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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은 2002년 [[5월]]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옛 대법원 자리로 이전하여 모든 시민이 편안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 탄생했다. 공공 미술관으로서 전문성과 대중성의 결합을 통해 문화생산성을 높이고자 다양하고 질 높은 내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모든 시민에게 휴식과 사색 재충전과 치유를 제공할 쾌적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노력 할 것이다. 재 탄생한 미술관은 전시동과 관리동으로 나뉘어져 지하2층, 지상3층으로 건축됐으며, 천경자전시실을 비롯하여 총6개의 전시실, 예술체험공간, 영상정보실, 강의실, 카페테리아, 뮤지엄샵은 전시동에, 자료실은 관리동 1층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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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은 2002년 [[5월]]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옛 대법원 자리로 이전하여 모든 시민이 편안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공 미술관으로서 전문성과 대중성의 결합을 통해 문화생산성을 높이고자 다양하고 질 높은 내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모든 시민에게 휴식과 사색 재충전과 치유를 제공할 쾌적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노력 할 것이다. 재 탄생한 미술관은 전시동과 관리동으로 나뉘어져 지하2층, 지상3층으로 건축됐으며, 천경자전시실을 비롯하여 총6개의 전시실, 예술체험공간, 영상정보실, 강의실, 카페테리아, 뮤지엄샵은 전시동에, 자료실은 관리동 1층에 위치하고 있다.
  
 
=== 배재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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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5일 (수) 01:09 기준 최신판

서울광장(서울廣場, Seoul Plaza)
서울광장 바닥분수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1912년 시청앞 광장
1940년 무렵 시청앞 광장
1960년대 확장된 서울시청 앞 광장과 도로
2002년 월드컵 때 시청앞 광장
2012년 10월 4일 싸이 공연

서울광장(서울廣場, Seoul Plaza)은 서울특별시청 앞에 있는 광장으로 2004년 5월에 조성됐다. 그 전까지는 '시청앞 광장'이라고 불렸다. 간혹 '시청광장'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강경한 사학자들은 '대한문광장'이라고 부른다.

개요[편집]

서울특별시가 기존의 교통광장을 교차점광장·미관광장·시민광장 중심의 대광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40여 년 간 서울특별시청 앞에 놓여 있던 분수대를 헐고 주변을 다듬어 2004년 5월 1일 개장했다. 총면적은 3,995평, 잔디광장 면적은 1,904평, 돌로 포장된 잔디광장 둘레 면적은 2,098평이다.

잔디광장은 대청마루에 보름달을 연상시킨 타원형이다. 잔디는 왕포아풀로,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깔린 것과 같은 품종이다. 지하에 저류조가 있어 스며든 빗물을 모아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잔디에 뿌릴 수 있도록 친환경공법으로 설계했다. 잔디광장에선 각종 대규모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40여 년 간 시청 앞에 있던 분수대 자리엔 조명에 따라 다양한 물기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바닥분수가 들어섰다. 지하에 수조를 묻어 겉에서 보면 마치 바닥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른 것처럼 보인 분수로, 물줄기 높이와 방향도 조절할 수 있다. 또 주변 경관과 함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잔디광장 둘레에 48개의 조명등이 설치돼 있다.

조성배경[편집]

서울광장은 시청앞에서 보행자의 권리를 위해 시위 중인 시민들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역사문화자원들이 산재하여 국가적 상징성 및 역사성을 지닌 장소로 서울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으나 사람을 위한 광장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교통광장으로 상습적인 교통혼잡과 정체로 몸살을 앓아오던 곳이었다. 또한 지하상가 및 지하보도로만 횡단이 가능하여 보행접근성이 매우 불리했고 장애자, 노약자에 대한 보행권 배려가 전무한 상황이었기 떄문에 보행 공간으로 조성해달라는 시민단체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함께 시민여론조사에서도 광장조성에 대한 수요가 파악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서울광장이 붉은 악마의 응원의 메카로 부각되면서 시민결집과 커뮤니케이션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본격적인 광장조성 논의가 진행되었다.

역사적 의의[편집]

서울광장은 3.1운동, 6월 민주화운동 등 한국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의 무대였으며 2002년 월드컵 기간에는 시민들의 축제의 마당이었다. 시청광장의 역사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다가 월산대군 개인집(덕수궁)으로 돌아온 1897년부터 시작된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고종은 나라의 기틀을 새로이 하기 위해 덕수궁 대한문 앞을 중심으로 하는 방사선형 도로를 닦고 앞쪽에는 광장과 원구단을 설치하였다. 이때부터 대한문 앞 광장은 고종보호 시위, 3.1운동,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시위, 6월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주요무대가 되었니다.

광장명물[편집]

분수대[편집]

1963년 6월 29일 첫 가동돼 40여 년간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켜온 분수대가 철거되고 가로·세로 9.5m 넓이의 바닥분수(일명 '춤추는 바닥분수')가 설치되었다. 바닥분수란 수조가 지하에 묻혀 있어 분수가 가동되지 않을 때는 그냥 보도처럼 보이지만 가동되면 화강석 바닥에 뚫린 121개의 지름 30cm 구멍(노즐)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른 것. 7가지 색을 발하는 131개의 LED 수중 조명이 높이 70㎝~2.5m까지 35가지의 다양하고 화려한 장관을 연출한다.

  • 분수대 가동안내 (기온, 날씨 등 현장여건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
  • 기간: 4. 11. ~ 10월
  • 시간: 10:00~17:50(50분 가동, 10분 휴지)

조명[편집]

잔디광장 둘레엔 48개의 조명등이 설치돼 주변과 어우러진 여백의 미로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

조명 역시 공간을 차지한 탑형 대신 바닥조명으로, 타원형 잔디광장 둘레를 따라 또 광장과 차도 경계석 측면에 벽부등 (돌에 구멍을 내고 등을 넣은 것)을 심어 마치 컵안에 달걀이 들어있는 모양으로 야경은 은은하면서도 심플한 멋을 자아낸다.

스케이트장[편집]

2004년 12월 24일~ 2005년 2월에 스케이트장 첫 개장 이후 매년 겨울마다 스케이트장 운영했다.

매년 겨울이 되면, 계절 한정으로 잔디 광장을 스케이트장으로 변경하여 운영한다. 접근성이 탁월하고 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에 겨울 데이트코스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래서 이용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엄청나게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2018~2019 시즌은 사진과 좀 달리 어린이 빙상장, 성인 빙상장에다 컬링 체험 존까지 구역을 쪼개 운영하고 논두렁 컨셉에 부대시설을 확충한다는 이유로 나무데크와 부대시설 면적을 넓혔다. 따라서 정작 넓어야 할 스케이트장 면적이 심각하게 좁아져서 다소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하키화, 피겨화 계열 이외의 스피드 부츠는 개인 신발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도 참고 요소.

다만 2016년 겨울(2016년 12월~2017년 2월)은 스케이트장을 운영하지 않았다. 10월부터 열린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집회가 12월에도 계속 진행되기로 한 만큼 시민들의 안전과 분위기 등을 고려한 것.

JTBC 인터넷 컨텐츠인 박준형의 와썹맨에서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방문한 에피소드가 있다

주변 볼거리[편집]

덕수궁[편집]

원래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저택으로 1593년 피난에서 돌아온 선조가 이곳을 임시궁궐로 사용하면서 궁궐로 쓰이게 됐다. 처음 정릉동 행궁이라고 부르던 것을 광해군 3년(1611) 경운궁으로 고쳐 불렀다. 광해군 7년(1615) 임금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약 200여년 동안 비어 있었다가 1897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오면서 다시 궁궐로 사용됐습니다. 고종이 황제로 있던 1907년까지 대한제국의 파란만장한 역사의 중심무대가 됐습니다. 덕수궁이란 이름은 1907년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강제로 밀려난 이후 경운궁에 그대로 머물렀는데, 이 때부터 덕수궁이라고 불렀다. 석조전을 비롯한 많은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 등급: 사적 제124호
  • 전화번호: 02-771-9951
  • 관람료: 대인(만25세 ~ 만64세) - 1,000원 / 단체(대인 10인 이상) - 800원
  • 개장시간: 09:00 ~ 21:00
  • 휴일: 매주 월요일

원구단[편집]

원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단으로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이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그 뒤 1899년 원구단의 북쪽에 황궁우를 건립하고 신위판을 봉안했다. 그러나 1913년 일제에 의하여 원구단은 헐리고 조선호텔이 들어섰으며, 지금은 황궁우만 남아있다.

  • 등급: 사적 157
  • 전화번호: 02-2260-1410

성공회성당[편집]

  •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
  • 지정연월일: 1978년 12월 18일
  • 시대: 1922년 2월 착공, 1926년 5월 2일 완공, 1996년 증축
  • 규모·양식: 지하 1층, 지상 3층, 초창시 건축면적 519㎡(157평), 연면적 909㎡(275평), 로마네스크 양식
  • 재료: 구조- 목조 트러스, 외장재- 적벽돌ㆍ화강암
  • 설계자: 아더 딕슨(Arthur Dixon)
  • 소유자: 대한성공회
  • 소유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3

서울시립미술관[편집]

서울시립미술관은 2002년 5월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옛 대법원 자리로 이전하여 모든 시민이 편안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공 미술관으로서 전문성과 대중성의 결합을 통해 문화생산성을 높이고자 다양하고 질 높은 내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모든 시민에게 휴식과 사색 재충전과 치유를 제공할 쾌적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노력 할 것이다. 재 탄생한 미술관은 전시동과 관리동으로 나뉘어져 지하2층, 지상3층으로 건축됐으며, 천경자전시실을 비롯하여 총6개의 전시실, 예술체험공간, 영상정보실, 강의실, 카페테리아, 뮤지엄샵은 전시동에, 자료실은 관리동 1층에 위치하고 있다.

배재공원[편집]

  • 소재지: 중구 정동 34-31
  • 면적: 2,877㎡
  • 사업착수: 1988. 12. 1
  • 공용개시: 1989. 5. 22

교통안내[편집]

지하철
  • 1호선 시청역 하차 -> 5, 6번출구 앞
  • 2호선 을지로입구역 하차 -> 1, 8번 출구 시청 삼거리방향 200m
  • 5호선 광화문역 하차 -> 5, 6번 출구 서울시청 방향 400m
버스
  • 빨강버스(광역) : 9409
  • 파랑버스(간선) : 101, 150, 172, 402, 402(심야), 405, 472, 600, 602, 603, 172
  • 초록버스(지선) : 1711, 7016
  • 공항버스 : 서울시청(호텔경유), 6001, 6005
  • 마을버스 : 종로09, 종로11
  • 김포시 일반버스 631, 김포시 좌석버스 1002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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