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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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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東大門)
흥인지문 야경.
1904년의 모습.
일제시대의 동대문.

동대문(東大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인 동쪽 문 흥인지문(興仁之門)을 뜻하는 속칭이다. 숭례문과 함께 한양도성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흥인지문은 조선 초기부터 불린 이름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처음 지어졌다. 1453년(단종 1년)과 1869년(고종 6년)에 고쳐 지었다. 본래 흥인지문은 동대문구에 속했고 구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되었으나, 수차례 행정구역이 조정되면서 지금은 종로구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은 왕이 사는 집(家)인 경복궁(景福宮)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대문을 지었는데 그중 동쪽에 위치한 문이 흥인지문이다.

역사[편집]

흥인지문은 일대의 지반이 낮아 땅을 돋운 뒤 건설하여야 해서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을 건립할 때에도 공사 중이었으며, 1398년(태조 7년)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 때의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이었다. 1451년(문종 1년) 3월에는 도성을 고쳐 쌓은 뒤 기한이 남아, 흥인지문을 혜화문과 더불어 수리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본격적인 흥인지문 정비를 시작하여, 1453년(단종 1년) 5월에 완료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년)에는 발인 때 상여가 나가기가 쉽게 하기 위하여, 국장도감에서 건의한 대로 흥인지문의 박석을 파내려갔다. 1868년(고종 5년)에는 흥인지문이 크게 손상되었기에 의정부에서 그 수리를 요청하였다. 이듬해 3월에 중수를 끝냈다. 이 즈음 풍수지리에 따라 한양 동쪽의 지기가 약하다고 하여, 그 기운을 북돋기 위하여 특별히 지(之)자를 넣어 넉 자로 이름을 고쳤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흥인지문의 현판은 4대문 중 유일하게 4글자,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1907년(고종 44년) 3월에는 흥인지문과 숭례문의 좌우측 성벽을 8칸씩 헐어 전차 선로를 부설하였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 1호로 지정되었는데, 이것이 흥인지문을 숭례문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지나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상징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1999년에는 옹성이 붕괴되어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3억여원을 들여 보수하였으나, 옹성 아랫부분이 튀어나오는 '배부름 현상'이 일어나 재시공을 결정하였다.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지하수위가 낮아지고 지반이 침하되었으며, 2002년 12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옹성을 해체하여 지반 보강 후 복원하였다. 2015년에는 도로를 내면서 끊어진 문 북쪽의 도성 자리에 석재를 포장하는 공사가 이루어졌다.

특징[편집]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식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조선 초기의 양식인 숭례문과 다르게 흥인지문의 누각은 조선 후기의 양식이다. 석축 역시 숭례문에 비하면 보다 실전적으로, 반달형의 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이유인 즉, 흥인지문이 경복궁에서 볼 때 좌청룡으로 동쪽에 있는데, 경복궁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주산 현무봉인 북악산과 우백호인 인왕산, 그리고 안산인 남산이 높고 큰 것에 비하여 좌청룡인 낙산은 낮고 약하기 때문에 한양은 동쪽이 약해 동쪽 방향에 있는 외적의 침입을 많이 받는다고 봤다. 이 약한 기를 보충해주기 위해서 군사적 목적이 아닌 풍수적 목적에 의해 옹성을 쌓은 것이다.

또한, 대문과 소문을 막론하고 한양도성에 존재하는 다른 문의 명칭은 세 글자로 되어있지만(숭례문, 돈의문, 숙정문, 혜화문, 광희문 등) 흥인지문만 유일하게 네 글자와 정사각형 현판으로 되어있다. 이는 한양 동쪽 다른 삼면에 비해 물이 흘러나가므로 전체적으로 토대가 우묵하게 낮아 지기가 약하다는 이유로 그 기운을 북돋는다는 의미에서 이름에다 어조사 지 (之)를 집어넣어 넉 자로 지었던 것이다.

주변[편집]

동대문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흥인지문 주변 지역. 종로구와 중구 일대에 있다.

흥인지문 남쪽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주변으로는 주로 동대문시장이라고 불리는 동대문 패션타운 관광특구가 위치해있다. 과거엔 한국에서 오래된 경기장인 동대문운동장이 이곳에 있었으나, 시설 노후화로 2007년에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DDP가 새로 건설되었다.

흥인지문 동쪽의 동대문역과 동묘앞역 사이에는 동대문 문구완구거리와 애완동물 동호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청계천 열대어 상가가 존재한다. 수족관, 청계천 문서 참조. 1999~2000년 청계천 복원공사 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남았다.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국립중앙의료원 사이에는 작게나마 러시아 거리가 있다. 간판에서 키릴문자를 쉽게 볼 수 있고,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마트나 식당을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크고 아름다운 빵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파는 곳이 많다.

사건사고[편집]

2018년 3월 9일 새벽 1시 49분경 40대 남성이 흥인지문의 누각에 몰래 침입하여 미리 준비한 종이박스에 불을 붙였으나, 다행히 흥인지문은 담장 일부가 그을리는 데에 그치고 방화범은 당일 체포되었다. 흥인지문은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동묘, 창의문, 경교장 등과 함께 종로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기타 의미[편집]

  • 동아시아 유교식 도성제에 따라 지은 나성의 동쪽 대문을 이른다.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 중 하나이다.
  • 한국사에서 유명한 동대문은 고려, 조선 왕조의 동대문이다.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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