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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르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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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위치

달라르나주(스웨덴어: Dalarnas län)는 스웨덴 중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

개요[편집]

달라르나주의 면적은 28,194㎢이며 인구는 276,770명(2011년)이다. 북쪽으로는 옘틀란드주, 동쪽으로는 예블레보리주, 남쪽으로는 베스트만란드주, 외레브로주, 베름란드주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노르웨이헤드마르크주, 쇠르트뢰넬라그주와 접한다. 스웨덴의 지방인 달라르나 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도는 팔룬이다.

원래 이름은 코파르베리주(Kopparbergs län)였지만 1997년에 현재와 같은 이름으로 변경되었다.[2]

주요도시[편집]

팔룬[편집]

팔룬은 스웨덴 달라르나 지방 팔룬 자치단체의 중심 도시이자 달나르라주의 주도이다. 13세기 중반부터 구리 채굴 사업으로 유명했는데, 1992년에 광산은 문을 닫았다. 광산이 있던 산과 주변 지역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세기 이후 팔룬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도로인 팔루가탄은 도시에서 상거래 장소로 중요했다. 팔룬의 도시 이름은 이 거리에서 따왔다.

팔루온강은 도시를 양쪽으로 갈라놓으며 흐르고 있는데, 강의 한쪽은 보통 '광산 쪽'이라고 불렀다. 이곳에서는 토양을 오염시킨 유독성 매연 때문에 식물이 많이 자라지 않았다. 연기가 닿지 않는 강 건너편에는 커다란 별장을 많이 세웠고, 이 때문에 '쾌적한 쪽'이라고 불렸다.

팔룬의 도심은 작은 가게들이 있는 전통적인 보행자 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1998년, 그 도시는 스웨덴에서 '올해의 도심' 상을 되찾았다. 1만8000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달라르나대학은 2015년 세계 스키선수권대회가 열렸던 스키경기장 가까운 곳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팔룬 마을은 14세기에 주변 지역의 장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리 채굴은 13세기 중반부터 지역 사업이었으며, 더 이르면 1000년 무렵으로 시기가 올라갈 수도 있다.

스토라 코파르베르겟에서 구리와 금을 추출하던 조직은 스웨덴의 망누스 4세가 설립을 허가한 1347년 이후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업자로 알려져 있다. 그 회사의 첫 주식이 나온 때는 1288년 무렵일 정도로 빠르다. 그러나 당시 기업은 조직 운영에 필요한 건축비, 도구 등에 각각 분담금을 기부하는 소유주들의 협동조합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기여금 액수에 따라 시설들을 사용할 수 있고 그에 비례하여 이익을 공유할 수 있었다.

팔룬은 1641년에 도시 특권을 얻었다. 그 무렵 도시에는 이미 약 6,000명이 살고 있어 스웨덴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곧 구리광산의 중요성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687년 광산의 일부가 산사태로 무너지면서 100m 깊이의 구덩이가 생겼다. 광산은 그 뒤 300년 동안 계속 사용되었지만 생산량은 점차 줄어 1992년에 폐쇄되었다. 광산이 있던 산과 주변 지역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포되었다.

팔룬은 습한 대륙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겨울은 대략 11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지속되는 가장 긴 계절이지만, 3월 낮 기온은 온화한 편이다. 평균 고온 23°C의 7월은 가장 따뜻한 달이다. 역대 최고 기온은 2014년 8월 4일에 측정된 35.1°C이다.

팔룬은 기온이 온화한 수역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도시들보다 대륙성을 띤다. 그 결과, 7월의 최고 기온이 남쪽 지역보다 훨씬 더 높다. 겨울은 춥지만 종종 빙점 이상의 온화한 기온이나 평균 온도를 완화하는 해양의 영향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변화가 매우 심하다. 강수량은 7월과 8월에 가장 많다.[3]

볼렝에[편집]

볼렝에는 스웨덴 달라르나주에 있는 볼렝에 자치단체의 중심 도시로 제철소와 제지공장이 있는 공업 도시이다. 달라르나주에 있는 쇼핑센터로 도시를 홍보하고 있는데,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쿠폴렌 지역이 대표적이다. 그곳에는 쿠폴렌 쇼핑센터, IKEA와 여러 상점이 많다. 2000년대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들어온 난민 거주 지역은 범죄율이 높고 치안이 불안하다.

철도도로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현대적 구조를 지닌 도시로서, 주 정부기관인 국립 스웨덴 교통국 트라피크베르켓의 본사가 있다. 볼렝에는 달라르나주의 쇼핑센터로 도시 자체를 홍보한다. 이것은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쿠폴렌 지역이 있어 가능하다. 그곳에는 쿠폴렌 쇼핑센터, IKEA와 여러 상점이 많다. 도심에는 약 80개의 상점과 40개의 식당, 카페가 있다.

자매 도시 팔룬과 마찬가지로, 음악은 볼렝에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얼터너티브 록밴드인 만도디아오, 팝 록밴드인 슈가플럼 페어리, 싱어송라이터인 미스 리와 같은 스웨덴의 새로운 젊은 음악가들의 고향이다.

룰레오 공과대학 분교인 음악학교 붐타운에서는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평화와 사랑' 음악축제가 열린다.

노르스 신의 이름을 딴 축구클럽 IK 브라게는 스웨덴 1부 리그(알스벤스칸)에서 18시즌을 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홈경기는 6,500명을 수용하는 볼렝에의 돔나르브스발렌 스타디움에서 치른다. 스포츠에서 성공을 거둔 또 다른 팀은 다문화 축구팀인 달쿠르드 FF이다.[4]

팔룬 구리 광산 지역[편집]

스웨덴 달라르나주 팔룬 구리 광산 지역은 수세기 동안 세계 제1의 구리생산지로 그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200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팔룬의 경관은 구리를 채굴하고 생산한 유적이 가장 중요하게 특징적으로 남아 있다. 광산 채굴은 일찍이 9세기에 시작하여 20세기 말에 막을 내렸다. 17세기, 팔룬은 구리의 주요 생산지였고 200년 동안 세계 광업 기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팔룬은 구리 산업이 ‘가내공업’ 형태로 시작하여 완전한 산업생산에 이르기까지 경제 사회적 발달 단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풍부한 산업, 도시, 주거 유적은 이를 증명한다.

팔룬에 있는 거대한 구리 광산과 그 문화 경관은 역사적 산업과 독특한 건물, 촌락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기술의 집합체이다. 거대 구리 광산(Stora Kopparberget, Great Copper Mountain)은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광산이자 세계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산업 유적이다. 광산을 둘러싼 인공적인 경관은 스웨덴 기준으로나 세계 기준으로나 매우 놀랍고 독특하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은 거대 구리 광산, 광산 주변의 마을 지역인 코파르베르그슬라겐(Kopparbergslagen), 용광로, 수로, 연못, 운하, 오래된 광산촌 유적 등이다.

지하 채굴을 하던 거대 구리 광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물은 1288년의 것이지만 과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그 기원은 8세기 또는 9세기부터라고 추정한다. 이 시기 스웨덴의 공업은 독일의 영향을 받으면서 한층 발전하였을 것이다. 독일인이 스웨덴에 정착했으므로 이때 스웨덴 산업이 독일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화력 채굴과 광산 배수 같은 기술을 적용한 증거가 상당히 많으며, 이 기술은 하르츠(Harz) 산맥과 같은 유럽 대륙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347 헌장(The 1347 charter)’으로 독특한 인공 경관이 생겨났다. 광부들은 토지 주인에게 비용을 지급하지 않고 숲에 새로운 주거지를 건설할 권리를 얻었다.

동시에 토지나 임야에 대한 세금도 면제받아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15세기는 무역 제한과 과세 제도를 반대하여 무장 분쟁이 벌어지던 불안한 시기였다. 구리 광산의 ‘자영 광산업자’ 들은 무역 제한과 과세 제도에 반대했다. 이러한 충돌은 1531년~1534년 절정에 달하였고, 그 결과 팔룬의 저명한 시민 몇 명이 구스타브 바사의 명령에 따라 처형당했다.

16세기~17세기에는 거대 구리 광산이 스웨덴 경제의 중추가 되었고, 17세기 중반에는 팔룬에서 세계 구리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면서 유럽의 주요 강대국이 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구리는 전 세계로 수출되었는데, 예를 들면 베르사유 궁전의 지붕이나 스페인의 주화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구리에서 얻은 수익은 30년 전쟁(1618~1648)에 스웨덴이 참전할 당시 자금원이 되었다. 거대 구리 광산은 회사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자영 광산업자(베르그스만)들은 구리 제련소에 그들의 지분에 비례하여 주식을 소유하였다. ‘1347 헌장’은 광물 채굴, 주거, 무역을 다루었다. 이는 나중에 등장한 주식회사의 선도자라고 할 만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라고도 한다.

팔룬 주변에 발달한 코파르베르그슬라겐으로 알려진 문화 지역은 스웨덴 특유의 마을이다. 당시에는 이 지역에 구리 용광로가 140개나 있었으며, 자영 광산업자들은 제련소 가까이에 토지와 저택을 가지고 있었다. 농촌에는 주로 목초지가 있었다. 17세기~18세기에는 팔룬 방식이라는 5년 주기의 윤작이 발달했다. 거대 구리 광산과 주변 지역에서는 수준 높은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였으나 불가피한 사고들이 있었으며, 특히 생산 활동이 왕성하던 17세기에 사고가 많았다.

1687년에 가장 끔찍한 사고가 있었는데, 대규모 산사태 때문에 이곳에 거대 수갱(Stora Stöten)이 생겼다. 구리 용광로는 일찍이 13세기에 수력을 동력으로 하여 연못·수로·운하를 건설하여 제련소와 광산에 물을 공급했다. 현재 남은 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4세기의 것이다.

팔룬 도시는 17세기에 건설되었다. 1,646개의 격자형 지구를 갖춘 바둑판형 가로(街路)계획과 세 곳의 목조 주택 지구를 갖추었으며, 스웨덴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인구가 6,000명에 달하였다. 감라 헤르가르덴(Gamla Herrgården), 오스탄포르(Östanfors), 엘스보리(Elsborg) 세 지역의 1646년 도시 배치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구리 용광로는 일찍이 13세기에 수력을 동력으로 사용하였으며, 1555년에 노천 광산인 블랑크스토텐(Blankstöten)에 최초로 수력 승강 장치를 건설하였다. 연못, 수로, 운하를 건설하여 제련소와 광산에 물을 공급했다. 현재 남은 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4세기의 것이다.

17세기~19세기에는 외국에서 많은 과학자와 기업인이 팔룬을 방문하여 어마어마한 광산 규모와 용광로에서 오르는 연기, 구리 산업과 관련된 놀라운 구조물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거대 구리 광산은 스웨덴 제일의 명소가 되었고 1824년부터 ‘관광’이라는 용어가 기록되었다. 팔룬은 16세기부터 기술 발전의 중심지였다. 기계공학자 크리스토퍼 폴햄(Christopher Polhem)과 화학자 제이콥 베르젤리우스(Jöns Jacob Berzelius)가 이곳에서 일하고 연구했다.

18세기~19세기에 들어 구리 수요가 주춤하면서 구리 광산에서는 황, 아연, 납, 은, 금 등 다른 광물 자원 생산을 확대하였다. 1888년에 옛 회사가 현대적 유한회사, 스토라 코파르베리 베르그슬라그 AB로 재편되었다. 이전의 낡은 용광로를 버리고 새 공장을 크게 지었다. 팔룬 외곽에서 철광산을 사들여 제철소를 세웠으며 이 분야에서 스웨덴의 주요 기업이 되었다. 또 다른 삼림지역에서는 제지와 목재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19세기에 거대 구리 광산은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고 이 회사는 1988년에 700주년을 기념했다. 그러나 1992년에 이용 가능한 광물이 거의 고갈되면서 1998년 12월 8일 마지막 발파를 끝으로 채굴은 중단되었다. 1998년경 팔룬에 유일하게 남았던 산업 활동은 매우 독특한 빨간색 페인트를 생산한 것인데, 이는 스웨덴과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목조 건물 보호에 사용한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달라르나주〉, 《위키백과》
  2. 달라르나 주〉, 《요다위키》
  3.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팔룬〉,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볼렝에〉, 《네이버 지식백과》
  5. 유네스코 세계유산 : 팔룬의 구리 광산 지역〉,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국가
북유럽 도시
북유럽 지리
북유럽 섬
북유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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