웁살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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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살라주(스웨덴어: Uppsala län)는 스웨덴 남동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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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웁살라주의 면적은 6,989㎢이며 인구는 400,682명(2022년)이며 주도는 웁살라이다. 남쪽으로는 스톡홀름주와 쇠데르만란드주, 서쪽으로는 베스트만란드주, 북쪽으로는 예블레보리주와 접하며 남동쪽으로는 발트해와 접한다.
8개의 자치시(Municipalities)로 구성되며 주도인 웁살라가 인구 약 18만 명으로 주 전체 인구의 약 2/3을 점하고, 이외에 엔셰핑(Enköping)과 외스트함마르(Östhammar)는 외곽지역을 포함하여도 인구 4만 명 미만의 소도시들이다. 웁살라는 고대왕국이 있던 곳으로 바이킹의 본거지로 스웨덴 역사에서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이다. 13세기에 건설된 고딕 건축 양식의 웁살라 대성당(Uppsala Cathedra)과 1477에 설립되어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웁살라대학교(Uppsala University)가 있다. 웁살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근대 식물분류학을 창시한 칼 린네(Carl Linnaeu)가 설계한 린네정원(Linnaean Garden)으로 유명하다.
웁살라에서 남동쪽으로 약 45km 떨어져 멜라렌호수(Lake Mälaren) 근처에 위치한 작은 도시 옌셰핑(Enköping)은 본 도시를 중심으로 반경 120km 내에 스웨덴 인구 3분의 1이 거주하여 스웨덴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Sweden's Closest City)라는 별칭이 붙은 곳으로, 지리적 근접성으로 중세이후 지어진 성과 궁전이 산재한다. 보스니아 만(Gulf of Bothnia)과 발트해가 만나는 항구도시 외스트함마르는 17세기부터 철강 산업도시였으나 오늘날은 스웨덴에서 10번째로 큰 섬이며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그뢰 섬(Gräsö)이 있어 해변 휴양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스웨덴의 정치, 문화와 학문의 중심으로 많은 궁전과 성이 있다. 옌셰핑에 위치한 14세기에 지어져 후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단장한 에콜순드 성(Ekolsund Castle)은 18세기 구스타프 3세(Gustav III)의 여름별장이었고 인근에 잘 단장된 수목원으로 유명하다. 16세기에 건설된 웁살라 성(Uppsala Castle)은 당시 유럽의 강국이었던 스웨덴 왕국의 위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성으로 현재는 주지사 관저와 박물관으로 활용된다. 웁살라와 스톡홀름 사이에 17세기에 지어진 스코클로스터 성(Skokloster Castle)은 스웨덴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곳으로, 1970년부터 국립박물관으로 전환되어 2만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3]
자연환경[편집]
주의 북쪽은 울창한 숲이지만 높은 산은 없으며 남쪽은 스웨덴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가 펼쳐지고, 동쪽은 해안지대로 다양한 풍광을 갖는다. 해안과 평야를 모두 갖추어 사람이 살기 적당해 8~11세기부터 여러 도시들이 들어서고 중세시대에는 야금과 철기제작의 중심지였다.
역사[편집]
1634년에 주가 형성되었는데 수차례 주경계의 변경으로 비교적 최근인 1971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스웨덴의 전통적인 지리구분인 우플란드(Uppland) 지방(province)을 대부분 포함하고 남부는 게스트릭란트(Gästrikland) 지방의 일부가 속한다. 11세기 중반까지 북유럽 이교도의 중심지로 여러 신화에 등장하는 지역이다.
산업[편집]
비옥하고 완만한 평지로 곡물과 감자재배가 활발하고 낙농업도 발달하였다. 철광석 매장지로 여러 제철소가 위치하며 목재 가공이 주산업이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스톡홀름 경제권과 연계되어 생명공학, 정보통신, 청정에너지와 첨단소재개발의 중심지가 되었다. 본 지역의 의료진단, 식물유전학과 화학생태학 등 생명공학은 세계적 수준으로 화이자(Pfize)와 GE Healthcare 등 다국적 제약사와 여러 헬스케어 기업의 R&D센터가 위치한다. 웁살라대학교와 연계된 산학과 스타트업도 활발해 정보통신 분야에 많은 신생기업들이 활동한다.
교육[편집]
웁살라대학교[편집]
웁살라대학교는 스웨덴 웁살라에 있는 연구 중심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1477년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교이다. 스웨덴은 물론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되었다.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에서 모두 강세를 보이는 명문대학이다. 웁살라대학교는 역사적으로 문학, 정치학, 음악, 역사 기록학 등을 통해 스웨덴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북유럽 대학의 학생모인 '흰 모자'는 웁살라대학에서 유래됐다.
웁살라대학교는 인문사회과학대학과 의학 · 약학대학, 과학기술대학 등 3개의 단과대학으로 구성돼 있다. 캠퍼스는 피리스강 서안에 자리 잡은 웁살라시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대학공원 및 성당지역, 웁살라 도심 서부지역, 웁살라 중심지 기타지역 등이다.
웁살라대학교는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 세계 127위, 유럽 46위, 스웨덴 3위를 차지했다. 2023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세계 128위, 2023년 타임스고등교육 순위에서는 세계 148위를 기록했다. 2022년 세계대학학술순위(ARWU) 평가에서는 세계 89위, 스웨덴 2위로 평가됐다. 웁살라대학교는 모두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22년 노벨 물리학상과 의학상을 수상한 칼 리네우스와 안드레스 셀시우스, 올로프 루드벡 등이 이 대학교의 동문이다.[4]
스웨덴농업과학대학교[편집]
스웨덴농업과학대학교는 스웨덴 웁살라주 울투나에 메인 캠퍼스가 있는 공립 농업과학 특화대학교이다. 1977년 설립된 이 대학교는 스웨덴 교육연구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학위를 인정받는 남녀공학의 고등교육기관으로 환경과학과 생명과학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천연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와 교육을 시행하는 대학교이다. 약칭은 'SLU'로 불린다.
SLU의 학문 분야는 유전자와 분자에서 생물 다양성, 동물 건강, 생물 에너지, 식량 공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도시 · 지역계획과 지속가능한 도시 · 농촌 발전,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도 연구과제로 올라 있다. 숲과 토양, 물의 생물학적 천연자원을 소모시키지 않고, 인간과 동물 모두의 복지를 보존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총괄하고 있다. 이 대학교는 2001년에 설립된 유럽생명과학연맹(ELLS)의 공동 설립자였다.
스웨덴농업과학대학교는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 세계 356위, 유럽 대학 중 149위, 스웨덴 대학 중 9위를 기록했다. 특히 식물 · 동물학 분야가 세계 12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환경 · 생태학이 세계 23위, 농업과학이 세계 41위를 차지했다. 2023년 타임스고등교육(THE)의 세계대학순위에서는 세계 351-400위권, 신생 대학 가운데 75위로 평가됐다. 2023년 QS의 세계대학 분야별평가에서 농학 · 임학이 세계 3위, 수의학이 25위, 환경과학이 74위를 각각 기록했다.[5]
웁살라[편집]
웁살라는 스웨덴 웁란드(Uppland)주의 주도로 스웨덴에서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에 이어 넷째로 큰 도시다.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71km 떨어져 있다. 1164년부터 웁살라는 스웨덴 교회학 연구의 본산으로, 스웨덴 교회의 대주교좌가 있다. 웁살라 성당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1477년에 설립된 웁살라 대학교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섭씨 눈금 온도계가 이 대학에서 발명됐다.
웁살라 평원의 비옥한 진흙땅에 자리 잡고 있는 웁살라는 무성한 초목들로 둘러싸인 자연 속을 흐르는 작은 피리스강(Fyrisån)이 눈에 띈다. 강과 평행하게 웁살라외센(Uppsalaåsen)의 빙하 산등성이가 펼쳐지는데, 30m 정도 높이의 웁살라외센 성터에서 이 고장의 대부분을 바라볼 수 있다. 중앙공원 스타드스코겐(Stadsskogen)은 남쪽에서 마을까지 뻗어 있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주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웁살라의 상업 중심지역은 상당히 작다. 이 도시에는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타운(town)과 가운(gown)' 지역이 있는데 성직자, 왕족, 학자 등이 오래 전부터 도시의 다른 지역과 다소 떨어져 있는 강 서쪽 기슭 옆 푀르딩엔(Fjärdingen)에 거주해 온 곳이다. 그래서 성당, 성, 대학 건물들이 오늘날까지 대부분 안정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일부 역사적 건물이 중심지 주변에 남아 있는 반면, 상업 활동은 지리적으로 보행자 도로와 강 동쪽 주요 광장 주변에 있던 몇몇 구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곳은 특히 1960년대 경제 호황기 때 대규모 개발을 겪게 된다. 최근 몇십 년간 소매업의 상당 부분은 도시 외곽에 세운 쇼핑몰과 상점으로 옮겨갔다. 그러는 사이에 건설 지역은 크게 확장되었고, 일부 지역은 교외화가 되었다.
웁살라는 원래 지금 위치에서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감라 웁살라(Gamla Uppsala)로 알려진 곳이었다. 오늘날의 웁살라는 그 당시에는 외스트라 아로스(동쪽 아로스)라고 불렀는데, 서쪽의 아로스(Aros)와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중세 작가 아담 오브 브레멘(Adam of Bremen)에 따르면, (옛) 웁살라는 스웨덴의 주요 이교 중심지로서 노르스(Norse) 신의 거대한 우상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도시 지역인 옛 웁살라 남쪽의 강을 따라 있는 피리스벨리르(Fyrisvellir) 평원은 980년대 피리스벨리르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현재의 웁살라는 당시 외스트라 아로스로 알려져 있었고 감라 웁살라의 항구 도시였다. 1160년, 에릭 예드바드손(Erik Jedvardsson) 왕은 외스트라 아로스 교회 밖에서 공격을 받아 살해되었고,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1274년 외스트라 아로스는 감라 웁살라를 제치고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감라 웁살라의 대성당이 불타버리자 대주교와 성 에릭의 유물은 현재의 웁살라 성당으로 옮겨졌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1435년에 문을 열었고, 현재 북유럽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로 탑 높이가 118.70m에 이른다.
1477년에 설립된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웁살라 대학이 있는 이 도시는 대학의 유명한 학자 중 한 명인 세계적인 식물학자 칼 린네우스(Carl Linnaeus)가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의 집과 정원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또 웁살라에는 16세기에 지은 웁살라 성이 있었다. 1702년 화재가 일어나 도시가 큰 피해를 입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스웨덴의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문화적 건물들이 해체되면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오래된 건물이 아직 도시 서쪽에 많이 남아 있다.
사자를 그린 문장은 1737년 무렵 기록에 나오고 있으며, 여러 번 새롭게 바꾸었는데 가장 최근은 1986년이다. 사자의 의미는 불확실하지만 스웨덴 왕국 문장에도 나오는 왕실의 사자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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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웁살라주〉, 《위키백과》
- ↑ 〈웁살라주〉, 《나무위키》
- ↑ 〈두산백과 : 웁살라주〉, 《네이버 지식백과》
- ↑ 〈세계의 대학 : 웁살라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 〈세계의 대학 : 스웨덴농업과학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웁살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웁살라주〉, 《위키백과》
- 〈웁살라주〉, 《나무위키》
- 〈두산백과 : 웁살라주〉, 《네이버 지식백과》
- 〈세계의 대학 : 웁살라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세계의 대학 : 스웨덴농업과학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웁살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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