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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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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광장의 전경 (대동강구역에서 본 모습)
김일성광장의 전경(인민대학습당에서 본 모습)
김일성 광장의 모습
김일성광장 주석단 아래에 게시된 김씨 3부자 사진.
2017년 4월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일성 주석의 105번째 생일(태양절)을 맞아 열병식이 진행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일성광장(金日成廣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에 위치한 중앙광장으로, 대동강의 서쪽에 있으며, 인민대학습당이나 대동강을 통해 주체사상탑을 마주 보고 있다. 한국 전쟁으로 완전히 피폐해진 평양을 다시 개발, 대대적인 수리 작업에 들어가며 처음으로 설계되었다. 1954년 8월에 착공되었고, 그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한 김일성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다. 면적은 75,000m²로, 약 10만 명에 달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으며 세계에서 37번째로 큰 광장이다. 광장 바닥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 광장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제, 집회, 정치 문화 활동, 군사퍼레이드 등이 이루어지는데, 김일성광장과 관련된 장면은 외국 방송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내용이 등장할 때에 사용되기도 한다. 광장 중앙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2020년 2월부터는 김정은 초상화도 같이)가 전시되어 있다. 2012년까지는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의 초상화가 전시되었다.

특징[편집]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처럼 북한을 상징하는 광장으로, 면적은 75,000㎡이며 바닥은 화강암으로 되어있다. 6.25 전쟁의 전후 복구 과정에서 1954년 8월 완공되었으며, 건설에 연인원 100만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한 때 일본어 위키백과에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광장이라고 되어 있었으나, 영어 위키피디아의 세계의 광장 목록을 보면 54위에 불과하다.

명칭은 당연히 북한의 초대 독재자인 김일성에서 따온 것이다. 처음 이름은 중앙광장이었으나 언젠가부터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김일성광장으로 바뀌었다.

광장 바로 뒤편으로는 대동강이 흐르고 있으며, 주체사상탑이 강 맞은 편에 있다. 그 외에 대주석단, 인민대학습당, 내각종합청사, 외무성 청사, 대외경제성 청사, 조선중앙력사박물관, 조선미술박물관, 평양제1백화점 등 중요 시설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여러모로 소련의 붉은 광장을 본따서 만든 듯하다. 승리거리, 대학습당거리 등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보조광장도 있다고 한다.

자칭 국가의 중앙광장이다 보니 각종 군중대회, 정치적 행사, 경축회, 추모행사 따위를 하는데, 북한이 자주 하는 열병식도 이 광장에서 한다. 때문에 남한과 세계 각국의 TV 뉴스에서도 북한 관련 보도를 할 때마다 자료화면으로 이 장소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큰 인공기가 보이는 건물 옆으로 탱크가 지나가고, 북한군이 열병식을 하고 김정은 등 조선로동당 및 국방성 고위간부들은 맞은편 건물에서 박수치는 그런 모습. 이 광장의 다양한 활용 모습을 보고 싶으면 열병식/북한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또한 이 광장은 1996년 북한 도로망의 출발점인 도로원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정확히는 대주석단 바로 아래 쪽이라고 하는데, 이 곳에 '평양 나라길 시작점'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1990년대 초 이전에는 평양 중구역 중성동 승리거리의 해방산려관 앞마당, 그 후 1996년까지는 평양 중구역 평양성 중성 출입문 중 하나인 함구문이 도로원표였으나, 김정일의 지시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최근 북한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방역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정권수립 73주년 열병식을 강행한 가운데 광장 우측의 선전문구가 '백전백승의기치'에서 '새로운 승리를 향하여' 로 바뀐것이 영상상으로 확인되었다.

통일후 전망[편집]

김일성광장에 위치한 인민대학습당 등은 비록 실패한 공산주의의 유산이지만 역사의 장으로서 미래의 '유네스코 문화유산'과도 같은 자산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통일 후 북한에 자본주의가 도입되면 김일성광장 등의 이념을 상징하는 공간들이 투자가치에 따라 '소비 공간'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0년대 말 공산주의 몰락 후 동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한 급격한 물리적 변화가 일어났다. 주거지·공원·광장 등으로 구성된 도심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공공재적인 성격을 잃어가면서 급격히 개발됐다.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의 인민궁전(Casa Poporului)이 대표적 사례다.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는 김일성과 의리로 맺어진 사이였다. 차우셰스쿠는 1971년 방북 당시 평양에 매료돼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를 개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른바 '체계화'(Systemization)라 불린 이 ‘사회공학기획’(Social Engineering Project)은 루마니아 전 국토를 현대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시작됐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수백만명의 원주민들이 강제 퇴거당했고, 이들의 주거지는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아파트 단지로 강제 철거 후 재개발 됐다. '동유럽의 파리'라 불리던 수백년 역사의 부카레스트는 거대한 공터로 몰락한 것이다.

부카레스트 시민들은 이 거대하고 흉측한 '애물단지' 건물을 철거하지도, 애착을 보이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큰 이 대형 건축물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공산주의박물관, 편의시설 등으로 이용된다. '공산주의 체험관광' 명소가 된 것이다.

서울의 경우 언론사, 박물관, 호텔 등이 늘어선 세종로나 본래 비행장 활주로로 건설된 후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한 여의도광장은 김일성광장의 미래를 그려보는 예시가 될 수 있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의 저자인 임동우 건축가는 김일성광장 지하와 주변을 코엑스와 같이 컨벤션센터, 호텔, 쇼핑시설 등의 복합쇼핑몰로 개발하는 안을 제시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도시들은 민의와 분리된 '대의민주주의', 적자생존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무기력한 시민사회와 지속불가능한 자연환경 등 구조적인 문제들에 직면해있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통일 후 평양이 '화석화된 신화의 도시' 이미지를 벗고 활력 넘치는 '인간의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 주민들의 소통을 활성화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남북간에 공동체운동을 통한 각종 학술문화행사 개최, 서울과 평양 사이의 상징건축물 교환 및 상징로 건설, 지방자치단체 교류 등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변 교수는 광주가 5.18 민주화운동을 통해 '인권도시'로 탈바꿈했고,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히로시마가 ‘평화’를 상징하게 된 것처럼 평양도 과거 공산주의 유산을 넘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 후 참여민주주의, 사회적 경제, 환경보존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도시’ 평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제안이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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