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다드후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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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다드후아레스(스페인어: Ciudad Juárez)는 멕시코 치와와주에 속하는 국경도시이다. 치와와주 최대의 도시로 인구는 약 130만 명이다. 리오그란데강을 끼고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멕시코 북부의 중심지이며, 미국접경지대의 관문으로서 교통의 요지이며 공업지대가 밀집하여 있다.[1]
개요[편집]
시우다드후아레스는 멕시코 북부,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도시로서 국경 너머 미국의 엘패소와 마주하여 규모는 270만 명에 이르는 연담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티후아나와 함께 마킬라도라 산업이 발달한 대표적인 도시로, 멕시코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이다. 철도의 연락지점이어서 중계무역지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며 미국으로부터는 관광객이, 멕시코로부터는 노무자의 출입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시 남동쪽의 낮은 지대에서는 집약적인 농업이 성하며, 엘패소의 질서정연한 고층건물이 늘어선 가로에 비하여 아도베(흙벽)와 어린이가 많은 혼잡한 도시이다. 본래 이름은 엘파소델노르테(El Paso del Norte, 북방의 통로)였으며 북쪽의 엘패소도 멕시코 영토로서 한 동네였는데 북쪽은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인해 미국 땅이 되었고,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리오그란데강은 그대로 미국과 멕시코간의 국경이 되었다. 이후 남쪽 시가지는 1888년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 前 멕시코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개칭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공장이 진출함에 따라 급격한 인구증가를 보이고 있다. 공권력을 사실상 포기한 무법천지에 가까운 도시이며 군벌들이 시도때도 없이 공무원을 참수하기로 악명높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시우다드후아레스는 치와와주 제1의 도시로 치와와주와 미국의 텍사스주 사이에 위치한 국경도시이다. 북쪽에서 가까운 미국에는 텍사스주 엘패소(El Paso)가 있다. 예전에는 이곳을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의 파소델노르테(Paso del Norte)라고 불렀다. 시우다드후아레스와 미국 엘패소의 시가지는 미국의 콜로라도고원과 로키산맥이 멕시코 쪽으로 이어지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높은 봉우리들이 도시 주변에 솟아 있다. 시가지의 북서쪽으로는 2,192m의 프랭클린(Franklin) 산(미국)이 솟아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시에라데후아레스 산(Sierra de Juárez)이 자리 잡고 있다. 시에라데후아레스의 봉우리인 세로볼라(Cerro Bola)의 높이는 1,800m 정도이다. 시가지의 동쪽은 비교적 평탄하다. 리오그란데강이 시우다드후아레스와 엘패소 사이를 지나며 미국과 국경선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시우다드후아레스는 치와와 사막에 자리하고 있는데, 치와와 사막은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광활한 사막으로 멕시코의 치와와주와 미국의 뉴멕시코주, 텍사스주에 이른다.
시우다드후아레스의 연평균 기온은 약 15℃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254.2㎜로 건조 기후에 속한다. 해발 고도가 1,128m로 높아서 사막 지역인데도 기온이 크게 높지는 않다. 가장 더운 달인 6~8월의 평균 기온이 27~28℃이고, 가장 추운 12~2월의 기온은 7~9℃ 정도이다. 일교차가 매우 커서 여름에는 18~35℃, 겨울에는 –1~14℃이며, 낮과 밤 사이에 기온이 급변한다.
역사[편집]
식민 시기[편집]
시우다드후아레스는 1659년 건설되었으며, 당시 도시 이름은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파소델노르테(Paso del Norte)였다. 도시 이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시우다드후아레스는 로키산맥의 남부에서 북부로 향하는 경로를 개척하면서 세워진 도시였다. 에스파냐의 식민 시기에 북부 변경 지역의 주요 지점에는 선교 중심지, 즉 미션(misión)이 세워졌는데, 시우다드후아레스의 초기 정착지도 과달루페 성모 선교 중심지(Misión de Nuestra Señora de Guadalupe)에서 출발하였다. 초기 정착지는 현재 미국의 뉴멕시코주에 있는 도시 산타페(Santa Fe)와 치와와주 사이의 주요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독립 이후[편집]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atado de Guadalupe Hidalgo)에 따라 리오그란데강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선으로 설정되면서 시우다드후아레스 지역의 마을은 강을 중심으로 나뉘게 되었다. 강 북쪽의 구릉지에 있던 마을은 미국의 엘패소(El Paso)가 되었고, 강의 남쪽에 있던 마을은 멕시코의 영토로 남게 되었다. 엘패소와 시우다드후아레스에는 병영을 비롯한 군사 시설이 들어섰으며, 이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들어섰다. 1930년대까지는 엘패소와 티후아나 간에 인구와 물자의 이동이 자유로웠다. 시우다드후아레스는 1882년에 철도가 놓이면서 근대적인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은행, 전화, 전신 등의 시설들이 들어서고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시우다드후아레스는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iaz) 대통령의 자유 무역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발전하였으며, 카예델코메르시오(Calle del Comercio)에 새로운 상업 지구가 조성되었다. 이곳은 현재 빈센테 게레로(Vincente Guerrero) 지역이다.
시우다드후아레스는 전략적으로도 멕시코 북부의 국경도시 중 가장 주요한 도시였다. 1862년부터 1867년까지 프랑스가 멕시코를 점령한 기간 동안 멕시코 대통령인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는 북부 치와와 주로 정부를 옮겼으며, 이 기간 동안 시우다드후아레스는 멕시코 정부군의 주요 주둔지가 되었다. 이후 1888년에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을 기리며 도시 이름을 엘파소델노르테(El Paso del Norte)에서 시우다드후아레스(Ciudad Juárez)로 바꾸었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이 발발하자 판초 비야(Pancho Villa)를 비롯한 여러 혁명가들은 시우다드후아레스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는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얻는 관세 수입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혁명 기간 동안 시우다드후아레스의 시가지는 대부분 파괴되었고, 많은 도시민들이 피난을 갔다.
1919년 혁명이 끝난 이후 시우다드후아레스는 다시 관광업, 도박업, 경공업이 발달하면서 인구 증가가 이루어졌다. 1942~1964년에 미국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루어진 노동력 초청 프로그램인 브라세로 프로그램(Bracero Program)은 시우다드후아레스의 인구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브라세로 프로그램이 지속되는 동안 인구는 유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로 인하여 공공 서비스 및 주택의 부족 문제가 심화되었다. 이에 멕시코 정부는 1961년 국경 도시 지역에 대하여 국경 프로그램(Programa Nacional Fronterizo, PRONAF)에 착수하였는데, 목적은 국경 지역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확대하고, 국경 지역을 국가 경제의 한 부분으로 통합시키는 것이었다. 도시 경관을 정비하여 관광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국경 프로그램(PRONAF)으로 시우다드후아레스 시가지의 정비와 산업화가 추진되었으며,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브라세로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나서 멕시코 정부는 1965년에 멕시코 국경 지역을 마킬라도라(Maquiladora) 산업 지구로 지정하였다. 이후 시우다드후아레스는 ‘마킬라도라의 수도’라 불리며 티후아나와 함께 대표적인 마킬라도라 산업 도시로 발달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치안, 불법 행위 등 사회 문제가 증가함에 따라서 인구와 산업체가 빠져나가기도 하였다.[3]
치안[편집]
시우다드후아레스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떠올랐다. 1993~2003년에 발생한 여성의 연쇄 살인 사건만 1,000건이 넘었다. 피해 여성은 대부분 마킬라도라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젊은 여성들이었으며, 대부분의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시우다드후아레스는 위치적 장점 때문에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주요 경로이기도 하다. 멕시코의 거대 마약 조직의 근거지로, 마약 조직 간의 싸움뿐 아니라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멕시코 경찰 및 군대와의 충돌로 시가지 내의 폭력 사건이 빈발하였다. 2009년 이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공포를 느낀 시민들은 국경선 너머 미국의 엘패소로 이주하였기 시작하였다. 이 중에는 전 시우다드후아레스 시장의 가족, 언론인도 포함되어 있으며, 범죄 단체의 위협을 받아 미국 경찰에게 신변 보호를 요청한 이들도 있다.
치안 불안은 일상생활의 위험을 넘어서 시우다드후아레스를 비롯한 멕시코 북부 국경 도시의 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불안한 치안은 기업에게 사회적 문제를 넘어 직접적인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범죄 집단은 기업에게 일종의 상납금을 요구하였으며, 그에 따른 지출이 매달 4,000~8,000달러에 달하였다. 이에 지친 사업자들은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2010년까지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폐업을 한 기업의 수는 1만 개가 넘었다. 이로 인한 직간접적인 경제적 여파가 도시 전체에 미쳤다. 2010년경 도시를 떠난 사람의 규모가 23만 명에 이르고, 수많은 집이 버려졌다. 치안의 부재는 멕시코 정부가 브라세로 프로그램 종료 이후 50년 가까이 공을 들인 국경 지대의 산업화를 위협하는 요인이다.[4]
교통[편집]
시우다드후아레스와 엘패소를 가르는 리오그란데 강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놓여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두 국가 간 이동을 위한 주요 출입국 지점이 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파소델노르테 출입국소(Puente Internacional Paso del Norte)는 시우다드후아레스의 후아레스 로(Avenida Juárez)와 엘패소의 엘패소 로(El Paso Street) 사이에 있다.
도심 중심부에 있는 또 하나의 출입국 지점은 레포르마 출입국소(Puente Internacional Reforma)이다. 시우다드후아레스의 레르도 로(Avenida Lerdo)와 엘패소의 스탠튼 로(Stanton Street)를 잇는 다리에 있다. 코르도바데라스아메리카스 출입국소(Puente Internacional Córdova de las Américas)는 시우다드후아레스의 아브라함링컨 로(Avenida Abraham Lincoln)와 엘패소를 지나는 주간 고속도로 I-110번 사이에 있다. 이 도로는 미국의 동서 해안을 연결하는 주요 주간 고속도로인 I-10번 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중심부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출입국소는 사라고사 이슬레타 출입국소(Puente Internacional Zaragoza-Ysleta)이다. 시우다드후아레스의 워터필 로(Avenida Waterfill)와 엘패소의 사라고사 로(Zaragoza Avenue) 사이에 있다. 사라고사와 이슬레타는 각각 시우다드후아레스와 엘패소의 교외 도시이다.
시우다드후아레스에는 다른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도시와 마찬가지로 양국의 도시를 잇는 공공 교통수단이 운행된다. 엘패소와 시우다드후아레스 간의 트롤리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엘페소에서 출발하여 시우다드후아레스의 주요 지점을 거쳐 엘패소로 되돌아온다. 택시를 타고 국경을 넘을 수도 있다. 또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부터 멕시코시티까지 연결된 철도 노선이 있다.
시가지의 남쪽에 아브라함곤살레스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Abraham González)이 있는데 치와와, 몬테레이, 과달라하라, 멕시코시티, 푸에르토바야르타(Puerto Vallarta), 칸쿤, 레온, 에르모시오(Hermosillo), 티후아나 등의 멕시코 주요 도시를 연결한다. 치와와, 토레온(Torreón), 과달라하라, 두랑고(Durango), 멕시코시티 등 멕시코 중부 및 북부의 주요 도시 사이에는 버스 노선도 개설되어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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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시우다드후아레스〉, 《위키백과》
- 〈시우다드후아레스〉, 《나무위키》
- 〈시우다드후아레스〉, 《요다위키》
- 〈시우다드후아레스(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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