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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4일 (월) 14:47 판
해수관음상은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낙산사에 있는 동해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관음보살을 잘 표현한 불상이다. 1977년에 당시 동양최대 규모로 만들졌다는 해수관음상은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오봉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해수관음상은 높이 16m, 최대 너비 6m의 입불(立佛)이며 대좌 위 연꽃 위에 서 있는데 왼손에 감로수 병을 들고 있다. 남해 보리암 관음상과 함께 동해바다 거센 파도를 다스리는 듯한 관음보살의 상징적인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관음보살은 기도를 하면 그 소리를 듣고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는 존재로 대승불교가 성행하는 지역에서는 많이 숭상받는 신앙대상이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의 여행길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등 보통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근래에 조성된 불상 중에서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불상으로 손꼽힌다.
개요
낙산사 해수관음상은 당시 주지 원철스님의 원력으로 양질의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석재 700여 톤을 운반하여 1972년부터 불사를 시작하여 5년 만인 1977년 11월에 점안하였다.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로 대좌 앞부분에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하고, 양 옆으로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관음상은 대좌 위에 해수관음상 둘레에 조성된 108법륜석은 2005년 4월 낙산사 화재 이후 불법이 더욱 번창하여 중생의 번뇌를 깨달음으로 성화(聖化)시킨다는 의미에서 조성한 것이다. 108개의 장판석과 48개의 바퀴살을 화강암으로 깔았으며 2008년 6월 20일에 완성하였다.
관음상은 왼손에 감로수병을 받쳐들고, 오른손은 천의(天衣) 자락을 살짝 잡고 있으며, 미간에는 백호(白毫)를 박아 온누리에 퍼지는 자비의 광명을 상징하고 있다. 크기와 원만한 상호(相好, 부처님 얼굴), 균형 잡힌 체감미 등이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다.
화마 이겨낸 해수관음의 성지 - 낙산사
낙산사 창건 전, 당나라 유학을 중단하고 신라로 돌아온 의상대사는 걱정이 많았다. 그는 당나라의 침입을 예감하고 있었고, 삼국통일에 반감을 품은 귀족의 반란 징후가 곳곳에 나타났으며, 문무왕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부적 단합이 중요하던 그때, 의상대사는 강원도 양양에 관음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관음보살은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보살이기에 의상대사는 바로 양양으로 향했다. 홍련암 아래 관음굴에서 21일 동안 기도한 그는 마침내 관음보살을 만날 수 있었다. 관음보살은 대나무가 쌍으로 돋아날 것이니, 그곳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하리라고 전했다. 대나무가 돋아난 곳에 의상대사는 원통보전을 세웠다. 낙산사 전각 중 원통보전과 홍련암을 대표적 전각으로 꼽는 이유다.
낙산사 복원에는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원통보전의 복원에는 양양에서 자란 소나무를 사용했다. 조선 초기 다포식 양식인 원통보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중앙 법당다운 안정감과 장엄한 기운을 지녔다. 원통보전에 다가설수록 색감은 생생해지고 단청의 화려함은 섬세해지는데,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다. 서까래만 봐도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통보전 가까이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 칠층석탑(보물 제499호), 담장(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 등 문화재가 모여 있다.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원통보전 내부에 있다. 고려 후반 전통 양식을 띤 이 불상은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온화한 표정, 가냘픈 손가락, 섬세한 옷 주름 등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원통보전 정면으로 칠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7층으로 높였다. 부분적으로 손상됐으나 탑 꼭대기에 있는 쇠붙이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기단부에서 투박한 겹연꽃 무늬를 볼 수 있다.
원통보전 담장은 조선시대 세조가 낙산사를 중창할 때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와와 흙을 차례로 쌓고 곳곳에 원형 단면의 화강암을 넣었다. 조선시대 사찰의 대표적인 담장으로 평가받는다.
담장 주위엔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대나무가 자란다. 홍예문에서 원통보전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여느 고찰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마치 세조가 다녀간 뒤 중수 직후의 모습이 지금 같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선명함과 생생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으로 향하면 낙산사의 또 다른 매력이 기다린다. 해수관음상에서 의상대를 지나 홍련암에 이르는 구간이다. 도보로 약 20분 거리지만 고개만 돌리면 낙산사와 자연이 빚어내는 조화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해수관음상은 높이 15m, 둘레 3m 정도의 거대 불상으로, 불상 조각의 일인자인 권정학 씨가 조각했다. 크기만큼 공사 기간도 상당한데, 1971년부터 다듬기 시작해 6년 6개월 만에 완성했다. 바다를 등지고 불상을 바라보면 관음보살이 백두대간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듯하다. 그 시선을 따라 다음 목적지인 의상대와 홍련암으로 향한다.
의상대와 홍련암 일대는 따로 명승 제27호로 지정됐다. 주변 해안이 독특하고 경관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의상대사의 전설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붉은 연꽃 속 관음보살을 봤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다.
암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의 앞뒤가 각각 형식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불전에 앉으면 관음굴에서 치는 파도소리가 바닥을 울리며 몸으로 전해진다.
의상대 또한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난 해안 절벽 위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의상대는 1925년 만해 한용운이 낙산사에서 머물면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복원한 것이라 전해진다.
이곳에서 조선시대 문신 정철은 해돋이를 보며 "새벽같이 일어나 보니 상운이 짙어 육룡이라도 일듯, 마침내 해가 뜨니 만국이 움직이고 천중에 치뜨니 호발을 헬 듯하다"고 묘사했다.
이용안내
- 주소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 문의 : 033-672-2447~8
- 휴무일 : 연중무휴
- 이용시간 : 하절기 04:00~20:00. 동절기 05:30~18:00
교통
- 양양>낙산사
양양터미널에서 속초행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10분정도 후 낙산에 하차
- 속초>낙산사
속초에서 양양행 버스(9, 9-1)를 타고 낙산에서 하차. 속초시내에서 첫차 새벽 7시. 10분간격 배차
- 서울>양양
- 동서울터미널→양양 : 12,900원. 2시간 10분 소요. 첫차 07:00 막차 19:50
- 서울고속버스 터미널 →양양 :14,000원. 2시간 소요. 첫차 06:30 막차 23:30
- 운행간격 : 동서울터미널(40분~120분). 서울고속버스터미널(60분~120분)
- 자가용 이용 시
- 교통문의
- 낙산사 : 033-672-2447~8
- 양양군 교통계 :033-670-2356
- 양양시외버스정류장 : 033-671-4411
동영상
지도
참고자료
- 낙산사 홈페이지 - http://www.naksansa.or.kr
- 〈낙산사 해수관세음보살상〉, HeritageWiki
-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상, 동해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관음보살을 잘 표현한 불상〉, Culture & History Traveling
- 오주석 기자, 〈① 우리나라 3대 관음 성지 '양양 낙산사'를 여행하다.〉, 《시니어매일》, 2020-03-09
- 안정수 여행작가, 〈[h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a1e2b447-6aa5-4095-aed4-77db12836f7e 화마 이겨낸 해수관음의 성지, 양양 낙산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2015-10-29
- 편집국, 〈2017 봄 낙산사③ ‘해수관음상’을 등지고 ‘독도’를 바라보다〉, 《아시아엔》, 2017-04-22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