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光化門廣場)은 2009년 8월 1일에 완공되어, 현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경복궁 광화문과 세종대로 사거리 사이 중앙 서측면에 조성된 시민공간이다.
목차
개요
임진왜란 시기 광화문이 화재로 소실된 후에도 광화문 앞길은 육조거리로, 궐외각사(闕外各司)들이 모여 있는 중심 관청가였다. 광화문은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복원됐지만,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경복궁 내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지면서 경복궁 동쪽으로 강제 이전되었다. 제3공화국 시절 콘크리트로 광화문이 다시 만들어지고 위치와 건축소재면에서 고증 논란이 끊이지 않다가 2008년 고증을 통해 원래의 자리에 제대로 복원되었다. 광화문의 소실과 복원은 수차례 반복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광화문 앞길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중심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며 소식과 의견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고, 다양한 근, 현대사를 겪으며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화합의 공간으로 발돋움했다.
광화문의 복원과 함께 2009년 광화문 앞길은 장소의 의미와 기능에 맞게 처음으로 광장의 모습을 갖추었다. 2022년 8월 다시 문을 연 '광화문광장'은 월대복원이라는 민족의 숙원을 해결하는 등, 광화문 앞길의 역사적 의미와 깊이를 계승함과 동시에, 휴식과 산책 등의 일상과 축제나 행사 등의 비일상을 연결하는 서울 시민의 대표적 삶의 장으로서 시민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
역사
육조거리
조선 시대 육조의 관청이 즐비했던 거리이다. 조선 건국 한양 천도 당시에 계획됐다. 조선을 건국한 뒤, 한양부로 천도하면서 이곳에 경복궁이 세워지고 그 앞으로는 의정부, 삼군부, 육조, 한성부 관아가 그 앞으로 세워진다. 현대에는 광화문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도로의 북측 종점에 왕궁인 경복궁 광화문이 있고 그 앞으로 지금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의 육조의 관아, 그리고 지금의 합동참모본부 역할을 하는 삼군부와 서울특별시청의 전신인 한성부 관아까지 모두 지금의 광화문광장의 양 옆으로 모여있었다.
육조거리의 최남단은 현재의 세종대로사거리(동아일보 사옥·광화문사거리)까지였다. 또한 육조거리 이남은 현대의 모습과 달리 청계천 이남부터는 환히 트여있던 구조는 아니었다. 세종대로 사거리(광화문광장 사거리, 동아일보 사옥)까지가 육조거리의 끝이었고, 그 이남으로는 군락이나 작은 길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육조거리의 이름을 '광화문통(光化門通)'으로 변경했다. 3.1 운동 때 현재의 교보문고 앞(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각)에 사람들이 모인 기록이 남아 있다.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건축하면서 육조거리의 도로를 확장했으니, 이것이 세종대로를 구성하는 세종로의 원형이다. 이후 세종로는 1950년대에 장훈 서울특별시청 도시계획과장에 의해서 도로의 폭을 2배만큼(53m→100m) 넓혔다.
1960년대 이후
1968년, 서울시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면서 동시에 철골 아치를 설치하였다. 이후 1971년에는 이전의 일시적으로 설치되었던 폭 20m 정도의 아치를 폭 50m 정도의 아치로 넓혀 설치하였다. 7년 후인 1978년, 20m 정도 더 폭이 늘어나 70m 정도의 아치가 되었다. 다만, 사진처럼 철골로 유지되던 시기는 많지 않았으며, 대부분 "질서와 안정 속에 국가 발전 이룩하자"나 "국민화합 이루어 정의사회 이룩하자"라는 선전성 문구가 상시적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날 때나 새로 취임했을 때, 다른 나라의 대통령들이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했을 때 환영 문구도 이 아치에 새겨졌다. 1979년 10.26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 국장을 다룬 《대한뉴스》나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 취임을 다룬 《대한뉴스》 영상 등 옛 영상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 1981년,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이후 '외국인들이 볼 서울에 저런 흉물스러운 철골 구조물은 안된다!' 라는 의견에 따라 1982년 결국 철거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도 해체한 덕택에 육조거리와 광화문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오늘날의 세종로가 되었다.
2009년 이후
세종대로 중앙분리대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부터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것이 육조거리에 서서 광화문과 경복궁, 북악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원 설계자의 의도에 역행하는 설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광화문 중앙분리대를 광화문광장으로 바꾸어 광화문-육조거리-시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축선을 강조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고 2008년 5월 27일 착공에 들어가 2009년 8월 1일에 개장하였다. 중앙분리대를 광장으로 바꾸면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인 세종대왕의 동상이 기존 이순신 동상(1968년 설치) 뒤에 세워졌다. 한편 광장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왕복 차로수(20차로)를 자랑했던 세종대로는 12차선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서양의 광장과는 다르게 조선시대 육조거리 시절부터 나라가 행정 중심지 사이에 의도적으로 세운 관제 광장이므로, 서양의 광장과는 그 기능과 역할이 정반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50년대부터 근 60년간 이 자리는 광장은 커녕 20차선 대로였던 곳이기 때문에 생활권과 상권, 보행동선이 광장을 통해서 연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광장을 기준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가슴시린 현실이며, 무엇보다 광화문광장 그 자신이 중앙분리대 출신이라 세종대로 중앙에 섬처럼 떠있기 때문에 일부러 세종대로를 횡단보도로 건너서 가야하는 기이한 광장이 되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들르는 곳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 되어버려, 시위의 공간, 화가 나서 따지러 가는 곳으로 공간의 성격이 많이 달라져 버렸다.
2022년 이후
횡단보도를 통해서만 접근해야 하는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이 전격적으로 수용되어 광장을 세종로 서편으로 붙여서 세종문화회관 및 정부청사와 연결시키는 재조성 작업이 시작되었다.
광화문 광장을 세종로 서편으로 붙이겠다는 계획은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기 이전인 2005년부터 승효상과 유홍준이 제안한 방법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될 뻔 했으나 당시 오세훈 시장이 중앙분리대 안을 채택했다는 것이 속사정. 후임인 박원순 시장은 임기 초기부터 광화문광장을 재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2018년에 국제 설계 공모를 실시했다. 이 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은 승효상이었고... 결국엔 당연하다는 듯이 승효상 안으로 재조성이 시작되어 2022년 8월 6일 재개장했다.
세종로 바닥을 파면 당연히 조선시대 유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 조선시대 육조거리 유물이 많이 발굴되었다.
세종대로 차로수는 이젠 7-9차로로 더욱 줄어들어서 교통정체가 더욱 심해졌다.
시설
- 세종대왕동상 : 민족의 영웅으로서 경복궁에서 즉위하여 승하하신 최초의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의 동상. 높이 6.2m, 폭 4.3m 규모로 4.2m 기단(基壇)위에 좌상형태로 남쪽을 향해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왼손에는 '훈민정음 해례본'(페이지는 용자례 - 훈민정음 글자의 사용 예를 정리한 것)을 , 오른손은 가볍게 들어 신하들에게 온 백성이 훈민정음을 널리 쓰도록 하라는 대왕의 정신을 표현하였다. 기단 바로 앞에는 훈민정음 원문과 해석문이, 동상 전면부에는 세종대왕의 주요 과학 발명품인 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모형을, 후면부에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상징하는 기둥형태의 6개의 열주가 세워져 있다.
- 이순신장군동상 : 조선 중기 명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옥포, 한산도, 명량 등에서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낸 이순신 장군의 동상 전체 높이 17m(동상 6.5m, 기단 10.5m)의 청동 입상 형태로, 기단에는 거북선 모형이, 기단앞에는 북 2개가 놓여있으며, 기단 옆에는 전진하는 군함의 모습이 양각되어 있다. 이순신장군 동상주변에는 명량분수와 함께 이순신장군 승전비가 세워져 있다.
- 세종·충무공이야기 : 세종대왕 동상 기단 후면에는 세종이야기 전시관 입구가 있다. 세종대왕 동상 아래 옛 지하 보․차도 공간과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조성된 세종이야기․충무공이야기 전시관에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혼과 업적이 살아 숨쉬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지하전시관으로 통하는 출입구에 설치된 큐브형태의 '미디어글라스'에서는 세종대왕과 충무공의 업적부터 한글 콘텐츠, 신진작가들의 창의적인 미디어아트 작품이 선보인다.
- 명랑분수 : 충무공의 해전을 상징하는 바닥분수이다. 동상 내측 분수의 133개 노즐은 명량해전 당시 133척의 왜선 격퇴를, 외측 분수는 한산도 대첩 당시 학익진(鶴翼陳, 학이 날개를 편 듯이 진을 쳐 적을 측면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전술) 전법을 상징한다. 또한 분수 앞 바닥 조명은 이순신장군 탄생년도 1545년을 모티브로 하여 길이를 15.45m로 만들었다.
- 운영시간 : 4월~5월, 9월~10월 : 10:00 ~ 19:50. 6월~8월 : 10:00 ~ 20:50 우천시, 강풍시 운영중단
- 해치마당 : 모두를 위한 광장의 시작. 해치마당이다. 광화문역과 광화문광장을 연결하고, 휴식과 만남의 장소가 되는 곳이다.
- 내부시설 : 안내데스크, 모두의 계단, 공공라운지, 토층전시벽, 화장실, 유아휴게실, 수유실, 엘리베이터(광화문역↔해치마당)
- 광화문계단 : 해치마당 내부와 광장을 연계하는 경사로에 조성된 계단형 쉼터이다. 나무 그늘아래에서 휴식과 영상을 즐길 수 있다.
- 영상창 : 해치마당 경사로 벽면에서 다양한 영상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에서 비롯한 한글의 근본, 천지인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특히, 사람 인(人)을 주제로한 "광화 Aquarium", "Poloraid" 작품은 현장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 육조마당 : 광화문, 월대와 이어지는 공간으로 조선시대 주요 관청들이 있던 육조거리를 상징한다. 광화문의 아름다운 경관을 살리기 위해 넓은 잔디마당을 만들었다. 잔디주변으로는 전통적인 우물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가 돌포장 되어있다.1392년 조선건국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돌판에 기록한 역사물길이 이곳 육조마당에서 시작하며, 역사물길 옆에 설치된 '앉음 벽'에 앉아 역사의 흐름을 느끼며 바로 옆에 심은 소나무 숲 향기를 맡을 수 있다.
- 주요시설물 : 구재현시설(삼군부,예조), 역사물길(시점), 앉음벽, 잔디
- 놀이마당 : 세종대왕동상과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는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 진다. 놀이마당 양측에서는 행사 관람과 휴식을 위한 앉음터와 넓은 의자가 있다.
- 소나무정원 : 잔디마당에 이어 가장 처음 만나는 공간은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 정원'이다. 우리나라 역사문화 속에서 문인들과 화가들에게 사랑받아온 소나무를 광장 초입에 배치하였다. 키 큰 소나무 장송 군락 사이로 광화문과 북악산의 경관을 볼 수 있다.
- 시간의정원 : 문화재 발굴조사 중에 드러난 지층과 사헌부터, 배수로, 우물 등은 서울의 오랜 역사를 드러내는 공간이다.
- 문화쉼터 : 세종문화회관 앞, 공원의 일상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다. 북악산에서 경복궁과 광장으로 자연이 연결되는 공간을 담고자 보통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참나무 숲을 조성하였다. 문화쉼터 나무 아래에는 누구나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긴 테이블 '모두의 식탁'이 있다.
- 열린마당 : 사람들이 만나고 쉴 수 있도록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공간dl다. 바닥에는 전국에서 생산된 돌들을 조각보 문양으로 설치하였다.
- 광장숲 : 복잡한 세종대로 사거리를 벗어나 숲과 같은 녹음이 풍부한 휴식공간dl다. 느티나무, 느릅나무, 팽나무 같은 키가 큰 나무를 비롯하여 산수국, 박태기나무, 병꽃나무 등 키 작은 나무와 초화류가 어우러져 숲과 같은 녹음이 풍성한 휴식공간을 선사한다.
- 역사물길 : 광화문광장에는 1392년 조선건국부터 630년 역사의 물길이 흐른다. 역사물길은 정부서울청사 앞 육조마당에서 시작하여 광화문광장 전체를 흘러 한글분수까지 이어진다.
- 시간의벽천 : 광화문광장과 조선시대 유구의 단차(1.2m)를 이용, 벽면에서 물이 흐르게 하여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수경시설이다.
- 바닥우물 : 사헌부 터 입구에서 발견된 우물을 모티브로 하여 오목하게 패인 물이 샘솟는 어린이 물놀이 공간이다.
- 터널분수 : 광복 후부터 광장개장까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번영을 상징하는 분수입니다. 터널분수 아래에 광복 후 77년의 역사물길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 운영시간 : 4월~5월, 9월~10월 : 10:00 ~ 19:50 6월~8월 : 10:00 ~ 20:50 우천시, 강풍시 운영중단
- 한글분수 : 한글창제 원리인 천, 지, 인을 모티브로 하여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연출한 놀이형 글자분수입니다. 분수에 표시되는 한글을 유추해 볼 수 있다.
- 운영시간 : 4월~5월, 9월~10월 : 10:00 ~ 19:50 6월~8월 : 10:00 ~ 20:50 우천시, 강풍시 운영중단
이용안내
- 사헌부 문터 : 사헌부 문 터 전시장은 이 일대의 발굴에서 나온 매장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전시장이 조성된 장소는 사헌부가 있던 곳으로, 2020년 10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배수로와 우물, 사헌부 청사의 담장과 출입문 터, 행랑 유구(遺構) 등이 확인되었다. 전시장은 지상에서 대략 1.2m 아래 공간으로 지붕은 한국 전통 가옥의 처마 곡선을 살리고, 기둥은 인근 나무와 비슷한 두께와 높이로 만들어 기둥 사이 광화문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 문화재 재현시설 : 광화문광장은 조선시대 관청이 있던 곳이었다. 문화재 발굴 현장 중 사헌부 문터에서 발굴된 우물과 문지를 노출전시 하고, 그 외 현장은 복토 후 상부에 담장, 배수로 등을 재현하여 육조의 흔적을 담았다.
- 편의시설 : 안내데스크, 화장실, 유아휴게실, 수유실, 음료자판기와 음수대
상징성
과거 행정 중심지
세종대로에 설명된 연선 기관들을 살펴 보면 명실상부한 서울특별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20세기까지는 (한국 의회 정치의 상징이 여의도인 것처럼) 이곳을 한국 행정부의 상징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도 현 서울특별시의회가 있는 옛 부민관 자리(현 서울특별시청 맞은편)에 있었다. 참고로 경기도청도 경복궁 건너편에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인 현재는 다수의 기능이 분산되어 이전만큼의 위용은 뽐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6조와 의정부, 경복궁의 기능은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가 행하고 있었는데, 정부과천청사와 정부세종청사로 상당수 넘어갔고, 대전광역시 및 세종시 등으로 정부의 행정 기능이 꽤 분산된 상황이다.
정치소통·시위의 장
서울역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 등과 함께 시민단체들의 주요 집회 장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작은 시위부터 역사를 바꾼 굵직한 시위까지 여기서 많이 진행했다.
조선시대 광화문 앞에서 백성들이 집회를 자주 하였고,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로 이곳에 세월호 시위를 위한 천막이 세워지면서 진보단체들 중심으로 강하게 각인되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곳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열리면서 대중적인 집회와 시위의 성지 비슷하게 인식되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장소로 보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이전에도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가 인접해 있어 이쪽을 공격하기 좋은 모양새라 시위는 많이 했었으며,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규탄 집회가 대규모로 열리면서 더욱 그러해졌다.
일부는 관광하거나 지나갈 때 여기 일대는 시끄럽기 때문에 기피한다고 한다. 이유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시위, 집회 등을 할 때 광화문광장뿐만 아니라 세종대로 양옆에 있는 인도, 광화문 바로 앞에 있는 인도 등에서 1인 시위와 소규모 집회를 동시에 많이 해서 충돌도 일어나고, 소란스럽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시대부터 유생들이 모여서 상소를 올리고 집단농성을 하던 유래가 깊은 시위명소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노재팬 시위, 청소년 기후위기 결석 시위, 10.3 개천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 사랑제일교회 집회, 2020년 8.15 광복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 2021년 12월 22일 광화문 시위(예정)등 예로부터 우리나라 시위의 중심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큰 반전이 있는데, 광화문광장은 2009년 조성 당시부터 시위 집회가 금지되어 있었다. 시 조례에 따르면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광화문광장을 이용하는 방식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개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매번 무산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광화문광장이 시위의 상징이 된 것은 이러한 행사를 일단 '문화제'로 신고하거나, 아니면 세종문화회관이나 일부 기업 건물 등 광장 인근 장소에 집회 신고를 한 다음 광장까지 침범하는 경우라고.
문화적 랜드마크
2010년대 후반 들어 광화문광장에 있는 현수막은 모두 철거되었고, 2022년 8월 새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잔디랑 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졌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시위의 장으로서의 기능은 다소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2020년대부터는 행정적, 정치적 중심지에서 문화적 랜드마크로 탈바꿈하고 있다. 외교부가 광화문 일대에 있는 관계로 미국, 일본, 호주, 핀란드, 멕시코, 오만 등의 각국 대사관들도 광화문광장 인근에 많이 모여 있는 편이다. 덕분인지 관광객들도 많다. 정부 기관 뿐만 아니라 고층 빌딩에 각종 기업 본사 등도 많이 입주해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 지구 중 한 곳이다. 한국 대중 지식의 상징이었던 교보문고, 통신 시장에서의 매우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는 KT 본사가 존재한다.
주변
광화문광장은 광화문 앞 사직로에서 시작해 세종대로가 양옆 갈래로 뻗어나가 둘러싸여 있으며, 문안로와 종로가 만나는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끝난다. 광장을 중심으로 서쪽은 세종대로 하행선, 동쪽은 세종대로 상행선 구간이다.
광화문을 기점으로, 광장의 서쪽 편과 동쪽 편에서 볼 수 있는 인근 건물과 시설들은 다음과 같다.
서쪽
- 정부서울청사
- 사직로8길
- 세종로공원 - 그 뒤로 대한민국 외교부 청사와 정부서울청사 별관 건물.
- 세종문화회관
- 세종대로23길
- 지하에 광화문역 5호선 승강장이 위치.
- 현대해상빌딩
- 세광빌딩 - 삼성 갤럭시 광고판이 걸려 있는 삼각형 빌딩.
- 광화문역 7번 출구
동쪽
-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 그 뒤로 더케이 트윈타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주한미국대사관
- 삼봉로
- KT 광화문빌딩 웨스트
- KT 광화문지부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 광화문역 2,3번 출구
- 교보생명빌딩 - 교보생명보험 본사, 교보문고 본점.
- 주한 호주 대사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 주한 핀란드 대사관, 주한 콜롬비아 대사관
-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 광화문역 4번 출구
-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이외에도 시민열린마당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잇길과 바로 건너편 사직로8길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앙지하차도가 존재한다.
이용안내
도심 열린 광장으로 연중 24시간 상시 개방
교통안내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72 (세종로)
- 버스
- 광역버스 : 1000, 1100, 1200, 1900, 9701, 9703, M7106, M7129, 9714, 9709, 9710, 9710-1, G7111, M7111, M7154, 1004, 8600, 8601, G6005, M7119, 5000A, 5000B, 5005, 5500-2, 9000, 9000-1, 9200, 9401
- 간선버스 : 101, 103, 109, 150, 160, 260, 270, 271, 273, 370, 401, 406, 470, 600, 601, 602, 606, 700, 702A, 702B, 704, 707, 708, 720, 721, 741, N26, N37, N51, N75
- 지선버스 : 1020, 1711, 7016, 7018, 7019, 7022, 7212
- 마을버스 : 종로09, 종로11
- 순환버스 :01(KT광화문지사 앞)
- 공항 6002
- 지하철
- 3호선경복궁역 하차 > 6번출구 정부중앙청사, 광화문 방향
- 5호선광화문역 하차 > 해치마당 연결통로, 7번출구 광장숲 방향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 광화문광장 홈페이지 - https://gwanghwamun.seoul.go.kr/main.do
- 〈광화문광장〉, 《나무위키》
- 〈광화문광장〉, 《위키백과》
- 〈육조거리〉, 《나무위키》
- 이재형 기자, 〈두 배 더 커진 광화문광장!〉,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2-08-16
- 김현지 기자, 〈재개장 한 달…과거와 달라진 오세훈의 新광화문광장은?〉, 《시사저널》, 2022-09-05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