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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0일 (일) 01:5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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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독일어: Brandenburg)는 독일 동부에 위치한 주이다. 1990년 독일의 재통일(동서독 통일) 이후 다시 만들어진 주이다.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1]
개요
브란덴부르크주의 면적은 29,654.16km²이며 인구는 2,573,135명(2022년 12월)이다. 주도는 포츠담 회담의 바로 그 포츠담이다. 북쪽으로는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북서쪽으로는 니더작센주, 서쪽으로는 작센안할트주, 남쪽으로는 작센주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다.
역사적으로 이 지방은 본래 브란덴부르크 변경령으로 후에 프로이센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데르-나이세선이 책정됨에 따라 역사적인 브란덴부르크주 영토의 1/3(오데르강 너머에 있는 지역: 노이마르크)이 폴란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지방의 이름은 도시 이름인 브란덴부르크안데어하펠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베를린을 브란덴부르크가 빙 둘러싸고 있는 형태라 굉장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대중교통 승차권도 하나로 통합되어있고, ARD 방송국 지방 관할 구역도 RBB(Rundfunk Berlin-Brandenburg :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국) 하나로 동일하다.
역사적으로 베를린 자체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시절부터 수도였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베를린과 통합해서 베를린-브란덴부르크주를 신설하자는 의견이 있고, 실제로 1995년에 브란덴부르크 주와 베를린의 두 주 정부가 합병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여 이듬해 주민 투표가 실시됐는데 부결돼서 무산되었다. 구 서베를린 시민들은 찬성했는데 구 동베를린 시민들과 브란덴부르크 주민들, 즉 구 동독인들이 반대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투표율 미달로 통과되지 못했다. 이때 통합 주의 이름을 프로이센 주로 되돌리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무산된 것을 보면 주민들 대부분은 딱히 시끄러운 변화를 원치 않는 모양이다.
브란덴부르크 남동부의 라우지츠(Lausitz) 지방에선 코트부스와 슈프레-나이세를 중심으로 저지 소르브어를 사용하는 소르브인 주민이 존재한다.
토양이 거칠고 모래투성이라,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Mark Brandenburg) 시절의 별명은 신성 로마 제국의 모래상자(Heiligen Römischen Reiches Streusandbüchse)였다.
엘베강과의 사이에 엘베-하펠 운하가 통해 있으며, 강관(鋼管)·기계·트랙터·피혁·섬유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2][3]
역사
본래 기원전부터 게르만족의 영역이었던 이 지역에 7세기 무렵 슬라브족이 비스와 강 동쪽에서 건너와 거주하기 시작했다. 독일왕 하인리히 1세가 슬라브족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였지만 이후 다시 슬라브족에게 통치권이 넘어갔다. 10세기 중반에 오토 1세는 새로 정복한 지역에 북부 경계지방(Nordmark)을, 브란덴부르크 하펠베르크에 주교령을 설치했다.
12세기 무렵 신성 로마 제국의 강력한 제후였던 하인리히 사자공의 노력에 힘입어 다시 게르만족이 주도권을 잡았다. 하인리히 사자공의 동진 이후 슬라브족에게 기독교가 전해졌고, 양 민족 사이의 통혼이 이루어지면서 이 일대는 서서히 게르만화되었다. 아스카니아 가문(Haus Askania) 출신으로 하인리히 사자공과 대립했던 안할트의 알브레히트(Albrecht der Bär 1100~1170)는 1150년대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로부터 북부 경계지방과 브란덴부르크 마을을 하사받았는데, 알브레히트는 이 지방의 슬라브 반란을 진압한 후 스스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을 자처하면서 초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되었다. 이후 제국 북동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아스카니아 가문은 이에 힘입어 브란덴부르크 지역의 독일인을 베를린이 위치한 중부 경계지방이란 뜻의 미텔마르크(Mittelmark)를 거쳐 오데르강을 넘어서 새 경계지방, 노이마르크(Neumark)로 알려진 지금의 폴란드 루부스키에(Województwo lubuskie)까지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경계지방이라고 불리었던 곳은 오래된 경계지방이란 뜻의 알트마르크(Altmark)가 되어 지금의 지명에도 남아있다.
1320년, 브란덴부르크 아스카니아 가문의 대가 끊기면서 주인 없는 지역이 되었으나 황제 선출권이 있던 이 지역을 탐낸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의 독일왕 루트비히 4세가 맏아들 루트비히에게 이 지역을 넘기면서 1323년부터 1365년까지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 루트비히 4세 사후 형제들간의 상속 다툼으로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은 악화일로를 걸었고, 역시 황제 선출권을 탐냈던 보헤미아 국왕 겸 독일왕 카를 4세가 사위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오토 7세를 협박하여 1373년부터는 룩셈부르크 가문의 차지가 되었다.
1378년부터 브란덴부르크를 상속받았던 카를 4세의 차남 지기스문트는 아들이 없었던지라 1415년, 자신의 독일왕 선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호엔촐레른 가문 출신의 뉘른베르크 성주(Burggraf) 프리드리히 6세에게 브란덴부르크를 하사하였다. 프리드리히 6세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가 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약 500년의 세월에 이르는 기나긴 호엔촐레른 가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초창기 호엔촐레른 가문은 브란덴부르크 토착 귀족들과 갈등을 겪으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로 루터파가 공인되자 공식적으로 개종하여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한편, 수도원 재산을 몰수하고 오데르강과 슈프레강의 수운을 이용한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으면서 매섭게 세력을 확장했다. 이 시기 결혼동맹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덕분에 프로이센 공국과 더불어 약간의 분란이 있기는 했지만 클레베(Kleve), 마르크(Mark), 라벤스베르크(Ravensberg) 등 라인란트 일대도 상속받아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정작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은 30년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브란덴부르크에게는 다행이게도, 이 시기 호엔촐레른 가문에는 프리드리히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 프리드리히 대왕으로 이어지는 훌륭한 군주들이 연이어 배출되었다. 이들의 치세에 프로이센 왕국은 쭉쭉 성장해서 남독일의 오스트리아, 북독일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이라는 독일어권의 양대 강국으로 성장했고, 프로이센 왕국의 핵심 지역인 브란덴부르크, 특히 베를린도 당연히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이후로도 프로이센의 성장세는 거침없었고, 당연히 브란덴부르크도 마찬가지였다. 1848년 혁명 당시에도 프랑크푸르트암마인와 더불어 포츠담에 정부 기구가 설치되었을 정도다. 1871년 독일 제국이 수립되자 독일 전체의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으나, 1881년에 베를린이 분리되어 나갔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오데르-나이세선이 책정됨에 따라 역사적인 브란덴부르크주 영토의 1/3(오데르강 너머에 있는 지역: 노이마르크)이 폴란드령으로 넘어가게 되어 노이마르크 지방의 독일인은 강 서쪽으로 추방되었다.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이 수립되자 1952년에 브란덴부르크 주는 해체되었다. 독일의 재통일 이후에 브란덴부르크주는 다시 부활하여 현재에 이른다. 1996년에는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주를 합병하려는 안이 주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주 내부 행정구역 경계선은 전쟁 이전에 비해 완전히 바뀌었다. 전쟁 이전에는 지역별로 덩어리진 경계선이었다면 현재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경계선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서독 정부가 오데르-나이세 선 국경을 인정하고 이동 영토에 대한 주장을 취하했기에 오데르 강/나이세 강 너머 동쪽의 노이마르크 땅을 되찾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사회
현재 인구는 약 250만명 가량이며 수도를 둘러쌌다는 점에서 한국의 경기도와 비슷하지만 독일은 한국처럼 수도집중이 심각한 나라가 아니라서 독일 전체적으로 인구가 그리 많은 지역은 아니다. 그나마도 독일 자체의 고령화 문제와 더불어 경제적 요인등으로 인한 구 서독 지역으로의 이주 러쉬로 인해 인구수가 2011년 245만여 명 까지 감소했다. 2000년경에 270만 정도였는데 11년 사이에 25만 정도가 빠져나갔다. 그러나 2012년부터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서서 2022년 257만 여명 까지 늘어났다. 주된 원인은 베를린의 인구 증가와 집세 상승으로 인해 인근 브란덴부르크로 이주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편 공산주의 치하에서 50년 가까운 시기를 보낸 탓인지 독일 내에서 종교색이 가장 약한 지역 중 하나다. 인구의 80% 가량이 무종교이며, 나머지 인구는 대다수가 개신교 계열이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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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서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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