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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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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석정(叢石亭)
총석정(叢石亭)
총석정 일대 주상절리
총석정 일대 바위기둥들
동해명승 총석정의 아침

총석정(叢石亭)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북) 통천군 통천읍 동해 해안선과 금강산의 북쪽 있는 명승이다. 총석정이라는 말은 이들 가운데 세워진 정자를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바위기둥들과 절벽을 일컫는다. 관동팔경 중 1위에 속해 있다.

신라시대에 있는 경색이며 현재 북조선의 제13호 명승지와 제214호 천연기념물이다.

개요[편집]

총석정은 강원도 (북) 통천군에 있는 천연기념물이다. 총석정은 통천어항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학술적 가치가 있고 빼어난 자연 풍경을 이루고 있으므로 1982년 12월 25일 국가자연보호연맹에 의해 천연기념물 제214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되고 있다.

절벽은 6각, 8각 주상(柱狀)의 현무암틈새구조가 수직 또는 약간 경사진 상태로 되어 있다. 이것이 풍화와 해식작용을 받으면서 마치 바다 위에 돌기둥을 묶어세운 듯 절벽으로 되어 있다. 돌기둥과 절벽들은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하게 생겼다. 수십 수백 개의 돌기둥은 빽빽이 들어서 있으며 그 생김새에 따라 입총, 좌총, 와총으로 나눈다. 그 사이에는 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있다. 총석정 주변의 바다에는 전복, 해삼, 숭어, 삼치, 문어, 임연수어, 도미 등의 집중 서식지로 되고 있다. 그리고 사철 푸르게 자라는 소나무들이 있어 풍치가 더욱 아름답다.

이전부터 주민들은 현무암으로 된 돌기둥을 총석이라 불러왔고 그 이후에는 총석고개의 마루에 있던 정자의 이름을 따서 총석정이라 하였다. 총석정의 절벽과 바위 하나하나는 너무도 신기하고 아름다우며 동해의 풍치를 뛰어나게 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사람들은 총석정을 '통천금강'이라고도 하였다. 특히 총석정에서 동해의 아침 해돋이 구경은 그야말로 황홀하기 그지없다.

상세[편집]

총석정(叢石亭)은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 총석리 바닷가에 있는 누정이다. 예로부터 빼어난 경치로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한 곳으로 유명하였으며 그중에서도 총석정이 가장 으뜸으로 꼽혀왔다. 관동팔경은 통천의 총석정,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삼척죽서루(竹西樓), 강릉경포대(鏡浦臺), 평해의 월송정(越松亭), 울진의 망양정(望洋亭)이다. 여기에 흡곡의 시중대(侍中臺)와 고성의 해산정(海山亭) 등을 포함해 관동십경(關東十景)이라 칭하기도 한다. 대관령의 동쪽이라 하여 '관동'이라는 말이 붙여졌지만, 현재는 망양정과 월송정이 경상북도에 편입되었고, 삼일포·총석정·시중대는 북한지역에 속해 있다.

본래 강원도의 동해안 지방에는 명승지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이들 팔경 지역에는 정자나 누대가 많아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노래로 읊었으며, 또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전설이 전래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신라의 술랑(述郞)·남랑(南郞)·영랑(永郞)·안상랑(安詳郞)의 네 선도(仙徒)가 이곳 총석정에 와서 놀아 이곳의 네 개의 바위기둥을 사선봉(四仙峰)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화랑들이 이곳에 와서 놀았던 일을 글로 써서 정자 옆 비석에 새겨 놓았다고 하나 지금은 비문이 닳아 그 내용을 알아볼 수 없다고 한다.

총석정이라는 정자 명은 바다 위에 빽빽이 솟아 있는 돌기둥 위에 세워진 정자라는 뜻이다. 한치윤(韓致奫:1765~1814)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의하면 "수십 개의 돌기둥이 바다 한가운데 떨어져 있다. 돌기둥은 모두 6각으로 마치 옥을 깎아 놓은 것과 같이 모나고 곧아, 먹줄로 재어 깎은 것 같다."라고 하면서 "모두 4개의 정자가 바닷가의 총석을 바라다보고 있으므로 총석정이라 이름하였다."라고 정자 명의 유래를 밝혀 놓았다.

바다 위에 솟은 절벽과 바위들이 총총히 쌓여진 것처럼 보이는 총석(叢石)들은 사실은 바다에서 솟은 현무암 용암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그 면들이 갈려져 떨어지면서 6각형 혹은 8각형 등 여러 가지 모양의 돌기둥을 이룬 주상절리이다. 총석들은 그 생김새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뉘는데, 바다로 향하여 오른쪽에 좌총(坐叢), 왼쪽에 와총(臥叢), 그 사이에 입총(立叢)이 있고, 주위에 묘하게 생긴 바위들과 돌기둥 위의 소나무가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총석정은 원래 정자 이름이었는데, 이 일대의 바위들을 일컫는 말로도 통하기도 한다.

총석정 주변의 절벽과 바위가 신기하고 아름다워 이곳을 '통천금강(通川金剛)'이라고도 하였다. 넓은 바다와 기묘한 바위기둥들, 그리고 이곳에서의 아침 해돋이 구경이 절경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러한 절경은 신선이 즐길 선경(仙景)으로 손꼽힘으로써 시인 문객들이 이곳을 찾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고려시대의 김극기(金克己)·안축(安軸:1282~1348), 조선시대의 성현(成俔:1439~1504)·이달(李達:1539~1612)·김창업(金昌業:1658~1721) 등 수많은 시인 문객들이 총석정을 찾아 절경을 예찬하였다.

정선의 총석정, 『신묘년 풍악도첩』(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특히 고려시대의 안축은 1330년(충숙왕 17)에 49세 때 강원도존무사(江原道存撫使)로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관동지방의 뛰어난 경치와 유적 및 명산물에 대해 읊은 경기체가 「관동별곡(關東別曲)」 제3장에서 총석정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있다. 조선시대 정철(鄭澈:1536~1593)도 1580년(선조 13) 45세 때 강원도관찰사에 부임하여 내금강·외금강·해금강과 관동팔경 등을 유람하며 그 감흥을 가사 「관동별곡(關東別曲)」으로 노래하였는데, 그중 3단에서 총석정의 풍광에 대해 읊고 있다. 총석정은 관동팔경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장소였다.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농암집(農巖集)』에는 금강산 구경을 온 그가 금강산을 유람 후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간성군수가

"관동의 팔경을 두루 다 구경하지는 못하더라도 총석정, 삼일포 같은 곳은 단 며칠이면 되니 꼭 들러 볼 것"

을 권유하고 있다. 총석정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군민 김영제(金暎濟)가 중수한 바 있으며, 장홍식(張鴻植)이 지은 찬기(撰記)와 근대의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8~1933)이 쓴 '총석정(叢石亭)'이라는 현판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의 많은 화가들도 총석정의 절경에 매료되어 많은 그림을 남겼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은 금강산을 여행하며 또한 청하(淸河:포항의 고지명) 현감(縣監)으로 재직할 때 관동 지역을 유람하며 총석정의 절경을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정선은 1711년(숙종 37) 36세 때 스승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제자들을 데리고 금강산을 유람할 때 이에 동행하였다. 마침 1710년에 친구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1671~1751)이 강원도 금화현감(金化縣監)으로 부임해 와 있어 그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하였다. 금강산을 다녀온 후 정선은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이라 불리는 13폭의 그림을 남겼다. 이 그림 가운데 「총석정(叢石亭)」이 있다. 바다로 향한 절벽 위에 총석정이 서 있고 그 옆으로 네 개의 돌기둥이 우뚝 솟아 있다. 그림 속에 보이는 총석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 집이다. 정자 옆에는 비석이 놓여 있다. 총석정 건너편에는 환선정(喚仙亭)이 보이고, 멀리 천도(穿島)와 묘도(卯島)가 묘사되어 있다. 절벽을 때리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를 묘사하는 등 정선의 젊은 시절 그림답게 비교적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다음 해인 1712년 37세 때 정선은 이병연의 아버지 이속(李涑)이 그의 세 아들과 함께 금강산 여행을 떠날 때 같이 동행하여 2차 금강산 여행길에 올랐다. 이 여행에서 돌아와 정선은 30폭의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제작하였다. 이 그림 가운데 「총석정」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해져 오고 있지 않다. 정선이 1738년(영조 14)에 제작한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에 「총석정」이 수록되어 있다. 정선이 1721~1726년 사이에 청하현감으로 재임하였는데, 이때 친구 이병연이 삼척부사로, 이병연의 동생 이병성(李秉成:1675~1735)이 간성(杆城:고성의 옛 지명)의 군수로 재임하였다. 정선은 이들과 함께 청하, 삼척, 간성 등 동해안 일대 관동의 명승을 여행하면서 그곳 풍경을 사생해 두었다. 그 후 63세 때인 1738년에 사생해 두었던 그림을 보고 다시 그림을 그려 11폭으로 된 『관동명승첩』이라는 화첩으로 꾸몄다.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 1747년 72세의 정선은 다시 금강산 여행을 떠났는데, 이 여행 후 『해악전신사생첩』(개인 소장)을 제작하였다. 세 번째 금강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1712년 제작한 『해악전신첩』 30폭 중 21폭을 다시 그려내었다. 여기에도 「총석정」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755년 정선이 80세에 그린 「총석정」 그림이 정선의 그림을 모은 『백납병풍(百衲屛風)』 24폭 가운데 하나로 수록되어 있다. 정선의 완숙미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밖에도 연대 미상의 「총석정」 그림이 있는데, 개인 소장이다.

이인문 총석정(사진출처:한국데이터진흥원)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도 총석정에 관한 그림을 수 점 남기고 있다. 김홍도가 1788년(정조 12)에 정조의 어명으로 그린 화첩인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에 「총석정」이 실려 있다. 『금강산화첩』은 김홍도가 44세 때 김응환(金應煥:1742~1789)과 함께 금강산과 관동팔경 지역을 여행하고 그린 것이다. 김홍도는 여행에서 그려 온 초본(草本)에 따라 화첩본(畵帖本, 5권 70폭)과 채색횡권본(彩色橫卷本) 두 가지를 그려 정조에게 진상하였다. 이 그림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1795년에도 『을묘년화첩』이라 불리는 화첩에 김홍도의 「총석정」이 그려져 있는데, 삼성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동팔경 그림은 양반 문인들뿐만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유행하여 병풍이나 민화로도 많이 그려졌다. 조선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관동팔경도(關東八景圖)』는 관동의 명승지 팔경을 그린 병풍 그림이다. 여기에도 「총석정」이 그려져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후기 문인 허필(許佖:1709~1761)이 그린 병풍 그림 『관동팔경도병(關東八景圖屛)』에도 「총석정」이 그려져 있는데,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되어 있다.

이밖에도 이인문(李寅文:1745-1821), 정수영(鄭遂榮:1743∼1831), 이재관(李在寬:1783~1837), 김하종(金夏鍾:1793~?), 김규진 등이 그린 총석정 그림이 있다. 특히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는 1920년에 그려져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에 부착된 벽화로, 총석정의 파노라믹한 절경을 전통 궁중 화법에다 근대적 화법을 절충하여 그려 놓았다.

관광[편집]

총석정은 절벽과 바위모양 하나하나가 기기묘묘한 자태를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관동8경의 하나로, 우리 나라의 이름난 바다가 명승지로 되어왔다.

바다 기슭을 따라 늘어서 있는 모난 돌기둥의 자세가 제 각각인데 곧바로 서 있는 것은 입총, 앉아있는 모양은 좌총, 누워있는 모습은 와총이라고 한다.

총석정의 돌기둥들이 무리로 또는 하나씩 바닷물속에 뿌리를 박고 선 모양이 하도 기묘해서 옛날 석공들이 오랜 기간 다듬어서 더러는 묶고, 더러는 몇개씩 세워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네명의 신선이 놀고 갔다는 사선봉, 총석정의 돌기둥을 베어 용궁까지 다리를 놓으려다 그 아름다움에 끌여 그만두었다는 돌다리, 의좋게 서 있는 부부암과 거북바위 등 여러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치[편집]

  • △총석정의 해돋이와 은빛색의 달빛으로 물들여진 총석정의 밤경치
  • △총석정 벼랑에 둥지를 틀고있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날아드는 풍경
  • △눈서리와 세찬 바다바람을 이겨내며 바위틈에 억센 뿌리를 내리고 사철 푸르싱싱하게 자라는 소나무들
  • △세차게 밀려오는 물결이 돌기둥에 부딪쳐 수천갈래의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

한편, '돌묶음'이란 뜻의 '총석'은 화산작용으로 분출한 현무암이 냉각되면서 6각, 8각으로 쪼개진 후 오랫동안 바닷물과 비바람에 침식되어 만들어진 돌기둥으로, 이 일대에는 6각, 8각의 현무암 기둥이 바닷가를 따라 1,000m 구간에 늘어서 있다.

총석정에 솟아있는 좌총과 입총, 와총을 빠짐없이 보려면 총석정 정각에 오르는 것도 좋지만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것이 제멋이다.

조선국제여행사가 1박 2일 코스로 시중호-총석정 관광을 시작했다는 것, 원산-금강산관광도로를 따라 50km 정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바닷가 호수인 통천군 시중호에서 소나무숲을 따라 남쪽으로 7km를 더 내려가면 총석정에 도착한다.

동해에서 잡히는 광어, 낙지(오징어), 명채, 대구, 이면수, 가재미와 연해에서 나는 굴, 섭(홍합), 대합, 밥조개, 문어, 해삼, 갈미조개, 전복, 왕새우 등 해산물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총석정은 근로자들의 문화휴양지로 활용하고 있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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