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세디
가나 세디(Ghanaian Cedi)는 가나의 통화이다. 1 세디는 100 페세와 로 나뉜다. 현재의 세디는 2007년 7월 3일, 10,000 구 가나 세디를 1 신 가나 세디로 화폐개혁 했을 때 도입된 것이다. 현재 가나 세디는 아프리카에서 주권이 있는 나라가 발행하는 통화 단위 중 가치가 가장 높다.
"세디"라는 단어는 무늬개오지조개를 의미하는 아칸어에서 유래되었다. 무늬개오지조개는 가나에서 화폐로써 유일하게 사용되었다.
많은 가나의 동전은 또한 시카(Sika)라는 액면으로도 발행되었다. 많은 가나의 동전은 또한 시카(Sika)라는 형태로도 많이 발행되었으며, 이것은 법정동전이 아닌 일종의 "메달" 같은 동전이다. 시카(sika)라는 단어는 "돈"을 의미한다.
목차
개요[편집]
가나 세디는 가나에서 사용하는 통화. ISO 4217 코드는 GHS, 기호는 C에 정확히 세로줄 하나가 그어진 "₵"로 기원은 전혀 무관하지만 센트기호(¢)까지는 그러려니 여겨주나 센트기호로 사용할 때는 구분이 필요하므로 GH¢라 쓰는 경우도 더러있다. 보조단위는 페세와(Pesewa, 기호 Gp)를 사용한다.
참고로 단어 "세디"는 토착어인 아칸어로 소라조개를 뜻한다. 옛날 가나 지방에서는 패화(貝貨)를 화폐로 썼기 때문.
1990년 이전에는 고정환율제를 써왔고, 이후에 변동환율제를 도입하였다.
인플레이션은 23.2%(2024년)이며, 2024년 3월 기준 1세디는 약 102원.
환전 및 사용[편집]
한국에서는 가나 세디를 취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지에서 환전하여 사용해야 하는데, 달러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기 때문에 미국 달러를 들고가 환전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고 편리하다. ATM인출의 경우도, 기계가 있다는 한에선 이용하기 좋은 편.
문제는 그 반대인데, 세디를 달러로 교환하는 조건이 많이 까다롭기 때문에 남기게 되면 난감해진다. 일반적으로 가나를 포함한 서아프리카 지역에 단기여행을 떠나는 (혹은 단순 여행으로 방문하는) 한국인은 드물기에 별다른 이야기거리가 되지는 않으나, 장기 체류일지라도 가급적 나눠서 환전하거나 필요한 만큼을 ATM등으로 인출하여 사용할 것이 권장된다.
현지에서는 과거 최고액권이던 ₵50 지폐가 상대적으로 보기 어려운 점만 제외하면 안 쓰이는 단위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으나, 2019년 현 시점에서는 전 권종이 고루 쓰이고, ₵5단위 미만은 푼돈 취급을 하고 있다. 10페세와 이하(약 25원 이하 가량)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가나는 서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그나마 치안이 좋은 쪽이나 무작정 안전하다고는 못할 환경이고, 외국인에게 바가지 요금을 강제로 씌우는 일이 잦으므로 가능하기만 하다면 현지인을 필히 끼고 다니는 것이 좋다.
명목상 최소 거래액은 ₵0.01(1페세와)지만, 실질적으론 ₵1(1세디) 단위로 거래한다. 아무리 1세디 미만의 물건이라도 여러개 모아 1세디 묶음으로 만들어 내놓아 최대한 동전 거래를 회피하려 한다. (몰론 대형마트 같은 곳은 예외.) 정말로 1세디를 채울 수 없다면 보조단위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개 0.1(=10페세와)까지만 쓰이지, 1페세와까지 세세하게 거래하려 하진 않는다.
환율 추이[편집]
2007년 개혁 이후 달러보다 높은 값($1.08/₵)을 자랑하던 세디는 2008년 미국발 쇼크로 1차 하락($0.60/₵), 2011년 유럽발 쇼크로 2차 하락($0.50/₵), 2013년 말부터 이어진 유가 및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아예 가나의 산업구조 자체가 직격탄을 맞아 외화를 탈탈 털리는 바람에, 그 반동으로 세디는 폭주($0.20~0.30/₵, 2017년 기준 $0.23/₵ = ₵4.3/US$)하고 만다. 가나 정부가 2012년 5월부터 개정 시행시킨 '세디화 우선 정책'(※시중은행에 외화예금/예치를 전면금지) 및 외화에 관한 관리가 까다로워진 것도 위 같은 배경상 줄줄 새는 외화를 막기 위함에서 비롯한다.
2022년은 가나 정부로선 대재앙의 해로, 그렇찮아도 기존 달러 빚이 막대한 상황에 뜬금없는 전쟁으로 세계가 들썩인 유래없는 강달러 현상이 나타나자 세금 원기옥을 통째로 던져도 이자조차 막기 버거워지면서 자연스레 세디화의 안정성이 붕괴하여 인플레이션이 50%대 마저 뚫어버렸다. 2018년 당시 ₵4.5(/US$), 2019년 ₵5.0~5.5, 2020~2021년 ₵5.5~6.1, 그리고 2022년 연초 ₵6.2로 시작한 것이 2월 사태를 기점으로 폭주하여 ₵7.5 ▶ ₵8.0(8월 초)으로, 8월 말에는 단숨에 ₵10를 돌파, 11월에는 ₵14도 단번에 뚫어버려,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12월에 오로지 빚만 갚으려는 목적으로 IMF 구제금융(30억 달러)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IMF가 그런 대출을 승인해줬기에 세디화의 무한 폭락 사태만은 막을 수 있었으나(▶ ₵9.0), 이듬해 2023년 연초에 다시 ₵10대를 넘기면서, 앞으로의 전망은 여전히 매우 어두움으로 평가하고 있다.
1기[편집]
전신인 가나 파운드(Ghanaian Pound)에서 독립한 통화로, 1965년 7월 19일부터 67년 2월 22일까지 쓰였다. 교환비는 2.4세디/파운드. 12진법을 쓰던 파운드에서 10진법으로 교체를 꾀했기에 이루어진 비율이었다.
2기 (GHC)[편집]
1차[편집]
1967년 2월 23일에 등장.
어째서인지 12진법에서 10진법으로 가는 교체작업을 한 번 더 행한 기이한 교환비를 시행하였는데(1.2세디 = 신 1세디), 이는 1966년 일으킨 군부정권(2공화국 정권)이 단결 사회주의 아프리카를 주장하며 은근히 독재를 지향하던 콰메 은크루마의 정책을 정면 부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1967 ~ 1974 앞면 뒷면 ₵1 카카오 빈 방패와 검 ₵5 새 모양 나무조각 거북이, 물고기모양 나무조각 ₵10 칼과 투구의 장식 조각상들
2차[편집]
1975년부터 78년 사이에 등장한 시리즈.
결론적으로 1979년에 개혁된 이 시리즈는 구권과의 교환비가 "구 10세디 = 신 7세디"라는 누가봐도 "돈 좀 내놓으시죠"라는 직설적인 방침으로 몰수가 진행되었다. 대외교환비는 그대로 두고 통화만 30% 강제로 회수한 셈이다. 게다가 동전과 계좌 속 재산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장물현금 회수라는 것에 확실한 증거가 된다.
이때 환율은 크게 수정되어서 ₵2.80/USD.
1975 ~ 1979 앞면 뒷면 ₵1 헤드폰을 쓴 소녀 카카오 농부 ₵2 농부 할아버지 어부 아저씨들 ₵5 초대형 모자 쓴 시장아줌마 라라방가 신전(모스크) ₵10 파이프 담배피는 할배 아코솜보 댐
3차[편집]
1980년에 대체된 10세디화와 고액권인 50세디가 새로 출범하고, 이후 82년에 물갈이를 마친 시리즈.
다만 1982년에 새로 출범시킨 최고액권 50세디를 다시 폐지시키는 기이한 방침이 나왔는데 주로 외부 장물업자들이 최고액권으로 재산을 쌓아두는 것이 아무래도 관리하기 편하니까 정부가 되려 그걸 노리고 몰수계획을 진행한 것.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간파하고 20세디로 대신 보관하는 등, 이미 대응하고 있었으며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다음 고액권들이 차례로 계속 강제 몰수당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또 없다보니 외화가뭄으로 진행되는 속도에 가속도를 부여한 계기를 준 셈이었다.
1980 ~ 1984 앞면 뒷면 ₵1 아저씨 지푸라기로 생필품 만드는 아저씨 ₵2 책을 머리에 인 여학생 모내기(?)하는 농부들 ₵5 할아버지 통나무 톱질하는 나무꾼 ₵10 아줌마 어부들 ₵20 광부 베틀로 직물(켄테, Kente)짜는 아저씨 ₵50 연치가 높아보이는 할아버님 카카오 수확 마치고 가공하는 사람들
정부도 당연하지만 통화평형을 위해서 물가도 이에 맞춰 배급하는 등의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보여주기에 힘썼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환율에 군부가 맘대로 정한 국정가격일 뿐이지, 현실은 시궁창이어서 암시장이 성행을 이루었고, 그 수준은 ₵60~120/USD(80년)까지 이미 대폭락했다.
4차[편집]
1981 ~ 1984년부터 등장한 시리즈로, 3차와 거의 비슷할 무렵에 동시 출범되었다. 원인은 통화몰수를 위한 물갈이.
그래서 정부를 믿지 못하고 암시장이 본격 활성화되어 정부조차 손을 놓기 시작한 시기라 직전 시리즈와는 달리 가파르게 액면이 올라갔다. 거의 최대 40배에 달하는 시장-국정 가격차이는 결국 외화가뭄이라는 파탄수준까지 이르다보니 1990년에는 끝내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만다. 이 조치가 이루어지고 단번에 환율은 시장환율과 일치화되었다(₵300/USD).
그리고 환율폭락폭은 굉장히 커져, 2년 단위로 평균 ₵400(92년), ₵900(94년), ₵1,500(96년), ₵2,300(98년), ₵4,500(00년), ₵8,000(02년), ₵8,900(04년), ₵9,600/USD(06년) 수순을 밟았다.
1981 ~ 2007 앞면 뒷면 ₵10 라비, 오투, 크와시 집회당으로 모이는 주민들 ₵20 야 아산테와 공화국 혁명운동 ₵50 흔한 농촌 청년 흔한 농사일 ₵100 아주머니 트럭에 농산물 싣는 사람들 ₵200 할아버님 선생과 아이들 ₵500 기예 니야메와 블랙스타 카카오 나무, 카카오 열매, 뜬금없는 광부 ₵1,000 다이아몬드 카카오 농사꾼 ₵2,000 교각 뱃일꾼들 ₵5,000 자유 가나의 문장 가나 지도, 항구와 배 ₵10,000 가나 6대 인물 독립문 ₵20,000 에프라임 코쿠 아무 국립 극장
- 여기까지 통화는 2008년 1월부터 사용할 수 없다. (07년 7월부터 6개월간 교체)
3기 (GHS, 현행권)[편집]
2007년 1/10,000의 개혁으로 등장한 현행 시리즈.
지폐[편집]
현행권 앞면 뒷면 ₵1 독립문과 가나 6대 인물 아코솜보 댐 ₵2 콰메 은크루마 국회의사당 ₵5 독립문과 가나 6대 인물 가나 대학교 ₵10 독립문과 가나 6대 인물 가나은행 ₵20 독립문과 가나 6대 인물 대법원 ₵50 독립문과 가나 6대 인물 오수 성 ₵100 독립문과 가나 6대 인물 의회 내부와 외부 ₵200 독립문과 가나 6대 인물 골든 주빌리 하우스
주화[편집]
첫 번째 세디[편집]
첫 번째 세디 동전은 액면 5, 10, 25, 50 페세와로 발행되었고, ½ 또는 1페니처럼 ½ 또는 1 페세와 같은 작은 단위의 주화는 계속 유통될 필요가 없었다. 모든 동전에는 콰메 은크루마의 초상화가 있었다.
두 번째 세디[편집]
1967년, 두 번째 세디를 위한 ½, 1, 2½, 5, 10, 20 페세와 동전을 도입하였다. 1979년, 50페세와 와 1 세디 동전이 도입되었다. 이 동전들은 1984년에 5 세디 동전과 함께 작은 크기로 대체되었다. 처음에 발행한 모든 동전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통용되지 않았다.
1991년, 10, 20, 50, 100 세디 동전이 도입되었다. 200, 500 세디 동전은 1996년에 도입되었다. 이 6개의 동전은 아직 유통되고 있지만 10 세디 (~0.1미국 센트)와 20 세디 (~0.2미국 센트)는 그들의 낮은 가치로 인해 많이 사용되지 못했다.
세 번째 세디[편집]
새로운 세디 동전은 1 페세와 (100 구 세디), 5 페세와 (500 구 세디), 10 페세와 (1000 구 세디), 20 페세와 (2000 구 세디), 50 페세와 (5000 구 세디)와 1 세디 (10,000 구 세디)이다.
- 10Gp - 책과 펜
- 20Gp - 카카오
- 50Gp - 시장아줌마
- ₵1 - 저울
- ₵2 - 골든 주빌리 하우스
10, 20, 50페세와와 1, 2세디 5종이 주로 사용되며, 1, 5페세와는 저가치로 사장되었다.
가나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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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