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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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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Ferdinand Alexander Porsche)
포르쉐(Porsche)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Ferdinand Alexander Porsche, 1935년~2012년)는 독일의 디자이너이자 고급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알려진 독일자동차 회사인 포르쉐(Porsche, 保时捷)의 디자인 디렉터이다. 그는 포르쉐의 디자인 부서가 아닌 독립적인 디자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F.A. 포르쉐의 수장으로 포르쉐 911을 디자인한 걸로 유명하다. 알렉산더 포르쉐(Alexander Porsche)라고도 한다. 그는 포르쉐의 창업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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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1935년 12월 11일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태어났다. 그는 포르쉐의 창업자이자 오스트리아 기술자 출신인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cshe)의 손자이자 페리 포르쉐(Ferry Porsche)의 아들 '부치'(Butzi)라는 닉네임을 가졌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엔지니어였지만 그는 제품의 외관을 연구하는데 더 많은 관여를 했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나 디자이너라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더 뛰어난 공예가라고 생각했다.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발도르프(Waldorf) 학교에 다닌 후 독일 울름(Ulm)에서 산업 디자인에 관련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1년 후 그는 자신의 재능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심사 위원회에서 해임되었으며,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1954년 로버트 보쉬(Robert Bosch)에 합류하여 3년 동안 경험을 쌓았다. 1957년 그는 가족 소유 스포츠카 회사의 차체 디자인 부서에서 디자인 디렉터인 엘빈 코멘다(Erwin Komenda)의 아래에서 실습 교육을 시작했다. 졸업 후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회사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모델인 911과 차체에 합성 소재를 사용한 최초의 레이싱 카인 904 카레라(Carrera)를 디자인했다. 그는 1972년 슈투트가르트에 포르쉐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1974년에 오스트리아로 이전했다. 그 이후로 F.A. 포르쉐 디자인 브랜드는 명확하고 우아하며 기술적으로 완벽한 라인을 특징으로 하는 동일한 독창성과 형식적인 일관성을 특징으로 하며, 시계에서 전차, 가죽제품에서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제품을 명확하고 우아하며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특징으로 한다. 2012년 4월 5일 포르쉐 감독위원회의 명예회장이었던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의 사망으로 왕조의 마지막 직계 상속인은 그의 아들이자 현재 포르쉐 디자인의 사장 겸 CEO인 41세의 변호사 페르디난트 올리비에 포르쉐(Ferdinand Olivier Porsche)가 남아 있다.[1][2]

주요 작품[편집]

1968년형 포르쉐 911 모델
1964년형 포르쉐 904 모델

포르쉐 911[편집]

지금까지 회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동차인 포르쉐 911 코치 워크 디자인 작업에 관련 포르쉐 가문의 모든 세대가 새로운 자동차 세대를 탄생시키는 데 참여한 것이 가문 전통이었기 때문에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가 많은 부분을 관여했다. 페리 포르쉐는 356의 후계자가 실내에 더 많은 공간과 편안함을 제공하기를 바랐지만 "편안함이 운전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고 말했으며, 특히 차량 트렁크는 더 많은 공간을 제공했어야 한다고 하였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의 첫 번째 드래프트는 잘 받아들여졌지만 코멘다(Komenda)가 여전히 협조하지 않은 후 퍼디난드(Ferdinand)와 페리(Ferry)의 반대에 대해 승인되지 않은 변경을 했다. 페리는 바퀴 밑부분, 동력 수치, 그리고 정지에 대한 주요 속성을 설정했고, 코멘다가 여전히 협조하지 않은 후, 코멘다가 길 건너편에 있는 코치 작업 제조업체인 로이터(Reutter)에게 F.A.의 도면을 가져갔다. 그들은 196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였던 901에 실제 모양을 그대로 반영했고, 원래 프로젝트 코드 901은 "0"으로 3자리 숫자 조합에 대한 상표권을 보유한 푸조의 개입으로 911로 변경되었으며, 생산은 1964년에 시작되었다.

포르쉐 904[편집]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또 다른 중요한 자동차인 포르쉐 904도 제작하였다. 그는 포르쉐 904 모델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포르쉐 904의 차체는 항공기 회사인 하잉켈(Heinkel)에서 섬유 유리 강화 수지로 만들어졌으며, 이 차량은 같은 해 경주 시즌에 참가하기 위해 정해진 날짜까지 경주 호몰로게이션(homologation) 담당자들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개발팀은 극심한 시간 압박에 시달렸다. 당시 F.A.는 904의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들었으며, 누군가가 변경을 요구하거나 제안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독창적인 초안이었다.

주요 경력[편집]

포르쉐 디자인 그룹[편집]

가문이 회사의 법적 형태를 변경하고 가문을 경영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 후,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자신의 산업 디자인 회사인 포르쉐 디자인(Porsche Design)을 설립했으며, 그 후에 오스트리아 첼암제(Zell am See)로 이전했다. 포르쉐 가문은 쉿굿(Schüttgut)라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포르쉐 디자인이 만든 첫 번째 제품은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인 오르피나(Orfina)에서 만든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였다. 그 디자인은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가 포르쉐 스타일 사무실(Porsche Style bureau)에서 일하고 있을 때 디자인이 시작되었다. 1973년 출시된 이 제품은 케이스와 팔찌가 무광택 검은색 크롬 스틸로 제작되어 다른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와는 달랐다. 또한 포르쉐 운전자를 위한 액세서리로 제작되었으며 포르쉐 딜러들이 판매했다. 당시 새로운 벨주(Valjoux) 7750 무브먼트를 작동시켰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계식 무브먼트이다. 그 후 많은 고객들이 일반적인 색상의 시계를 좋아했을 것이므로 비드 블라스트 처리된 스테인리스 스틸 버전이 출시되었다. 이후 무브먼트는 레마니아(Lemania) 5100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주로 군용 시계에 사용되는 심플하고 견고한 무브먼트였다. 포르쉐 디자인 크로노 I(Chrono I)는 여러 국가의 공군과 NATO 동맹을 위해 다양한 버전(케이스 및 스트랩 색상, 다이얼 인쇄)으로 제작되었다.

1978년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인 IWC(International Watch Company)와 협력하여 비자성 자동 무브먼트와 나침반을 결합한 이른바 Kompassuhr라는 손목시계를 개발했다. 이후 버전에는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이 티타늄으로 제작되었으며, IWC는 1980년에 출시된 타이탄 크로노그래프(Titan Chronograph) 개발에서 FA와 함께 시계 케이스/브레이슬릿에 티타늄을 최초로 사용했다. 타이탄 크로노그래프는 티타늄을 사용한 최초의 시계였고, IWC는 티타늄의 고유한 특성에 주의하면서 작업 프로세스를 개발해야 했으며, 크로노그래프의 독특한 디자인 측면은 케이스의 윤곽에 통합된 스톱워치 기능을 작동하는 푸셔였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의 독특한 소재 사용에 대한 매력은 IWC에서 제작한 매우 희귀한 Chrono II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케이스는 섬유 강화 수지로 만든 팔찌와 함께 비드 블라스트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계는 또한 통합 푸셔를 사용했으며, 시계는 여전히 포르쉐 디자인의 주요 사업이다. 1996년 오토매틱 무브먼트에 사용되는 와인딩 로터용 볼 베어링을 발명한 스위스 시계 제조사 에테루나(Eterna)를 F.A. 지주회사에 인수했다.[2]

포르쉐[편집]

포르쉐(Porsche, 保时捷)고급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알려진 독일자동차 회사이다. 중국어로는 바오스지에(保时捷, bǎo shí jié)라고 부른다. 오스트리아 기술자 출신의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cshe)에 의해 1931년 설립되었다. 본사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포르쉐는 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로 고성능 스포츠카, 슈퍼카, 세단, SUV 등을 제조한다. 오스트리아의 자동차공학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가 1931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에 스포츠카와 경주용자동차를 제작하는 포르쉐 엔지니어링 오피스(Porsche Engineering Office)로 설립하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요청에 따라 히틀러의 국민차 계획에 깊이 관여하면서 독일의 국민차 개발을 하느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정작 포르쉐 이름으로는 자동차 개발을 하지 못하다가, 1934년 폭스바겐을 최초로 설계하고 1936년 10월 폭스바겐의 딱정벌레형 원형을 만들었다. 전쟁 기간에는 독일군을 위한 군용차와 탱크를 디자인하고 납품한다. 1939년 페라리, 람보르기니(Lamborghini), 부가티(Bugatti)와 함께 세계 4대 스포츠카의 하나인 포르쉐를 처음으로 제작하였다. 1948년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Ferry Porsche) 주도로 포르쉐 최초의 시리즈인 356을 선보였다. 이어 보급형모델인 914·924, 벤츠·재규어 등 최고급품들과 겨룰 만한 최고급형 모델 928, 포르쉐 모델 가운데 가장 저렴한 944, 944의 대체차종인 968 등 우수한 스포츠카를 제작하였다. 1951년 창립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포르쉐 356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1951년 세상을 떠났으나 페리 포르쉐가 탁월한 경험과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1950년대 말 회사를 연산 8,000대 수준의 규모로 성장시켰다. 1963년 포르쉐의 대표 차량인 911이 등장한다. 911은 페리 포르쉐의 아들인 알렉산더 포르쉐가 디자인하였으며, 원래 901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으나, 푸조에서 0이 들어간 숫자의 차량명을 사용 중이었기 때문에 911로 이름을 변경한다. 1900년대 포르쉐는 경영 문제로 부도 직전의 위기까지 처하지만, 당시 대주주였던 폭스바겐이 경영에 참가하여 구사일생하게 된다. 포르쉐가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 박스터가 개발되었는데, 박스터는 개발비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당시 개발 중이던 수냉식 996과 많은 부품을 공유하였다. 이는 많은 논란이 되었으나, 911 가격의 절반으로 구입을 할 수 있었던 박스터는 히트를 기록하며, 포르쉐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이후 폭스바겐과의 공동 개발을 통해 포르쉐 최초의 SUV 카이엔을 출시하는데, 이 차량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여 2008년 포르쉐에서 폭스바겐을 자회사로 인수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만큼의 거액을 벌어들였으나, 미국의 금융 경색에 따른 자금 압박과 은행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폭스바겐의 자회사로 편입되어 2012년 폭스바겐이 포르쉐를 완전히 인수하였다.[3] 가기.png 포르쉐에 대해 자세히 보기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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