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세운상가(世運商街)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3가와 퇴계로 3가 사이에 있는 상가 단지이다. 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완공되어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 호황을 누렸으나 강남권 개발과 용산전자상가 건설 등의 요인으로 점차 쇠락하였다. 2008년 12월 단계적으로 상가를 철거하고 대규모 녹지축을 조성하는 사업에 착수하였으나 2014년 백지화되었다. 2015년부터 서울시가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다시 세운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2017년 9월 18일에 재개장하였다.[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 (장사동)에 위치한 주상복합 건축물. 정확히는 종로 3가와 퇴계로 3가 사이를 잇는 주상복합상가 건물군을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이다. 만약 최초임을 인정한다면 두 번째로 건설된 주상복합은 낙원상가이다. 세운상가라는 이름은 당시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이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위치는 최북단이 종로3가역, 최남단이 충무로역에 인접하는 약 1km 길이(2009년에 철거된 현대상가까지 포함한 길이)의 초대형 주상복합상가군으로 1967년부터 72년까지 세운, 현대, 청계, 대림, 삼풍, 풍전, 신성, 진양상가가 차례로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고급아파트와 상가가 함께 존재한 건물이었으나, 60년대부터 이 부근은 미군부대에서 빼내온 각종 고물들을 사기쳐서 고쳐서 판매하는 사업장이 자리잡은 동네였었고 이곳의 상가들은 이런 주변의 사업장과 결합해 가전을 비롯 각종 전자 제품의 메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강남개발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주거지로서 메리트가 사라지게 되었고, 결국 상부의 아파트들도 기술자들의 작업장으로 전용되면서 사실상 상가로 바뀌게 된다.
이후 한때 없는 거 없이 다 있다던 산업군은 용산 전자상가를 필두로 빠져나가기 시작해서 상권이 쇠락하게 되었고 이에 건물은 슬럼화되어버렸다. 이에 따라 서울 자치구는 마천루로 재개발을 바랐으나 서울특별시청과 문화재청은 이에 반대를 했고 오세훈 시장 시절에는 모든 건물을 철거해서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으로 계획을 했으나 상인들의 반발과 현실적인 보상 비용 문제로 이후 몇 년간이나 질질 끌다가 사실상 폐기되었다. 건물 자체가 당시 건축법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고 되는대로 시범적으로 만들어본 성격이라 에초부터 재건축을 통해 현대 기준을 충족할 수가 없다. 박원순 시장 이후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건물과 상가를 재생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가, 오세훈 시장이 재취임하면서 녹지생태도심 조성 개발로 가닥이 잡혔다. 현재 남아있는 세운 상가에 속한 상가 및 빌딩은 세운 전자상가, 대림상가, 청계 상가, 삼풍 넥서스빌딩, 호텔 PJ, 인현 상가, 진양상가가 있다. 흔히 이러한 세운지구 내 동서를 가로지르는 이러한 전자상가, 호텔, 오피스빌딩들을 모두 합쳐 세운 상가라고 부른다. 해당 건물들 중 대규모 리모델링을 거쳐 건물 마개 조를 했었던 삼풍 넥서스 빌딩과 호텔 PJ는 2013년경 안전 등급 B~C 등급을 받은 바 있다.[2]
역사
소개공지 조성
제2차 세계 대전은 공중 무기의 발달로 인해 지상에 효과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폭격기가 많이 운용되었고, 이에 따라 무차별적인 폭격에 대한 대비도 많이 진행되었다. 특히 폭격에 사용되는 소이탄은 투하 시 2,000°C의 고열로 주변을 모두 태울 수 있기 때문에,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이 많았던 일본은 이에 대한 대비가 절실했다. 1945년 3월 10일에 있었던 도쿄 대공습은 일본에 충격을 주었다. 전선에서 일본이 불리한 상황이었고, 미국에 의한 폭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자명했으므로, 일본의 각 지역에서는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아무런 건물도 짓지 않고 공터로 남겨두는 소개공지 조성 사업에 착수하였다. 이 사업은 당시 식민지인 한반도에도 시행되었는데, 1945년 4월부터 6월까지 경성, 부산, 평양, 대전, 대구 등의 주요 도시에 각각 소개공지 또는 소개 공지대라는 것을 지정했다. 경성부내의 소개 공지대는 모두 19곳이었으며, 제1차 소개 작업은 5월 11일부터 시작되어 6월 말에 끝났다. 그 중 한 곳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의 너비 50 m, 길이 1180 m의 현 세운상가 지대였다. 곧바로 제2차 소개작업이 시작되었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소개작업은 미완으로 끝났다.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방치되어 있던 소개공지에는 전쟁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과 월남한 이주민들이 판잣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였고, 사창가도 들어섰다. 1950년대부터 1968년까지 이 일대를 중심으로 사창굴이 생겼으며 당시 사람들은 이 사창가를 속칭 종삼(鐘三) 또는 서종삼이라고 불렀다. 1952년 이곳의 소개공지는 내무부 고시에 의하여 도시계획 상의 광로로 지정되었으나, 실제로 도로가 건설되지는 않았다.
개발
1966년 4월 4일 서울특별시장으로 김현옥이 부임하였다. 그가 부임하기 앞서 중구청 산업과 상공 계장으로서 이을 삼이 있었다. 그는 이 지역을 처음 봤을 때 이곳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중구청장 장지을이 이 계장을 대동해 김 시장에게 이것을 보고했다. 김 시장은 실태가 심각한 수준임을 인식해 도시계획과에 이 지구 정리 방안을 작성하도록 하였고 이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종래에 종로구와 중구에 각각 분담되어 있었던 이 지역의 정비 사업이 시청 소관으로 이전되어 김 시장이 진두지휘하였다. 김 시장은 1966년 7월 초 종로구·중구 양 구청장에게 이 지대 무허가 건물 철거를 지시했고, 8월까지 이 지역에 대한 철거작업을 마쳤다. 서울시는 이 지역에 대규모의 상가 건물을 짓기로 계획했지만, 정부는 당초 이 지역을 도로용지로 지정한 것을 들어 상가 건설을 거부하려고 했지만, 청계천에 인접하고 있던 현재의 아세아 전자상가 위치에 9월 8일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이 기공식에 참석한 김현옥은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라는 뜻을 담아 이 지역의 상가 이름을 세운(世運) 상가로 결정했다. 결국 정부도 이 지역을 재개발지구로 고시하게 되었다. 한편, 1966년 11월 26일에는 세운상가가 지어질 소개 공지의 좌우 측에 도로명을 부여하였다. ‘대한극장앞(중구 충무로4가 125)~종묘동측(종로구 훈정동 93)’ 구간을 번영동로(繁榮東路)로, ‘대한극장앞(중구 충무로4가 125)~종묘서측(종로구 훈정동 85)’ 구간을 번영서로(繁榮西路)로 지정한 것이다. 두 도로의 이름은 1984년 11월 7일 폐지되었다.
준공과 운영
세운상가 중에서는 현대상가가 1967년 7월 26일 최초로 준공되었다. 서울시는 점포 2천개, 호텔 915개를 수용하는 맘모스 상가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동양 최대규모인 시멘트 87만부태, 목재 143만사이, 철근 7천t의 자재가 들어갔다고 자랑하면서, 서울의 상가 중심지가 종로 - 명동 - 소공동 - 무교동에 이어 이 곳으로 옮겨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상층부에 건설된 아파트의 인기도 대단해서, 사회 저명인사들이 다투어 입주해 있었고, 시공 때부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1971년 한강맨션이 건설되기 전까지 세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강남이 개발되고 서울 곳곳에 새로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세운상가 아파트 입주자들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시작했다. 상가를 찾는 발길도 뜸해지면서 1979년에는 재개발 계획이 처음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세운상가는 서울의 유일무이한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도 발전했다. 특히 8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의 발전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한국의 8비트와 이후 16비트 컴퓨터, 그리고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세운상가에서 거래되었다. 1987년 저작권법이 도입되기 전 한동안 소프트웨어를 카피하는 카피점이 성행했다. 세운상가 사람들이 모이면 미사일이나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이후 1987년 정부가 용산역 서부청과물시장을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용산전자상가를 조성해 세운상가의 전자상을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도 많은 수가 이전하였고, 일부는 이에 반발하고 그 자리를 지켰지만 세운상가를 찾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었다.
철거 계획
국민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강남 개발이 이루어지고 도심이 정비되면서, 상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서울시에서도 1995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그 부지를 공원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하지만 막대한 보상비 문제로 철거는 계속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 사이 세운상가는 1998년 IMF 외환 위기, 2000년대 초 인터넷거래 활성화 등의 위기를 겪으며 더욱 쇠락해 갔다.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이 진행되면서 청계천 주변 상가의 대규모 정비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청계천을 떠나게 된 상인들은 송파구의 가든파이브로 이전하였고, 이 일대 상권은 더욱 쇠락하게 된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종로세운상가와 청계상가를 잇던 공중 보행데크가 철거되었고, 뒤이어 을지로를 지나던 보행데크도 철거, 3층의 보행통로는 네 조각이 났다.
2006년 취임한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의 철거와 일대의 공원화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상가는 상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8년 12월 17일 북쪽에 있는 현대상가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세운 전자상가는 '세운 초록띠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2010년 청계천 남쪽의 청계상가 철거에 들어가 2012년까지는 퇴계로까지의 모든 상가를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금융위기의 여파로 철거되지 않았다. 현대상가 이외는 기존의 철거 계획이 백지화됨에 따라 도시재생을 진행하는 방안이 마련되어, 영업을 정상화하게 되었다. 오세훈 시장에 이어 2011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2014년 세운상가를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보존형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3년여간의 공사를 거쳐 2017년 9월 19일, 세운상가가 정식 재개장되었다. 리모델링된 세운상가에는 청년 창업·벤처기업이 입주하고, 이들이 30∼40년간 상가에서 활동한 기술 장인들과 협업하도록 해 도심 제조업의 전진기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3]
상가 설계
세운상가의 설계는 김수근에 의해 이루어졌다. 건물의 지상 1층은 자동차 통로와 주차공간으로 하고, 3층에 인공데크를 건설하여 주변에 상가를 배치, 보행자 전용의 통로로 하여 철저한 보차도 분리를 적용하고, 종묘에서 필동 사이 1km에 이르는 공간은 보행자 통로를 연결하여 입체화하도록 했다. 또한 상가의 윗층 아파트 부분에는 건물을 유리로 덮는 아트리움 공간을 도입하는 등의 설계가 진행되었다. 이에 이 지역의 개발이 활성화되었고 현대건설·대림산업·삼풍 건설산업·풍전산업·신성 공업·진양종합건설 등 6개 기업체가 참여, 북쪽부터 차례대로 현대상가(현 종로세운상가), 아세아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현 삼풍넥서스빌딩), 풍전호텔(현 HOTEL PJ), 신성상가, 진양상가라는 이름을 붙여 건설되었다.[3]
건설 결과
상가 건설 결과는 설계와 많이 달랐다. 3층에 있다던 공중보행도로는 동서 두 줄로 가다가 을지로를 건널 때 잠깐 한 줄이 되고, 을지로를 건넌 뒤 다시 두 줄이 되었다가 마른 내길에서 끊어졌다. 마른내길이 이어지지 못하자 1km에 이르는 공중 보도도 중간에 끊겨 버린 것이다. 건물에 유리덮개를 설치하는 것도 실현되지 않아 서울 시내에서 투박하고 위압감을 주는 건물로 변해 버렸다. 철저히 보차도 분리를 하겠다던 당초의 계획과 달리 지상 1층에도 보행자가 다니게 되어 3층의 보행자 도로는 그 의미를 상실했고, 상가 내에 공공시설을 설치하고 옥상에는 인공정원을 두겠다는 계획도 무산되었다. 설계자 중 한 명이었던 윤승중은 1994년에 밝힌 회고에서 자신들은 상가의 기본설계만 하고 세부 설계는 담당하지 않았으며, 시공주체가 서울시여야 했는데 8개의 기업군으로 분할되어 기업의 논리에 의해 계획이 변경되었고, 당시 시대가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오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윤승중은 이 회고에서 계획이 10년만 더 늦게 착수되었어도 이상이 실현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3]
여담
- 세운상가는 용산 전자상가가 들어서기 이전까지 각종 전자제품과 컴퓨터 및 컴퓨터 부품 등을 취급하던 곳으로 1987년 저작권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완전히 불법 복제의 온상이었다. 2000년대의 중국을 방불케하는 수준으로, 재미나도 이곳에서 롬을 카피했다는 의혹이 있다. 더군다나 이들의 복제 속도 또한 어마어마해서 본국에서 새로운 오락실 기판이 나오면 불과 1~2개월 만에 복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재미나는 세운상가에 있었는데 매장을 별도로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 2009년에 현대상가가 철거되면서 많은 이들이 세운상가 전체가 문을 완전히 닫은 것으로 알았지만 현대상가가 유독 진척 속도가 빨랐던 것일 뿐 다른 상가들은 보상 조건을 협상한 적도 없었기에 영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LP라든가 진공관, 전자부품 등은 아직도 여기서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 많기에 수리업소 등에서 종종 찾곤했다. 또한 음향기기나 영상기기 수리업체도 슬금슬금 다시 입점했으며 예전 게임을 판매하던 흔적이 남아서 오락기기 제조 및 유통업체도 영세한 곳은 대림상가 등지에 아직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비단 영세한곳뿐 아니라 연세어뮤즈먼트 같은 대형 유통사도 이쪽에 사무실이 있다. 아무튼 이러한 내력이 있는탓인지 2019년에는 청계천 문화축제의 부속으로 전국 아케이드 게임기 박람회라는것도 열었다. 에뮬통 게임기 몇대와 뽑기기계 두대, 문구점에 들여놓던 가위바위보류 경품게임 두세개정도만 전시하고 끝. 별로 볼것이 없다고 한다. 뉴스에서 이를 검색하면 손학규 의원이 방문했다는 내용만 나오는것으로 봐서 전형적인 구색맞추기식 행사에 불과하다.[2]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