다도 압도적으로 훨씬 추운 곳이며 무려 하얼빈시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춥다. 1월 평균기온은 -16.4°C. 최난월인 7월에는 아침 기온과 저녁 기온이 차이가 많이 난다.

최고로 더울 때는 30°C 초반부터 30°C 중반까지 올라가지만 밤이 되면 다시 시원해진다. 습하지는 않지만 건조한 편이고 지대가 높아서 햇살이 아주 뜨겁다. 하지만 위니펙에 봄이라는 계절은 찾아보기 힘들다. 12달 중에 9월 말부터 4월 말까지 8달 정도가 겨울이고 4월 말부터 5월까지 1, 2주간의 그리고 4달 정도가 여름이다. 10월~11월부터 눈이 오기 시작하고 5월 쯤에 따뜻해지면서 꽃이 아주 잠깐 개화한다. 그러나 최한 기간인 겨울이 너무 길고 봄, 가을이 거의 없어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겨울에 영하 20~30°C는 기본이고 최고로 추울 때는 체감온도 영하 50°C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 그래서 스노우 블로어 없으면 다니기 힘들다. 악명 높은 강추위와 폭설이 잦은 겨울 기후로 인해서 캐나다 전국을 통틀어서도 독보적인 기후 패턴을 지니고 있어서 별명이 윈터펙(Winterpeg)이다. 호수와 강물 등 풍부한 수원지들을 바탕으로 모기가 창궐하기 좋은 환경이라 그런지 여름철 모기들의 개체수도 엄청나게 많다.

역사

위니펙은 아시니보인강(Assiniboine)과 북쪽의 레드 리버강(Red River)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유럽인과 접촉하기 전에 원주민이 여행한 카누 노선의 교차로에 있었다. 지역의 최초 정착 연대 추정치는 현재 도시 남서쪽 유적지의 경우 11,500년 전부터 6,000년 전까지 다양하다. 1805년에 캐나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레드 리버강을 따라 농업 활동에 참여하는 원주민을 보았다. 강은 미주리강과 미시시피강을 따라 북부 원주민과 남부 원주민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교통망을 제공했다. 오지브웨족은 자작나무 껍질에 최초의 지도 중 일부를 만들었고 이는 모피 상인들이 해당 지역의 수로를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시우르 드 라 베렌드례(Sieur de La Vérendrye)는 1738년에 이 지역에 포트 루즈(Fort Rouge)라고 불리는 최초의 모피 교역소를 건설했다. 프랑스가 7년 전쟁에서 패배한 후 영토를 양도한 후 영국 허드슨 베이 회사가 도착하기 전까지 프랑스 무역은 수십 년 동안 이 장소에서 계속되었다. 사냥꾼이었던 많은 프랑스 남성은 원주민 여성과 결혼하고 그들의 혼혈 아이들은 그 지역에서 사냥하고 거래 및 거래를 하면서 살았다. 그들의 후손은 메티스족(Métis) 으로 알려졌다.

셀커크(Selkirk) 경은 최초의 영구 정착지는 허드슨 베이 회사로부터 토지 구입하여 19세기 초 강 부지 조사에 참여했다. 노스 웨스트 회사는 1809년에 지브롤터 요새를 건설했고 허드슨 베이 회사는 1812년에 현재의 위니펙 지역에 더글러스 요새를 건설했다. 두 회사는 무역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메티스와 셀커크 경의 정착민들은 1816년 세븐 오크스 전투에서 싸웠다. 1821년에 허드슨 베이와 노스 웨스트 회사가 합병되어 오랜 경쟁이 끝났다. 지브롤터 요새는 1822년에 개리 요새로 개명되었고 허드슨 베이 회사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1826년에 홍수로 요새가 파괴되었고 1835년까지 재건되지 않았다.

1869년에서 1870년 사이에 현재의 위니펙은 루이 리엘이 이끄는 메티스 지방 임시 정부와 캐나다 동부에서 온 새로운 사람들 사이의 갈등인 레드 리버 반란(Red River Rebellion)이 일어난 곳이었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가넷 월슬리(Garnet Wolseley) 장군이 파견되었다. 1870년 매니토바 법(Manitoba Act)에 따라 매니토바는 설립된 지 3년이 된 캐나다 연방의 다섯 번째 주가 되었다. 도시와 주변 지역 대부분을 포괄하는 조약 1은 1871년 8월 3일 왕실 대표와 브로큰헤드 오지브웨이, 사그킨, 롱 플레인, 페기스로 구성된 지역 원주민 단체에 의해 체결되었다. 1873년 11월 8일, 위니펙은 셀커크 정착촌을 핵심으로 하는 도시로 통합되었다.

위니펙은 1881년 캐나다 태평양 철도(Canadian Pacific Railway)가 건설된 이후 빠르게 발전했다. 1911년까지 위니펙은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그러나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자 도시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 운하는 국제 무역에서 캐나다 철도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다. 해운 교통량의 증가는 밴쿠버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번영과 인구 측면에서 위니펙을 능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19년 5월 위니펙 총파업으로 알려지게 된 30,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직장을 그만두었다. 파업은 전후 경기 침체, 노동 조건, 노조 조직자들의 활동,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돌아온 군인들의 대규모 유입의 산물이었다. 수많은 체포, 추방, 폭력 사건 이후 파업은 폭동법이 낭독된 1919년 6월 21일에 끝났다. 1929년 주식 시장 붕괴와 대공황은 가뭄과 낮은 농산물 가격으로 인해 악화된 광범위한 실업을 초래했다. 대공황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후 끝났다.

홍콩 전투에서 위니펙 척탄병대는 일본과의 전투에 참여한 최초의 캐나다군 중 하나였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대대원들은 포로로 잡혀 전쟁 포로수용소에서 잔인한 대우를 받았다. 1942년 승리 대출 캠페인(Victory Loan Campaign)은 유럽 전쟁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나치의 위니펙 침공을 모의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억눌린 수요는 주택 개발 붐을 일으켰지만, 1950년 레드강 홍수로 인해 건축 활동이 중단되었다. ​​연방 정부는 피해액을 2,6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산했지만, 주정부는 그 피해액이 그 두 배 이상이라고 밝혔다. 홍수로 인한 피해로 인해 당시 총리였던 더프 로블린(Duff Roblin)은 건설을 지지하게 되었다.

1972년 이전에 위니펙은 레드강과 아시니보인강 주변 대도시 지역의 13개 도시와 마을 중 가장 큰 도시였다. 1960년에는 대도시 지역의 서비스 제공을 조정하기 위해 광역 위니펙 메트로폴리탄 공사(Metropolitan Corporation of Greater Winnipeg)가 설립되었다. 위니펙과 그 주변 자치단체를 통합하는 통합 대도시 유니시티 정부는 1971년 7월 27일에 설립되어 1972년에 발효되었다. 위니펙 시법은 현재의 도시를 통합했다. 2003년에 위니펙 시법은 폐지되고 위니펙시 헌장으로 대체되었다. 도시는 1997년 레드강 홍수와 2009년, 2011년 홍수 위협을 받았다.[3]

경제

위니펙은 전통적으로 매니토바주 자체에서 산출되는 대량의 곡물을 기반으로 농업물자의 집산지 역할을 해왔으며, CP와 CN등의 화물철도망이 무조건 관통하는 대륙 정중앙의 입지이자 서부로의 관문역할을 하는 허브도시로서의 이점을 살려 대규모로 공장을 설립하고 제조업 중심지 역할또한 장기간 수행해온 도시이다. 전통적인 농경지 매니토바의 최대도시인 만큼 농업분야와도 연관점이 당연히 있는데, 미국의 글로벌 곡물메이저 회사인 카길의 카길 캐나다 본사도 위니펙에 소재하고 있다. 종자연구와 식량 분야에서 또다른 대부격인 몬산토의 오피스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몬산토가 독일의 바이엘 주식회사에 인수되고 몬산토 브랜드가 폐기됨에 따라 몬산토 위니펙 오피스의 명칭도 Bayer CropScience 로 변경되었다. 카길, 바이엘 이외에도 타 농업기업들의 본사나 지사 등이 많이 위치하고 있다.

오일머니로 잭팟이 터지고 급격하게 위니펙을 추월한 앨버타의 캘거리,에드먼턴이나 캐나다 태평양권 최대 거점도시인 밴쿠버 등에는 오늘날 규모면에서 미치지 못하지만 위니펙은 여전히 캐나다 중부 거점도시로써 독자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고, 지역내 풍족한 농업생산량과 다양한 산업체들의 유치를 통해 상당히 안정적인 경제여건을 갖추고 있다.

견고한 1,2차 산업 펀더멘털과 맞물리는 매니토바주의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통해서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쉬운 이민 난이도를 노리고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바탕으로 소비인구와 소비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 3차산업 또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선순환을 장기간 지속해오고 있다. 위니펙은 2012년 KPMG가 '캐나다 서부에서 사업비용이 가장 적게드는 도시'로 선정했는데, 메이저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매니토바주의 임대비용과 평균 임금 등이 주요 이유였다. 캐나다 전국 10대 보험사중 하나인 와와네사 보험의 본사도 위니펙에 소재하고 있다. 재산, 자동차, 생명 보험 등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을 주로 다루는 보험사이며 기업보험을 운용하는 자회사도 있으며 로컬 보험사치곤 규모가 꽤 되는 회사라 캘리포니아, 오리건, 미시간 등 미국 일부 주들에서도 영업망을 갖추고 있다.

인구

2023년 기준 위니펙과 인구, 면적, 인구밀도가 모두 가장 비슷한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는 경기도 남양주시이다. 통계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도시에 매년 12,000~13,000명의 새로운 주민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도시의 성장률은 안정적이었지만 2005년 경에는 약간 감소했다. 그럼에도 2006년에 바로 반등하며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인구가 다시 증가하였고 대침체에도 위니펙은 전국 인구 증가율을 능가하여 매년 1.5% 씩 증가하는 등 멈추지 않는 성장세를 보이며 저력을 나타냈다. 이후로도 꾸준히 경기를 타지 않고, 안정적인 경제에 힘입어 도시는 안정적인 인구 성장률을 보여오고 있다. 보고서에 따라서는 2033년 혹은 2035년에 이르면 캐나다의 7번째 인구 100만 도시권 지위를 획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매니토바는 언덕조차도 보기 힘든 평탄한 대평원으로 유명한 만큼 위니펙도 평야의 한복판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점을 활용하여 폭발적인 인구 유입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용력을 보여주고 있다.[4]

지도

동영상

각주

  1. 위니펙〉, 《위키백과》
  2. 위니펙(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위니펙〉, 《요다위키》
  4. 위니펙〉,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

북아메리카 국가
카리브제도 국가
북아메리카 도시 1
북아메리카 도시 2
북아메리카 지리
북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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